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비GreenBee는 초록벌입니다

그린비 로고그린비는 초록벌입니다. '초록'이라는 우리말이 주는 싱그러운 어감과 그 녹색의 느낌이 주는 '생태'적인 색감이 좋아 초록벌이라고 이름을 붙이면서, "세상에 초록색 벌은 존재하지 않겠지, 상상 속에 있는 '신비로운' 느낌이야" 했는데…… 놀랍게도 정말 초록색 벌은 저희의 상상에나 없었지, 실제로 존재하고 있더군요.(자연의 상상력은 정말 인간의 상상력에 비할 바가 아닙니다. ^^;)

벌과 꽃은 서로가 서로를 열심히 찾고 열심히 기다리는 관계입니다. 꽃은 번식하기 위해 벌이 필요하고, 벌은 꿀을 얻기 위해 꽃을 찾아다니지요. 저희의 눈에는 이 사이좋은 관계가 저자와 출판사의 관계로 보였습니다. 저자의 사유가 세상 속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출판'이란 행위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출판하는 이들은 늘 세상으로 보낼 저자의 사유를 찾아다니지요.
아주 오래 전에 읽은 <어느 이름 없는 벌 이야기>라는 짧은 동화의 내용이 떠오릅니다.

어느 들판에 혼자서 아주 작게 수수한 색깔로 피어나 눈에 잘 띄지 않는 꽃 한 송이가 있었습니다. 너무 눈에 띄지 않아 이 꽃을 찾아 주는 벌과 나비는 한 마리도 없었는데, 어느 날, 눈 밝은 벌 한 마리가 이 꽃을 찾아왔고, 둘은 깊은 우정을 맺어 갔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 벌은 양봉되는 벌이었는데, 그곳에서 탈출하여 혼자 살아가고 있었고, 그 덕에 이 작은 꽃과도 만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양봉 벌들은 주어진 시간 안에 빨리 꿀을 모아 주인에게 되돌아가야 하기 때문에 꽃들을 찬찬히 볼 여유도 다른 길을 갈 여유도 없었는데, 양봉 무리에서 탈주(!)한 이 벌은 그럴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꽃들 하나하나를 차근차근 보았고, 꽃의 가슴이 아리도록 꿀만 퍼서 가 버리는 게 아니라 꽃과 대화를 나누었고, 그래서 혼자 외따로 피어 있는 이 작은 꽃과도 만날 수가 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린비는 저자 한 사람 한 사람의 특이성을 알아보는 출판사가 되고 싶습니다. 저자와 깊은 우정을 쌓아서 함께 그 사유를 세상에 내보내는 친구가 되고 싶습니다. 그래서 독자들에게도 두고두고 음미하고 싶은 깊은 맛을 전하며 오래오래 만나고 싶은 친구,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나 생각의 타래가 꼬여 있을 때면 언제든 찾아가고 싶은 친구, 생의 가장 깊은 즐거움을 나누는 친구가 되고 싶습니다.

그런데 벌에게는 나비와는 달리 침이 있습니다. 그린비는 이 '침'이 세상을 해석하는 날카로운 시선이길 바랍니다.(물론 세상에 날리는 X침이어도 좋습니다만....^^;;) 꼭 필요할 때 사용할 침을 자기 몸속에 지니고 꽃과 꽃을 옮겨 다니는 벌이 있기에 꽃은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만남과 열매를 통해 세상의 풍경은 조금씩 바뀌어 갑니다. 저자는 독자와 만나, 독자는 저자와 만나 서로가 서로를 열매 맺게 하는 그런 만남을 위해, 그 만남들이 가져올 세상의 작은 변화를 위해, 그린비는 부지런히, 성실히, 그러나 즐겁게, 오늘도 작은 날개로 비행을 합니다.


그린비, 새로 날다, 1998년

그린비는 1990년 10월에 등록을 하고 1991년에 첫 책을 내놓은 이후 참 많은 분야의 책들을 냈습니다. 경제경영, 여성학, 영화소설, 실용, 어린이, 소설, 에세이, 요리책, 유머집(네, 불후의 유머집이라 자평하는 『화장실에서 보는 책』시리즈입니다^^)……. 네, 많이 팔릴 것 같은 책들을 좇았습니다. 얼른 돈 모아서 인문서 한번 제대로 내보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꿈은 그렇게 현실을 저당잡히며 얻을 수 있는 게 아니었습니다. 돈을 모으면,이라고 했지만, 사실, 얼마의 돈이 모여야 때가 되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다 맞게 된 외부로부터의 혹독한 시련, IMF 위기는 역설적이게도 현실을 바로 보게 해주었습니다. 대한민국에서 제일 큰 도매상이 부도가 났을 때, 휴지조각이 되어버린 어음보다 더 가슴을 아프게 했던 건, 그동안 그린비가 세상에 내놓았던 책의 목록이었습니다. 결국, 이렇게, 하고 싶은 일은 하지도 못하고, 출판사가 문닫는 날만 기다리고 있어야 하나, 싶은 그런 때였습니다.

그럴 수는 없었습니다. 지금이라도 내고 싶은 책, 내보고나 망하자. 그래야 회한이나 후회는 없으리, 라는 심정이었달까요.

종횡무진 역사 시리즈
종횡무진 역사 시리즈
_ 이 시리즈를 계기로 인문·사회 출판사로 전환하였습니다.

그래서 1998년 그린비는 새롭게 문을 열었습니다. 하고 싶다고 생각만 하고 말만 했지, 실천하지는 못했던 그 일을 시작했습니다. 남경태의 종횡무진 역사 시리즈는 그런 의미에서 그린비의 첫 책입니다. 참, 고마운 필자입니다. 그리고 그 즈음에 만난 <연구공간 수유 + 너머>가 또 우리의 좋은 길벗이 되어 주었습니다. 사장 1명, 편집부 1명, 영업부 1명, 이렇게 3명이 전부인 회사에서 제안한 '고전을 다시 쓰자'는 기획을 그들이 처음 받아들여 주었기에, <리라이팅 클래식>을 세상에 내보낼 수 있었고, 그린비는 다시 날 수 있었습니다. (궁금해 하시는 분들이 종종 계셔서 덧붙이면, <연구공간 수유+너머>와 그린비는 친구 사이입니다. 물론 "친한" 친구 사이입니다.^^)


그린비, 오늘, 그리고 내일, 2009년+α

인문사회과학 출판사로 다시 태어난 지 만 10년. 그린비는 이제 조금 뛸 수 있는 나이가 되었습니다. 아직은 잘 뛰다가도 곧잘 넘어지는 만 열 살이지만, 지금부터 10년 후에는 마라톤을 완주할 수 있는 건강한 체력의 청년이 되어 있자고, 다짐합니다. 아직 만나야 할 친구들, 내야 할 책들이 너무 많습니다. 친구들을 만날 때마다, 그들과 책을 한 권씩 세상에 내놓을 때마다, 그린비는 그만큼 더 자랍니다.

지금, 그린비의 관심은 "달라진 지식의 생산·유통 환경에서 우리 저자들의 사유를 어떻게 하면 가장 잘 흐르게 할 것인가"에 있습니다. 지금은 지식이 '책'이라는 고정된 형태로 '서점'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만이 아니라, '네트'라는 그물망을 타고 이러저리 흘러넘치며 유통되는 시기입니다. 이 흐름의 환경에 휩쓸리지도, 버티고만 있지도 않으며, 때로는 흐름에 몸을 맡기고 때로는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 내기도 하면서, 그렇게 유영하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그린비 사무실 모습
『책읽기의 달인, 호모 부커스』 저자 강연회 모습.
_ 출판사로 독자들을 초대하여 함께 공부하는 자리를 만들었습니다.

2008년, 그린비는 작지만 새로운 경험을 한 가지 했습니다. 바로 우리 책의 독자분들을 출판사로 초청해 저자와 만남의 자리를 마련한 일입니다. 작은 공간이지만, 우리가 직접 책을 만드는 공간에서 우리 책을 지지하고 성원해주는 독자들과 직접 만난 느낌은, 넓고 편안한 외부의 장소에서 만났을 때와 사뭇 달랐습니다. 동교동 그린비 사무실에서 저자와 독자의 웅성거림과 웃음소리가 담 밖을 넘어가는 일이 자주,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앞으로 그린비는 이런 모임을 조금씩 늘려 가려 합니다. 저자와 독자, 출판사가 직접 만나 하나의 텍스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의 삶이 만나는 장을 넓혀 가고 싶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