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겔 또는 스피노자
프리즘 총서 2
피에르 마슈레 지음, 진태원 옮김 | 2010-03-30 | 424쪽 | 23,000원
‘프리즘 총서’의 두 번째 책. <헤겔 또는 스피노자>는 스피노자의 관점에서 헤겔을 읽음으로써 헤겔의 관념론적 변증법과 구분되는 유물론적 변증법을 사고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이를 통해 ‘목적론’과 ‘진화주의’라는 근대 철학의 기본 틀에서 탈피하려는 노력의 산물이다. 현대 스피노자 연구의 고전으로 평가받으며 현재 한국 인문·사회과학계에서도 막대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스피노자 사상을 새롭게 읽을 수 있는 길을 제시한다.
저·역자 소개 ▼
파리 고등사범학교에서 조르주 캉귈렘과 루이 알튀세르를 사사했다. 루이 알튀세르, 에티엔 발리바르 등과 함께 『자본을 읽자』(Lire le Capital, 1965)를 썼고, 1980년대 이후 스피노자 연구에 전념하여 『스피노자와 함께』(Avec Spinoza, 1992), 『스피노자 『윤리학』 입문』(Introduction à l’Éthique de Spinoza, 전 5권, 1994~1998) 등을 집필했다. 현존하는 대표적인 스피노자 연구자 중 한 명이며, 이 책 『문학생산의 이론을 위하여』(Pour une théorie de la production littéraire, 1966)와 『문학은 무슨 생각을 하는가?』(À quoi pense la lettérature? Exercices de philosophie littéraire, 1990) 등의 저서를 통해 문학 이론가로서도 국제적인 명성을 얻고 있다. 현재 릴3대학 명예교수로 있다.
역자 진태원
성공회대 민주자료관 연구교수, 『황해문화』 편집위원. 연세대학교 및 동 대학원 철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대학원 철학과에서 스피노자에 대한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스피노자 철학을 비롯한 서양 근대 철학을 연구하고 있고, 현대 프랑스 철학과 정치철학, 한국 민주주의론에 대해서도 깊은 관심을 갖고 공부하고 있다. 저서로 『을의 민주주의』, 『알튀세르 효과』(편저), 『스피노자의 귀환』(공편), 『포퓰리즘과 민주주의』(편저), 『애도의 애도를 위하여』 등이 있으며, 『법의 힘』, 『마르크스의 유령들』, 『우리, 유럽의 시민들?』, 『정치체에 대한 권리』, 『폭력과 시민다움』, 『헤겔 또는 스피노자』, 『불화: 정치와 철학』, 『쟁론』, 『알튀세르의 정치철학 강의』, 『공산주의라는 이념』(공역) 등을 옮겼다.
차례 ▼
1990년판 서문 7
대안 15
1부 헤겔, 스피노자의 독자 25
실체의 관점 26
시초의 철학 37
체계의 재구성 46
2부 기하학적 방법에 따라 59
헤겔과 방법 60
방법에 대한 스피노자의 재평가 75
원인에 의한 인식 92
적합한 관념과 부적합한 관념 102
3부 속성의 문제 127
속성 개념의 애매성 128
속성들의 실재성 141
속성들의 상이성 156
자신의 속성들 안에서 실체의 구성 165
‘사물들’의 질서와 연관 172
속성의 문제에서 헤겔의 오류 177
4부 모든 규정은 부정이다 183
스피노자의 부정주의 186
무기력한 변증법 199
유한과 무한 207
규정 230
무한 양태들 238
대립이 아닌 차이 262
독특한 본질들 275
힘과 코나투스 298
목적론 325
부록 341
옮긴이 해제 피에르 마슈레의 스피노자론에 대하여 342
2판 옮긴이 후기 392
참고문헌 394
용어 해설 405
찾아보기 415
편집자 추천글 ▼
현대 스피노자 연구의 이론적·실천적 이정표
스피노자에게서 근대 철학의 ‘목적론’과 ‘진화주의’의 대안을 읽는다!
『헤겔 또는 스피노자』는 피에르 마슈레(Pierre Macherey, 1938~)의 1979년 저작이다(1990년에 2판이 출간되었다). 피에르 마슈레는 프랑스 스피노자 연구의 대표자 중 한 명이며, 현재 릴 3대학 명예교수로 있다. 조르주 캉귈렘과 루이 알튀세르의 제자로서 알튀세르, 에티엔 발리바르, 자크 랑시에르, 로제 에스타블레와 함께 『 『 자본』 을 읽자』(1966)를 집필한 맑스주의 이론가인 마슈레는, 한국에서는 『 문학생산이론을 위하며』 (1966), 『 문학은 무슨 생각을 하는가?』 (1990) 등의 저서를 통해 문학 이론가로도 잘 알려져 있다. 또한 다양한 영역에 걸쳐 활발히 학문 활동을 벌이고 있는데, 맑스주의와 문학 이론 외에 프랑스 대학 제도, 실천 철학(‘이론적 실천’으로서의 철학)에 대한 연구도 지속적으로 진행하고 있으며, 1980년대 이후에는 무엇보다 스피노자 연구자로 큰 명성을 얻고 있다. 『 헤겔 또는 스피노자』는 현대 스피노자 연구에서 새로운 전환점을 제시한 저작이며, 마슈레 자신의 스피노자 연구에 기틀을 마련해 준 저작이기도 하다 그는 이 책에서 스피노자 해석의 한 방식을 보여 준 후 1992년에는 그간 발표한 논문들을 모아 『 스피노자와 함께』를 출간했으며, 1994~1998년에는 5권짜리 『 스피노자 『 윤리학』 입문』을 내놓아 한층 더 엄밀하게 스피노자 사상을 주해한 바 있다.
20세기 후반은 현대 스피노자 연구의 르네상스기라 부를 수 있는 시기이며, 그 진원지는 프랑스였다. 프랑스에서 (이전에는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던) 스피노자가 화려하게 부활한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1960년대에는 ‘구조주의’ 운동이 등장해 프랑스 지성계를 뒤흔들었는데, 이 운동의 공통 기획이라 할 수 있는 ‘이론적 반인간주의’에 철학적 기초를 제공해 준 사상가가 바로 스피노자다. 또한 당시 맑스주의를 이론적으로 갱신하려 노력한 일군의 좌파 학자들이 새로운 유물론적 변증법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이론적 원천으로 삼은 것도 스피노자다. 이런 배경하에 프랑스에서 스피노자 연구의 ‘영웅적 시기’가 열렸으며, 『 헤겔 또는 스피노자』와 더불어 질 들뢰즈의 『 스피노자와 표현의 문제』, 알렉상드르 마트롱의 『 스피노자 철학에서 개인과 공동체』, 안토니오 네그리의 『 야만적 별종』, 에티엔 발리바르의 『 스피노자와 정치』 같은 걸작들이 배출되었다.
스피노자에게서 가능성을 읽다
마슈레가 『 헤겔 또는 스피노자』를 집필하던 1970년대 후반, 프랑스에서는 여러 전선에 걸쳐 격렬한 사상적·정치적 투쟁이 벌어지고 있었다. 좌파와 우파가 정치적으로 치열하게 대립하고 있었을 뿐 아니라, 좌파 내부에서도 여러 노선들 사이에서 첨예한 갈등이 빚어지고 있었다. 마슈레가 속한 알튀세르 노선을 보면, 이 시기는 1960년대 『 맑스를 위하여』, 『 『 자본』을 읽자』에서 전개된 맑스주의 갱신 노력이 실패로 돌아가면서 새로운 방식으로 맑스주의를 일반화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기 시작한 시기다. 『 헤겔 또는 스피노자』는 이런 이론적?정치적 상황의 산물이며, 구체적인 목적은 헤겔식의 관념론적 변증법과 구분되는 새로운 유물론적 변증법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가능성을 제시한, 혹은 적어도 질문할 수 있게 도와 준 사상가로 마슈레가 주목한 이가 스피노자다. “진정한 질문은 다음과 같은 것이다. 관념론적 변증법과 유물론적 변증법을 분리하는 경계는 어떤 것인가? 어떤 조건에서 변증법은 유물론적으로 될 수 있는가? 스피노자가 우리로 하여금 이 질문을 제기할 수 있게 도와주었으며 이 질문에 하나의 내용을 부여했다는 점을 인정하기로 하자.”(339쪽)
이런 문제의식 속에서 마슈레는 헤겔의 스피노자 독해를 면밀히 분석하고, 이 독해가 사실상 헤겔의 오인/몰인식에서 비롯한 것이라는 결론을 이끌어 낸다. 중요한 것은 헤겔이 스피노자를 오인/몰인식하는 바로 그 부분에서 스피노자가 헤겔적이며, 헤겔 자신보다 더 일관되게 헤겔적이라는 사실이다. 마슈레에 따르면 헤겔은 변증법을 사유하려 했지만 한계에 부딪혀 어느 지점에서 멈춰 버렸다. 반면 스피노자는 ‘이미’ 헤겔보다 ‘먼저’ 그 한계를 넘어 헤겔로서는 감당할 수 없었던 사유를 전개한 사상가다. 그리고 이 한계 지점을 구성하는 것이 바로 ‘변증법의 문제’다.
‘이미’ 근대 철학의 목적론과 진화주의 ‘너머를’ 사유한 사상가
총 4부로 구성된 『헤겔 또는 스피노자』는 헤겔의 스피노자 해석을 정리하면서 시작한다. 1부 「헤겔, 스피노자의 독자」에서 마슈레가 정리한 바에 따르면 헤겔은 ‘절대자’를 사유하려 했다는 점에서 스피노자를 높게 평가했다. 헤겔이 보기에 “철학함을 시작할 때는 우선 스피노자주의자가 되어야 한다”.(37쪽) 하지만 긍정적인 면은 여기까지다. 헤겔은 곧바로 스피노자를 비판한다. 헤겔에게 (데카르트를 계승한) 스피노자의 ‘기하학적 방법’은 수학적 추론에서 비롯한 형식적?추상적 방법에 불과한 것이다. 또한 스피노자의 절대자(즉 실체)는 시초부터 이미 충만하게 정립되어 있기 때문에 어떤 운동도 하지 못하는 것이며, 실체에서 속성으로, 다시 양태로 이행하는 스피노자의 체계는 실재성이 줄어드는 퇴락의 체계다. 그리고 헤겔은 스피노자가 실체와 속성, 양태의 관계를 이런 식으로 잘못 이해한 것은 ‘모순’과 그 모순이 운동시키는 ‘부정의 부정’이라는 계기를 사유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스피노자 체계에는 변증법이 부재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마슈레는 이런 스피노자의 모습은 헤겔이 ‘상상적으로’ 만들어 낸 형상에 불과하다고 비판한다. 스피노자를 자기 철학 체계의 한 계기로 만들기 위해 의도적으로 그의 사상을 왜곡했다는 것이다. 2부 「 기하학적 방법에 따라」 에서 3부 「 속성의 문제」 를 거쳐 4부 「 모든 규정은 부정이다」 까지 마슈레는 스피노자의 저작과 헤겔의 비판을 면밀하게 독해함으로써 헤겔의 비판을 하나하나 논박한다. 헤겔의 주장과 달리 스피노자는 ‘기하학적 방법’에 특권을 부여하지 않았고, ‘방법’이 확립되어야만 사유를 전개할 수 있다는 데카르트의 주장에도 반대했다. 스피노자에게 사유는 방법과 관계없이 일단 시작하고, 그런 뒤 점진적으로 자신을 전개한다. 『 윤리학』의 서술 방식도 마찬가지다. “『 윤리학』은 일관성의 이상에 집착하면서 이미 확립된 순서를 전진적으로 탐구해 가는, 선형적이고 동질적이며 처음부터 끝까지 획일적으로 참된 서술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자기인식, 발생의 현실적인 운동에 따라 나아가면서 자신의 필연성을 구성하는 인식의 실재적인 과정이다.”(89쪽) 여기서 스피노자는 헤겔과 매우 비슷한 견해를 제출하고 있지만, 스피노자 사상을 의식적 혹은 무의식적으로 평가절하해야 하는 헤겔로서는 이 같은 유사성을 인정할 수 없었다.
다른 한편, 헤겔에게 스피노자 철학은 ‘실체의 철학’, 절대자에 대한 철학이다. 그런데 스피노자가 실체를 완결되어 있고 충만한 것으로 제시하기 때문에, 오히려 속성과 양태는 비실재적?비주체적인 것, 아무런 능동성도 지니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헤겔이 스피노자 체계를 ‘퇴락의 체계’라고 비판한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마슈레는 헤겔의 비판이 스피노자 체계를 완전히 오해한 결과라고 비판한다. 스피노자의 ‘실체-속성-양태’ 체계는 실재성을 점차 상실해 가는 퇴락의 체계, 유출의 체계가 아니다. 속성은 실체의 본질을 객관적으로 표현하는 것이고, 실체의 변용인 양태 역시 실체 안에 존재하는 것이다. 따라서 속성과 양태는 실체에 외재적인 것 혹은 실체보다 덜 실재적인 것이 아니며, 실체의 절대적 역량을 이어받은 양태는 고유한 실재성을 지닌다. 그리고 각각의 양태들인 ‘독특한 사물들’은 저마다 실체의 무한성을 표현하고 있으며, 헤겔 체계에서 요소들이 위계적 종속 관계를 맺고 있는 것과 달리 이 ‘독특한 사물들’ 간의 관계는 직접적 동일성 관계다.
헤겔이 지적했듯이 스피노자의 체계에는 ‘모순’과 ‘부정의 부정’이 부재한다. 하지만 마슈레의 관점에서는 오히려 이 부재가 스피노자를 헤겔의 ‘대안’으로 제시할 수 있게 만들어 준다. 헤겔의 ‘부정의 부정’ 개념은 정신의 운동이 어떤 ‘목적’에 따라 진행한다는 점, 그리고 그 운동 안에서 통합되는 모든 요소가 시간적?논리적 관계에 따라 위계화된다는 점을 함축한다. 하지만 스피노자에게는 헤겔식의 ‘부정’이라는 계기가 부재하며, 그리하여 목적론 없는 변증법, “유물론적 변증법으로서의 실체의 변증법”(367쪽)을 사고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해 준다. “헤겔에게는 변증법이 거꾸로 서 있다면”(칼 맑스), 이는 헤겔의 관념론적 변증법이 목적론이라는 한계 안에 위치해 있고 역사(더 특수하게는 철학사)를 진화주의적 관점에 따라 고찰하기 때문이다. 반면 스피노자는 헤겔과 유사한 사유 과정을 거치면서도 ‘목적’이라는 관념을 제거함으로써 헤겔과는 다른 방향으로 나아갔다. 헤겔에 앞서 이미 헤겔의 한계를 극복한 것이다.
과거의 철학을 현재화하는 하나의 방식을 보여 준 범례적 저작
출간 후 『 헤겔 또는 스피노자』는 매우 큰 반향을 일으켰다. 데카르트주의자나 헤겔주의자의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스피노자 연구에 새로운 지평을 열어 주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또 헤겔과 스피노자의 단절성을 더욱 밀어 붙여야 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고, 이 책의 영향을 받아 스피노자와 독일 관념론의 관계를 연구한 저작들이 발표되기도 했다. 이렇듯 헤겔과 스피노자 연구뿐 아니라 다양한 영역에서 활발한 논의를 불러일으켰다는 점이 이 책의 의의 중 하나다.
하지만 이 책의 의의는 무엇보다도 ‘헤겔 또는 스피노자’라는 문제설정 혹은 구성 자체에서 찾을 수 있다. 이 책의 제목인 『 헤겔 또는 스피노자』(Hegel ou Spinoza)에서 ‘또는’으로 번역한 불어 단어 ‘우’(ou)는 두 가지 의미를 담고 있다. 한편으로 ou는 ‘~이냐 ~이냐’라는 양자택일 관계를 표현하는 데 쓰이며, 이때 ‘헤겔 우 스피노자’는 ‘헤겔이냐 스피노자냐’를 뜻한다. 그리고 마슈레는 스피노자 사상에서 헤겔식의 관념론적 변증법의 대안을 모색함으로써 스피노자 사상을 읽는 새로운 한 가지 방식을 제시하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 헤겔 또는 스피노자』는 스피노자 철학을 현재화하는 하나의 방식을 보여 주는 저작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ou라는 표현은 ‘즉’이라는 의미도 지닌다. 다시 말해 양자 사이에 ‘동일성’ 관계가 성립한다는 것을 함의하기도 한다. ‘헤겔 우 스피노자’를 ‘헤겔, 즉 스피노자’로 이해하는 것은 두 철학자의 사상 안에 공통적인 무언가가 존재함을 인정하는 것이다. 이는 각각의 철학을 그 저자에게 귀속되는 완결된 체계들로 보지 않는다는 것을 뜻한다. 만약 그렇게 본다면 철학자들을 비교하는 것은 형식적 작업에 불과한 것이 되어 별다른 의미를 지니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와는 반대로 마슈레는 ‘헤겔, 즉 스피노자’라는 문제설정을 통해, 두 철학 체계가 수립하는 ‘공통의 기획’을 발견하고 그것들이 공유하는 ‘공통의 진리’를 찾아내는 새로운 접근법을 제시한다. 그리고 이 접근법 안에서는 “자신의 역사 전체에 걸쳐 차이와 논쟁이라는 문제적인 요소를 통해 전개되어 온 철학 자체가 바로 이 진리의 대상인 것이다”.(12쪽) 그렇기 때문에 『 헤겔 또는 스피노자』는 단순히 스피노자를 다루는 하나의 연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철학함의 한 방식, 철학 체계들을 내재적 공통성 속에서 이해하는 하나의 방식을 제시해 주는 저작이며, 여기에 이 책의 중요한 의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