ㅡ타자는, 지옥이다 vs 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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뭉크 <절규>
_ 동거인(타자)의 세계와 저의 세계가 부딪치면서 절규할 수밖에 없었던 나날들, 타자는 지옥일까요?
얼마 전, 남동생과 이별을 했습니다. 둘이서만 함께 살기 시작한 지 어언 5년. 살던 집의 계약이 만료되면서 분가를 한 것이지요. 인간으로서의 녀석은 무척 좋아하지만, 동거인으로서의 녀석은 참으로 버거운 상대였습니다. 도무지 정리정돈이라는 것을 몰랐거든요. 왜 이런 유명한 말이 있지요. “하나의 살림은 하나의 세계이다”라는……. (네, 제가 한 말입니다.) 자신의 세계를 구축하고 그것을 토대로 우아한 삶과 미래를 설계하고 싶었던 (당시) 20대 후반의 편집자 모 씨는, 청소 혹은 살림과 관련된 단어는 죄다 골라 오려서 버린 것 같은 그 녀석의 사전에 관해서라면 편집자가 아니라 저자가 되고 싶었답니다.

처음에는 단순히 녀석이 청소를 귀찮아하고 싫어하는 걸로 생각했지만, 동거 햇수가 쌓여 가면서 알게 된 것은 이 모든 일이 녀석과 저의 ‘감각’이 다르기 때문에 생겨난다는 점이었습니다. 자신이 불편이나 불쾌를 느끼지 않는 상황에서 굳이 어떤 개선의 행동을 취하기란 쉽지 않죠. 이런 경우에는 매도 소용 없…… 아니, 학습효과로도 한계가 있었습니다. 제가 어느 정도 포기하기도 했고, 동생도 어느 정도는 ‘동거의 예(禮)’를 익혔기에 막판에는 그럭저럭 대강 살았습니다…… 마는 밤늦게 회사에서 돌아와 (내가 먹지도 않은 그릇들의) 폭풍 설거지를 해치우며 목메었던 나날들, 가스레인지에 눌어붙은 기름때를 벗기던 그 가녀린 손길, 방 구석구석에 숨겨 놓은 양말짝을 찾던 슬픈 눈시울 등은 절대 잊을 수 없을 겁니다.

우리는 어떤 형태로든 자기가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조건을 만들려고 애쓰는 존재입니다. 그 조건이 공간에 대한 것이든, 일상에 관한 것이든, 일에 대한 것이든 말이지요. 그렇게 해서 상황에 대한 통제력을 높이려 하고, ‘미래’를 준비하고자 합니다. 그 조건을 벗어나거나 어그러뜨리는 상황이 생기면 쉽게 불안해지고 불만이 쌓이지요. 하지만, 하지만, 우리의 미래라는 게 언제 그렇게 ‘완벽한 조건’을 갖추고 살포시 대기하고 있던가요?

미래는 손에 거머쥘 수 없는 것이며, 우리를 엄습하여 우리를 사로잡는 것이다. 미래, 그것은 타자이다. 미래와의 관계, 그것은 타자와의 진정한 관계이다. 오로지 홀로 있는 주체라는 관점에서 시간을 이야기한다는 것, 순수하게 개인적인 지속에 관해서 이야기한다는 것은 우리에게 불가능한 것으로 보인다. _ 엠마누엘 레비나스, 『시간과 타자』

『철학 VS 철학』의 한 꼭지인 「미래란 우리에게 무엇인가」에서 강신주 선생님이 인용하신,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대목입니다. 네, 그것 때문이었군요. 가족 누구, 친구 누구를 떠나 나와는 다른 감각을 가진 ‘타자’가 엄연히, 부인할 수 없이, 확고하게 존재한다는 사실. 이것이 나의 ‘미래’를 구성하는 데 굉장한 걸림돌이라고 느꼈기에 그토록 버거워했던 것이겠죠. 하지만 그저 시간적인 측면에서만 다루어졌던 ‘미래’에 ‘타자’라는 요소를 도입함으로써 철학의 지평을 넓힌 레비나스는 제게 다른 시각을 제공했습니다. 타자를 사르트르처럼 “지옥, 그것은 타자이다” 식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삶, 새로운 미래를 가능하게 해주는 축복의 대상”(『철학 VS 철학』, 309쪽)으로 보는 것입니다. 어떤 타자도 만나지 않는다면, 우리의 내일은 오늘의 반복에 지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같은 곳). 그런 측면에서 보면 동생이란 존재도 밋밋했던 제 삶을 두드려 깨워주는 삶의 증거일 수도 있겠습니다(지난 뒤에 배부른 소리?). 돌이켜 보면 미래에 대한 무수한 욕망들도 타자라는 존재가 없이는 무의미한 것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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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그리트 <끝없는 정찰>
_ 우리는 타자와의 만남, 그 부딪침으로부터 미래를 만들어 나갑니다.

새 집에 자리를 잡은 지 어언 한 달 반. 이제 저는 제가 꿈꾸었던 소소한 삶의 ‘모양새’들을 갖추어 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그저 ‘현재’를 설명할 수 있을 뿐입니다. 미래란 결국 “타자와의 진정한 관계”임을 가슴에 새기게 된 (이제는) 30대 초반의 편집자 모 씨는, 제 미래의 공저자로 ‘타자’들을 모시겠다는 쉽지만은 않은 결심을 하며, 줄줄이 늘어선 업무에 갑자기 누군가 급한 일을 부탁해도 방긋방긋 웃으며 일하겠다는 또 하나의 쉽지 않은 결심도 덩달아 해봅니다.

- 편집부 태하

(+) 어쨌건 좀 배신감이 들었던 건, 얼마 전에 가 본 동생 방이 무척이나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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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25 10:51 2010/02/25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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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es Madrid 2010/02/25 23:12

    우왓! 가녀린 손길과 슬픈 눈시울....
    윤미래도 잠깐 생각나구.
    근데 동생도 새로운 타자를 만나신 건 아닐까요.
    어쨌든 둘다 변화했네요^^ 축하

    • 그린비 2010/02/26 10:25

      동생도 새로운 타자를 만난 걸까요? 호홋. 그럴수도 있겠군요. ㅎㅎ

  2. 댓글을바로썼나? 2010/02/27 23:38

    하하 제 이야기인 것 같네요 물론 현재 진행중이지만 저도 남동생과 살고 있지만 전 결벽증환자라고 까지 지적받고있는 환자(?)인데다가 남동생은 완전 하숙생모드로 살고있죠 물론 서로 이해할 수없다고 지적질 해대고 있지만 피를 나눈 형제지간도 이럴진데 친한친구와 과거함께 자취했던시절, 밖에선 깔끔 패셔니스타로 주목받는데 본모습은 가히 충격적인 더리(dirty)한 얼굴을 알고 있는 그 친구를... 그래 너와나는 다른....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하는 "괴로움"이 사실 있습니다....

    • 그린비 2010/03/01 12:44

      하하. 댓글 바로 쓰셨습니다. ^^*
      나와 다른 사람과 함께 산다는 것 쉬운 일이 아니죠. 심지어 가족이라도 말예요~(제 경우에는, 가족과 사는 게 가장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가족이 아닌 타인은 서로 배려해야 한다는 암묵적인 전제를 깔고 있지만, 가족은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무조건적인 이해를 요구하니 말입니다..; 어쨌든) 남동생 분과 미래를 만들며 살아나가시길 바랍니다.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