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자 삽입 이미지

가까운 예로 회의를 하면서 사람들이 특정한 분위기를 만들어 내고 그 분위기를 장의 정보로서 받아들게 되는데, 그 속에서 하나의 결론을 낳게 되는 과정에서는 개개의 구성원이 관계자가 된다. 그 구성원이 나타내는 여러 가지 정보가 종합된 것이 전일적 정보가 된다. 전일적 정보를 종합한 분위기에 해당하는 것이 장의 정보이다. 중국이나 일본에서 예부터 ‘기’氣라 불러온 것은 이러한 장의 정보와 관계가 있는 개념일 것이다. (본문 107쪽)

수식과 도표로 가득한 기존의 과학 서적들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 책은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서문에서 ‘과학이 어떻게 아이에게 꿈을 주고, 고독한 노인의 마음을 위로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지고, 본문에 들어서자 복잡한 생명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장소’와 ‘관계자’ 개념을 사용하겠다고 말합니다. 보통 과학 책들은 자기가 만들거나, 혹은 선배 과학자들이 이미 만든 개념을 사용하는데, 이 책은 니시다 기타로의 개념을 끌어옵니다. 또한 남들이 배척해야 할 것, 극복되어야 할 것으로 말하는 카오스를 생성의 장소 내지는 생명 현상의 주요 특징으로 정의하구요.

저렇게 낯선 개념들이 등장하는 이유는 이 책 자체가 생명을 보는 프레임 자체를 달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생명을 고정된 개체가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하고 움직이는 것으로 설명하죠. 그래서 생명 현상은 변화 그 자체라고 말합니다. 호흡하거나, 생로병사의 사이클을 갖고 있다고 해서 생명이 아닙니다. 변화하는가? 변화하지 않는가? 이게 바로 삶과 죽음을 나누는 기준이죠. 저로선 경험하지 못했던 특이한 생명 현상에 대한 정의였습니다. 이 책에 따르면 사람도 변화하거나 움직이지 않는다면 죽은 상태나 다름없다고 할 수 있죠. 그럼 방안에서 시체 놀이하는 사람들은 다 죽은거냐?라는 반론을 하고 싶겠지만, 잠시 접어 두시고~. 저자의 설명을 좀더 따라가다 보죠.

사용자 삽입 이미지
프랙탈
_ 개체 안에서의 정보 순환은 전체적인 정보의 흐름과 닮아 있습니다. 이런 저자의 말을 그림으로 표현해 본다면 한 개체의 모습이 전체와 닮아 있는 프랙탈 이미지와 비슷하죠.

이 책 안에서 들고 있는 예를 활용해 보겠습니다. 우리가 밖에 나간다면 사람들이 다양한 옷을 입고 있는 걸 볼 수 있습니다. 색상도 다르고, 사람마다 입는 방식도 다 다르지만, 그래도 무한정하게 다르지는 않습니다. 유행이라는 게 있기 때문이죠. 그래서 옷을 살 때, 어느 정도는 그런 정보를 받아들입니다. 겨울 점퍼를 하나 사러 간다고 해도, 길이는 어느 정도가 되어야 할지, 색깔은 어떤 걸로 할지, 대략 그 시기의 세련됨이라는 ‘옷’이 지닌 정보를 전혀 모른 척하고 구입할 순 없죠. 사실 이런 과정 자체도 ‘변화’라고 볼 수 있습니다. 내 주위에서 흐르는 정보를 잡아 낸 후, 내 방식에 맞게 수용하고, 옷을 구입함으로써 외부에 표출합니다. 그런 사람들이 많아지면 유행이라는 정보가 더 강하게 타인들에게도 발신되죠. 그 옷이 너무 많아지면, 또다시 지겹다는 생각(인간 내부의 변화)이 들고, 그러면 흔한 옷은 또 안 입게 되어 옷장으로 들어가죠. 그러면 새로운 유행을 만들어 내게 되고, 다시 세련됨이라는 정보는 변합니다. 아주 단순한 유행에도 이렇듯 ‘변화’가 존재합니다. 인간 역시도 옷 하나로 다양한 정보들(세련됐다, 지겹다, 입고 싶다 등등)을 전달하구요. (변화라는 개념을 너무 자기 계발 내지는, 다른 삶 쪽으로 생각하지 마세요~)

근대 서양의 질서와 무질서란 실재로서의 존재 개념과 결부되어 대립적인 관계를 구성하는 데 비해, 동양의 불교나 노장사상에는 일종의 안티코스모스인 ‘공’ 혹은 ‘무’를 존재공간의 원점에 두기 때문에, 무질서는 질서의 대극이면서 질서생성의 창출점이기도 하다. 이러한  ‘무의 상태’의 도입은 복잡한 시스템에 있어 관계적 질서의 창출에 커다란 역할을 할 것이다. ‘무’는 ‘없는 것’이 아니라 ‘장소’가 창출되기 직전에 있는 비한정 상태이고, 창조를 위해 조건으로서 도입된 것이다. (본문 103쪽)

그렇다면 변화는 어떻게 가능한 걸까요? 이 책은 카오스 때문에 가능하다고 말합니다. 변화라는 생명의 중요한 현상은 카오스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고 하죠. 이것도 무척 놀랄 만한 내용이었습니다. 카오스가 생명의 중요 현상? 모든 학문에서는 질서, 조화를 의미하는 코스모스를 추구해 왔죠. 학문뿐만 아니라, 국가나 제도까지도 모두 그 지향점은 코스모스죠. 하지만 코스모스처럼 질서 정연한 개체/전체들은 외부의 정보를 쉽게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외부와 소통할 필요 없이 그 안에서 잘 움직이고 있기 때문에 다른 세계에 대한 관심이 없는 거죠. 이제까지 과학 서적들이 혼돈 속에서 질서를 찾아가는 과정을 생명 현상이라고 말한다면, 이 책은 전혀 반대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죠. 관계자 개념을 통해 전체와 개체의 정확한 구분선을 흐트러뜨린다면, 카오스의 생산적인 측면을 강조함으로써 카오스와 코스모스의 위계마저 무너뜨립니다.

이런 부분만 해도 독특한 책이라고 생각하시겠지만, 이 책이 가로지르는 학문은 과학 영역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동양 철학자 니시다 기타로에서부터 화엄 철학을 지나, 일본의 오래된 문헌까지 다양한 영역들을 가로지르죠. 한국 사회에서 ‘통섭’ 과학이니 네트워크 이론이라는 게 유행하긴 했지만, 사실 그 내용은 인문 과학이 주가 되고, 자연 과학 쪽은 설득력 있는 예시 정도로만 활용되는 게 현실이었습니다. 자연 과학이 갖고 있는 새로운 지점들이 있을 텐데, 그런 면들이 잘 보이질 않았었죠.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우리에게 자연 과학이 어떻게 철학적인 설명과 연결될 수 있는지를 보여 주는 좋은 책이라 할 수 있습니다. 네트워크가 구성됨으로써 관계자들은 의미를 갖는다는 이야기나 관계자들이 갖는 다양한 지위와 역할에 관해 읽다 보면 기존의 존재론과는 다른 네트워크적 세계를 설명할 수 있는 존재론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물론 그 해결은 이 책이 제시하듯, 새로운 지식 세계의 만남으로서만 풀려 갈 수 있겠죠.

사용자 삽입 이미지
미켈란젤로 <천지창조>
_ 지식의 통섭을 다양한 지식들이 만나 새로운 방법과 이해의 틀을 만들어 낸다고 생각한다면 이 책은 그에 가장 걸맞는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미 생명을 다른 방식으로 논의하는 많은 책들이 출간되었습니다. 생명을 네트워크의 관점에서 보는 책들도 드물지는 않을 겁니다. 하지만 이 책은 생명의 네트워크적 본질을 더 큰 개체로 나아가기 위한 수단으로서 설명하거나, 공허한 수사로 생명의 아름다움을 예찬하지도 않습니다. 살아 있기 위해 정보를 만들어 내고 수용한다는, 아주 기본적인 것에서 시작하죠. 또한 그것을 설명하기 위해 학문의 전개 방법까지도 네트워크적인 방식을 활용합니다. 저는 이 책을 통해 동서양을 가로지르는 지식의 만남이 더 큰 체계를 설명하거나 난이도를 더 높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것의 생성으로 나아가는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독자 여러분들도 이 책을 읽으면서 자기만의 방식으로(다들 자기 맥락에 맞게 정보를 수용하는 생명이니까요~) 이 책이 지닌 다양한 가치를 수용하고, 또 밖으로 만들어 내셨으면 좋겠습니다. 생명이라면 무릇 그래야 하니까요~.

- 편집부 강혜진
알라딘 링크
2010/03/04 10:15 2010/03/04 10:15
RSS를 구독하시면 더욱 편하게 그린비의 글을 만나실 수 있습니다. [ | ]

trackback url :: http://greenbee.co.kr/blog/trackback/963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