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와 함께 살아간다는 것 변화하는 사회 속 장애청소년들의 이야기
그린비 장애학 컬렉션 3
소날리 샤·마크 프리슬리 지음, 이지수 옮김 | 2014-10-20 | 360쪽 | 23,000원
그린비 장애학 컬렉션 3권. 이 책은 정책의 변화가 개인의 삶에 미치는 영향에 주목하는 책으로, 장애인 당사자들의 삶 면면을 통해 영국의 장애 정책 변천사를 비판적으로 고찰한다. 저자들은 1940년대, 1960년대, 1980년대에 태어나 청소년기를 거친 장애인들 50여 명의 생애를 인터뷰하여 주제별(의료 제도, 교육 제도, 고용 제도 등)로 담고 있다.
저·역자 소개 ▼
리즈 대학교 장애학센터 선임연구원을 거쳐, 현재 글래스고 대학교의 스트래스클라이드 장애연구센터(Strathclyde Centre for Disability Research)에서 선임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다. 그녀는 공공정책과 서비스가 장애인 개인의 삶에 미치는 영향을 연대기적으로 분석하는 데에 관심이 많다. 최근에는 드라마를 매개로 하여 학령기 아동들에게 장애 문제를 교육하는 자료 개발에 참여하였고, 폭력을 당하는 장애여성을 위한 서비스 개발에도 참여하였다.
저자 마크 프리슬리 Mark Priestley
리즈 대학교 장애정책학 교수이며, 장애학센터의 대표를 맡고 있다. 유럽위원회(European Commission)의 유럽장애전문가 학술네트워크(Academic Network of European Disability Experts, ANED)의 연구이사와 국제적인 온라인 토론 포럼 ‘장애연구’(Disability Research)의 운영자를 맡고 있기도 하다. 그는 장애와 공공정책에 대해 국제적인 관점에서 연구하고 있다. 각국의 사회적·정치적·경제적 불평등과 장애운동에서 분출되는 정치적 불만 간의 연관관계, 서로 다른 사회적 맥락에서 장애인의 권리가 점진적으로 실현되어 가는 과정 등에 관심이 많다.
주요 저서로는 『장애와 생애 주기: 전 지구적 관점』(Disability and the Life Course: Global Perspectives, 2001)과 『장애: 생애 주기 접근』(Disability: A Life Course Approach, 2003) 등이 있다.
역자 이지수
군산대학교 사회복지학과에서 장애인 복지를 연구하며 가르치고 있다. 서울장애인종합복지관에서 6년간 사회복지사로 일하며, 발달장애 아동의 일반학교 통합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을 연구하여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최근에는 장애여성의 삶의 질, 장애아동의 차별 경험과 정체성 발달의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고 있다.
공저로 『한국 장애인복지의 이해』(인간과복지, 2002), 『학생권리와 학교 사회복지』(한울, 2009), 『인간행동과 사회환경』(학지사, 2010) 등이 있고, 역서로 『형제자매: 장애인 가족의 특별한 관계』(서울장애인종합복지관, 2000), 『장애학의 쟁점: 영국 사회모델의 의미와 한계』(학지사, 2013) 등이 있다.
차례 ▼
옮긴이 서문
감사의 말
서론
1장_정책, 역사 그리고 개인의 전기
변화하는 정책과 요구
전후 정책의 전개 | 권리와 의무
개인적인 것과 사회적인 것의 연관성
삶과 시간 | 전기와 장애의 사회적 모델 | 이야기를 통해 장애에 대해 알아가기
전기와 사회구조
나가며
2장_삶의 이야기들
1940년대의 아이들
플로렌스의 이야기 | 댄의 이야기 | 요약과 논의
1960년대의 아이들
포피의 이야기 | 이언의 이야기 | 요약과 논의
1980년대의 아이들
홀리의 이야기 | 하비의 이야기 | 요약과 논의
나가며
3장_가족 안에서 살아가기
가정에서의 삶 : 수용과 거부
옹호적인 어머니들 | 아버지들의 부재 | 형제자매들 | 공공 정책과 가족의 삶
집을 떠난 삶 : 총체적 통제시설
병원에서의 가족 분리 | 병원에서 학교로
나가며
4장_의료와 더불어 살아가기
의학적 예후와 인생 궤적
출생 이야기 | 의료 권위자로부터 노련한 환자로
변화하는 정책과 제도
의료의 제도화 | 변화의 조짐 | 생존에서 예방으로
나가며
5장_인생을 배우기
학생 선발, 그리고 학교 선택
학생 선발에서의 전문적 권위 | 저항, 타협, 그리고 선택
아동의 범주화와 학교
학교가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
학교 환경 | 기대와 성과 | 사회적 기대
나가며
6장_일하며 살아가기
취업을 위한 지원
공적인 고용서비스로부터 받는 도움 | 학교에서의 진로 상담 | 변화하는 노동시장
일터에서 부딪히는 장벽에 대응하기
고용주의 태도 | 물리적 장벽
취업에 대한 대안
훈련센터와 작업장 | 직업을 갖지 않는 삶
나가며
7장_‘장애’와 함께 살아가기
세대 간 학습
과거와 현재 | 문화적 각본의 활용성 | ‘숨기기’의 고통 | 사회적 모델을 통하여 장애 정체성을 갖기
공적 공간, 사적 공간에 속하기
병원과 가정 사이에서 | 학교에서 경험한 차이와 동일성 | 계속교육의 중요성 | ‘장애’ 관련 일자리를 통한 새로운 정체성
나가며
8장_결론
인생 이야기에서 드러나는 것들
핵심적인 발견들
새로운 세대를 위한 교훈
참고문헌
찾아보기
편집자 추천글 ▼
사회와 제도의 변화, 그 안의 생생한 삶 이야기
장애를 만드는 사회 속에서 우리는 이렇게 살아 왔다!
“우리 없이는 우리에 대해서 아무것도!!” (Nothing About Us, Without Us!)
이것은 앞으로 이어질 수많은 외침을 준비하는 서막과도 같은 외침이었다. 삶의 많은 부분을 좌지우지할 정책 결정 과정에서 전문가들이 권한을 독점하는 것에 대항하여, 장애인들은 “우리 없이는 우리에 대해서 아무것도” 말하거나 결정하지 말라는 구호를 절박하게 외쳤다. 장애인들이 삶의 현장 곳곳에서 목소리를 잃어 왔다는 것은 수사적 표현이 아니다. 치료방법을 결정하는 것에서부터, 학교와 거처, 일자리를 결정하는 그 모든 자리에서 장애인들은 자신의 의견을 피력할 기회조차 얻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정책을 결정하는 과정뿐 아니라 그 실효성을 평가하는 장에서도 장애인들의 목소리는 배제되기 일쑤였고, 장애 정책과 실제 삶의 괴리는 커져만 갔다. 그렇기에 장애인 당사자들의 목소리와 삶 면면에 주목하는 작업은 ‘장애 정치’의 일환으로 인식되기에 충분했다. 이 책은 장애인 당사자들의 삶 면면을 통해 영국의 장애 정책들을 비판적으로 고찰하는 ‘정치적’인 책이다.
그린비 장애학 컬렉션 3권으로 출간된 『장애와 함께 살아간다는 것: 변화하는 사회 속 장애청소년들의 이야기』는 영국 사회의 어떤 장치가 억압으로 작동했는지, 어떤 정책이 삶의 전환 국면에서 실제적인 도움을 주었는지 장애인 당사자들의 입을 통해 ‘직접’ 들려주고 있다. 특히 향후 삶의 방향에 영향을 미칠 청소년기에 겪었던 일들을 중심으로 다루고 있으며, 이들의 증언 속에는 장애를 조장하는 정책과 실천에 대해 타협하였거나, 때로는 그에 맞서 전복시켰던 생생한 이야기들도 담겨 있다.
저자들은 당대의 문제뿐 아니라 세대를 거쳐 변화하거나 고착되어 온 문제들을 추적하기 위해, 반세기가 넘는 기간의 이야기들을 모으고, 마침내 장애인의 관점에서 ‘장애 정책의 역사’를 써 냈다. 이렇게 새로 쓰인 역사 서술 속에서 장애인들은 수동적인 피해자 혹은 장애를 극복한 승리자로 재현되는 것이 아닌, 역사의 증언자로서 새로운 자리를 찾을 수 있었다.
일찍이 ‘장애는 사회적으로 구성된 것’이라는 관점하에 장애학이 태동하고 장애 정책이 발달해 온 영국 사회는 많은 사회의 정책 참조점이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정책들이 장애인의 실제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쳐 왔는지 비판적으로 검증해 내는 작업은 찾아보기 어려웠던 것이 사실이다. 1940년대 이후 영국사회 공공 정책의 변화가 장애인들의 삶의 궤적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세대별 삶의 서사를 통해 분석하고 있는 이 책은, 영국 공공 정책에 대한 그 어떤 연구보다도 객관성과 진실성(reality) 모두를 담보할 수 있을 것이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사회와 공공 정책은 진보해 가는가? 현재를 살아가는 장애인들, 특히 장애청소년들은 앞선 세대에 비해 나은 기회와 삶을 누리게 되었는가? …… 이러한 물음에 대해 이 책은 온전한 긍정도 부정도 내리지 않고 있다. 답을 위해 멀리 갈 것도 없이 광화문에서 2년 넘는 시간 동안 “장애등급제 철폐”를 외치고 있는 장애인 당사자들의 목소리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 한국 사회의 현실은, 과거와 비교하여 낙관할 수만은 없음을 잘 말해 준다. 장애인 당사자의 요구보다도 의료적, 행정적 판단이 앞서게 될 때 빚게 되는 결과를 삶의 연속적 서사를 통해 풀어내는 이 책이 2014년 한국 사회에 따끔한 일갈을 전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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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영국 사회와 정책의 변천사를 추적하기 위해 1940년대, 1960년대, 1980년대에 태어나 청소년기를 거친 장애인들 50여 명의 생애를 인터뷰하고 그 내용을 주제별(의료 제도, 교육 제도, 고용 제도 등)로 담고 있다. 이 중 맨 첫 세대인 1940년대에 태어난 이들은 영국의 사회 정책과 장애 정책이 처음 형성되고 확대되던 시기에 젊은 시절을 보낸 사람들이다. 이들은 장애와 관련한 제도와 서비스를 처음 경험한 세대라고 할 수 있는데, 유감스럽게도 그 제도와 서비스는 장애인의 사회 통합보다는 분리를 조장하는 것이었다. 두번째 세대는 1960년대에 태어난 사람들로서, 분리와 배제를 조장하는 정책과 서비스에 대한 장애인 당사자의 자각과 사회운동이 성장하던 시기에 젊은 시절을 보낸 사람들이다. 이들은 사회적 분리를 겪으면서도 자신들의 연대가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자신감을 맛본 세대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1980년대에 태어난 세대는 「장애차별금지법」이 제정되고 장애인 인권이 강조되는 현재에 초기 성인기를 맞이한 세대이다. 이들은 고양된 장애예술과 장애운동의 영향으로 긍정적인 장애 정체성을 형성하며 성장할 수 있었다.
장애청소년들은 어떻게 사회와 분리되어 갔는가
크고 작은 정책의 변화들이 있었지만, 이들 세대에서 공통적으로 발견할 수 있었던 서사는 바로 ‘분리’의 서사였다. 이르게는 태어나자마자 격리 거주시설, 장기입원 병원, 기숙 학교 등(부르디외의 개념에 따르면 ‘총체적 통제시설’total institution)에 거주하게 되면서 가족이나 가까운 친구들로부터 떨어져 지내야 했던 것이다.
▶ 의료 제도에 의한 분리
“우리 엄마는 전문의에게서 나를 시설에 보내고 나에 대해서 잊어버리고 또다시 아이를 낳으라는 이야기를 직접 들으셨어요.” (포피, 1960년대생)
과거 의학 전문가들의 장애와 질병에 대한 진단은 단순히 치료 방법을 결정하는 것에 그치지 않았다. 지금처럼 소비자들도 다양한 의학 정보를 접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의사들의 지위는 거의 ‘신’에 가까웠고, 이들의 진단은 거스르기 어려운 힘을 가지고 있었다. 문제는 진단 기술이 발달하지 않았던 과거에 의사들이 섣불리 장애아동의 미래에 대해 단정하는 우를 범하기도 했다는 점이다. 예컨대 ‘얼마 살지 못한다’거나,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이라는 진단은 부모로 하여금 장애아동에 대해 일찍부터 모든 기대를 접게 하였다.
뿐만 아니라 분리된 시설에서 아동을 치료하고 보호하는 방법 외에 별다른 대안을 제시하지 않았기 때문에, 중증 장애를 가진 많은 아동들의 경우 가족과 떨어진 채 장기입원 시설에서 유년기의 대부분을 보내야 했다. 이러한 의료적 격리는 ‘지역사회로의 통합’의 중요성을 인식한 이후에도 한참 동안이나 계속되었다.
▶ 교육 제도에 의한 분리
“기껏 하는 것은 라피아 바구니를 만드는 것 같은 일, 아니면 점토를 가지고 노는 것이었어요.” (댄, 1940년대생)
“난 열여덟 살이 되었을 때 학교를 떠났는데, 그때까지는 정말 고치 안에 들어앉아 있는 누에 같았어요.” (홀리, 1980년대생)
학교에서의 교육 경험은 동료들과 공유하는 문화나 자아 정체성의 틀을 만들어 내며, 또한 성인기에 사회적, 경제적으로 통합될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기회로서 중요하다. 1940년대에 정부 통제하에 많은 수의 특수학교가 설립된 이래, 영국 사회에서 장애를 진단받은 많은 아동들은 기숙형 특수학교에 배정되어 치료와 교육을 병행하였다. 이때 학교 배치는 특정한 손상 유형에 따라 이루어졌는데, 교육 제도는 의료 제도와 밀접한 영향관계를 갖게 되었다.
무엇보다 특수학교의 환경은 매우 취약했다. 도심과 멀리 떨어져 있어서 가족과의 접촉이 쉽지 않았을뿐더러 구식 병원 건물을 개조하여 만드는 등 사실상 격리시설이나 다름없는 곳이 많았다. 또한 한 번 들어가게 되면 짧게는 몇 년에서 길게는 십수 년간 생활하게 되어 매우 협소한 관계를 맺기 쉬웠다. 일반학교를 진학하려는 마음이 있어도, 물리적 접근성을 제도적으로 보장하기 전까지는 통학 자체가 어려웠던 것이 사실이다.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졌다고도 볼 수 없었다. 장애인 당사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바구니를 만들거나, 점토놀이를 하는 등의 소일거리로 시간을 보낸 경우가 많았다. 고등교육으로 나아가기 위한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지도 않았고, 장애학생들의 학업 성취에 대한 기대도 부족했기 때문에, 성인 노동시장으로의 통합에까지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많았다. 이렇듯 교육 제도와 정책의 변화는 장애인들의 인생 궤적이 사회로부터 분리를 향해 나아가는 것을 막기보다는 오히려 강화하는 결과를 낳기도 했다.
▶ 노동 제도에 의한 분리
“그들은 ‘아유 이런, 넌 의사가 될 수는 없어. 넌 불구자니까’라고 했어요.” (톰, 1940년대생)
“사실상 그 직업군[장애 직업군]은 매우 협소한 것으로 겨우 두 개의 직업에 한정되었다. ‘자동차 주차 요원’과 ‘전동 리프트 조작자’가 그것이다.”(본문 225쪽)
장애인들이 노동 영역에서 배제되어 오기만 한 것은 아니다. 노동력의 수요가 늘어났던 시기에는 일반 고용시장에서 일하는 장애인 노동자들의 수가 적지 않았다. 하지만 1970년대 오일쇼크를 전후하여 경기가 급격히 후퇴한 이후, 장애인의 노동권은 여성노동자와 이주노동자들과 함께 압박을 받기 시작했다.
「장애인(고용)법」이 제정된 이래, 「장애차별금지법」이 시행되기 전까지 장애인 노동력은 ‘보호고용’이라는 명목하에 몇 가지 직종에 한정되었다. 일반고용 형태에 지원하기 위해서는 가족이나 지인으로부터 비공식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 여부가 관건이었다.
교육에서의 문제점과 마찬가지로, 진로를 상담하는 과정에서 장애청소년에 대한 낮은 기대는 종종 이들의 꿈을 꺾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하였다. 이 책에서 자신의 삶을 들려준 장애인들은 세대를 막론하고 직업전환 상담 프로그램이 오히려 노동시장에서 멀어지게 하는 데 기여했다고 증언하고 있다.
장애청소년과 그 가족들은 어떻게 저항해 갔는가?
사회와 가족으로부터 분리시키는 의료 제도, 교육 제도 등에 장애인들이 수동적으로 타협한 것만은 아니었다. 이 책에는 특히 정책과 제도에 대한 어머니의 저항에 힘입어 얻어 낸 성과들이 곳곳에 서술되어 있다. 의료적 판단에도 불구하고 병원에 입원하지 않거나 일반학교에 진학한 예들은 거의 대부분 이런 저항으로 인해 가능했다.
한편 사회와 제도의 변모에 따른 변화상들도 존재했다. 보건의료서비스에 대한 공공의 관리가 증가하고, 환자-소비자들이 접하는 정보와 선택권이 늘어 감에 따라 의료적 권위는 차츰 하락해 갔다. 또한 아동권리에 대한 국제협약과 「아동법」 등이 제정되면서 서비스 제공에 있어 아동의 관점과 동의가 점차 중요해지게 되기도 했다.
교육 분야에서도 부모의 ‘선택’이라는 정책 의제가 부상함에 따라, 특수학교 배치에 대한 부모들의 재심 청구가 가능하게 되었다. 장애인 부모 옹호 집단을 중심으로 통합교육운동이 확산되었고, 아이들을 특수학교에 보내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견해에 맞설 수 있었다. 1996년 「교육법」과 2001년 「특수교육 욕구와 장애에 관한 법률」은 일반학교로의 통합이라는 의제를 법률적으로 뒷받침해 주었다. 그러나 특수학교에 다니는 아동의 비율이 여전히 변동 없이 유지되고 있다는 것은 이들 정책의 실효성을 평가할 때에 중요하게 봐야 할 지점일 것이다.
분야를 막론하고 「장애차별금지법」은 장애인들의 삶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이 법은 고용 관계에서 벌어지는 직간접적 차별에 대해 제소할 수 있게 함으로써, 장애인 권리에 대한 고용주들의 인식 수준 전반을 개선하는 데에 도움을 주었다. 하지만 장애인들의 고용을 일정량 할당하던 과거와 비교해 보았을 때, 고용에 대한 책임이 도리어 개인에게 전가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제기가 있기도 하다.
이러한 저항과 변화가 제도의 측면에서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일련의 변화를 거쳐 오며 개개인의 장애 정체성 역시 긍정적인 방향으로 조정되고 변화되어 왔다. 장애에 부착된 낙인 때문에 장애를 드러내지 않도록 요구받기도 했던 선배 세대들에 비해, 젊은 장애청소년들에게 장애는 숨겨야만 하는 것이 아니란 인식이 확산되어 가고 있었다. 이 책은 비판적 장애학과 장애운동, 장애예술의 발전에 힘입어 장애인의 권리에 대해 자각하고, ‘장애운동가’로서 자신의 삶에 긍정적인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사례들을 언급하고 있다.
사회 구조와 행위자 간의 역동적 관계에 대한 모범적 연구
이 책은 장애인들의 삶 이야기를 통해, 개인적인 것과 사회적인 것, 개인의 전기와 정책의 역사, 구조와 행위자 사이의 연관성을 드러내고 있다. 어느 한 축만 강조되기 쉬운 상황 속에서, 이들 모두를 고루 보아야 정책의 실효와 진실성(reality)이 드러남을 역설하는 것이다.
더욱이 저자들은 장애인들의 개별적인 삶의 서사에 통계 지표나 여느 이론 버금가는 지위를 부여하고 해석하고 있다. 이는 장애인들의 이야기를 단순한 ‘소재’로 활용하는 것과는 구분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 삶 이야기들을 통해, 정책 이론가들의 입장과는 다르게 현재의 삶이 과거에 비해 낙관할 수만은 없음을 밝히고 있다. ‘한정된 예산, 인력, 운용의 어려움’ 등을 말하는 행정의 목소리에 비해 장애인 당사자들의 말이 힘을 가질 수 없을 때, 역설적이게도 정책이 목표했던 바와는 오히려 반대되는 상황을 초래함을 보여 준다. 이 책의 결론부에서 저자들은 신자유주의적 구조 조정하에 긴축되고 있는 복지 예산이 향후 젊은 장애청소년 세대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대해 조심스럽게 걱정을 내비치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비관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마치 자연스럽게 흘러 온 것처럼 보이는 정책의 역사가 사실은 장애인 당사자들과 그 가족들의 저항 속에 실현되어 왔음을, 장애인의 관점에서 새로 쓴 ‘장애 정책의 역사’를 통해 보여 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실현시키기 위해서 우리는 역사로부터 교훈을 얻을 필요가 있다. 특히 장애인들의 경험에서 배울 필요가 있을 것이다”(본문 322쪽)는 저자들의 말은 이 연구가 단순한 정책 연구만은 아님을 방증한다. 옮긴이가 이 책을 한국 사회에 소개하는 맥락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며, 그러한 의도가 한국 사회에 크고 작은 반향들을 일으키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