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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철학은 완전히 낡아빠져 버린 일이 한번도 없다” (요하네스 힐쉬베르거, 『서양철학사』)

‘낡음’은 어떤 것이 생겨나고 오랜 시간이 지나면 필연적으로 갖게 되는 성질이 아닙니다. 생겨나자마자 낡아 버리는 경우 혹은 어떤 때에 어떤 이에게는 낡았던 것이 다른 시기 다른 사람에게는 완전히 새로운 것이 되는 경우도 무수하게 많으니까요. 이제 이야기할 ‘고대철학’은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가 활동하던 시기의 ‘그리스철학’을 말합니다. 위에 인용한 힐쉬베르거의 말처럼 그것은 한번도 낡았던 적이 없었습니다. 그것은 각 시대의 사상을 대표하는 철학자들, 사상가들에게 끊임없는 영감을 제공해 왔던, 마르지 않는 샘물과 같은 것이었죠. 그들은 아이러니하게도 ‘새로운 사상’을 창안할 때, 오랜 시간을 통과해 온 ‘고대철학’으로 돌아가곤 했습니다. 화이트헤드 같은 사람은 이런 극단적인 말도 했습니다. “지금까지의 모든 서양철학은 플라톤에 대한 주석서에 불과하다”라고 말입니다.

그렇지만, 왜 하필 ‘그리스’였을까요? 그리고, 그리스에는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같은 ‘스타’만 있었던 것일까요? 그들 이외에 다른 그리스철학자들도 있을 텐데 왜 그들만 그렇게 빈번하게 언급되는 것일까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결과만 두고 보자면 우리가 단지 저 세 사람만을 기억하고 있다는 것이 ‘고대철학’을 재미없는 것으로 만들어 버리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사상의 역사란 무릇 ‘싸움’이 있어야 흥미로운 법인데, 저 세 사람의 그림자가 너무 진하다 보니 그 시대의 논쟁이란 ‘억지 부리는’ 소피스트 대(對) ‘지혜로운’ 소크라테스(+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정도의 싸움이었겠거니 하고 생각하고 마는 것이죠.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사람 사는 곳이 대부분 그렇듯이 그 시대에도 무수히 많은 논란들과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있었고, 그 논란과 문제의 적어도 두 배는 되는 만큼의 생각들이 돌아다니고 있었을 겁니다. 이제 그 문제를 한 가지씩 풀어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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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르테논 신전
유럽의 정신적 고향? 저 거대한 신전이 그리스인들의 정신을 보여 주고, 그 그리스인들의 정신이 현대의 문화 전반을 보여 준다.

유럽에서 ‘고대철학’ 연구가 가장 앞서 있는(?) 곳은 어디일까요? 보통 ‘고대 그리스철학’이라고 하니 당연히 그리스가 아니겠느냐 하시기 쉽겠지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리스철학’ 연구에 있어서 가장 권위 있는 곳 중 하나는 ‘독일’입니다. 이것은 의외로 간단한 역사적 맥락을 가지고 있는데요. 18세기, 그러니까 영국에서는 산업혁명이 일어나고 프랑스는 급격한 정치적 변화를 맞이하고 있었던 그 시기 독일의 상황과 관련이 있습니다. 독일은 아직 정치적으로는 봉건제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상태였고, 산업화는 더욱 더딘 상태였지요. 이런 낙후한 조건은 어떤 ‘이상향’에 대한 동경을 부르게 마련이고, 당대 독일 지식인들에게 고대 그리스는 그러한 ‘이상향’의 역할을 하기에 맞춤한 소재였습니다. 그리스 문학, 철학, 정치, 예술에 대한 다양한 연구가 곳곳에서 일어나게 되고, 그러한 연구를 통해 ‘그리스학’이 일찍부터 자리를 잡을 수 있게 된 것이죠. ‘문헌학’이라는 학문도 그러한 고대 그리스 연구로부터 출발한 학문분과입니다. 어쨌든, 그러한 연구에 힘입어 ‘그리스’는 유럽의 정신적 고향으로서의 자리를 확고하게 다지게 됩니다.

그런데 한 가지 의문이 생기지 않을 수 없습니다. 2,000여 년 전에 지구 전체에서 ‘철학’을 하던 곳이 비단 그리스뿐이었을까 하는 의문 말입니다. 일반적으로 그리스에서 철학이 발달한 이유를 꼽을 때 노예제에 기반해 있었기 때문에 그리스인들은 경제적인 고민에서 해방되어 있었고, 철학을 할 수 있는 여유가 있었다라는 식의 설명을 하곤 합니다. 그런데 이것만으로는 설득력이 떨어지지 않나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고대의 ‘노예제’는 그리스만의 특이한 현상이 아니었기 때문이지요. 오히려 그것은 고대사회를 특징짓는 아주 일반적인 사회체제였습니다. 그 설명대로라면 고대사회 어디에서든 ‘철학’이 나올 수 있는 여지는 아주 많았던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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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블레이크 <태고의 나날들>
플라톤의 저작 『티마이오스』에는 세계의 제작자로서 ‘데미우르고스’가 등장한다. 이 ‘제작자 신’의 도구는 컴퍼스, 창조주의 도구는 로고스. 중세의 사제들이 플라톤을 좋아했던 것은 우연이 아니다.

‘고대철학’하면 그리스가 먼저 떠오르는 이유는 다른 곳에서 찾아야 합니다. ‘다른 곳’이란 유럽의 정신사가 전개되어 온 과정입니다. 신의 섭리를 설명해야 했던 중세엔 기독교 이데올로기를 강화하기 위해 그리스철학이 연구되었고, 18세기 이래로는 유럽을 사로잡고 있었던 ‘진보’, ‘계몽’의 관념이 유토피아로 떠오른 그리스를 연구하도록 만들었던 것이죠. 기독교의 ‘신’ 관념과 플라톤이 추구하던 근원적 원인으로서의 ‘이데아’가 절묘하게 결합되고,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 자연에 대한 탐구정신이 계몽의 관념과 맞아 떨어진 것입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그리스는 유럽의 정신을 표상하는 ‘정신의 고향’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당대의 ‘현실’이 과거(기억)를 재구성하는 법이죠. 이 재구성 과정에서 그리스 못지않게 유럽 정신사에 심대한 영향을 준 이집트의 문화는 점점 기억 저편으로 잊혀져 갔습니다(여기에 유럽 근대인의 인종주의가 한몫했다는 것은 재론의 여지가 없죠).

인류가 시작된 이래로 ‘생각의 역사’는 꾸준히 지속되어 왔습니다. 유럽이 아닌 다른 문명권에서도 마찬가지였을 테고요. 다만 그리스철학, 그 중에서도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유가 마치 고대의 전부인 것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우리가 워낙 서구화되어 그들의 ‘고향’을 이식받은 탓이기도 하지만, 그들의 사고방식이 근·현대의 패러다임과 잘 맞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어떤 사태를 파악할 때 그 사태의 ‘본질’로부터 눈앞의 현상들을 이해하려고 하고, 어떤 문제를 볼 때 늘 그 문제의 ‘원인’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사고방식이 그들로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이지요. 이렇게 원인의 원인으로 거슬러 가는 인과적인 사고방식은 그야말로 2천 년 서양철학의 주류에서 한번도 물러난 적이 없는 사고방식이었습니다. 화이트헤드가 서양철학을 플라톤에 대한 주석이라고까지 말한 이유도 바로 그 점에 있는 것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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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에서 존재론의 길이 열렸던 것처럼, 중국에서도 당연히 철학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마당에 설마 그리스에서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만 철학을 했을 리는 만무하죠. 그것들이 역사적인 과정 속에서 주류가 된 사유였다면, 당연히 비주류가 된 사유도 있을 것입니다.

“스토아학파는 플라톤주의의 전복을 처음으로 시도했다고 볼 수 있다.” (질 들뢰즈, 『의미의 논리』)

‘스토아학파’라는 이름은 유명하지만 그들의 실체는 그만큼 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그저 ‘금욕주의자들’ 정도로 기억되는 것이 전부죠. 그리고 이 학파를 떠올리면 정확한 이름은 기억이 나지 않더라도 늘 함께 따라 나오는 학파가 더 있습니다. 바로 쾌락주의자들로 알려진 ‘에피쿠로스학파’죠. 이 두 학파가 우리에게 주는 이미지는 욕망을 ‘억누르거나’, ‘분출하거나’ 하는 정도입니다. 그런데 정작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스토아학파는 욕망을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검소하면서도 금욕적이지 않게 살기 위해 노력했고, 에피쿠로스학파는 최선을 다해 한세상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길을 추구했죠.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의 욕망을 정확하게 보고 ‘자기배려’를 할 줄 알아야 했습니다. 이 두 가지 사유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영향을 현대에 줍니다. 60년대에 들뢰즈가 플라톤주의 전통에 서 있는 서구 철학의 전통과 단절할 때 스토아학파의 시간론이 영감의 원천이 되었고, 푸코가 말년에 ‘자기배려’의 문제를 고민할 때 이 사람들의 시간론과 자기수양의 방법들은 커다란 재료가 되었습니다. 또 알튀세르가 법칙적이고 고착화된 소련식 맑스주의를 넘어서려고 노력할 때 그 넘어섬의 단초를 제공했던 것도 에피쿠로스의 그 유명한 ‘클리나멘’ 이론이었습니다.

클리나멘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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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리나멘
그림에서 보는 것처럼 빗방울이 떨어지는 것처럼 원자들이 낙하운동을 하다가 ‘우연히’ 운행의 흐름을 바꾼다. 삶의 무수한 ‘우연들’이 없다면, ‘삶’이 가능하기나 할까?

이 두 학파뿐만이 아닙니다. 소크라테스, 그러니까 아리스토텔레스의 스승이었던 그 플라톤의 스승이자 철학자의 표상인 소크라테스 이전에도 철학은 있었습니다. 원자론으로 유명한 데모크리토스, 만물의 변화를 이야기한 헤라클레이토스, 아낙사고라스, 피타고라스 정리로 유명한 피타고라스 등이 바로 소크라테스 이전에 철학을 했던 이들이지요. 아주 짧은 글들만이 남아 전해져 내려오긴 하지만, 지금처럼 ‘논문’을 쓰는 형식으로 철학을 하던 시절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것만으로도 현대의 철학자들에게 굉장한 영감을 주기엔 충분했습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맑스조차도 박사학위 논문이 바로 이 시대의 철학을 주제로 한 것이었을 정도였으니까요. (『데모크리토스와 에피쿠로스 자연철학의 차이』, 그린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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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이야기한 ‘원인을 찾아가는 사유’로서 플라톤과 그의 후예들, 그리고 스토아-에피쿠로스와 몇몇 다른 철학자들은 유럽 철학의 커다란 두 계보를 그리며 철학의 역사를 전개해 갑니다. 앞으로 이어질 연재에서 계속 다루겠지만, 전자에는 데카르트, 칸트, 헤겔, 바디우 등이 속하고 후자에는 스피노자, 니체, 베르그손, 들뢰즈 같은 사람이 속합니다.

『철학 VS 철학』의 저자 강신주 선생은 철학이 고유명사의 학문이라는 말을 자주 합니다. 이 알쏭달쏭한 말의 의미는 바로 ‘오래된 것’과 ‘새로운 것’의 연관성 속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철학에서, 철학의 역사에서 ‘오래된 것’은 있어도 오래되어 ‘낡은 것’이란 없다는 것이죠. 현대의 많은 철학자들, 철학의 역사에 이름을 올린 많은 철학자들은 이 ‘오래된 것’을 ‘새로운 것’으로 재구성했던 사람들에 다름 아닌 것입니다. 그리고 그 ‘재구성’이란 결국 그 사람들 각자가 자신의 삶을 어떻게 바라볼 것이고,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삶’을 어떻게 인식할 것인지를 고민한 흔적들인 것이죠. 따라서 철학은 철학자들 각각이 고유명사로서 자신의 ‘이름’을 걸고 삶을 설명한 분투의 기록인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여기서 철학을 한다는 것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 중 많은 이가 정작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는 상태로 살아가곤 합니다. 철학만이 그것을 알 수 있는 길은 아닐 테지만, 분명한 것은 철학을 통해 고민하는 것이 아주 좋은 방법이라는 점입니다. 철학은 수천 년간 그것에 대해 고민한 사람들이 만든 거대한 데이터베이스니까 말입니다.

■ 『철학 VS 철학』의 고대철학 관련 장들 [ 서양편 ]
1장 사물의 본질이란 무엇인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2장 세계는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플라톤과 루크레티우스
3장 행복한 삶을 이루기 위한 방법은 무엇인가? 에피쿠로스학파와 스토아학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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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24 11:13 2010/02/24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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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비밀방문자 2011/04/01 14:43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입니다.

    • 그린비 2011/04/01 14:46

      무언가 의미심장하게 느껴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