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리 ‘노예허가제’라고 하라

최현모 (한국이주노동자인권센터)

가구공장에서 일하기 시작한 지 3개월이 지나면서 뒷목에서 어깨로 이어지는 통증이 느껴졌다. 심할 때는 통증 때문에 밤잠을 이루지 못할 만큼 괴로웠다. 하루 온종일 무거운 목재와 합판을 들어 옮기는 작업을 계속하면서 무리가 오기 시작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더군다나 1개월 전 함께 일하던 태국 노동자들마저 떠나면서 작업량이 더욱 늘어나 뒷목과 어깨의 통증은 날로 심해졌다. 견디다 못해 하루 일을 빼고 한국말이 능숙한 고향 친구와 함께 병원을 찾았다. 의사는 정확한 진단을 위해서는 MRI를 찍어 봐야 한다고 했다. 비용이 35만 원이라고 했다. 지난 몇 개월간 월급을 제때 받지도 못한데다 지난달 월급도 아직 받지 못한 상태였기 때문에 수중에 가진 돈이 거의 없었다. 그냥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힘겨운 일은 계속되었고 통증은 점점 심해져만 갔다.

며칠 후 용기를 내서 사장님에게 통증 때문에 일하기가 힘들다고 말했지만 무시만 당했다. 다음 날 다시 너무 아파서 병원에라도 가고 싶다고 말했더니 일하지 않으면 월급은 없는 줄 알라며 윽박지름만 되돌아 왔다. 어찌해야 할지 몰라 너무도 힘겨웠다. 그러던 차에 고향 사람의 소개로 외국에서 일하러 온 사람들 도와준다는 이주노동자인권센터라는 곳을 찾아가게 되었다. 그곳에 가서야 사장님이 의무적으로 가입해 주어야 할 건강보험에 가입되어 있지 않다는 말을 들었다. 그리고 아픈 이유가 일 때문일 수 있으니 진단을 받고 난 후 어떻게 할지 생각해 보자며 병원도 안내받았다. 의사의 말로는 목뼈 부위에 염좌가 생겨서 통증이 느껴지는 것이라며 한동안 일을 하지 말고 쉬면서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지금은 심각하지 않지만 계속 같은 일을 할 경우 오히려 병이 악화될 수 있다는 말도 했다.

Simon and Garfunkel, The Boxer
_ 성공을 위해 고향의 가족들을 떠난 한 권투선수. 돈을 벌게 해준다는 약속을 믿고 힘껏 주먹을 날렸지만 남는 건 상처투성이의 몸뿐. 이 땅의 이주노동자들이 처한 상황 역시 이 노랫말 속의 권투선수와 같지 않을까?

일하는 공장을 다른 곳으로 옮기고 싶었지만 사장님의 허락이 없으면 옮기는 것이 쉽지 않다는 말을 듣고 인권센터 사람을 통해서 사장님에게 몸이 아프니 잠시라도 쉬면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해달라는 부탁을 했다. 그리고 건강보험도 가입시켜 달라고 했다. 다행히 사장님은 치료할 수 있게 시간을 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리고 하루가 지났다. 사장님이 와서 일을 하지 않으면 출입국사무소에 신고해서 추방시켜 버린다고 협박을 했다. 치료를 받는 것은 알 바 아니니 알아서 하고 일은 빠지면 내쫓아 버린다고 했다. 인권센터의 사람을 통해서 사정해 보았지만 일을 하지 않으면 무조건 신고해서 추방시켜 버린다는 말만 하면서 다시는 연락하지 말라고 했다고 한다. 노동부 고용지원센터에도 호소해 보았지만 그 정도의 통증과 건강보험 미가입 등의 이유로는 회사를 옮길 수도 없고, 계속 아프다고 일을 못하면 한국에서 어떻게 일을 하겠냐며 오히려 핀잔을 했다.

하는 수 없이 통증을 참고 일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통증이 심했기 때문에 일을 더 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건강보험이 없어 병원에 갈 수도 없었다. 너무 힘들어 사장님 가족들에게 말을 하고는 기숙사에서 쉬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사장님이 일하기 싫으면 나가라고 소리를 질렀다. 너무 무서웠다. 다시 인권센터에 연락을 해서 도움을 요청했다. 그리고 청천벽력 같은 말을 들었다. 인권센터에서 노동부 고용지원센터에 확인해 보니 사장님이 이미 작업장 이탈신고를 했기 때문에 ‘불법사람’이 되었다는 것이었다. 말을 하고 기숙사에서 쉬고 있었던 것뿐인데 어떻게 이탈신고를 할 수 있느냐고 따졌지만 사장님이 직접 이탈신고를 철회하지 않으면 달리 방법이 없다는 말만을 반복했다고 한다. 사업주의 의무사항인 건강보험도 가입해 주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쉬면서 치료할 수 있는 시간을 주겠다는 약속도 어겼다며 항의해 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고 했다. 건강보험 가입여부는 자기들이 따질 문제가 아니고 건강보험 공단에 알아볼 사항일 뿐이며, 의무사항이라고는 하지만 보험가입을 강제할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건강보험 미가입 등을 이유로 회사를 옮길 수도 없다고 했단다. 그러고는 통역할 사람과 함께 고용지원센터로 찾아오라고 했다고 했다.

고용지원센터 직원은 사장님에게 잘못을 빌고 다시 일하겠다고 하면 이탈신고를 철회할 것이라고 했다. 이탈신고가 철회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고 했다. 어쩔 수 없었다. 잘못을 했으니 다시 일하게 해달라고 하는 수밖에. 그런데 무슨 잘못을 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합법’인데도 나쁜 일을 당하는 외국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현대판 노예제도 '고용허가제'
_ 위 그림은 노예 매매를 위해 아프리카인의 건강 상태를 점검하는 유럽인들의 모습이다. 한국에서 이주노동자들이 차지하는 역할은 나날이 커지고 있다. 하지만 이주노동자에 대한 한국인의 인식과 대우는 유럽인들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최근 상담을 통해 사연을 접하게 된 한 이주노동자 M씨의 이야기이다. 고용허가제를 통해 지난해 한국에 입국한 지 4개월이 지나는 동안 같은 공장에서 사업주의 일방적인 이탈신고로 두 번이나 ‘불법사람’ 신세가 되었었다. 일과 관련해서 불편을 호소할 때마다 묵살을 당했고, 심한 경우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작업장 이탈’로 신고가 되어 ‘불법체류자’가 되어 버렸다. 고용허가제하에서 사업주는 일방적인 의사표시만으로 이주노동자의 법적 지위를 좌지우지할 수 있다. 혹여 사업주의 눈 밖에 나는 경우 이주노동자는 아무런 법적 보호도 받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무지막지한 단속과 강제추방의 대상이 되는 최악의 상황을 각오해야 한다. 이주노동자 M씨도 이러한 상황을 익히 알고 있었기에 울분을 참고 사업주에게 고개를 숙여야 했다. 사업주의 요구는 간단했다. ‘잔말 말고 일하라는 것’이다.

지난해 말, 3년여의 조사를 통해 「일회용 노동자: 한국의 이주노동자 인권상황」이라는 보고서를 낸 국제 앰네스티는 ‘한국의 이주노동자가 착취와 인권침해에 취약한 이유는 고용허가제가 이주노동자의 지위를 고용주에게 종속시켜 놓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현대판 노예제도라고 비판받았던 ‘산업연수제’의 폐해를 개선하고, 이주노동자들의 권리를 동등하게 보장한다며 선전해 온 고용허가제가 시행된 지 6년. 선전은 선전일 뿐이다. 사업주의 일방적 의사에 종속된 이주노동자에겐 인간으로서의 기본적 권리조차 그림의 떡일 뿐이다. 고용허가제를 두고 또 하나의 ‘노예허가제’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는 이유이다.

2010/03/10 17:01 2010/03/10 17:01
RSS를 구독하시면 더욱 편하게 그린비의 글을 만나실 수 있습니다. [ | ]

trackback url :: http://greenbee.co.kr/blog/trackback/973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이반 2010/03/11 14:47

    법보다 주먹이 아니라
    법보다 암묵적으로 이어지고 있는 문제들이라고 생각 되네요.
    사업주와 노동자가 되면 누구에게나.......

    • 그린비 2010/03/11 16:28

      네..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법과 인식이 함께 바뀌어 나가야 할 텐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