―『청소년을 위한 라이벌 한국사』로 보는 장가들기 vs 시집가기

때는 16세기 중반, 강릉에 살던 38세의 주부 신사임당(申師任堂)은 고민에 빠졌다. 남편 이원수가 서울 수진방에 있는 자기 집의 가계를 물려받게 되었다면서 그곳에 가서 살자고 부탁했기 때문이다.
(『청소년을 위한 라이벌 한국사』, 「장가들기 vs 시집가기」, 13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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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곡 이이(李珥)가 태어난 강릉 <오죽헌>
_ 다시 말해 여긴 신사임당의 친정입니다. 조선 전기가 배경인 사극인데 시댁에서 애를 낳고 있으면 그건 쪼끔 이상한 거예요.^^

‘설마 씨앗문장인가?’ 하시는 분들이 분명 있으시겠지요, 암만요. 하지만 이제 막 30대에 진입한 (언젠가) 결혼을 앞두고 있는 여자에게는 충분히 씨앗문장입니다(잉?).

어제 지하철을 타고 집에 가는데 옆에 옆에 앉은 남자가 30분 내내 여친과 통화를 하더군요. 옆에만 앉았어도 다 들었을 텐데 옆에 옆에 앉은 바람에 잘 못 듣기는 했지만 대강의 내용은 결혼 후 남자에게는 자신의 집, 그러니까 여자에게는 시집에서 살 것이냐 말 것이냐의 문제였습니다. 500년 전의 강릉 주부 신사임당도 똑같은 문제를 가지고 고민을 했습니다. “이거 왜 이래요? 사극 한번 못 본 사람처럼. 조선 시댄데 며느리가 시부모 모시는 거 당연한 거 아니에요? 더구나 신사임당이?”라고 하실 수도 있겠습니다만, 우리가 현모양처라 알고 있는 신사임당은 결혼 후 19년 동안 시부모를 모시지 않은 ‘싹퉁 바가지’였습니다(그러다가 남편의 합가 부탁을 받은 것이지요. 신사임당은 결국 이를 수락합니다). 그런데 조선 전기까지만 해도 이렇게 싹퉁 머리 없는 며느리들이 아주 많았습니다. 왜냐하면 조선 전기만 하더라도 결혼의 형태는 ‘시집가기’가 아닌 ‘장가들기’였거든요. 고려 시대의 일반적인 결혼 형태였던 장가들기(남귀여가)식 혼인이 조선까지 계속해서 이어져 왔기 때문이죠. 하지만 우리는 겨우 조선 후기에 와서야 유행하기 시작한 시집가기(친영)가 우리 고유의 전통인 줄 착각하고 있습니다. 시간의 두께로 보면 장가들기가 훨씬 ‘전통적’인데 말이죠. 자, 우리 눈을 제대로 떠 보십시다. 진실은 항상 저 너  ~  머에 있습니다.

- 편집부 봉식어멈

+ 강응천 선생님의 『청소년을 위한 라이벌 한국사』가 출간되었습니다. 자세한 소개는 아래 '그린비 책 소개 바로가기'를 이용해 주세요. ^^
2010/02/03 16:50 2010/02/03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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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OpenID Logo 휘프타 2010/02/06 22:49

    재미있는 글이었습니다 ^^
    전통에 대한 역사를 알아야 새로운 현재를 창조할 수 있겠네요.

    • 그린비 2010/02/07 18:35

      휘프타님, 안녕하세요. "전통에 대한 역사를 알아야 새로운 현재를 창조할 수 있다"는 멋진 댓글!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