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달간 전업주부로 살았습니다. 아 정말 힘들더군요. 얼마 전 어떤 기사에선 남편의 수입이 500이상이 되면 전업주부로 살겠다고 답했다는 여론조사를 발표하던데~, 전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저에겐 상대가 5백을 벌든, 천을 벌든, 전업주부일은 다시 하고 싶지 않거든요.

한때는 저도 전업주부를 부러워했었답니다. 솔직히 그 부러워하는 시선 속엔 전업주부가 하는 일이 다 편한 일 아니냐는 적잖은 폄하도 담겨 있었습니다. 그 이후로 제가 전업주부로 살아보지 않았더라면 어쩌면 여전히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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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눈앞에 닥친 전업주부의 일들은 결코 가벼운 것들이 아니었습니다. 날마다 쌓이는 먼지, 버려도 버려도 사라지지 않는 음식물 쓰레기, 식탁 밑으로 굴러 들어간 양말. 왜 인간은 세 끼를 먹도록 설계되었는지 신께 문의하고 싶을 정도로 나를 열받게 하던 설거지 등등. 단 한 순간도 쉬는 때가 없는 게 바로 전업주부의 일상이었으니까요.

살림’으로 통칭되는 전업주부의 일들은 왜 이렇게 다 힘들고 끝이 없는 걸까요? 사실 그 짜증의 근원은 별거 아니었습니다. 이런 허드렛일을 하는 시간을 아끼면 책도 읽을 수 있고, 좋아하는 음악도 들을 수 있는데, 내가 왜 이런 일을 하고 있어야 하나, 하는 그런 생각 때문이었죠.  

_ 『어제 뭐 먹었어?』, 이 만화는 순전히 메뉴를 알아보려고 산 요리 책이었습니다. 어케 한 끼 가뿐하게 때워 볼까 하는 초보 주부의 야심으로 선택한 만화였죠.

주인공 카게이 시로는 직업이 변호사입니다. 변호사가 등장하기에 처음엔 농림수산부 소속 변호사 이야긴가 싶었죠. 변호사가 가사노동이라~. 수입도 많은데 굳이 밥해 먹고 살 필요가 있나 싶지만 그는 변호사 일보다 맛있는 음식 만들어 먹기를 더 좋아하고, 집안 청소와 설거지를 효율적으로 해내는 것에 즐거움을 느끼는 사람입니다.

그의 일과는 우리가 생각하는 빡빡한 변호사 업무로 채워지지 않습니다. 승진에도 욕심 없고, 굳이 큰돈을 벌려고도 하지 않죠. 자신이 할 수 있는 만큼의 일을 하고, 저녁에는 요리를 합니다. 만화 안에선 그 과정들이 마치 요리 책처럼 세세하게 나와 있습니다. 양파를 까고, 가스 불을 켜고, 간을 보고, 상에 차리기까지. 마치 슬로우 모션으로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까지 줍니다.

어쨌거나 이들에겐 저처럼 가사노동이 불편하고 짜증 나는 일이 아닙니다. 오히려 주인공 카게이는 가사노동을 통해 사람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합니다. 혼자 먹기 힘든 수박을 모르는 아줌마와 함께 사서 나눈다든지, 정성스럽게 도시락을 싸서 이혼한 의뢰인의 아이를 볼 수 있도록 돕는다든지 하는 방식으로 다양한 사람들과 만납니다. 그것뿐만이 아닙니다. 그가 게이임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부모님과도 음식에 관련된 이야기를 할 만큼은 편하게 대화할 수 있습니다. 그가 자신을 위해 수고스럽게 음식을 준비했을 어머니의 요리를 칭찬하는 부분은 순간 우리 안에서 쉽게 묻혀 버리는 가사노동을 수고와 배려의 영역으로 드러내는 역할을 합니다.

_ 사실 생각해 보면, 카게이가 보여 주는 삶이 바로 우리의 삶입니다. 어쨌거나 변호사든 게이든 편집자든 먹어야 사니까요. 그러기 위해선 일상적인 노동들, 그 중에서도 가사노동을 우리는 끊임없이 해야 하지요. 가사노동이야말로 온전히 내 몫의 노동이죠.


우리는 쉽사리 가사노동을 삶에서 삭제 가능한 것처럼 생각합니다. 저만 해도 일이 바쁘면 밥해 먹는 일을 건너뛰고, 배달 음식을 시켜 왔습니다. 내 몸을 움직이지 않으면 치워지지 않는 쓰레기들, 빨래들. 이런 것들은 손쉽게 부차적인 일처럼 느껴집니다. 가사 도우미를 고용해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해 버리기도 하구요. 굳이 성별의 의미를 따질 필요 없다는 생각도 듭니다. 여자든 남자든 그 노동을 부차적으로 생각하고, 기피하니까요.

하지만 돈을 들여서 가사 도우미를 들인다고 해도, 여전히 그 노동의 고단함은 화폐로 인해 나에게서 타인에게로 전가된 것일 뿐,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힘드니까 가사노동을 도와줄 좋은 가전제품을 사면 되지 않느냐는 말도 사실은 잘못된 말입니다. 이불 빨래가 힘들어 10kg짜리 세탁기를 사고, 밥공기를 세척해 준다는 식기 세척기를 사도, 여전히 가사노동으로 해결해야 할 부분들은 남으니까요.

이 만화 덕분에 저는 ‘가사노동에서 해방’이라는 말을 곱씹게 됐습니다. 가사노동에서 해방되어야 한다는 그 말이 우리에게 잘못된 프레임을 제공하고 있는 건 아닌가 싶어요. 오히려 그 노동이라는 건, 만화 속 카게이처럼 자신의 삶을 구성하는 꼭 필요한 일들로 받아들여야만 해결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돈이 되지 않는다고 폄하하고, 삶에서 삭제해 버린다면 가사노동에서 진짜 해방되는 건 정말 요원하지 않을까요?

- 편집부 강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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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08 10:34 2010/02/08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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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코마개 2010/02/08 11:39

    뭐 어쨌거나...전 뭐라고 해도 '남이 차려준 밥'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습니다.
    어머니의 손맛...이런 소리는 지 손으로 밥상을 차리지 않는 사람이 하는 소리라 믿습니다.ㅋ

    • 그린비 2010/02/08 13:35

      하하..남이 차려준 밥이 세상에서 젤 맛있죠.ㅎㅎ
      전 차리는 것보다 치우는 게 싫어서 안 해먹는 편인데.. 흣. 그래도 올해는 밥상혁명 한 번 일으켜 볼까하고 양파를 까고, 가스 불을 켜고, 간 보는데 재미 붙이고 있어요. 설거지는 밥먹고 바로하기도 겨우 실천중 ^^ㅋ 코마개님이 듣기에는 어쩌면 배부른 소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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