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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섭리란 세계의 지배자 안에 있는 신의 계획이며, 이 계획이 모든 것을 질서지운다.”
ㅡ아우구스티누스, 『철학의 위안』

우리는 흔히 중세를 ‘암흑시대’라고 알고 있고, 표현 역시 그렇게 합니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인식이란 늘 의심해 봐야 합니다.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사실 때문에 정작 그 ‘사실’이 불러일으키는 효과나, 다른 ‘사실’을 생각해 볼 수 있는 여지가 줄어들기 때문이지요. ‘암흑시대’라는 표현이 불러일으키는 효과는 아주 단순합니다. 이를테면, 교회의 권위를 유지시켜 주는 하나의 제의로 작용했던 마녀사냥의 이미지나, 극도로 엄숙하고 장엄한 수도원의 이미지, 성지를 회복하러 떠나는 십자군 기사의 이미지 같은 것들이죠. 재미있는 것은 예로든 세 가지 이미지가 모두 ‘신’과 연결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유럽의 중세를 떠올릴 때 늘 이런 식으로 ‘기독교’라는 키워드를 통해서 떠올린다는 점을 보여 줍니다. 그것이 중세를 설명하는 여러가지 키워드들 중에서 아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것이긴 하지만, 거기도 사람이 사는 곳이었을 텐데 ‘기독교’로 환원되는 단일한 차원의 사건들만 있었을 리 만무할 것입니다. 분명 거기에도 ‘마녀’로 지목된 자들, 신 또는 신의 대리인을 자처하는 자들의 영향권 밖으로 나간 ‘숲의 무리들’과 같은, 우리시대의 말로 표현하자면 ‘소수자’였던 사람들이 엮어낸 삶의 결도 있었을 겁니다. (사실 이러한 결들 속에서 ‘중세’를 사고할 수 있을 때, ‘암흑시대’의 ‘어두운 공간’ 바깥의 중세를 포착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여기에서는 더 다룰 수가 없습니다. 자료의 제한, 주제에서 벗어날 가능성이 참 많은 소재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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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지은 교회의 내부
_ 제한적인 빛의 통과가 생산하는 이미지는 이 어두운 땅에 내리는 섭리의 빛이 아니었을까?
중세가 ‘암흑’이었다는 우리의 이미지는 어떻게 형성된 것일까요? 중세의 유명한 건축양식인 로마네스크 성당의 ‘어두운’ 내부를 보면 그러한 이미지의 기원을 대략 짐작할 수 있습니다. 신을 모시는 ‘성당’이라는 공간적인 특성과 빛이 들지 않도록 내부를 설계하여 어둡고 장엄한 느낌을 연출했다는 것. 신의 장소와 장엄한 연출의 결합은 중세가 신학에 의해 지배된 매우 무거운 시간이었다는 것을 (미루어) 짐작하도록 해주고, 더불어 그러한 분위기로 시대 전체를 일반화 하도록 합니다.

여기서 생각해 볼만 한 것은 암흑과 빛의 관계입니다. 중세의 ‘암흑’이란, 신의 장소인 로마네스크 성당이라는 공간, 그리고 그 공간을 중심으로 모여드는 사람들의 ‘믿음’을 통해 구성되었던 것인데, 재미있게도 이 믿음의 주재자이자 공간의 주인으로 모셔진 신은 많은 경우에 ‘빛’으로 표현된다는 역설이 일어납니다. 그런데 사실 이 역설은 이해하지 못할 종류의 것은 아닙니다. 지상이 어둠으로 가득한 곳, 더불어 사람들이 어둠의 기운, 장엄함 분위기에 포획되어 있는 조건에서라야 빛의 주재자인 신에 대한 ‘숭고’의 정서가 작동할 수 있는 것이니까요. 이런 조건에서 맨 앞에 인용한 아우구스티누스의 언술은 세계의 운영을 ‘신의 계획’ 속에 맡기고 이 질서에 충실히 살아가자는 의미로 읽히게 됩니다. 그의 내밀한(?) 정신이 담겨있을 것이라 생각되는 고백록의 한구절은 중세 초기를 휘감고 있던 이러한 정서를 더욱더 강하게 보여 줍니다.

“오 하느님, 당신은 당신을 위해 우리들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들의 마음은 당신 안에서 쉴 때까지는, 평온치가 않습니다.”
ㅡ아우구스티누스, 『고백록』

‘창조’의 환희는 빛으로, 피조물의 고통은 어두움으로 표현할 수밖에 없는 시대상이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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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믿기 위해 이해하려는 것이 아니라 이해하기 위해 믿는다.”
ㅡ캔터베리의 안셀무스,  『프로슬로기온』
캔터베리의 안셀무스 위키피디아 항목 참고

캔터베리의 대주교 안셀무스는 아우구스티누스의 사상적인 후배 격인 사람입니다. 동양에서 생각해 보자면 공자와 맹자의 관계 같달까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셀무스가 활동하던 시기로 오면 아우구스티누스 때와는 다른 형태의 관점이 생겨납니다. 신앙과 이해를 연결하기 시작한 것이죠. 비록 그 ‘이해’가 신앙으로 귀착되는 것이긴 하지만,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 전적으로 신의 권능에만 의존하지 않기 시작했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위에 인용한 저 문장에서 표시되는 ‘이해’의 대상은 ‘누구’일까요? 이렇게 물을 경우 그는 ‘신’입니다. 하지만 그 이해의 대상은 ‘무엇’일까요? 라고 묻는다면 그것은 ‘세계’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스가 세계를 신의 섭리로 이해했던 것처럼, 안셀무스에게도 신은 곧 세계, 전체로 표상된 우주와 다름 없었던 것이죠. 하지만 아우구스티누스가 세계의 섭리를 단순히 신의 ‘계획’으로 환원해버린 데 비해, 안셀무스의 언표 속에서는 스스로의 역량, 그것이 믿음의 역량이든, 인식의 역량이든, 어쨌든 무언가를 ‘이해’하려고 한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신학의 역사에서 하나의 변곡점을 이루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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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딕 성당의 실내
_ 모든 곳이 어두운 가운데 시선이 집중되는 중심부, 신의 자리에만 조명이 집중적으로 떨어집니다.
신학에서의 이러한 변화와 함께 교회의 건축양식도 변화하게 됩니다. 어둡고 장엄한 로마네스크의 시대가 가고 스테인드그라스를 통해 정제된 빛이 들어오는 공간, 하늘을 찌를듯이 높이 솟은 첨탑으로 대표되는 고딕의 시대가 오고있었던 것이죠. 예술사적으로 고딕양식이 자리잡았던 시기는 약 2세기 정도의 시간이었습니다. 로마네스크의 장엄한 분위기는 유지하면서도, 로마네스크 양식이 가지고 있던 육중한 느낌은 덜어내었죠. 사람마다 느끼는 것이 다르겠지만, 고딕의 첨탑들은 압도적인 느낌을 주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겁게 짓누르는 느낌을 주지는 않습니다. 차라리 그것은 ‘섭리’들이 쏟아져 나온 저 하늘 위로 날아갈 것 같은 느낌을 주죠. 마치 로케트처럼요.

안셀무스의 사유와 고딕양식이 만든 공간은 딱 맞아떨어지게 동형적이지는 않지만, 재미있는 상상의 공간을 열어줍니다. 그 공간은 스테인드글라스를 통과한 정제된 빛이 떨어지는 공간이죠. 투명한 유리가 아니라 색이 입혀진 유리를 통과한 빛은 (프리즘처럼) 자기 안에 품고 있던 다양한 스펙트럼을 펼칩니다. 이것은 일자(一者)에서 다자(多者)가 산출되는 느낌을 주죠. 더불어 무차별적으로 지각되었던 세계에 어떤 종류의 존재들이 살고 있는지에 대한 은유가 되기도 합니다. 그런 점에서 안셀무스가 중세의 유명한 논쟁이었던 보편논쟁에서 ‘실재론’의 한 축을 담당했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합니다. 실재론이란 인간A, 인간B, 인간C와 같은 개별자들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보편적인 존재가 ‘실재’한다는 의미에서 ‘실재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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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인드글라스_정제된 빛의 스펙트럼
반대로 실재론과 논쟁했던 ‘유명론’은 ‘인간’은 단지 이름 뿐이고 실재로 존재하는 것은 인간A, B, C와 같은 개별자들뿐이라는 주장이죠. 이 두가지 입장은 서구 철학의 오랫동안 이어져 내려온 전통, 근대까지 계속 이어질 전통 속에 있습니다. 유명론자들의 주장은 개별적인 감각경험을 통해 세계를 이해하고자 했던 영국 경험론자들과 개체들 안에 원리(eidos)가 내재한다고 봤던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장과 궤를 같이 합니다. 실재론은 개체들의 실재 모습인 이데아가 실재한다고 주장한 플라톤, 세계의 보편적인 원리가 있고 이것을 통해 진리를 이해할 수 있다고 주장한 대륙의 합리론 전통을 이어줍니다. 고딕 양식의 스테인드글라스가 한덩어리의 빛 속에 잠재해 있었던 광선들을 분화해서 보여주는 것은 논리적인 절차에 따라서 이 세계의 체계를 엮어가려는 합리주의적, 실체론적 전통의 은유라고 생각해 보는 것도 재미있는 작업일 것입니다. 하나의 지식에서 다른 지식으로 넘나들며 사유하는 것, 이것이 바로 철학을 재미있게 가지고 노는 방법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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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인식의 대상은 질료 안에 개별적으로 실현되어 존재하고 있는 그 어떤 것이다.”
ㅡ아퀴나스  『신학대전』

토마스 아퀴나스는 철학이나 신학을 전공하지 않더라도 이름 정도는 한번씩 들어 본 적이 있을 정도로 유명한 사람입니다. 이를테면 중세 철학계의 대스타죠. 아퀴나스가 대스타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신학대전』이라는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무엇보다 그가 중세의 철학적 전통 속에서 제기되었던 온갖 문제들을 종합했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종합이 단순히 이런저런 사상을 꿰메어 붙인 것이 아니라 중세의 다양한 신학적 사유들을 유기적으로 엮어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사실은 그가 중세적 전통 속에 있는 단순한 신학자 이상의 역할을 했다는 점입니다. 그것은 다름아니라 신적 지성과는 독립적으로 인간 주체가 독립적으로 대상을 인식할 수 있는 기반, 즉 ‘근대적인 인식’의 원초적인 지반을 놓았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그의 작업에서 가장 중요하고 특징적인 점은 신의 절대성을 인정하는 가운데에서도 인간의 상대적인 자율성을 확립했다는 것입니다.

위에 인용한 말에서도 그의 그러한 특징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질료 안에서 실현된 것으로 개별자를 보고, 이것을 인식하는 것이 인간 인식의 임무라고 말하는 것은 이미 근대적 탐구자의 태도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의 이러한 태도가 당시 유럽인들에게 미친 영향은 대단한 것이었습니다. 그의 철학 속에서 본격적인 근대의 시작을 알리는 르네상스 시대가 약동하고 있었던 것이죠.

유명한 미술사가 하인리히 뵐플린에 따르면, 르네상스 미술은 선(線)적인 명료함을 특징으로 합니다. 사실 감각적인 인식 속에서 세계는 늘 어슴푸레하게 떠오릅니다. 잠에서 덜깬 상태에서 보는 세계와, 한 낮의 태양 아래에서 보는 세계가 다르고, 술에 취해 보는 세계가 또 다른 것이죠. 이 여러가지 세계들 중에서 어떤 것이 진짜인지 고민하는 것이 오랜 시간 동안 철학자의 업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된 이유는 아퀴나스가 제기한 문제, 즉 개별적인 대상에 실현된 그 사물의 본질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인가가 아주 중요한 영향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더불어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까지 그 고민이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는 것을 봐도 그의 영향력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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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 시대의 교회
르네상스 시대에 세워진 건물의 내부는 당시의 회화와 마찬가지로 내부의 선들이 명료하게 배치되고, 빛과 어둠의 비율을 조심스럽게 계산해서 통제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기하학이 발명되었던 시대, 인류를 밝혀주는 명료한 이성이 빛이 있었던 시대로 기억되는 고대 그리스 시대의 이미지를 적극적으로 수용한 결과이기도 하죠. 더 재미있는 변화는 과거 교회건축의 대부분이 교황청에 의해 주도적으로 건설되었던 데 반해 르네상스 시기의 유명한 성당들은 이탈리아 각 지역의 유력가들에 의해 건설되었다는 점입니다. 이것은 중세의 권력축이 교회에서 귀족계급에게로 이동해 가고 있다는 것을 잘 보여 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사상적인 측면에서는 교회의 성직자들이 독점하고 있었던 지식에 대한 주도권이 해체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구요. 아퀴나스가 르네상스인은 아니지만, 그의 사유가 인간인식의 상대적인 자율성을 확립해 주었다는 점에 비춰 볼 때 그는 르네상스를 여는 데 상당한 역할을 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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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어 Aufklarung은 ‘위에서 비추다’라는 의미를 갖는 말로, 한국어로 번역될 때에는 ‘계몽’이라고 합니다. 칸트가 계몽을 “미몽의 상태에서 깨어나는 것”이라고 규정할 때, 그것은 ‘빛’을 통해 가시화된 것을 명료하게 인식하고, 그 인식능력을 자신의 용기에 따라 사용할 것을 촉구하는 의미를 갖게 됩니다. 그런데 그러한 의미로 쓰이는 ‘계몽’이라는 말이 ‘빛’과 ‘어둠’의 대조 속에서 주조된 말이라는 점이 재미있습니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에 의해 중세의 각 시기를 규정하자면 의식의 차원에서 어둠과 빛이 극적으로 대조되는 시기, 실재적인 가시적인 차원에서 빛과 어둠이 대조되는 시기, 그리고 빛과 어둠의 양을 계산적으로 통제하는 시기로 구분해 볼 수 있겠습니다. 사실 이것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이성(빛)을 사용하여 현상을 온전하게 파악하라고 촉구하는 계몽주의의 이념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습니다. 다시 말해 근대세계의 출현은 중세와 절대적으로 단절되는 사건이라기 보다는 빛의 주관자와 어두운 존재자들의 대조에서 벗어나 빛(이성) 자체를 통제하고 이를 통해 어둠을 지워나가는 시대로 진입하는 변곡점이었던 것이지요. 사실 자연을 인간이 이용하기 위해 존재하는 대상으로 바라보고, 인간을 중심에 놓고 세계의 모든 현상들을 설명하려는 관점은 데카르트가 ‘생각하는 존재’로서의 인간을 이야기하기 전에, 신의 대리인으로서의 인간에 대한 관념이 생기기 시작한 시기부터 예비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은 근대세계를 통과하면서 극단화되고 지금 우리가 쉽게 볼 수 있는 수많은 문제들을 야기합니다. 이렇게 한 시대와 다른 한 시대를 특정한 연관성 속에서 생각해 보고, 이를 통해 좀더 다양한 지식들에까지 다가갈 수 있는 게 철학의 매력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각자의 삶의 구체적 지점들까지 성찰해 볼 수 있다면 그것보다 좋은 것이 없을 테구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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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3/10 11:01 2010/03/10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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