ㅡ새로운 이 나라의 주인은 누구냐? 복벽 VS 공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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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7년 만주에서 임시정부의 수립을 호소하며 터져 나온 ‘대동단결’(大同團結) 선언은, 대한제국으로 돌아가려는 ‘복벽주의’(復辟主義)에 대해 대한제국을 부정하려는 ‘공화주의’가 날린 결정적 한 방이었다. 박은식, 신규식, 신채호 등이 포함된 이 선언은 대한제국과의 결별을 확고히 하고 있다. 국권을 포기한 것은 황제이지 대한제국의 국민이 아니며, 황제가 외세인 일본에 국권을 내주기로 한 것은 무효이므로 이제 대한은 국민의 나라라는 것이다. 그리하여 공화제를 지향하는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세울 것을 촉구하면서 선언은 끝을 맺는다. 황제가 권력을 포기한 것은 국민에 대한 묵시적 양도이므로 이제 대한의 주인은 국민이라는 이 통쾌한 선언은 1919년 3․1운동을 거치면서 거스를 수 없는 흐름으로 자리 잡았다. 황제국의 부활을 논하는 사람은 더 이상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강응천, 『청소년을 위한 라이벌 한국사』, 229~230쪽)

오늘은 다들 아시다시피 연휴의 마지막 날, 아니 삼일절입니다.(이제 하루도 다 저물었군요^^;) 지금으로부터 90+1년 전 서울에서 시작된 만세 소리가 주로 장날에 맞춰 차츰차츰 전국에서 울려 퍼지기 시작했었더랬지요. 사실 『청소년을 위한 라이벌 한국사』에서는 3․1운동이 그렇게 자세히 다뤄지지는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3․1운동으로 이야기를 시작하는 이유는 날이 날인 것도 있지만, 어느 한쪽을 “You win!" 이라고 손들어 줄 수 있는 뚜렷한 승부가 나지 않는 라이벌들이 수두룩한 이 책에서 그나마 명백하게 승패가 갈리는 주제가 ‘복벽’과 ‘공화’의 대결이고, 그 승부의 마침표를 찍은 사건이 바로 3․1운동이기 때문입니다.

1392년에 건국되어 1897년에 폐업을 하게 될 때까지 조선이라는 나라에서는 왕을 갈아 치우자거나, 왕을 없애 버리자는 기층민의 요구는 없었습니다. 민란의 세기로 평가되는 19세기에도 탐관오리에 대한 비난이 있을 뿐 왕의 존재를 부정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위에 인용한 것처럼 3․1운동을 기점으로 독립운동을 통해 되찾을 나라는 ‘왕이 (또는 황제가) 없는’ 공화국이라는 것이 분명해집니다. 그것은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라는 짧은 시간 동안 조선왕조와 대한제국이 자초한 결과였습니다. 자기 나라 백성을 다른 나라 군대를 불러와 살육하는(동학 농민 운동) 왕, 일국의 왕으로서 일신도 지키지 못해 다른 나라 대사관으로 숨어드는(아관파천) 왕, ‘찍’ 소리 한번 못하고 나라 넘기는 도장을 찍으면서 백성들에게 “번거롭게 소란을 일으키지 말라”(순종의 「전권 위임 조서」)고 당부하는 왕에게 무엇을 더 기대하겠습니까(이런 점에서 ‘복벽’은 일찌감치 감점 처리를 당하고 ‘공화’와 붙었다고나 할까요). 하여 전 계층이 참가한 거족적 저항운동으로 일컬어지는 3․1운동은 일본으로부터의 독립의지의 천명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자신들을 억압하고 있는 일제에 대해 왕을 비롯한 지배층에 기대지 않고 스스로 저항하겠다는 기층민의 복벽 결별 선언이기도 합니다.

- 편집부 봉식어멈

2010/03/01 21:46 2010/03/01 2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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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반 2010/03/02 10:50

    이것은 한복을 입은자와 입지 않은 자의 대결인가?
    아님 상체가 모두 나온 자와 얼굴만 나온 자의 대결인가?

    • 그린비 2010/03/02 13:43

      하하. 그렇게보니 그렇네요~ 초상화와 사진의 대결 같기도 하고요; 이반님께서 특징을 잘 뽑아주신 듯합니다.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