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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철학’이라고 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떠올리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점(占)이죠. 그러니까 과거가 어떠했는지, 미래엔 무슨 일이 벌어질지 예측하는 기술 말입니다. 이러한 이해에는 많은 억측과 오해가 담겨 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어느 정도 진실이 담겨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억측과 오해가 있다는 것은 ‘동양철학’에 대한 그러한 이해의 바탕에 깔린 몽롱한 신비주의가 없다는 점, 그리고 그것이 재물에 대한 탐욕이나 성공, 운세 등과 같은 ‘욕심’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반면 어느 정도의 진실이 있다는 것은 그것이 동아시아라는 시공간 속에 살았던 사람들이 우주의 운행원리와 그것의 작은 축소판인 인간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하지만 전자가 자기 운명에 대한 ‘지배욕’에서 출발하는 것이라는 점을 생각해 보면, 그것은 사실 제국주의와 그로부터 이식된 근대성이 동양철학의 한 면만 따와서 이상하게 왜곡한 잡탕죽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본디 동양철학에서 말하는 우주에 대한 이해란 ‘수행’을 위한 바탕(세계관)이었지, ‘출세’를 위한 요설은 아니었을 테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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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팔괘
_ 이것이 우주? 고대의 중국인들은 음과 양, 오행의 원리를 통해 우주를 이해하려고 하였다. 이 문양은 우주를 가장 단순화한 표시이고, 이것을 이해할 수 있을 때 우리는 조금 더 삶을 이해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어쨌든, 그렇게 오행과 음양을 통해 우주와 인간을 설명하려고 했던 최초의 예는 『주역』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주역』은 원래 중국 고대 주(周)나라 시대의 복서(卜筮) 점을 치는 데 사용된 책이었습니다.(그렇다고 해도 이것이 더 많은 재물, 더 많은 명예를 위해 사용된 것은 아니었죠.) 여기에서 비롯된 음양오행의 운행을 기초로 하는 세계관은 사실상 수천년간 동아시아인의 생활 깊숙이 영향을 미칩니다.

“주(周)는 이제 망할 것이다. 하늘의 기(氣)는 위에 있고 땅의 기는 아래에 있으니 본래 각각 그 정해진 자리가 있어 뒤바뀌지 않는 법이다. 만약 그 위치가 바뀌었다면 그것은 사람에 의해 그 질서가 어지럽혀졌기 때문이다.” (『국어』(國語) 「주어」편)

위 예문을 지난 주에 이야기했던 그리스인들이라면 어떻게 받아들였을까요? 플라톤이라면 ‘기’를 이데아 비슷한 것쯤으로 여겼을 테고, 아리스토텔레스라면 하늘과 땅이 무엇을 ‘매개’로 변하고 있는지 살폈을 겁니다. 원자론자들이라면 하늘의 기운과 땅의 기운이 ‘클리나멘’했으니, 뭔가 새로운 것이 생길 것이라고 여기겠죠. 전혀 말도 안 되는 상상이긴 하지만, 저 예문에서 나오는 기(氣)는 이데아도, 에이도스(eidos, 어떤 사물의 본질)도, 클리나멘 중인 원자도 아닙니다.

서양과 동양의 사고법에는 아주 결정적인 차이가 있는데, 그것은 ‘변화’를 어떻게 설명하는가를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가령 어떤 사물A가 상태가 변해서 B가 된다면, 서양철학에서는 이 변화를 설명하기 위해 변화를 가능하게 하는 제3항을 필요로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저 하늘의 이데아는 변하지 않는 것(실체)이라고 가정했는데, 그 그림자가 변하는 것이 말이 안 되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실체의 변화를 가능하게 하는 더 큰 원리로서 실체가 필요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중국에서는 모든 사물이 에너지와 같은 음과 양으로 구성되어 있고, 이 두 가지 원리가 어떤 조성을 이루고 있는가에 따라 그 사물의 상태가 결정되는 것이죠. 그리고 이때의 기(氣)란 그 사물만의 독특한 무엇이 아니고, 커다란 우주의 기운 중에 일부이기 때문에 이 기의 해체는 그 사물의 완전한 사라짐이 아니고 ‘돌아감’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사고법 속에서는 당연히 세계의 변화는 진보나 퇴보가 아니라, ‘순환’하는 것이라는 관념이 깔려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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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동아시아 사상이라고 한다면, 고대 중국의 사상을 가리키는 말과 다름없습니다. 서양고대철학이 곧 그리스철학인 것처럼 말이죠. 왜 하필 그것이 중국에서 태어났는지 생각해보면 딱히 ‘정답’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비슷한 언어를 사용하는 하나의 문화권 안에서, 수백년간 전쟁을 치르다 보면 자연스럽게 시대를 고민하고, 다른 대안을 만드는 사상적 작업이 활성화되는 것이 당연하다는 느낌도 듭니다. 그 수백년간의 전쟁이 일어났던 시기가 바로 ‘춘추전국시대’입니다.(그리스도 완벽하게 단일한 문화권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비슷비슷하지만 상당히 다른 도시국가들의 연합이었던 점을 생각해 보면, 철학은 근본적으로 다질적인 환경 속에서 태어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도 듭니다.)

춘추전국시대란?
기원전 770~476년은 공자가 편찬한 노(魯)나라의 편년체 사서 『춘추』(春秋)의 이름을 따서 춘추시대라 하고, 기원전 475~221년은 대국들이 패자의 자리를 놓고 다투었으므로 전국시대(戰國時代)라고 한다.
(출처 : 다음 백과사전 ‘춘추전국시대’ 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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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 이 거대한 곳에서 각축을 벌였던 여러 제후국들. 이 다질성이 동아시아 고대 사상의 지적 풍요로움을 만들었다.

이 시대는 전쟁과 혼란이 계속된 시기였고, 그러한 난세를 휘어잡아보려는 사람들이 무수히 쏟아져 나왔던 시기이기도 합니다. 장수가 많았던 만큼, 이론가도 폭발적으로 쏟아져 나왔던 시기이기도 하죠. 아시다시피 그들을 제자백가(諸子百家)라고 부릅니다. 이 시기는 주나라 왕조의 힘이 약해지고, 이후 중국의 관학(官學)을 평정한 유학처럼 단일한 학문적인 체계가 있었던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각 제후들마다 나라의 제도, 예법, 인성론, 패권을 움켜쥐는 법 등등 모든 이론적인 체계를 각자 만들어야 하는 시기였습니다. 따라서 제후들은 선비들을 우대하여 그런 사상체계를 만들도록 했습니다. 더불어 천하의 여러 선비들은 자신의 학문체계를 만들어 제후들 앞에서 유세를 하면서, 자신의 뜻을 펼칠 기회를 엿보기도 했구요. 이를테면, 천하를 다스리를 도(道)를 놓고 제후들은 제후들대로, 선비들은 선비들대로 고군분투한 시기인 것이죠. 여하튼 혼란스러운 조건이 창조적인 사고를 돕는 것인지, 이름그대로 백가(百家, 여기서 백(百)은 백개의 사상이 아니라, 무수히 많은 사상입니다.)가 등장했던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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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철학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가장 유명한 유(儒)·불(佛)·선(仙)이 떠오르는 경우가 많을 것입니다. 하지만 춘추전국시대의 중국사상은 그렇게 간단히 정리되지 않습니다. 유학은 공자의 활동과 함께 특정한 학문체계로 자리잡게 되었지만, 그 이전까지는 공자가 참고했던 주나라의 예법이나, 사회적 관습들에 지나지 않았죠. 불교는 당나라 시기에 와서야 중국에 들어옵니다. 따라서 춘추전국시대 중국인들은 불교의 존재 자체를 몰랐을 겁니다. 선(仙)은 대략 도가(道家)를 이야기하는데, 우리는 도가철학하면 흔히 노자와 장자를 묶어서 떠올리곤 합니다. 춘추전국시대에는 이외에 묵자, 양주, 법가, 병가, 음양가 등 무수한 사상들이 혼전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사회가 혼란에 빠져 있다는 점을 모두 인정하고 그에 대한 다양한 해법을 내놓았던 셈이죠.

그런데 해법도 참 가지각색이라 유학은 예부터 전해져 내려온 주나라의 법도를 따라 질서를 바로 세울 것을 주장하고, 법가는 엄정한 법체계를 세우고 모두가 그러한 법질서를 잘 따른다면 혼란을 해결할 수 있으리라 봅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는 것이 국가를 강성하게 만드는 것이고, 그렇다면 그렇게 강성해진 국가가 혼란을 잠재울 수 있으리라 본 것이죠. 그래서인지 결국 전국을 통일하는 국가는 법가를 채택한 진나라(시황제가 유명하죠)였습니다. 하지만, 결국 수천년간 중원을 통치하는 기능을 했던 것은 법가적인 요소를 어느 정도 수용한 유학이 되었지만 말입니다. 유가와 법가가 이렇게 특정한 사회질서를 유지, 보존하려는 사상, 그래서 요즘 식으로 말하면 친 국가적인 사상이었던 것과는 반대로, 국가와 상관없는 개인과 공동체의 평화를 주장하는 사상들도 많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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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백가
_ 시끄러운 세계. 이 사람들 각각이 한 마디씩만 거들어도 무수한 말들이 쏟아질 것이다. 이 혼잡함을 거대한 창조력으로 변환시킬 수 있다면?

도가의 경우, 국가와 상관없이 어떻게 삶의 평화로움을 유지할 수 있는 ‘공동체’를 형성할 수 있을지 고민하였고, 양주의 경우엔 급진적인 아나키즘으로 흐르기도 하였습니다. 양주와 관련된 재미있는 일화를 보면, 어떤 선비가 양주에게 “당신 몸의 터럭 하나로써 한 세상을 구한다면, 당신은 그렇게 하겠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이에 대해 양주는 터럭 하나로 세상을 구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터럭 하나, 살 한점이 모여 내 몸을 이루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다는 말로 답합니다. 다시 말해 세상과 내 몸의 경중을 따졌을 때, 내 몸이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니라는 표현인 것이죠. 사실 동양 전통 철학이라고 했을 때 우리는 답답한 보수주의를 먼저 연상하곤 합니다. 하지만, 양주의 예나 장자의 철학을 보면 이 시대의 그 어떤 급진적인 사상과 겨루어도 결코 떨어지지 않을 만큼의 급진성을 보여줍니다. 서양도 마찬가지이지만 그런 점에서 볼 때, 이 시대 모든 사유의 고향과도 같은 ‘고대’의 사유가 우리에게 주는 영감은 인류가 지속되는 한, 철학이 완전히 무용한 것이 되지 않는 한 마르지 않는 영감의 샘과 같은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제자백가의 사상이 쏟아져 나오지 않았다면, 동아시아의 세계관은 아마 엄청나게 달라졌을 겁니다. 아마 서양문물이 들어오기 전에 모두 불자(佛者)가 되어 있었을 수도 있구요. 이 시대의 사상적인 풍요로움 덕에 지금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가 서구적 세계관의 대안을 찾거나, 삶을 새롭게 성찰할 수 있는 기회를 맛본다고 생각하면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새삼 들기도 합니다. 아마 그런 생각이 드는 이유는 수천년을 버텨오면서 낡지 않고 영감을 주는 사상의 바다가 늘 우리 옆에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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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VS 철학』의 중국 고대철학 관련 장들 [ 동양편 ]
1. 진정한 사랑이란 무엇인가? 공자와 묵자
3. 전쟁에서 승리하는 필연적인 방법은 있는가? 손자와 오자
4. 도란 미리 존재하는 것인가? 노자와 장자
8. 인간의 본성은 선한가? 맹자와 순자
9. 국가가 존재하지 않는 공동체가 가능한가? 양주와 한비자
10. 동양 전통에서도 논리철학은 가능한가? 혜시와 공손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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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3/03 10:59 2010/03/03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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