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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철학적 근대를 열었던 이 말은 딱히 철학을 공부하지 않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 말에 함축된 의미는 이 말만큼 유명하지 않습니다. 단지, 멋진 말, ‘생각’의 중요성을 일깨워 주는 명언 등으로 기억되는 것이 대부분이죠. 그렇지만 이것을 단순히 명언으로 취급하는 것은 이 말이 내장하고 있는 폭발력을 전혀 살리지 못합니다. 어떤 폭발력이 있길래 그런 것일까요? 이 말이 우리의 사고방식, 우리의 생활을 어떻게 바꿔 놓았는지를 살펴보면 쉽게 답이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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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댕 <생각하는 사람>
_ '생각하는 사람'의 이미지. 내면을 성찰하는 인간의 모습. 그가 성찰한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17세기 이래로 인간은 ‘생각하는 존재’가 됩니다. 여기서 생각한다는 것은 단순히 이성을 가지고, 자신의 의식을 반성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어떤 대상과 ‘자기’를 날카롭게 분리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죠. “나는 생각한다”라는 언술에 담긴 ‘생각하다’는 라틴어 cogitare입니다. 그것이 1인칭으로 표현되면서 ‘나는 생각한다’(cogito)가 된 것이죠. 이 말은 영어의 cognition, recognize와 같은 말의 어원이 되는 말이기도 하구요. 영어표현들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말은 ‘인식’, ‘재인’ 등의 의미를 갖습니다. 근대적 의미에서 ‘생각한다’는 말은 곧 무언가를 ‘인식한다’는 말과 다르지 않은 것이죠. 그렇다면 인식을 하기 위해서는 어떤 것들이 필요한 것일까요? 최소한 두 가지 요소가 필요합니다. 인식(생각)하는 ‘주체’와 인식(생각)되는 ‘대상’이 그것이죠. 근대적 주체는 이렇게 ‘대상’이라는 쌍둥이와 함께 태어납니다. 그리고 여기서 주체는 당연히 생각하는 자, 즉 인간이고, 대상은 생각하는 자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 즉 자연이죠. 능동적 주체와 정태적 대상이라는 이러한 관계 도식이 성립된 후에 능동적 주체가 정태적 대상에게 어떤 짓을 저지를지, 저질렀는지 하는 것은 이미 주지의 사실입니다.

어쨌든 데카르트는 어째서 이런 말을 남긴 것일까요? 일단 그가 남긴 책들을 살펴보는 것이 도움이 될 듯합니다. 그가 남긴 책 중에서는 『방법서설』과 『성찰』이라는 책이 가장 유명한 편에 속합니다. 이 책들이 유명한 이유에 관해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먼저 『방법서설』은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방법’에 관한 책입니다. 어떤 ‘방법’이길래 굳이 책까지 써가며 설명하려고 했던 것일까요?

■ 근대철학에 관한 책
『철학과 굴뚝청소부』, 이진경, 그린비
근대철학을 주체의 성립부터 다양한 양상들, 해체의 관점에서 풀어 가는 책입니다. 철학사를 개괄적으로 이해하려는 목적에도 적합하고, 주체 문제에 집중해서 보는 데에도 아주 유용한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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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브레히트 뒤러 <화가의 작업실>
_ 근대적 미는 철저한 계산 속에서 태어납니다. 대상과 화가 사이의 거리, 대상을 구성하는 각종 비율들을 어떻게 화폭에 적절히 세길 수 있는가가 관건이었죠. 이러한 태도는 근대세계의 전 영역에 걸쳐 영향력을 행사합니다.

데카르트는 아래와 같이 말합니다.

“…우리가 깨어 있을 때에 갖는 모든 생각과 똑같은 것이 우리가 잠들고 있을 때에도 우리에게 나타나는데, 이때 참된 것은 하나도 없음을 생각하고서 나는 여태껏 정신 속에 들어온 모든 것이 내 꿈의 환상보다 더 참되지 못하다고 가상하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금방 그 뒤에 그렇게 모든 것이 거짓이라고 생각하고 싶어하는 동안도, 그렇게 생각하는 나는 반드시 어떤 무엇이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있다’라는 이 진리는 확고하고 확실하여, 회의론자들의 제아무리 터무니없는 상정들을 모두 합치더라도 이것을 흔들어 놓을 수 없음을 주목하고서, 나는 주저없이 이것을 내가 찾고 있던 철학의 제1원리로 받아들일 수 있다고 판단하였다.”
(30쪽『방법서설』, 최명관 역, 서광사)

데카르트는 철학적인 ‘진리’를 찾기 이전에 진리를 찾는 도구, 즉 방법을 먼저 정립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유하기 위한 명석판명한 입지점을 찾으려고 하는 것이죠. 이러한 태도가 근대적 인식의 중요한 특성 한 가지를 보여 줍니다. 지난 주에 연재했던 <건축양식으로 보는 중세의 빛과 암흑>에 빗대어 말하자면, 중세까지 사람들이 하늘에서 비추는 빛에 의존하여 세계를 밝히려 했다면, 근대적 인식의 태도는 세계를 통제 가능하게 만들고 그렇게 하기 위해 자신이 가진 빛을 최대한 밝게 만들려고 했다는 것입니다. 이를테면 손에 플래시를 쥐고 있는 것이죠. 그런 점에서 볼 때 『방법서설』은 중세적 영토에서 이탈하여 근대적 영토로 이동하는 길에 놓인 하나의 ‘랜드마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찰』에서는 명석판명한 출발점에 대한 욕망이 더욱 명확하게 드러납니다.

“나는 진리의 원천인 최선의 하느님이 아니라, 더할 나위 없고 유능하고 교활한 어떤 악한 영이 온갖 재주를 부려 나를 속이려 하고 있다고 가정하련다.”
(81쪽『성찰』, 최명관 역, 서광사)

데카르트의 위와 같은 언급은, 명석판명한 인식의 기초를 얻기 위해 최악의 상태를 가정하는 근대적 이성의 강박증을 보여 줍니다. 더불어 더욱 재미난 것은 악마가 주체를 속이려고 할지라도 주체는 이미 판명한 인식을 할 수 있는 주체로서 가정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를 ‘속인다’라는 언술을 할 수 있는 것이고요. 이런 관점 아래 서 있기 때문이었을까요? 근대인들은 모든 오류들, 온갖 거짓들이 우리를 속이려 든다는 태도로 자연의 운행원리, 이성의 작동방식, 자연지배의 기술들을 하나하나 익혀 나갑니다. 세계에서 어둠을 제거하는 방식으로 말이죠. 근대를 계몽의 시대(age of enlightenment)라고 부를 수 있다면, 그것은 그 공간 안의 개인들 하나하나를 발광체로 만듦으로써 어떤 어둠도 남겨두지 않는, 어떤 미몽도 허락하지 않겠다는 이념이 지배한 시대였던 것입니다.

■ 데카르트의 책들
『방법서설』, 데카르트, 이현복, 문예출판사

『성찰』, 데카르트, 이현복, 문예출판사
데카르트의 저작들은 현대 프랑스 철학자들이나, 독일 관념론자들의 저술처럼 ‘엄청나게’ 어렵지 않습니다. 물론 여러 가지 생각을 하면서, 철학사적 맥락을 고려하면서 읽자면 어렵겠지만, 그렇게 했을 때 어렵지 않은 책이란 세상에 없죠.
『방법 서설』은 데카르트가 본격적인 사유를 전개하기 전에(이미 이 책에서 전개하는 것과 다름없습니다만 ^^;) 사유의 방법들을 밝히는 책입니다. 그 유명한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명제가 실린 책이기도 하구요. 데카르트가 어떤 방식으로 자신의 사유를 펼쳐 나가려고 했는지 궁금하시다면 일독을 권합니다. 『성찰』은 인간 정신의 본성, 신의 존재, 물질적 사물의 현존 등 근대철학을 이루는 다양한 주제들이 함축된 저술입니다. 데카르트가 각각의 주제들에 관해 어떤 사유를 했는지 알 수 있는 책이죠. 『방법서설』에 비해서 약간 난이도가 높긴 하지만, 차분히 읽는다면 얼마든지 도전해 볼 만한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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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초창기를 수놓은 철학자들은 동시대를 수놓았던 과학자들의 이름과 같습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미적분의 원리를 누가 먼저 발견했는가를 두고 뉴턴과 다투었던 라이프니츠나, 앞서 언급한 데카르트, 사회계약설로 유명한 홉스 같은 사람들이 철학자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근대 자연과학의 확립에 큰 역할을 한 과학자들이었다는 것이죠. 그리고 이러한 그들의 복수적 정체성은 데카르트적 주체, 근대적 주체, 생각하는 주체가 어떤 과정 속에서 탄생했는지를 밝히는 실마리가 됩니다.

“서양의 근대는 과학 혁명의 시대다. 역사학자 버터필트에 따르면 ‘과학 혁명은 기독교의 출현 이후 어떤 사건보다 더 중대한 사건이며 과학 혁명에 비하면 종교 개혁이나 르네상스는 중세 기독교 사회 안에서 일어난 작은 변화, 단순한 에피소드 수준을 벗어나지 않는다’.”
(30쪽『17세기 자연 철학』, 김성환, 그린비)

근대적 주체가 탄생하게 된 핵심에 ‘과학 혁명’이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과학’이란 무엇일까요? 이것은 무엇보다 어떤 현상(결과)의 ‘원인’을 밝히려는 노력, 그리고 그 원인과 결과가 맺는 관계(법칙)를 밝히려는 노력입니다. ‘인식의 의지’인 것이죠. 이러한 의지들 속에서 세계의 ‘신비’는 하나씩 사라지게 되었죠.

어쨌든 이러한 의지가 작동하는 가운데 근대 철학과 과학은 수백년간 서로서로 엮이면서 전개됩니다. 이것은 철학사에서 흔히 하는 표현들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는 사실이죠. 가령 ‘뉴턴 역학에 인식론적 기초를 부여한 칸트’와 같은 표현은 그러한 점을 극명하게 보여 줍니다. 20세기에 등장한 하이데거의 시간론에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이 짙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는 점도 굉장히 유명하구요.

인과의 사슬, 현상의 배후를 가시화 하기 위한 근대적 욕망은 광학의 발달을 낳았습니다. 갈릴레이가 사용한 망원경부터 급기야 전파를 활용하는 허블 망원경까지. 이 가시화의 역사가 근대적 욕망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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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 왼쪽부터 갈릴레이의 망원경, 반사 망원경, 허블 망원경

근대 과학자의 영혼은 대상으로 정립된 자연의 신비를 용납하지 못합니다. 이해불가능한 것들을 남겨두려고 하지도 않죠. 늘 그것의 배후에 놓인 원인을 밝히려는 의지를 작동시킵니다. 그것이 ‘과학자’를 과학자이게끔 만드는 요소이기도 하구요. 그런데 이것은 비단 과학자라는 정체성 안에 국한된 문제만도 아닙니다. 차라리 이러한 태도가 근대인이 공유하는 특징의 단면을 보여 준다고 하는 것이 맞을 겁니다.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 때 우리는 늘 그것의 (과학적, 납득가능한) 원인을 찾으려 하고, 그것을 찾지 못하면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것으로 생각하곤 합니다. 사실 문제해결은 어떤 관점에서 놓고 보느냐에 따라서 엄청나게 달라질 수 있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이러한 토대 위에서 근대 철학자들은 그러한 과학적 방법의 진리값을 보증해 주는 역할을 하곤 합니다. 인과법칙이나, 동일성의 원리들 따위에 정당성을 보증해 주는 것이죠. 칸트가 선험적 종합판단의 가능성, 인식의 확고한 토대 등을 논의한 것도 이러한 역할에 영향받은 바가 매우 큽니다.

■ 근대 과학과 철학의 관계에 관한 책
『17세기 자연 철학』, 김성환, 그린비
갈 릴레이부터 뉴턴까지 17세기 자연 철학의 전개를 살펴보는 책입니다. 무엇보다 딱 이 분야에 관한 국내저작이 아주 드문 현실에서 찾기 힘든 책이라는 점이 큰 장점입니다. 더불어 논의를 풀어 나가는 꼼꼼함 역시 굉장하구요. 근대과학의 성립사, 근대과학의 태동기에 과학과 철학이 어떤 관련이 있었는지 궁금하셨던 분이라면 꼭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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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의 이야기를 통해서 과학과 그것이 제시하는 현상에 대한 이해에 도달 가능한 최상의 상태를 추상하여 특정한 ‘이념’을 부여해주는 철학, 이 둘 사이의 상호작용이 근대적 의식의 상당 부분을 형성했다는 점을 알 수 있었습니다. 물론 복잡한 요소들이 주고 받는 복잡한 상호작용의 효과들을 이렇게 정리해 버리는 것에는 상당한 무리가 있긴 합니다만, 이러한 정리를 통해 근대적 의식의 내용에 관해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는 사실도 완전히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보다 자세한 내용은 끊임없는 공부를 통해 얻어지는 것일테구요.

철학에서 가장 쉽게 찾을 수 있는 사유대상은 바로 자신일 겁니다. 근대인이면서 이미 탈근대를 경험하고 있는 역사적이고 사회적인 개인인 바로 그 사람말이죠. 자기 성찰이 빛을 발하는 부분도 바로 그 지점이구요. 내가 처한 환경, 역사적인 맥락을 생각하면서 17세기 이래로 이어져 온 근대철학을 공부해 보면 굉장히 많은 성과들이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근대적 주체인 ‘자신’의 계보학을 짜 보는 것이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 해서 좋은 일을 우리가 이미 알고 있다는 데에서 우리의 모든 비극이 생겨납니다.^^ 차분한 성찰들을 통해서 이 비극을 조금씩 줄여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 『철학 VS 철학』에서는? [서양편]
5. 인간은 만물의 영장인가? 데카르트 VS 파스칼
7. 타자와의 소통은 가능한가? 스피노자 VS 라이프니츠
8. 어느 경우에 인간은 윤리적일 수 있는가? 흄 VS 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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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3/24 10:57 2010/03/24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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