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의 모든 ‘할까말까?’들을 위하여

엄상미 (막달레나공동체)

1.
나는 대체로 선택이나 결정을 잘 못한다. 친구들과 뭘 먹으러 가서도 맨날 ‘쫄면!’을 외치고, 쫄면이 너무 자주 결정되어 눈치가 보인다 싶으면 ‘아무거나!’를 외친다. 그러니 나 같은 사람들을 위해서 ‘아무거나’라는 고마운 차림이 등장하지 않았던가. 옷이나 신발 따위를 구입하는 쇼핑이나 머리 모양을 결정해야 하는 미용실에서도 간혹 ‘아무거나’식 주문을 하는 경우가 있으니, 그럴 때마다 엄한 머리만 쥐어뜯으며 돌아온 적도 한두 번이 아니다.

돌아보니 정말로 숱하게 많은 할까 말까의 순간들이 있었다. 여행을 떠날까 말까? 공부를 할까 말까? 좋아한다고 고백을 할까 말까? 결혼을 할까 말까? 아이를 낳을까 말까? 막달레나의집에서 일을 할까 말까? 등등... 물론 나는 지금도 숱한 할까 말까의 순간들과 직면하며 살고 있다. 인생의 중대사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며 하루에도 몇 번씩 변덕이 죽 끓듯 이랬다, 저랬다 갈등한다. 결정도 하기 전에 숱한 상상의 그림을 그리다보면 간혹 ‘망상’으로 발전해 멀쩡한 사람들을 시기하거나, 괜한 마음의 짐을 짊어지곤 한다.

결정과 선택을 앞둔 절정의 갈등은 혼자서 낯선 곳으로 여행을 떠날 때이다. 이리로 갈까, 저리로 갈까. 여기서 잘까, 저기서 잘까. 앞자리에 앉을까, 뒷자리에 앉을까 등등. 나는, 내가 유독 결정을 못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면서 살았다. 우유부단하고, 변덕스러운 내게 과감히 무언가를 결정하고 결정 이후에는 충실히 온힘을 다해 실천하는 나의 단짝 친구는 늘 경외의 대상이었다. 간혹 나처럼 결정의 순간에 망설이고 자책하며 갈등하는 사람을 보면 동질감에 반갑기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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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망설이느라 사소한 것 하나도 결정을 못해 하루 종일 아무 일도 못하는 할까말까란 아이가 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일어날까 말까, 일어나면 눈곱을 뗄까 말까, 세수를 할까 말까, 이걸 먹을까 저걸 먹을까, 이걸 입을까 저걸 입을까. 이럴까 저럴까 망설이며 고민하는 그 아이의 얼굴은 그야말로 고뇌의 극치. 그러던 어느 날 일하러 갈까 말까 망설이느라 할까말까만 혼자 마을에 남아 있는데 동네에 불이 나고 말았다. ‘불이야!’ 소리를 지를까 말까 망설이는 사이 불은 점점 번져 온 마을이 다 탔다.

자기 때문에 큰 피해가 발생하자 미안한 마음이 든 할까말까는 똑부리 할아버지를 찾아가  자기 스스로를 바꿔보고자 결심을 한다. 그런데 똑부리 할아버지네로 가는 길이 문제다. 이 길로 갈까, 저 길로 갈까. 돌아갈까, 그냥 갈까. 다리로 갈까, 배로 갈까. 언뜻 보기에 자력으로 행동한 것은 하나도 없는 듯하다. 원숭이가 모자를 뺏어가는 바람에 다리를 건너고, 할머니가 뭘 부탁하는 바람에 마을을 통과하고, 벌이 쏘아대는 통에 도망을 치다보니 어느덧 똑부리 할아버지 집에 도착했다. 똑부리 할아버지 집이 그리 먼 것 같지도 않은데, 그 망설임과 갈등의 과정이 참으로 눈물겹다. 그럼에도 할까말까는 스스로를 변화시키기로 결정한 그 결심을 바꾸지 않는다. 그리곤 결국 똑부리 할아버지를 만나, 인생의 ‘선택 비법’을 전수 받는다.

똑부리 할아버지의 비법은 단순하고 명쾌하다. 둘 중의 하나를 결정할 때는 동전을 던지고, 다섯 중의 하나를 결정할 때는 카드를, 여섯 중에 하나를 결정할 때는 주사위를 던지라고 가르쳐 준다. 하지만, 인생이 어디 동전이나 카드, 주사위가 이르는 수만으로 다 결판이 나는 그리 간단한 것이던가? 이런 의혹을 가질 때쯤, 똑부리 할아버지는 가장 중요한 핵심 비법을 일러 준다. 할까말까의 인생이 완전 역전되는 순간이다.
“하지만 여섯 가지가 넘는 것 중에 하나를 고를 때는 네 마음이 속삭이는 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려무나. 이미 넌 잘 알고 있을 테니까.”

3.
내가 아는 한 여인이 있었으니, 그는 인생에서 술을 먹는 결정 하나만큼은 달인의 수준에 올라 그 누구도 그의 결정을 거스를 수는 없다. 나는, 그가 술이 아닌 사안에 과감한 결정을 내리는 것을 별로 본 적이 없다. 첫 만남을 빼고 그와의 만남과 이별은 모두 술이 얽혀 있었기에 그에게 술은 스스로 넘어야 할 숙제였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현재의 ‘쉼터(사회복지시설)’라는 공간에서는 그가 원하는 대로 술을 마시고 발작을 하는 일련의 행위들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그가 앞으로의 삶에 큰 희망을 갖고 쉼터 생활을 시작했어도 ‘입소’하는 순간부터 ‘규정’과 ‘규율’의 틀에 놓이기 때문이다.

그는 모질게 맘먹고 몇 년 만에 다시 막달레나의집 식구가 되었다가 또 다시 술을 먹고 병원에 실려 갔다. 몇 달 만에 맑아진 얼굴로 다시 나타난 그는 쑥스러운 듯 멋쩍게 웃으며 사람들에게 미안해했다. 누구보다도 선한 사람이기에 모두가 그를 좋아했지만, 술을 줄이겠다는 그의 결심을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 다섯 손가락이 넘도록 막달레나의집과 만나고 헤어지기를 되풀이하던 그가 지난 해 어느 날, 일찍이 본 적이 없는 중대한 결정을 내렸다. 쉼터 활동가들은 그가 쉼터에서 어떻게 생활하는 것이 좋을 지를 두고 적잖이 고민하던 중이었다. 술 때문에 되풀이되는 악순환을 좀처럼 끊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 문제로 당사자와 이야기를 나누던 중 조금은 장난스레 그가 선택할 수 있는 세 가지 보기가 만들어졌다.

① “나를 믿고 혼자서 잘 산다. 막달레나의집은 나를 그저 지켜본다.”
② “필요할 때 막달레나의집으로부터 도움을 받으며 더 나은 생활을 위해 노력한다.”
③ “막달레나의집에 모든 것을 맡기고 열심히 살아 보자.”

분명 장난처럼 시작된 이야기였는데 그는 진지하게 2번을 선택하며 앞으로 더 나아지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그런데 며칠 뒤, 다시 생각을 해 본 결과 자기 마음이 1번으로 바꾸기로 결심했다며 짐을 쌌다. 그리곤, 500원짜리만 골라 모은 묵직한 돼지저금통을 쉼터에 기부한 뒤 짐을 들고 표표히 길을 나섰다.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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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수많은 선택의 순간과 직면하며 산다. 또한 무언가를 선택하기 위한 여러 경우의 수와 만난다. 『할까 말까?』는 어린이들에게 경우의 수를 가르치기 위해 기획된 책이지만, 인생을 살아가는 여정에 선택에 관한 가치를 일깨워주는 나름의 철학 도서로 읽혀지기에도 손색이 없는 듯하다. 나처럼 어른이 되었음에도 여전히 선택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고 방황하는 사람들에게는 특히나 그럴 듯.

애면글면 “더 나은 미래”를 독려하며 어떻게 하면 술을 줄일 것인가 ‘대신’ 고민하던 쉼터 ‘선생’들에게 ‘1번’을 선택해 보이며 떠나간 그와는 동네 이웃으로만 관계를 맺고 있다. 또 술을 푸고 있는 건 아닌가 싶은 마음에 종종 불시에 들이닥치는 나에게 그는 “나, 나도 스, 스케줄이 있다구요.”라며 싫지 않은 얼굴로 차를 끓여 내온다.

그가 막달레나의집으로 온 것은 그의 결심이라기보다는 우연한 계기였다. 그는 성매매 업계를 벗어나기로 결심했던 용감한 동료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경찰의 손에 이끌려 일을 그만두게 된 것이라며 멋쩍게 웃곤 했다. 하지만 술 때문에 번번이 계획이 어긋나고 지금까지의 노력이 허사가 되는 경우가 그렇게 많았음에도 그는 반평생 살아온 그 익숙한 삶의 공간에 단 한 번도 미련을 두지 않았다. 비록 여전히 돈에 쪼들리고, 술 때문에 더 많은 것을 감당할지언정 비로소 스스로의 선택으로 일상을 채우고 있으니 그는 어쩌면 똑부리 할아버지가 말하는 그 비법을 이미 알고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우리가 더 좋은 조건을 얻기 위해 망설이고 갈등하는 순간, ‘선택’이라는 말 자체가 이미 사치가 되는 사람들이 있다. 이걸 살까 저걸 살까, 이걸 먹을까 저걸 먹을까 고민하는 그 때 누군가는 생존 자체를 위협받으며 절실한 삶의 위기에 놓여 있을지 모른다. 그럼에도 사람은 선택하고 결정해야 한다. 불행하나 불행하지 않도록, 피해를 당하였으나 한없이 피해자로 살지 않도록, 가난하나 가치마저 가난하지 않도록 삶의 굽이굽이마다 마음이 속삭이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응답해야 한다. 그것이 우리가 존재하는 이유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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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3/03 16:06 2010/03/03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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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3/03 18:27

    엄상미 선생님께 간간이 전해듣는 막달레나 이야기는 늘 좋네요^^
    오늘 글도 잘 읽었습니당~*

    • 그린비 2010/03/03 20:22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계속 전해드릴 수 있으면 좋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