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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라는 사람은 조신하고 참한 얼굴과 다르게 막말과 육두문자를 토해 내는 사람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싸우지는 못하는 사람입니다. 저에게 싸운다는 것은 일단 감정이 흔들렸다는 의미이고, 여덟 살 때부터 민화투판에 몸을 던졌던 저는 ‘흔들린 내 마음을 남에게 알리지 말라’를 신조처럼 여기고 살아온 사람이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저는 싸움 구경은 엄청 좋아합니다^^. 커피숍을 가면 꼭 싸우는 연인 근처에 자리를 잡아 귀를 쫑긋 세우고 그들을 엿듣(보)고, 집에 있다가도 밖에서 싸우는 소리가 나면 잠옷 바람도 개의치 않고 나가서 기웃기웃합니다. 그러니『청소년을 위한 라이벌 한국사』를 편집하게 된 건 싸움 구경 좋아하는 제가 아주 제대로 임자를 만난 것이었던, 것이었던,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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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싸움보단 곰싸움?! ^^

싸움이라고 하니 주먹질이나 멱살잡이 등을 떠올릴 수도 있으시겠지만 이 책에서는 그런 개싸움은 취급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 책은 한국의 고대에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한국사를 대표하는 라이벌들 간의 대립(전 ‘싸움’이라고 표현했지만^^: 제 어휘가 좀 저렴합니당)의 역사와 이들 간의 대립이 어떤 식으로 한국사를 형성해 왔는지를 보여 주는 (그리고 『청소년을 위한 라이벌 세계사』의 뒤를 잇는)  ‘고품격’ 청소년 역사서이기 때문이죠, 후훗. 고품격답게 이 책은 라이벌 개개인을 다루기보다는 한 나라와 시대를 들끓게 한 세력이나 사건, 사상 등을 라이벌로 설정하여 다방면으로 한국사를 읽게 합니다. 프롤로그에서 제시하고 있는, 부제 그대로 한국사 오천 년을 관통해온 라이벌들의 단골 싸움 주제였던「자주 vs 사대」를 볼까요? 고조선은 동양의 최강국이었던 한나라에 대해 자주적 입장을 고수하다 결국 한나라에 의해 멸망당했고(「주몽」 보셨지요?^^;), 신라의 삼국 통일은 외세의 힘을 빌린 반쪽짜리 통일이었다는 비난을 내내 당하고 있고, 고려 때는 금의 사대 요구를 받아들일 것이냐 말 것이냐를 두고 서경파와 개경파가 갈라져 싸우고, 몽골 침입기에는 그들에게 무릎을 꿇을 것이냐 말 것이냐를 놓고 또 대립이 일어나고, 조선 시대에는 병자호란 등등 일일이 말하기에도 입이 아플 만큼 굵직굵직한 싸움에는 꼭 자주와 사대의 문제가 걸려 있었습니다. 이렇게 이 책은 때로는 망원경처럼 하나의 주제만으로도 한국사를 한눈에 볼 수 있게 하기도 하고 때로는 현미경처럼 라이벌 관계에서 파생된 관계, 혹은 그 사건을 가능케 한 수많은 관계와 관계들의 연쇄를 아주 자세히 보여 줍니다. 이런 가운데 저는 라이벌과 라이벌들이 만들어낸 많은 ‘이야기’들을 쏠쏠히 챙길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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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적인 라이벌들의 대결, 최현미 vs 츠바사(「무한도전」 중에서)

전 싸움 구경을 좋아한다고 말씀 드렸지만 승부가 명확히 갈리는 싸움은 좋아하지 않습니다(그래서 스포츠보다는 길거리에서 눈을 부라리는 그런 싸움이 더 좋아요^^;). 최현미 선수와 츠바사 선수가 나온 「무한도전」을 보며 눈물이 ‘핑’하기도 했지만 누구 하나가 쓰러지고 나면 끝이 나 버리는 그런 싸움이 저에게는 별로입니다. 대신 영원히 승부가 나지 않아도 좋지만 계속해서 다른 이야기를 떠올릴 수 있는 그런 관계를 저는 좋아합니다. 이 책에 나오는 한국사의 라이벌들이 만들어 내는 이야기들처럼 말입니다. 회사를 1년 가까이 다니면서도 무심히 지나쳤던 회사 가는 길목의 지혜원이란 절집을 유심히 보게 된 것은 「불교 vs 무속」 편을 읽고 나서입니다. “열 집 건너 하나씩 절이 있고, 탑이 기러기처럼 늘어서 있는 불교 도시”였다는 서라벌이, 깨끗한 한옥식 이층집처럼만 보이는 사찰 지혜원을 보자 비로소 머릿속에 그려졌습니다. ‘아, 지혜원 같은 절들이 서라벌에는 열 집 건너 하나씩 있었단 말이지’ 하면서요. 「장가들기 vs 시집가기」를 읽고 나면 신사임당을 시 잘 짓고, 그림 잘 그리고, 남편 뒷바라지 잘 하고, 자식 잘 키운 슈퍼 우먼으로만 그리는 신사임당 위인전에 배신감을 느낄 ‘언니’들이 벌써부터 떠오릅니다. 대성리학자였던 이이가 그렇게 훌륭한 어머니 신사임당이 아닌 장인장모를 모시고 처가살이를 했다는 사실도 쏙 빼놓고 가르쳐 준 국사책, 이 양반은 안 가르쳐 준 게 워낙 많으니까 그냥 넘어가렵니다. 

사실 제가 좋아하는 싸움이 실생활에서는 사실 많이 일어나질 않습니다. 그래서 기회가 있으면 저는 기를 쓰고 기웃기웃하지요^^;. 하지만 작년 11월부터 올해 1월까지 석 달 동안 『청소년을 위한 라이벌 한국사』를 만들면서는 그럴 필요가 없었습니다. 기후 변화로 폭설이 내리고, 갑작스런 혹한이 찾아와도 저는 안에서 등 따숩게 한국사 라이벌들의 싸움 구경을 했습니다. 단군과 기자의 싸움, 붕당과 붕당의 싸움, 1884년과 1894년의 싸움, 6․10과 6․29의 싸움……. 불 구경과 함께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는 구경이라는 싸움 구경도 하고, 말리다 다칠 일도 없고, 무엇보다 역사 교양과 지식을 넓힐 수 있는 이 좋은 기회를 같이 한번 붙들어 보시지 않으시렵니꺄?

- 편집부 봉식어멈
2010/02/16 11:27 2010/02/16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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