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터 미뇰로와 인종적 순수성 담론

번역 우석균 (서울대 라틴아메리카 연구소)

엔리케 두셀의 해방철학은 전 지구적 관점에서의 식민주의 비판이라는 점에서 월러스틴의 세계체제 분석과 비판적 대화를 시작했다. 그러나 두 사람의 기획에서 가장 차이 나는 점, 즉 프랑스 혁명 이전에 근대 히스패닉-가톨릭 지문화(geoculture)가 출현했다는 두셀의 사유는 더 심층적인 작업이 필요했다. 이 작업을 주로 수행한 이가 아르헨티나의 기호학자 월터 미뇰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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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뇰로는 월러스틴의 기념비적 저작인 『근대세계체제』가 1970년대 사회과학 이론 분야에서 일어난 인식론적 배치라는 점에서 그 중요성을 인정한다. 월러스틴은 종속이론의 기여와 브로델의 지중해 연구를 연결시키면서, 16세기 근대세계체제 형성에서 대서양 권의 중심적 역할을 분석할 수 있었다. 그 결과, 헤겔의 주장처럼 지중해는 이제 세계사의 축이 될 수 없었고, 사회과학 이론에서 유럽은 ‘지방화’되었다. 중요한 것은 유럽 그 자체에 대한 연구가 아니라 세계체제와 그 구조적 다양성(중심, 주변, 반주변)이 되었다. 그러나 월러스틴의 기획은 주변부를 지역사나 지경제 단위로 보았을 뿐 지문화 단위로는 보지 않았다. 비록 월러스틴이 근대세계체제가 1500년경에 출현한다고 말하고는 있지만, 그는 아직도 유럽중심적 시각을 고수한다. 월러스틴은 이 체제—자유주의— 최초의 지문화는 프랑스 혁명의 세계화의 결과로 18세기에야 나타난다고 믿는다. 그래서 미뇰로는 월러스틴이 여전히 계몽주의 철학자들이 구축한 신화의 포로라고 믿는다. 계몽주의 철학자들에게 [두셀과 미뇰로가] 두번째 근대성이라고 부른 것(18세기와 19세기의 근대성)은 유일한 근대성이었다. 따라서 이 관점에서 볼 때 첫번째 근대성(역주: 두셀과 미뇰로가 말하는 16, 17세기 근대성)의 지문화는 묵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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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뇰로는 자신의 책 『지역의 역사/전 지구적 구상』(Local Histories/Global Designs)에서 아메리카 정복은 (지중해와 대서양을 통합시키는 상권의 출현으로) 새로운 ‘세계-경제’의 창설만 의미한 것이 아니라, 근대세계 최초의 거대 ‘담론’(사이드와 푸코의 어법에서의 ‘담론’)을 형성했다. 미뇰로는 자본의 전 지구적 팽창을 정당화시킨 보편적 담론은 유럽의 부르주아 혁명들의 토대 위에 18~19세기에 출현한 것이 아니라, 그 훨씬 전에 근대/식민 세계체제의 발전과 함께 출현했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근대 최초의 보편적 담론은 자유주의적 부르주아 심성(mentality)과 관련 있는 것이 아니라 귀족적·기독교적 심성과 관계가 있다. 미뇰로에 따르면, 이 심성은 인종적 순수성에 대한 담론이다. 인종적 순수성 담론은 세계인을 대상으로 한 최초의 분류 도식이었다. 이 담론은 비록 16세기까지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지만, 기독교 중세 시대에 이미 형성되고 있었다. 그리고 대서양을 넘은 스페인의 상업적 팽창과 유럽의 식민지 만들기 초기에 ‘전 기구적’ 담론이 되었다. 이리하여 지역의 역사(중세 유럽의 기독교 문화)에 속하던 분류 매트릭스가, 스페인이 16~17세기에 획득한 전 지구적 헤게모니 덕분에 전 지구적 구상이 되었고, 국제노동분업 하에서 특정 인종의 지위에 입각해 세계인을 분류하는 데 기여했다.

인식론적·사회적 분류도식으로서의 인종적 순수성 담론은 16세기의 산물은 아니다. 그 뿌리는 헤로도토스가 주장한 ―그리고 에라토스테네스, 히파르코스, 에스트라본, 플리니우스, 마리노, 프톨레마이오스 등 고대 최고의 사상가들이 받아들인― 세계 3분(分)론에 뿌리를 두고 있다. 세계는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라는 거대한 세 지역으로 나뉜 하나의 거대한 섬(orbis terrarum: 세계)으로 인식되었다. 오르비스 테라룸 남쪽의 대척점에 다른 종류의 인간이 사는 또 다른 섬들이 존재하리라고 추정한 이들도 있었지만, 고대 역사가와 지리학자의 관심은 그들이 아는 세계와, 3대 지역에 살고 있는 인간들의 형태에 집중됐다. 이리하여 세계의 영토적 분할이 계서적ㆍ질적인 사회적 분할로 이어졌다. 이 위계질서에서 유럽은 가장 우월한 자리를 차지한다. 그리스와 로마인이 ‘야만인’이라고 여긴 아시아와 아프리카인보다 유럽인은 교육을 더 많이 받고 문명화되었다고 간주했기 때문이다.

중세의 기독교 지식인들은 이 사회적 분류 도식을 전용하면서 몇 가지 변화를 주었다. 가령 (모든 인간은 아담의 자식이라는) 단일 인류 도그마는 성 아우구스티누스로 하여금, 오르비스 테라룸에 다른 섬들이 존재하고, 그곳에 거주민이 있다면, 이들을 ‘인간’으로 분류할 수 없다고 생각하게 만들었다.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인들만 ‘신국’(City of God)의 주민이 될 자격이 있다는 것이었다. 기독교는 이와 같은 방식으로 고대의 위계적 세계 분할을 재해석했다. 유럽은 이제는 신학적 이유로 아시아와 아프리카 위에 있는 특권적 자리를 여전히 차지했다. 이 세 지역은 대홍수 이후 노아의 세 아들이 정착한 곳으로 여겨졌고, 이런 이유로 완전히 다른 세 종류의 주민이 살게 됐다. [노아의 세 아들인] 셈, 함, 야벳의 자손들이 각각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에 거주하게 되었다고 믿었다. 이는 유럽인에게 알려진 세계의 세 지역이 종족에 따라 계서적으로 분류됐음을 의미한다. 아시아와 아프리카인은 ―성경에 따르면, 노아의 눈 밖에 난 두 아들의 자손들―  노아가 총애하는 아들 야벳의 직계 자손보다 인종적ㆍ문화적으로 열등하다고 보았다.
 
미뇰로는 기독교가 고대의 사회적 분할 도식을 재정의하여 인간의 종족적ㆍ종교적 분류학으로 변모시켰고, 16세기에 이 분류학이 확연히 작동하게 되었다고 지적한다. 콜럼버스의 항해로 아메리카가 지리적 실체이며 오르비스 테라룸과 다른 지역임이 입증되자, 즉각 아메리카 주민과 영토를 둘러싼 대논쟁이 촉발되었다. 신이 인간을 에덴동산에서 추방한 후에, 인간이 살아야 할 영토로 ‘지구의 섬’(isle of earth)―유럽, 아시아, 아프리카를 포함하는 지역―만을 지정했다면 새로 발견된 땅은 어떤 법적 지위를 갖는다는 말인가? 새로 발견된 땅이 교황의 보편적 통치권 하에 있고, 따라서 기독교 왕이 점령해도 정당한 것인가? 노아의 아들들만이 아담의 직계 후손이고 인류의 아버지라면, 새로운 땅의 주민들은 어떤 인류학적 지위를 가지는가? 새로운 영토의 주민들이 이성이 결여되어 있어서, 유럽인이 노예로 삼아도 정당한가? 에드문도 오고르만(Edmundo O'Gorman)이 이미 주장했듯이, 미뇰로는 새로운 영토와 주민은 존재적으로 유럽과 다른 것이 아니라 유럽의 자연적 연장(natural extension), 즉 ‘신대륙’으로 여겨졌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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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 지도

16세기에 ‘아메리카’가 스페인 왕실이 아닌 북의(이탈리아와 프랑스) 지식인에 의해 개념화되었을 때, 아메리카는 셈의 땅(오리엔트)도 함의 땅(아프리카)도 아니라, 야벳의 땅이 확대된 것이라는 뜻이 내포되어 있었다. 그래서 기독교도의 T/O지도가 세계를 지정학적으로 배분할 때 4개의 대륙으로 인식하고, ‘아메리카’를 야벳의 영역, 즉 서쪽(옥시덴테)에 포함시킨 것이다. 옥시덴탈리즘은 말하자면 근대/식민 세계체제를 지배한 지정학적 상상이다.

피식민자에 대한 유럽의 종족적 우월성에 대한 믿음은 인종을 셋으로 나누는 인식론적 도식과 기독교의 보편적 세계관에 입각한 상상력에 내재되어 있었다는 것이 미뇰로의 핵심적 지적이다. 아메리카 영토를 야벳의 땅의 연장(延長)으로 간주한 이런 시각은 아메리카의 자연자원 약탈과 아메리카인 복속을 ‘정의롭고 정당한’ 것으로 간주하게 만들었다. 오직 유럽만이 신의 은총을 줄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복음 전파는 ‘구 기독교도’(old Christians)(함과 셈의 후손인) 유태인, 무어인, 아프리카인과 섞이지 않은 사람들—가 정당하게 아메리카로 건너가 정착할 수 있는 지상과제였다. 신세계는 유럽 백인과 기독교 문화의 자연적 연장 무대가 되었다. 종족적 순수성 담론—미뇰로의 해석에 따르면 유럽인 이주자의 하비투스에 각인된, 세계체제 최초의 지문화적 상상력—은 이내 전 지구적 차원에서의 종족적 노동분업, 인적 자원과 자본의 교환을 정당화시켰다. 미뇰로의 해석은 사이드의 포스트식민주의 이론과 연속성도 있고 차이도 있다. 사이드와 마찬가지로(그리고 마르크스와 달리) 미뇰로는, 지배자는 물론 피지배자의 하비투스에도 각인된 담론 구축물(construct)이 없었다면, 유럽 식민주의는 불가능했으리라는 점을 인지하고 있다. 그러나 사이드와 대조적으로 미뇰로는 이 담론을 오리엔탈리즘이 아닌 옥시덴탈리즘으로 보았다. 특정 식민유산(이 경우에는 히스패닉 식민유산)을 고려하여 포스트식민주의 이론을 기입할(inscribe) 필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오리엔탈리즘을 전형적인 식민담론이라고 주장할 때, 사이드는 프랑스와 대영제국이 생산한 타자 담론이 두번째 근대성에 해당된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셈이다. 그래서 사이드는 16~17세기 스페인의 지문화적ㆍ지정학적 헤게모니를 간과했을 뿐만 아니라, 두셀이 비난한 18세기의 (유럽중심적) 근대성을 결과적으로 정당화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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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카 발견 이후의 세계지도

나는 사이드 저술의 엄청난 영향과, 이로 인해 가능해진 엄청난 학문적 변화를 무시할 의도는 없다. 또한 아이자즈 아마드(Aijaz Ahmad)에 동조할 의도도 없고, 사이드의 저술이 정확히 내가 원하는 대로 써지지 않았다 해서 그를 신랄하게 비난하려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나는 사이드의 저술이 강화시킨 엄청난 침묵을 재생산할 의도도 없다. 옥시덴탈리즘이 없었다면 오리엔탈리즘도 없고, 유럽의 “위대하고 풍요롭고 오랜 식민지”는 ‘오리엔트’가 아니고 ‘옥시덴탈’이다. 즉 서인도(Indias Occidentales)와 아메리카인 것이다. ‘오리엔탈리즘’은 ‘유럽의 심장’(영국, 프랑스, 독일)이 15세기~17세기 중반의 ‘기독교 유럽’(이탈리아, 스페인, 포르투갈)을 대체하던 두번째 근대성 시대에 근대세계체제의 지배적 문화 상상력일 뿐이다.... 사이드의 주장처럼 오리엔트는 18세기 이후 빈번하게 반복되는 유럽 타자의 이미지가 되었다는 점은 사실이다. 그러나 옥시던트(Occident)는 결코 유럽의 타자가 아니라, 동일성 내의 차이(difference within sameness)였다. (이름 자체에서 볼 수 있듯이) 서인도(Indias Occidentales), 그리고 이후 (뷔퐁, 헤겔 속의) 아메리카는 서쪽의 극단(extreme West)이지 유럽의 타자가 아니었던 것이다. 아시아와 아프리카와 달리 아메리카는 유럽의 연장으로 편입되었지, 유럽과 다른 지역으로 간주되지 않았다. 그래서 옥시덴탈리즘이 없었다면 오리엔탈리즘도 없다는 이야기를 다시 한 번 할 수 있는 것이다.

양자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사이드와 미뇰로의 이론은 식민주의 현상을 설명하면서 식민성에 중요성을 부과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무엇보다도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과 미뇰로의 옥시덴탈리즘 모두 문화적 상상력이요 문화적 담론이며, 규율 ‘장치’(법, 제도, 식민지 관료제도)로 기능할 뿐만 아니라 구체적인 형태의 주체성에 투영된다. 오리엔탈리즘과 옥시덴탈리즘은 (엄격한 마르크스적 의미에서의) 단순한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삶의 양식이고, 사유와 행동의 구조이다. 이러한 상징적인 인식 환경 속에서 ‘식민성’ 범주는 종족적 정체성을 말한다.

미뇰로는 이런 방식으로 ‘첫번째 근대성의 주체성은 부르주아의 출현과 전혀 관계가 없고, 그 대신 귀족적 백인성 상상력(aristocratic imaginary of whiteness)과 관계 있다’라는 두셀의 논지를 강화시킨다. 타자와의 종족적 차이에 입각한 정체성이야말로 근대/식민 세계체제 최초의 지문화이다. 이 지문화는 타자에 대한 특정 인종의 우월성뿐만 아니라, 다른 지식에 대한 특정 지식의 우월성을 진실로 간주한다. 사실 미뇰로는 18세기 과학적 인식론의 출현을 이해하기 위한 키포인트는 유럽 지리학자들이 먼저 종족적 중심과 기하하적 중심을 분리한 것이라고 확언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16세기까지의 대부분의 지도에서 기하학적 중심과 종족적 중심은 동일했다. 가령 중국 지도 제작자들은 황제의 궁이 중심을 차지하고, 그 주위에 영토를 배치하는 공간적 재현을 보여 주었다. 중세 기독교도의 지도도 마찬가지여서, 세계가 예루살렘 주위에 배치되어 있다. 13세기 아랍 지도에서는 이슬람 세계가 세계의 중심이다. 이 모든 지도에서 “중심은 이동 가능했다.” 관찰자가 자신만의 관점에 집착하지도 않았고 재현에서 배제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반대로 관찰자에게 있어 기하학적 중심은 당연히 자신의 지시 지점(중국 문화, 유태 문화, 아랍 문화, 기독교 문화, 아스텍 문화 등등)에 복무하는 종족적ㆍ종교적 중심과 일치해야만 있다. 그러나 아메리카 정복으로 뭔가 다른 양상이 발생했다. 식민자가 통제와 경계 정하기를 필요로 하면서, 새로운 영토를 정확하게 재현할 필요성이 생긴 것이다. 지도 제작에 원근법이라는 수학이 도입됐다. 이는 당시 지중해 가톨릭 국가(특히 이탈리아)의 회화 기법에 혁명을 일으켰다. 원근법은 고정된 하나의 점, 다시 말해 재현 대상에 외부적인 지상의(sovereign) 시선을 채택하기를 요구한다. 원근법은 누군가가 대상을 보지만, 자신은 보이지 않는 도구이다. 이리하여 원근법은 하나의 관점을 가지되, 그 관점에 대해서는 어떠한 관점도 가질 수 없는 가능성을 제공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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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브레히트 뒤러 <화가의 작업실>

이는 지도 제작의 과학에 근본적인 혁명을 야기한다. 비가시적인 관찰점을 만들어 내면서, 기하학적 중심은 더 이상 종족적 중심과 일치하지 않게 된다. 대신, 이제 정확한 측량 도구를 소유하게 된 지도 제작자와 유럽의 항해자들은 종족적 중심에서 유래한 재현은 특정 문화적 특수성과 관련된 것이기 때문에 전(前) 과학적이라고 믿기 시작했다.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재현으로 자기 자신을 관찰점에서 제거하는 대신 ‘보편적 관점’(universal point of view)을 탄생시킨다. 바로 이 시선이 스스로의 문화적 관찰 중심에서 자기 자신을 독립시키려는 시도이며, 나는 이를 ‘제로에 대한 오만’(hubris of zero degrees)이라고 부르련다.

두셀과 미뇰로의 논지를 밀착해서 좇자면, 객관적이고 과학적이고자 하는 제로에 대한 오만은 두번째 근대성과 함께 출현한 것이 아니라, 첫번째 근대성의 지문화에 뿌리를 두고 있다. 코페르니쿠스 혁명이나 부르주아 개인주의의 효과가 아니라, 유럽의 경쟁자와 맞서 대서양 지역을 통제하고, ‘우상숭배’로 간주된 오랜 신앙 체계를 주변부에서 근절시키려 한 스페인의 국가적 필요성에서 제로에 대한 오만이 비롯된 것이다. 다른 세계관들은 더 이상 공존할 수 없었다. 공간과 시간의 위계질서에 따라 분류돼야만 했다. 16~17세기의 세계지도들은, 관찰되지 않는 관찰자의 지상(至上)의 관점에 따라, 공간을 조직했다. 커다란 단위는 ‘대륙’, 더 작은 단위는 ‘제국’이라 불렀는데, 이는 실제 지리와는 완전히 무관하다. 이 지도들은 지정학적 구축물이며, 과학적이지 않은 지상과제(extrascientific imperatives)에 따라 조직된 셈이다. 유럽은—세비야의 성 이시도로(Isidoro)의 T/O지도 속에 이미 나타난 것처럼—문화의 중심적 생산자이자 배급자로 기능하는 반면, 아시아와 아프리카와 아메리카는 ‘수용’의 장소로 고정된다. 세계를 이렇게 대륙으로, 또 지정학적으로 분리시키는 것이 계몽주의 인류학, 사회학, 진화론을 야기한 인식론적 토대가 되었다. 미뇰로는 “공간(그리고 언어와 기억)의 식민화는, 차이는 가치로 측정되어야 하고, 가치는 연대의 진화(chronological evolution)로 측정되어야 한다는 믿음이 준 신호였다”는 논지를 강화한다. 서구 문자와 역사 기술과 지도 제작법은, 지역적인 것은 보편화되고, 발전 정도를 평가하기 위한 잣대로 측정해야 한다는 커다란 틀의 일부가 되었다.

미뇰로가 광범위하게 사용하는 지식의 지정학은 바로 이 지점과 관련된 범주이다. 제로에 대한 오만의 결과 중 하나가 특정 언술 장소의 비가시화이다. 이 장소는 장소 없는 장소로, 나아가 보편적 장소로 화한다. 지역의 역사(local history)를 전 지구적 구상으로 탈바꿈시키려는 경향은 특정 장소를 지정학적 권력의 중심으로 정립시키는 과정과 병행되고 있다. 자신만의 지역의 역사를 지식의 독보적ㆍ보편적인 언술ㆍ생산 지점으로 만들려는 의도가 스페인 세계체제의 중심성, 나중에는 프랑스와 네덜란드와 영국, 그리고 현재 미국의 세계체제의 중심성이다. 권력의 중심에서 생산되지 않은 지식, 권력의 중심이 통제하는 곳에서 생산되지 않은 지식은 부적절하고 ‘전(前) 과학적’인 것으로 선언된다. 제로가 재현하는 지식의 역사는 지도 위에 위치가 있고, 나름대로의 지리학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이시도로의 T/O지도와 마찬가지로,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는 이 지도의 바깥에 위치해 있고, 지식의 생산자가 아니라, 중심이 창출한 지식의 소비자로 간주된다.


* 이 글은 콜롬비아의 철학자 산티아고 카스트로 고메스(Santiago Castro Gómez)의 「꼭두각시들을 위한 (포스트)식민성: 근대성, 식민성, 지식의 지정학에 대한 라틴아메리카의 시각 (Post)Coloniality for Dummies: Latin American Perspectives on Modernity, Coloniality, and the Geopolitics of Knowledge」에서 필자의 허락을 얻어 월터 미뇰로 부분을 번역한 것으로 다음 책에 실려 있다. Mabel Moraña, Enrique Dussel and Carlos A. Jáuregui(eds.), 『고삐 풀린 식민성』(Coloniality at Large), Durham & London, Duke University Press, 2008.


2010/03/26 18:37 2010/03/26 1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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