ㅡ근대성, 식민성, 탈식민성 기획 간략사

번역 우석균(서울대 라틴아메리카연구소)

1996년경 페루 사회학자 아니발 키하노는 뉴욕주립대학(SUNY) 빙엄턴 캠퍼스에서, 당시 페르낭 브로델 센터 소장이던 미국인 동료 이매뉴얼 월러스틴과 함께 연구를 하고 있었다. 두 사람 모두 1960년대에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다. 키하노는 종속이론과 관련된 라틴아메리카 사상가 그룹의 적극적인 활동가였고, 월러스틴은 서구 사회학에서 가장 혁신적인 관점인 세계체제론의 창시자였다. 키하노는 빙엄턴 캠퍼스의 사회학과에서 강연을 하고 세미나 수업을 진행했으며, 켈빈 산티아고가 주도하는 식민성 연구그룹이 조직한 일련의 세미나에 참석했다. 켈빈 산티아고는 푸에르토리코의 사회학자로 당시에 같은 나라 출신인 라몬 그로스포겔(사회학 교수)과 아구스틴 라오 몬테스(박사과정 학생)와 함께 빙엄턴 사회학과에 적을 두고 있었다. 식민성 연구그룹에는 미국에서 식민잔재 연구로 저명한 실비아 윈터스도 포함되어 있었다. 1998년 12월 그로스포겔과 라오 몬테스는 빙엄턴 캠퍼스에서 ‘트랜스모더니티, 역사적 자본주의, 식민성: 포스트-분과학문적 대화’라는 국제회의를 조직했다. 이 회의에는 키하노와 월러스틴 외에도 아르헨티나인들인 철학자 엔리케 두셀과 기호학자 월터 미뇰로가 초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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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발 키하노, 엔리케 두셀, 월터 미뇰로

두셀은 1970년대 해방철학의 창시자 중 하나로 라틴아메리카에서 이미 저명한 학자였다. 반면 미뇰로는 저서 『르네상스의 어두운 측면』(The Darker Side of the Renaissance)을 계기로, 점점 증가 추세에 있던 포스트식민주의 학계에서 인정을 받기 시작하고 있었다. 두셀, 키하노, 미뇰로가 한자리에 모여 월러스틴의 세계체제 분석과 대화를 시도하면서 라틴아메리카의 식민잔재에 대한 각자의 시각을 토론한 것은 이 국제회의가 처음이었다. 이듬해 빙엄턴 그룹은 ‘식민주의적인 분과학문 실천의 역사적 터전: 국민국가, 부르주아 가족, 기업’이라는 행사를 거행하여, 아시아와 아프리카와 라틴아메리카의 포스트식민주의 이론들과 소통하기 시작했다. 이 행사에는 반다나 스와미, 찬드라 모한티, Zine Magubane, 실비아 윈터스, 월터 미뇰로, 아니발 키하노, 베네수엘라의 인류학자 페르난도 코로닐이 참가했다. 세계체제 분석과 라틴아메리카 식민성 이론 사이의 이러한 접근은 2000년 3월에 라몬 그로스포겔이 보스턴에서 제24차 세계체제 정치경제학(PEWS) 분과를 조직하면서, 콜롬비아 보고타의 하베리아나 대학 사회문화연구 연구소인 펜사르의 철학자 산티아고 카스트로 고메스와 오스카르 과르디올라 리베라를 초청하면서 계속되었다. 이 만남의 결실이 2002년 그로스포겔과 아나 마르가리타 세르반테스 로드리게스가 편찬한 저서 『20세기 근대적/식민적/자본주의적 세계체제』(The Modern/Colonial/Capitalist World-System in the Twentieth Century)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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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근대성/식민성 그룹의 모든 구상이 미국에 거주하는 라티노 학자들에게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콜롬비아와 베네수엘라 같은 나라에서는 위에 언급한 전개 과정과 병행해서 새로운 접속점이 형성되고 있었다. 이와 관련해서는 베네수엘라 사회학자인 에드가르도 란데르의 활동을 부각시킬 필요가 있다. 란데르는 라틴아메리카 사회과학연구협의회(CLACSO)의 지원으로 베네수엘라 카라카스에 소재한 센트랄 대학에서 미뇰로, 에스코바르, 두셀, 코로닐을 초청하여 학술행사를 가졌다. 연구그룹이 그때까지 산출한 책들 중 가장 중요한 저술이 이 학술행사에서 비롯되었다. 란데르가 편찬하여 2000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간행된 『지식의 식민성: 유럽중심주의와 사회과학』(La colonialidad del saber: eurocentrismo y ciencias sociales)이라는 책이다.

또한 보고타 펜사르 연구소의 산티아고 카스트로 고메스가 선도한 활동도 언급할 필요가 있다. 카스트로 고메스는 1999년 8월 ‘안데스 국가 사회과학의 재구성’이라는 국제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이 행사는 근대성/식민성 네트워크의 여러 접속점에서 그때까지 일어난 모든 일의 촉매가 되었다. 이 행사를 기점으로 보고타 하베리아나 대학, 듀크 대학, 노스캐롤라이나 대학, 키토의 시몬 볼리바르 안데스 대학이 지식의 지정학과 권력의 식민성이라는 주제를 중심으로 연구 활동과 출판을 하자는 상호협력 협정을 맺었기 때문이다. 보고타 심포지엄에는 미뇰로, 란데르, 코로닐, 키하노, 카스트로 고메스, 과르디올라 외에도 두 명의 여성학자가 참석했다. 아르헨티나 기호학자 술마 팔레르모와 독일 로망스연구 학자 프레야 쉬비(Freya Schiwy)로 후에, 분과학문을 가로지르고 다양한 국적의 구성원으로 이루어진 이 연구그룹의 멤버가 되었다. 보고타 심포지엄의 결과 두 권의 책이 간행되어, 앞서 언급한 란데르의 책과 더불어 근대성/식민성 그룹의 최초의 발간물이 되었다. 『틈새 사유하기. 포스트식민주의 비평의 이론과 실천』(Pensar [en] los intersticios: Teoría y práctica de la crítica poscolonial, 1999)『라틴아메리카 사회과학의 재구성』(La reestructuración de las ciencias sociales en América Latina, 2000)으로 펜사르 연구소가 간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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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에는 분위기가 무르익어서 연구그룹의 1차 만남을 조직하고 그 동안의 성과를 논할 수 있게 되었다. 이 행사 겸 회합은 월터 미뇰로가 듀크 대학에서 ‘참지식과 알려진 지식’이라는 제목으로 개최했고, 학술지 ≪네판틀라≫(Nepantla)의 도시어가 마이클 엔니스와 Freya Schiwy가 간사가 되어 탄생하였다. 듀크 대학 행사에는 볼리비아의 문화 이론가인 하비에르 산히네스와 미국인 언어학자이자 시몬 볼리바르 안데스 대학 교수인 캐서린 월시가 그룹에 합류했다.

월시는 2002년 키토에서 열린 제2회 연구그룹 모임을 개최한 학자이기도 하다. 2차 모임에서 멤버들은 에콰도르의 원주민 혹은 아프리카계 지식인들과 소통에 나섰으며, 그 산물로 『사회과학의 탈규범. 지식의 지정학과 권력의 식민성』(Indisciplinar las ciencias sociales : geopolíticas del conocimiento y colonialidad del poder)이 출간되었다. 이 책은 캐서린 월시, 프레야 쉬비, 산티아고 카스트로 고메스가 편찬했으며 키토의 아브야-얄라 출판사에서 간행되었다.

3차 모임은 2003년 라몬 그로스포겔과 호세 다비드 살디바르에 의해 버클리 캘리포니아 대학에서 열렸다. 이 대회를 통해 푸에르토리코 철학자 넬손 말도나도 토레스가 연구그룹에 합류했으며, 이 모임의 결실인 저서 『포스트식민성 해체하기: 식민성, 트랜스모더니티, 경계사유』(Unsetting Postcoloniality: Coloniality, Transmodernity and Border Thinking)를 그로스포겔과 살디바르와 함께 편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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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 모임은 2004년 4월에 버클리 캘리포니아 대학에서 열렸으며, 그 결과 두 권의 간행물이 나왔다. 하나는 『세계체제 속의 Latin@s: 21세기 미국 제국 내부의 탈식민 투쟁』(Latin@s in the World-System: Decolonization Struggles in the 21st Century US Empire, Paradigm Press, 2005)이라는 책이고, 또 다른 하나는 이매뉴얼 월러스틴이 주도하는 학술지 ≪포스트식민주의 연구에서 탈식민주의 연구로≫(From Postcolonial Studies to Decolonial Studies)의 19권 2호(2006년)인데, 그로스포겔이 편찬을 맡았다. 그로스포겔, 말도나도 토레스, 살디바르가 개최한 이 학술회의는 21세기 미국 제국의 탈식민화를 주요 주제로 잡은 것이었다. 이 학술회의를 통해 근대성/식민성 그룹은 아프로카리브 철학자이며 카리브철학학회 회장 루이스 고든, 포르투갈 사회학자로 세계사회포럼의 핵심 조직자이자 이론가인 보아벤투라 데 소우자 산투스와 소통하기 시작했다.

5차 모임은 몇 달 후인 2004년 6월에 채플힐(노스캐롤라이나 대학)과 더럼(듀크 대학)에서 아르투로 에스코바르와 월터 미뇰로에 의해 ‘비판이론과 탈식민성’이라는 이름으로 거행되었다. 이 결과물은 래리 그로스버그가 편집위원장을 맡고 있는 학술지 ≪문화연구≫(Cultural Studies)의 한 호를 통해, 『세계화와 탈식민적 사유』(Globalization and De-colonial Thinking)라는 제목으로 2006년 간행되었다. 미뇰로와 에스코바르가 출간을 위해 간사를 맡았다.

6차 모임은 2005년 4월에 또다시 버클리에서 ‘탈식민적 전환 지도그리기’이라는 이름으로 개최되었다(이 회의의 결과물로 나온 책 제목도 동일하다). 이번에는 넬손 말도나도 토레스가 진두지휘를 하고, 그로스포겔과 살디바르도 간사로 기여했다. 카리브철학학회 회원들을 비롯해 라틴아메리카, 아프로아메리카, 치카노 지식인들이 참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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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의 활동과 간행물들이 근대성/식민성 그룹의 산물이다. 그러나 몇몇 구성원의 개인적 공헌도 부각시킬 필요가 있을 것이다. 엔리케 두셀의 『1492년. 타자의 은닉. 근대성 신화의 기원』(1492. El encubrimiento del otro. Origen del mito de la modernidad, 1992), 월터 미뇰로의 『르네상스의 어두운 측면』(1995)과 『지역의 역사/전 지구적 설계』(Historias locales/Diseños globales, 2003), 아니발 키하노의 『라틴아메리카의 근대성, 정체성, 유토피아』(Modernidad, identidad y utopía en América Latina, 1988)와 핵심적인 논문들인 「식민성과 근대성/합리성」("Colonialidad y modernidad/Racionalidad") 및 「권력의 식민성, 유럽중심주의, 라틴아메리카」("Colonialidad del poder, eurocentrismo y América Latina"), 아르투로 에스코바르의 『제3세계의 발명』(La invención del Tercer Mundo, 1998)과 『야만인의 종말』(El final del salvaje, 1999), 페르난도 코로닐의 『마술적 국가』(The Magical State, 1997), 에드가르도 란데르의 『정치적 사안으로서의 과학과 기술』(La ciencia y la tecnología como asuntos políticos, 1994), 라몬 그로스포겔의 『식민적 주체』(Colonial Subjects, 2003), 산티아고 카스트로 고메스의 『라틴아메리카 이성비판』(Crítica de la razón latinoamericana, 1996)와 『0도의 히브리스』(La hybris del punto cero, 2005) 등이 그것이다.

마지막으로 근대성/식민성 그룹이 전문가용 책 출간에만 전문가가 아니라, 다양한 학술적ㆍ정치적 기획에 참여하고 있다는 점을 언급할 필요가 있다. 그룹의 멤버 몇 사람은 캐서린 월시가 이끄는 키토의 시몬 볼리바르 안데스 대학의 라틴아메리카 문화연구 박사과정을 활성화시키고 있으며, 세계사회포럼의 틀 속에서 활동하고 있다. 2005년 카라카스 세계사회포럼에서는 ‘앎의 탈식민성: 다른 앎, 다른 혁명’이라는 이름으로 세 개의 패널을 조직했다. 버클리에 있는 그룹 멤버들은 치카노 활동가들과 문화기획, 인식기획, 정치기획과 관련된 연계 활동을 벌이고 있다. 또한 에콰도르와 볼리비아에서는 원주민 운동과, 카리브에서는 흑인 운동들과 연계 활동을 벌인다.




2010/02/26 11:43 2010/02/26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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