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학의 오늘을 말하다  차별에 맞서 장애 담론이 걸어온 길

그린비 장애학 컬렉션 5

콜린 반스·마이클 올리버·렌 바턴 지음, 김도현 옮김 | 2017-02-28 | 516쪽 | 27,000원


그린비 장애학 컬렉션 5권. 이 책은 ‘장애는 사회적인 차별과 배제를 통해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사회적 장애모델’의 관점을 기본적으로 견지하고 있지만, 동시에 이 모델이 간과하기 쉬운 ‘손상의 경험’이라는 문제, ‘계급·젠더·인종·섹슈얼리티·연령’ 등과의 교차성 문제, 지구화에 의해 새롭게 파생되고 있는 문제 등을 아울러 다룬다. 또한 전통적인 보수 진영의 논리(의료적, 개별적, 자선적 관점)를 비판하는 것을 넘어, 진보 진영의 장애 정책이 내포하고 있는 또 다른 배제의 혐의에 대해서도 짚는 등 상호 보완적이고 경합적인 논쟁의 흐름을 보여 준다. 


저·역자 소개 ▼

저자  콜린 반스 Colin Barnes
영국 리즈대학교 사회학·사회정책학과 및 장애학센터 장애학 담당 교수.  

저자  마이클 올리버 Michael Oliver
영국 그리니치대학교 사회과학스쿨 장애학 담당 교수. 

저자  렌 바턴 Len Barton
영국 런던대학교 교육연구소 통합교육 담당 교수.  

역자  김도현
장애인언론 《비마이너》의 발행인이자 노들장애인야학 교사. 노들장애인야학 부설 기관인 노들장애학궁리소에서 연구 활동가로도 일하고 있다. 《차별에 저항하라》, 《당신은 장애를 아는가》, 《장애학 함께 읽기》, 《장애학의 도전》 등을 썼으며, 《우리가 아는 장애는 없다》, 《장애학의 오늘을 말하다》, 《철학, 장애를 논하다》, 《장애와 유전자 정치》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차례 ▼

지은이 소개

1장 / 서론 _ 콜린 반스·마이클 올리버·렌 바턴
배경 | 장애학의 등장 | 장애학과 대학 | 장애학이란 무엇이며, 이 책에 어떻게 반영되고 있는가?

2장 / 미국의 실용주의, 사회학, 장애학의 발전 _ 게리 알브레히트
미국의 실용주의 | 실용주의, 미국 사회학, 장애학의 합류 | 사회 운동과 정치 | 미국적 가치들과 장애의 정치경제학 | 미국 예외주의와 장애학의 미래

3장 / 장애 이론: 핵심 개념, 이슈, 사상가 _ 캐럴 토머스
들어가며 | 사회적 장애모델 | 비판받아 온 장애에 대한 개념들 | 장애학 내의 논쟁들 | 나가며

4장 / 장애와 몸 _ 빌 휴스
들어가며 | 명제 | 반명제 | 합명제 | 나가며

5장 / 분할과 위계의 이론화: 공통성 혹은 다양성을 향하여? _ 아이샤 버넌·존 스웨인
들어가며 | 경험에 대한 성찰: 동시적 억압? | 정체성에 대한 성찰 | 장애 이론에 대한 성찰 | 나가며

6장 / 역사, 권력, 정체성 _ 앤 보세이
들어가며 | 사회학과 역사학 | 장애의 역사 | 문화적 관점을 향하여 | 도덕적 감시 | 의학적 감시 | 저항의 정치 | 정체성과 역사 | 나가며

7장 / 노동, 장애, 장애인 그리고 유럽의 사회 이론 _ 폴 애벌리
들어가며 | 장애와 시민권 담론 | 기능주의와 장애 | 장애의 역사적 구성 | 맑스주의, 산업화, 손상 | 존중 | 노동과 오늘날의 장애 이론 | 복지국가의 본질 | 여성주의의 분석과 사회적 지위 | 나가며

8장 / 달을 향해 쏘다: 21세기 초의 정치와 장애 _ 필 리
들어가며 | ‘장애인’ 유권자 | 현재의 정치적 국면 | 장애의 정치화: 신사회운동? | 탈근대주의적 분석의 영향력 | 차이와 특수주의적 보편주의 | 자기조직화 | 신사회운동만으로 충분한가? | 사회적 모델: 개념적으로는 강력한, 정치적으로는 문제의 여지가 있는 | 정체성의 정치가 지닌 한계들 | 권리들을 의제화하기 | 국가적 조치 | 정치, ‘차이’, 노동 | 연합의 정치: 하나의 결론

9장 / 학문적 논쟁과 정치적 권리옹호: 미국의 장애 운동 _ 할런 한
들어가며 | 장애 정책의 약사 | 정치적·개념적 대안들의 추구 | 권한강화: 대안적 해결책 | 나가며

10장 / 지구화와 장애 _ 크리스 홀든·피터 베리스퍼드
들어가며 | 지구화의 정치경제학 | 장애: 산업화로부터 지구화로 | 지구화, 사회 정책, 장애인 | 지구화, 사회적 돌봄, 장애인 | 나가며

11장 / 변화하는 세계 속에서의 장애, 시민권, 권리 _ 마샤 리우
시민권 | 지구화 | 권리가 존재하지 않는 시민들 | 사회권을 지구화하기

12장 / 해방적 장애 연구_ 제프 머서
들어가며 | 기생적 인간들 | 패러다임 전쟁 | 해방적 연구 | 나가며

13장 / 장애, 대학, 통합 사회 _ 콜린 반스·마이클 올리버·렌 바턴
들어가며 | 21세기의 장애학과 대학 | 장애 운동과 대학 | 장애학과 통합사회 | 대학과 탈근대성 | 개인적 소견 | 맺음말

옮긴이 후기
본문에 쓰인 약어 목록 | 참고문헌
찾아보기 … 법령·선언·규약 | 개념어 및 단체·기구 | 인명 및 항목
편집자 추천글 ▼

‘다니엘 블레이크’들의 비극을 만들어 내는 지식과 행정 권력,
이에 개입하고 대항해 온 ‘장애 담론’의 역사!
현대 장애학의 이론적 발전과 흐름, 현재 진행형인 주요 쟁점들을 만나다 


최근 켄 로치 감독의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2016년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가 국내 개봉 이후 많은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평생을 목수로 살아 왔으나, 생명을 위협하는 심장 질환으로 인해 일을 지속할 수 없게 된 주인공 다니엘 블레이크는 아이러니하게도 의료 ‘전문가’, 행정 ‘전문가’들로 인해 질병수당을 잃게 될 위험에 처한다. 심장 질환 때문에 일을 지속할 수 없다는 점을 누차 강조했음에도, 복지 담당관은 그가 몸을 움직일 수 있다는 점을 근거로 구직에 나설 것을 권고했기 때문이다. 무신경하고 무례한 행정 절차에 대항하여 인간적 존엄을 지키려 했던 다니엘 블레이크와 그 이웃들의 비극은 우리 사회의 빈민?장애인?노인들이 처해 있는 취약한 상황을 일깨운다. 질병으로 인해 노동을 수행할 수 없음을 증명하거나(질병/장애수당), 끊임없이 구직 노력을 증명하거나(구직수당), 빈곤함을 감내해야만(빈곤수당) 하는 상황은, 사회가 점차 고령화되어 감에 따라 상당수의 ‘우리’ 앞에 놓이게 될 현실이기도 하다.

한편 이 영화는 우리 사회의 의료 지식, 행정 체계가 얼마나 권위적이고 억압적인가를 단적으로 드러내 주었다. 이러한 지식 체계는 질병과 장애를 삶에 통합되어 있는 문제가 아니라, 의료와 재활 분야가 다루어야 할 이례적인 문제로 만들어 버리고, 장애인들이 사회의 많은 영역으로부터 배제되는 것을 정당화한다. ‘장애학’(disability studies)은 이러한 지식 체계에 저항하는 집단적 흐름 속에서 등장하고 성장해 왔다.

이 책 『장애학의 오늘을 말하다: 차별에 맞서 장애 담론이 걸어온 길』은 1970년대 중반 (주로 영미권) 대학 바깥의 실천적인 움직임으로부터 태동된 ‘장애학’의 발전과 논쟁의 역사를 정리한 책이다. 그러나 저자들이 이 책에 담고자 했던 것은 장애학이 사회과학의 분과학문으로서 아카데미 내에서 발전해 온 양상이 아니다. 이들은 ‘인간, 노동, 능력, 평등, 차이’ 등을 바라보는 사회의 인식에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하고, 이를 통해 ‘장애화’(disablement)에 개입하고 저항하려 했던 실천적 고민들의 역사를 담고자 한다. ‘장애학의 오늘’은 이러한 논쟁의 진폭 가운데에서 형성되고 끊임없이 재정립해 온 것이다.

이 책은 ‘장애는 사회적인 차별과 배제를 통해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사회적 장애모델’의 관점을 기본적으로 견지하고 있지만, 동시에 이 모델이 간과하기 쉬운 ‘손상의 경험’이라는 문제, ‘계급?젠더?인종?섹슈얼리티?연령’ 등과의 교차성 문제, 지구화에 의해 새롭게 파생되고 있는 문제 등을 아울러 다룬다. 또한 전통적인 보수 진영의 논리(의료적, 개별적, 자선적 관점)를 비판하는 것을 넘어, 진보 진영의 장애 정책이 내포하고 있는 또 다른 배제의 혐의에 대해서도 짚는 등 상호 보완적이고 경합적인 논쟁의 흐름을 보여 준다.

이 책이 개관하고 있는 장애 정치와 담론의 역사는 다양한 정치적 주체들의 세력화, 사회적 자원의 배분 등과 필연적으로 맞닿아 있을 수밖에 없다. 197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의 역동적인 정치사를 장애 문제와 장애인 주체들을 중심으로 재구성하는 이 책을 통해 우리는 장애 정치를 아우르는 사회 정치의 현주소를 그려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또한 ‘해방적 (장애) 연구’란 어떠한 방법론과 윤리를 견지해야 하는지에 대한 통찰을 우리에게 제공한다. 사회과학자로서 현상을 해석하고 이론적 발전에 기여하는 것을 넘어, 어떠한 자리에서, 어떠한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가를 고민하게 하는 이 책의 메시지가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을 목표로 한 많은 사회 연구들에 귀감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 * *

장애학의 태동

1980년대 이전까지 장애에 대한 학문적 관심은 거의 전적으로 개인주의적인 의료적 설명에 한정되어 있었다. 의학을 넘어선 학문적 개입이라 하더라도, 기존의 인식틀 내에서 장애에 대한 차별적 관념을 무비판적으로 재생산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들은 장애가 “신체적 또는 정신적 손상, 즉 장애인이 할 수 있는 것을 제약하는 생물학적 ‘결손’ 내지는 ‘결함’에서 기인한다”는 전제를 공유했다. 이러한 의료적 관점은 장애인들을 일터로부터 배제하고, 시설에 구금하고, 다양한 권리를 제약하는 것을 정당화하는 데 활용되었다. 이러한 배제의 역사 이면에는, 손상된 몸에 대한 통제를 통해 의학 내에서의 영향력을 확대해 간 의료분과의 역사도 포함되어 있다(6장). 의료적 관점은 자선적이고 시혜적인 관점과 결합되기도 했지만, ‘우생학’ 등 반동적인 담론으로 활용되기도 했다. 장애를 개인적 손상의 산물이 아니라 사회적 장벽의 산물로 인식하는 ‘사회적 장애모델’과 ‘장애학’은, 이러한 차별적이고 억압적인 접근에 저항하는 움직임 속에서 태동되었다.

이 책은 장애학의 태동 과정과 초기의 학문적 특성 등을 당대의 정치 상황과 함께 잘 정리하여 보여 주고 있다(1장, 2장). 그 씨앗은 1960~70년대 정치적?사회적 격변의 시기에, 감금, 빈곤, 차별에 저항하기 위해 조직된 당사자그룹들―분리에저항하는신체장애인연합(UPIAS), 장애인해방네트워크 등―의 활동 속에 내재되어 있었다. 이러한 시기에 ‘유기적인 지식인’들은 기존의 장애관에 문제를 제기하는 저작들을 생산하여, 장애 운동에 담론적 토대를 지원하였다. 장애학이 처음부터 전통적인 대학의 환경 내에 순탄하게 자리 잡았던 것은 아니지만, 영국의 오픈 유니버시티(Open University) 내에 장애학 과정이 처음 설치되었을 때, 무려 1천 명 넘는 수강생이 모집되기도 하였다. 그만큼 변화를 향한 열망이 높았던 터였다. 현재는 영미권 많은 대학들에 정식으로 학과가 설치되어 많은 전공생들을 배출하고 있고, 장애 운동과도 유기적 관계를 맺고 있다(13장).


사회적 장애모델의 한계와 보완

시간이 지남에 따라 최근의 장애 연구들은 ‘사회적 장애모델’이 간과하고 있는 문제들을 제기하기 시작하였다. 그러한 문제 제기에는 ‘손상’과 ‘장애’를 개념적으로 분리하는 과정에서 손상을 생물학적인 영역으로 환원시키고, 그 경험을 경시했다는 점도 포함된다(4장). 이러한 이원론적 접근법은 ‘손상’ 역시도 사회적으로 구성된다는 점을 간과하기 쉽다. 예컨대 많은 손상은 사회적 생산 과정에서 발생하며(산업재해, 의료사고 등), 신체의 아름다움을 숭배하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손상된 몸’은 심미적 차별을 발생시키기도 한다. 빌 휴스는 장애학 담론이 이러한 문제들을 포괄할 수 있으려면, 손상과 장애를 이원화하였던 종래의 경향에서 벗어나 ‘손상의 사회학’을 발전시켜야 한다고 제언한다.

또한 ‘사회적 장애모델’이 계급, 젠더, 인종, 섹슈얼리티, 연령 등의 사회 분할과 장애가 교차했을 때 발생할 수 있는 문제를 충분히 아우르지 못한다는 점도 제기되고 있다(5장, 8장). 아이샤 버넌과 존 스웨인은 일상 속에서 다중적 차별을 경험하고 있는 집단들이 직면해 있는 차별의 형태를 성찰할 필요성을 제기하며, 흑인 및 소수민족 장애여성들의 경험을 분석한다. 이들은 장애인 공동체에서도, 그들의 민족 공동체에서도 모두 주변화되는 경험을 겪는다. 때문에 “장애인의 해방이 인종주의?성차별주의?동성애 혐오?연령주의가 유지되는 사회에서는 결코 실현될 수 없음”을 인식하는 것으로부터 장애의 이론화를 출발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통찰을 얻게 된다.


진보의 장애 정책은 무엇을 배제하고 있는가?

앞서 살펴보았듯, 장애학의 비판적 문제 제기는 비단 보수 진영의 논리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장애학 논자들은 노동을 중심에 둔 진보 진영(영국의 경우 ‘신노동당’)의 사회 통합 전략이 장애에 대한 또 다른 배제를 낳을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기도 한다(7장). 노동을 할 수 없는 장애인 주체들을 또 다시 권리에서 배제시킬 수도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더욱이 이러한 사회 통합 전략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효력이 더욱 약화될 예정이다.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과잉노동력이 계속 증가하고, 노동에 대한 요구가 급속도로 변화하는 현대의 노동시장 내에서 모든 장애인이 직업을 찾거나 고용을 유지하는 것은 매우 어려워 보이기만 하다.
노동에 접근하는 많은 여성주의 연구는 인간의 사회적 정체성 구성에서 ‘상품생산 노동’이 맡고 있는 역할을 강조하는, 맑스주의 이론의 젠더적 편향에 대해 비판을 제기해 왔다. 장애인의 시민권 주장에 있어서도 이처럼 경제적 기능에 덜 얽매인 시민권의 측면들을 추구하고 강조하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 이러한 맥락에서 폴 애벌리는 장애에 대한 현실적인 ‘보상 급여’와 개별적 노동과 연계되지 않는 ‘기본소득’이 향후 도래할 노동세계에서의 좀더 완전한 통합을 도울 수 있을 것이라 전망한다. 이와 같은 전략은 오늘날 한국사회에서도 유효한 전략으로 활발히 논의되고 있는 중이다.

“그러한 관점의 실제적인 함의는 노동을 원하고 노동 과정에 의미 있게 참여할 수 있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노동을 촉진하고, 손상을 지닌 사람들을 포함하여 노동을 할 수 없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비노동적인 삶을 보편적으로 가치화하는 이중 전략의 옹호다.” ― 본문 중에서


평등의 실현을 저해하는 행정적이고 사법적인 저항들

장애 운동의 메시지가 사회적으로 많은 공감을 얻고, 차별을 금지하는 법률들이 제정되었다고 하더라도, 이후의 과정들이 순탄한 것만은 아니었다. 효용과 비용의 문제가 제기되었을 때, 이에 저항하는 행정적이고 사법적인 움직임들도 있었던 것이다(9장). “장애시민의 평등한 지위를 인정하는 것은 커다란 지출을 수반할 것이라는 점진적인 깨달음”은 은밀하면서도 강렬한 반발들을 불러일으켰다.
1973년 제정된 미국 「재활법」의 504조 시행규정(차별금지에 대한 규정)을 둘러싸고 벌어진 일련의 일들은 가장 대표적으로 언급되는 사례이다. 504조의 내용이 미칠 수 있는 광범위한 영향과 잠재적 비용에 대해 인식하기 시작하면서, 고위 행정관료들은 (세 번의 정권이 들어서는 동안)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고 기안에 서명하는 것을 회피하였다. 장애인들은 끈질긴 연좌 농성을 통해 서명을 이끌어냈고, 이는 이후 이어질 직접 행동들의 도화선이 되었다.

법률들의 효력을 약화시키는 사법적 시도도 적지 않았다. 장애를 가진 학생의 입학을 거부하거나 평등한 기회를 제공하지 않은 기관에 대해 ‘위법한 것은 아니’라고 판결했던 사례들이 바로 그것이다. 판결의 근거는 장애인을 위한 편의 제공이 어떤 공공 프로그램의 특성을 근본적으로 변경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공리주의적인 법의 가정들은 ‘평등’이라는 가치보다는 비용 및 효용에 좀더 관심을 기울이게 하며, 일련의 사례들은 입법이나 법률 소송만으로는 장애인들의 권리를 실현하는 데에 한계가 있음을 방증한다. 할런 한은 사회적/경제적/정치적 영향력을 증대시키고, 의사결정 과정에 지속적으로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권한강화’(empowerment)를 통해 이 한계에 대응해 가야 함을 역설한다.


해방적 장애 연구 : “우리는 누구의 편에 서 있는가?”

“연구자들은 장애인들과 연대하여 그들의 전문 지식과 기술을 억압에 맞선 장애인들의 투쟁에 사용하고자 하는가, 아니면 이러한 지식과 기술을 계속해서 장애인들이 억압적이라고 여기는 방식으로 사용하고자 하는가?” ― 본문 중에서

이 책에 참여한 장애 연구자들은 연구의 인식론과 방법론의 문제에 주의를 기울여야 할 필요성에 대해 역설한다(12장). 이는 ‘장애’를 단순히 연구의 소재로 삼아 이론적?담론적 기여를 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일찍이 여성주의 연구자 마리아 미즈는 연구 지식 생산에 있어서 ‘의식적 편파성’을 강조한 바 있는데, 장애 연구자들은 ‘당파적 장애 연구’, ‘해방적 장애 연구’라는 틀을 통해 이러한 의식적 편파성을 실현하고자 한다.

사회적으로 배제된 이들의 편에 서는 것을 통해 ‘중립성’과 ‘객관’이라는 신화를 기각하며, 장애 운동에 대한 기여도를 연구 성과의 중요한 한 축으로 삼고, 장애 연구에 장애 당사자들을 참여시키는 등의 방식이 ‘해방적 장애 연구’의 요건을 구성한다.


신자유주의, 지구화 시대의 장애 문제

이 책의 후반부는 전 지구적으로 정치경제적 통합이 증대됨에 따라 발생하는 문제들, 그리고 이러한 문제들이 장애인에게 끼치는 영향에 대해 정리한다(10장, 11장). 재화와 노동인구의 자유로운 이동이 가능해지면서 경쟁은 심화되고, 각국의 정부들은 낮은 과세, 낮은 공공 지출, 유연한 노동시장, 민영화 등을 특징으로 하는 신자유주의 정책을 빠르게 유입하게 된다. 이러한 급격한 변화는 전 세계적으로 장애를 가진 시민들에게 불리한 결과들을 초래하고 있다.

또한 지구화는 각종 재화뿐 아니라 의료, 서비스 산업이 국가 간 장벽에 구애받지 않고 제공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였다. 실제 영국에서는 미국의 다국적 보건의료 기업이 진출하여 지속적으로 사세를 확장해 갔다. 대부분 규모가 크고 표준화된 서비스를 제공하는 이들 업체로 인해, 소규모의 지역 돌봄 업체들은 점차 위축되었고, 장애인들의 선택권은 크게 줄어들었으며, 자립생활을 지원하는 개별 지원의 보장은 축소될 위험에 처해 있다.

이러한 시민권의 제한과 위축에 맞서, 크리스 홀든과 피터 베리스퍼드는 장애 운동이 정부와의 관계에 있어서 그들의 요구를 쟁취하기 위한 전략을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고 하는 한편, 마샤 리우는 국제 규범 등을 통한 ‘사회권의 지구화’라는 전략을 옹호한다.

인간, 노동, 복지, 민주주의 등 중요한 정치적 가치에 대해 되묻고 재구성하려 하는 장애 정치는 우리 사회에서 가장 급진적이고 날카로운 목소리를 내왔다. 차별에 맞서 온 장애 담론의 행보에 관심을 기울이고, 고민의 궤적에 함께하는 것을 통해, 좀더 통합적이고 위계화되지 않은 사회의 모습을 그려 볼 수 있으리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