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리스 블랑쇼 선집

문학적 경험을 통한 근대성의 와해, 새로운 공동의 언어를 열다

‘정치적인 것의 귀환’은 최근 세계 철학계의 중심 화두다. 자본주의나 제도 정치에 대한 단순한 비판 때문이 아니다. 탈정치화된 세계 곳곳에서 일어난 ‘현대라는 문제’에 대한 철학적 대답이다. 그리고 이 정치성은 기존 담론에서 배제되어 온 자들, 목소리 없는 자들의 복권을 우선적으로 배려한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 속에서 그린비는 온몸으로 20세기를 살아내며 현대의 심층을 규명하고 변혁의 가능성을 모색했던 작가, 모리스 블랑쇼(Maurice Blanchot) 선집을 기획했다.

현 시점에서 ‘모리스 블랑쇼 선집’ 발간은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은 한 사상가를 본격으로 소개한다는 것 이상의 의의를 띤다.

첫째로 ‘지식인의 죽음’ 이후 어떻게 민족이나 계급을 넘어선 주체로서 대중을 인식하고 새로운 공동체를 꿈꿀 수 있을지 활발히 논의되고 있는 현 시기, 20세기 프랑스 지성계의 현실 참여적 흐름 안에서 블랑쇼를 재위치시키면서, 21세기 지식인의 역할이 무엇일지 성찰해 볼 수 있다.
둘째로는 블랑쇼의 언어가 복잡한 이론적인 논의로 우리의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켜 주기보다는 우리 각자의 삶에 호소한다는 데 그 의의가 있다. 자신의 삶을 바탕으로 한 그의 사유는 아카데미를 넘어서서 여러 삶의 양상을 직접적으로 표현했기 때문이다.

셋째로 모든 종류의 전체주의적 틀에 대해 강력한 탈-프로그래밍, 탈-코드화의 힘을 발휘하는 블랑쇼의 사유는 우리를 에워싼 시장전체주의와 경제 유일사상에도 작은 균열을 일으킬 수 있을 것이다.

학문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남다른 겸허함을 보여 준 블랑쇼의 언어를 읽는다는 것은 ‘모리스 블랑쇼’라는 한 개인의 이름을 빛내기보다는 어떤 공동의 ‘우리’에 참여하게 하고, 새로운 공동의 언어를 생성하고 소통하게 하는 데로 나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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