ㅡ 창조하는 생명의 원리, 『생명과 장소』

사용자 삽입 이미지
에밀리 푸웰리 <유토피아>

창조는 카오스의 발생에 의해 기존의 체계를 혼돈케 해서 그 체계의 틀에 받아들여지지 않는 여러 정보를 적극적으로 만들어 내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이런 의미에서 생물은 정보적인 안정성과 동시에 불안정성을, 혹은 자기조직 능력과 동시에 카오스 생성능력을 함께 가지는 존재이다. (본문 266쪽)

은연중에 생명은 질서를 지향하고, 카오스는 질서가 무너지면서 발생하는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엔트로피 이론만 하더라도 무질서도의 증가는 시스템이 열사(열사熱死는 우주의 종말 중 한 가능성으로, 운동이나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자유 에너지가 없는 상태, 물리학적으로는 우주 전체의 엔트로피가 최대가 된 상태를 말한다)로 진행하는 길이라고 말하죠. 카오스는 코스모스의 적이며, 생명 유지를 위해 제거되어야 할 것처럼 다루구요.

하지만 우리의 모든 변화는 카오스가 있어야만 만들어질 수 있습니다. 당장 신체의 움직임만 하더라도, 근육을 움직이게 만드는 뇌 내 네트워크 변화를 통해 일어나죠. 국가나 사회 같은 시스템도 끊임없이 스스로를 보완하고, 변경하면서 유지해 나가죠. 완벽한 질서와 변화 없는 사회야말로 안정의 증거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매일 똑같은 일이 반복된다고 생각해 보세요. 얼마나 답답할까요? 완벽한 질서 속에 있는 개인이나 조직 안에서는 어떠한 변화도 일어날 수가 없습니다(단일과 전체를 중시하는 인간들이 어떤 방식으로 타자를 배척하고, 살상시켰는지는 가까운 현대사만 보더라도 알 수 있죠). 어떻게 보면 시스템이든 생명이든 질서를 스스로 무너뜨릴 수 있어야만, 그러니까 카오스를 생성해 낼 수 있어야만 생명이라고 할 수 있다는 말이죠.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랑의 블랙홀」
자신 안에 내재해 있는 이질적인 것들을 인식하고, 그것들을 자꾸 만들어 내야만 생명은 변화할 수 있습니다. 또한 새로운 질서를 조직하기 위해선 현재를 지배하는 코스모스에 카오스를 만들어 낼 수 있어야 합니다. 내가 만든 카오스가 단순한 반항이 아니라, 새롭게 시스템이 수용해야 할 정보임을 알리기 위해선, 이질성을 강하게 표출해야 하구요. 창조는 이런 맥락에서 보면 어려운 게 아닙니다. 나의 특이성, 이질성을 드러내는 것. 또한 외부의 특이성에도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는 것이죠. 영화 「사랑의 블랙홀」에서도 같은 일상을 벗어나기 위해 필요했던 방법은 익숙했던 자신의 삶과 결별이었다는 거~, 기억하실 겁니다. 예술가의 작업실이나, 과학자의 실험실에서 창조가 일어난다는 코스모스적인 생각을 버리고, 나만의 이질성을 어떻게 드러낼 것인지를 고민해 보는 건 어떨까요? 물론 그 고민은 기존의 세계에 물음표를 던지는 ‘철학’에서 시작되겠죠!

- 편집부 강혜진

알라딘 링크
2010/03/09 17:28 2010/03/09 17:28
RSS를 구독하시면 더욱 편하게 그린비의 글을 만나실 수 있습니다. [ | ]

trackback url :: http://greenbee.co.kr/blog/trackback/972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해피엔드 2010/03/09 21:30

    카오스. 어쩐지 공감이 가는 단어입니다.(흙)

    집과 떨어져 새로운 공간에서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고 있는 저는,
    익숙한 곳을 벗어난다는 것의 어려움과 막연함을 알 것 같습니다.
    그와 동시에, 그 행위가 사람에게 얼마만큼의 변화를 가져다 주는지
    하루하루 조금씩 실감하는 중입니다.

    아무쪼록 이 시간들이 저만의 이질성, 타인과의 차이를 만들어낼 수 있는
    귀중한 시간이 되었으면 하네요. 응원해주세요 ! ㅎㅎ

    글 잘 읽었습니다. 혜진님.

    • 알라 2010/03/10 09:24

      ㅇㅇ멋진 각오! "생명과 장소"를 꼭 한 번 읽으셔야겠어욤.ㅋㅋ 응원할게요~! 살아 있음을 실감하는 나날들이 되길 바랄게욤~!

  2. 이용석 2010/03/09 23:22

    카오스. 저번 학기 때 언뜻 강단에서 배우기야 배웠지만, 요즘들어 제 자신의 그 어떤 막연하고 불투명한 면을 주시해서랄까요, 많이 떠올려보고 있는 관념입니다. 이렇듯 저는 카오스를 부조리랄까요, 그런 좀 근본적임 '감정'으로 파악하고 있는데요, 음..또 감정을 걷어내고서(노력하고 있습니다) 바라보아도 실상 좀 그런 것 같구요.. 그러면서 생각하기를, 카오스에서 코스모스로의 전진? 질서화? 그런 식으로 카오스를 우주의 지반이자 곧 줄기차게 벗어나야 할 하나의 헝클어진 기초라고 생각했는데.. 근데 혜진님께서 얘기하셨듯 (그러고보면 지난 학기 들뢰즈를 열렬히 사모하는 한 강사님께서도 비슷한 얘기를 하셨던 것 같습니다..졸아서 다 날려들었지만-_-;;) 그 전진이란 것도 카오스의 무규정적이고 이질적인? 그 에너지에서 태동되는 것 같고.. 그렇다면 순환인가.. 아님 조금 미묘하게 다른 건가.. 헤헤...........

    • 알라 2010/03/10 09:37

      순환일 수도 있지만, 선형적 순환이라기보단 나선형으로 상승해 가는 구조가 아닐까 싶어요. 물론 그 구조는 나선형이라지만 뫼비우스의 띠 구조일 것 같기도 하고, 엉켜 있을 것 같가도 하구요. 댓글을 읽어 보니 카오스를 바라보는 시선들이 참 다양하네요.
      혼돈의 표상도 여러 가지 형태로 변화해 왔을지도 모른단 생각이 듭니다.

      "생명과 장소" 읽어 보시고, 기회가 되면 어떤 느낌이셨는지 포스팅 한 번 해주세요. 그때 책에서 말하는 카오스에 대해 좀더 자세히 이야기해 보자구요~!

  3. 혼琿 2010/03/10 02:59

    네트워크 이론에 대해선 무지하지만, 카오스라는 개념이 '무질서'를 의미하는 건 아닌 걸로 아는데요... 어디선가 카오스는 기존의 '선형'방정식이 아닌 '비선형'방정식으로 표현되는 구조? 질서? 라고 봤습니다만..

    • 알라 2010/03/10 09:32

      "생명과 장소"에서 카오스는 아직 해가 확정되지 않은, 해가 구해지지 않은 방정식처럼 설명하기도 하구요, 사회 변화나 제도들을 말할 때는 무질서 상태라고 표현하기도 한답니다. 아마 저자가 이렇게 표현하는 이유는 카오스가 '잠재성'의 상태임을 강조하기 위한 것 같습니다. 생각해 보니 이 책을 이해하기 위해 우리도 초기조건 몇 개를 설정해 줘야 할 것 같네요. 댓글을 읽다 보니 책 자체도 비선형 방정식에 해당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모락모락~~

  4. 혼琿 2010/03/11 00:58

    그러고보니 기다리고 있던 리좀총서2의 새로운 책이군요. 마누엘 데란다도 그렇고 재밌고 유익해보입니다. 뭐, 철학이 '문과' 또는 '인문학'으로 분류되는 한국에선 잘 안 읽힐 수도 있겠지만요. 수고하세요.

    • 그린비 2010/03/11 10:03

      아, 리좀총서2 기다려 주셨다니 감사합니다~
      시미즈 히로시의 <생명과 장소>는 과학과 동양철학을 아우르는 이른바 통섭 과학의 고전이죠. ^^

  5. homo sacer 2010/03/16 17:46

    지하철로 직장을 오고 가며 반쯤 읽었습니다.
    같은 말이 여러번 반복되는 점; "에게 사사받고" 보다는 "를 사사하고" 또는 "에게 지도받고" 가 조금은 더 매끄러운 표현이 되지 않을까 하는 점; 몇몇 그림은 설명이 썩 친절하지 않은 점; 몇몇 그림이 관련 글과 쪽이 달라 조금 불편했던 점; 저자의 겸손과 양보의 미덕의 발로이겠으나, 과학 논문에 ~~고 싶다 류의 표현이 너무 많다는 점 등이 조금 걸리기는 합니다. 아직 충분히 씹지 못하고 내쳐 삼켜버린 기분이라 더 결정적인 리뷰는 생산해내지 못하겠군요. 다 읽고 난 후 다시 오겠습니다.

    • 그린비 2010/03/16 21:45

      오타가 있었네요~. 좋은 지적 감사합니다. 불편하셨던 부분들을 자세하게 방명록에 남겨 주신다면 다음 쇄를 찍을 때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그림들은 앞서 언급되었던 그림을 뒤에서 다시 설명하는 경우가 있어 불편하신 부분들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상호참조가 가능하도록 구성을 했는데, 이 역시도 혹시 부족했던 부분들을 방명록에 남겨 주시면 추후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