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의 충만, 간극의 현존 2 장 폴 사르트르의 『존재와 무』 강해
철학의 정원 15
조광제 지음 | 2013-01-10 | 756쪽 | 33,000원
프랑스 현상학의 선구자 장 폴 사르트르의 『존재와 무』를 강해한 책으로, 2009년 1월부터 2010년 12월까지 만 2년여간 진행한 강의록를 토대로 했다. 저자는 한국에서 그동안 실존주의라고 번역되어 온 사르트르의 ‘existentialisme’을 그 개념적 의미에 따라 ‘현존주의’라고 번역해야 함을 강조한다. 이러한 새로운 번역어 제안은 기본적으로 사르트르의 철학이 그동안 잘못 이해되었다는 점에 착안한 것으로, 그는 사르트르의 철학이 하이데거의 철학과는 개념적으로 상이한 궤적을 갖고 있음을 밝혀 낸다. 1권과 2권을 합쳐 총 1400여 쪽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을 통해 이루어진 꼼꼼한 강해작업은 한국의 기존 사르트르론의 오류를 바로잡고, 사르트르 현상학의 철학적 함의를 보다 명료히 밝혀 줄 것으로 기대된다.
저·역자 소개 ▼
1955년 출생. 총신대학교 신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철학과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0년에 대안 철학학교인 ‘철학아카데미’를 설립했고, 한국 프랑스철학회 회장으로 일하기도 했으며, 현상학적 사유를 바탕으로 해서 몸, 매체, 고도과학기술, 미술, 영화, 시 등의 영역을 철학적으로 분석하여 존재론적인 기반을 제공하고자 노력해 왔다. 후설의 철학을 전반적으로 조감한 『의식의 85가지 얼굴』(글항아리, 2008)을 출간했고, 메를로-퐁티의 『지각의 현상학』에 대한 강해서인 『몸의 세계, 세계의 몸』(이학사, 2004)을 출간했다. 지난 10여 년간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 사르트르의 『존재와 무』, 메를로-퐁티의 『행동의 구조』, 『지각의 현상학』,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그리고 푸코의 『말과 사물』 등을 원전을 중심으로 철저하게 분석해서 해설하는 강의를 진행했다. 또한 2011년부터 ‘주체소’, ‘현상소’, ‘언어소’, ‘현존 벡터’, ‘자성과 대타성’, ‘수렴-응축과 확산-분절’ 등의 개념들을 구축하여 ‘함수적 존재론’이라는 이름의 존재론을 확립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그런 가운데, 정치사회사상을 확립하기 위해 여러 동료들과 함께 집단적인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차례 ▼
2권
3부 대타존재
제2장 몸
1. 문제 설정
2. 대자존재인 몸: 현사실성
3. 몸과 감각
4. 확산의 축이자 응축의 축인 몸
5. 몸과 대자적인 의식
6. 대타적인 몸
7. 3차원의 존재론적인 몸
제3장 타인과의 구체적인 관계들
1. 출발점
2. 타인에 대한 첫번째 태도: 사랑, 언어, 마조히즘
3. 성적 욕망의 정체
4. 성적 욕망의 좌절, 사디즘
5. ‘공존재’와 ‘우리’
4부 가짐, 함 그리고 있음
제1장 행동의 조건, 자유
1. 행동의 근본 조건인 자유
2. 자유에로의 길
제2장 있음과 함 : 자유
1. 자유와 의지
2. 자유와 몸
3. 궁극적 가능성과 자유의 근본 작용
4. 존재론적인 근본 구도의 연관들
5. 자유에 대한 기초적인 결론들
6. 상황과 자유
7. 상황 1: 나의 장소와 자유
8. 상황 2: 나의 과거와 자유
9. 나의 환경과 자유
10. 나의 이웃과 자유
11. 나의 죽음
12. 상황과 자유, 자유와 책임
제3장 함과 가짐
1. 현존적 정신분석
2. 함과 가짐: 소유
3. 존재의 누설인 질에 관하여
결론 존재론과 형이상학 그리고 윤리학
부록 하이데거의 ‘실존’을 벗어난 사르트르의 ‘현존’
1. 후설의 ‘현존주의’
2. 하이데거의 ‘실존주의’
3. 사르트르의 ‘현존주의’
4. 덧붙이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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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추천글 ▼
유물론적 현존주의자 사르트르의 귀환
『존재와 무』의 체계적 입문을 위한 강해록 출간!
1960~70년대 한국에서 실존주의(existentialisme)는 도시 개인주의에 물든 청년들의 자폐적 낭만성을 지칭하는 경향이 강했다. 주로 문학예술 영역에서 묘사된 이러한 청년들의 비정치적 행동들은 당대 비평가들의 강한 비판의 도마 위에 서게 된다. 체제에 거세당한 듯한 정치적 무기력과 서구의 도시문명에 현혹된 듯한 몽환적 사유. 실존주의를 상징하는 듯한 이 모든 것들은 한국사회가 처한 구체적인 현실들을 외면하는 모습으로 비평가들에게 다가왔던 것이다.
그렇다면 정말 실존주의란 그렇듯 자폐적이고 비정치적인 사상이었을까? 적어도 20세기 중반 프랑스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Jean-Paul Sartre)에게는 그렇지 않았던 것 같다. 여기에 프랑스어 ‘existentialisme’을 ‘실존주의’가 아니라 ‘현존주의’로 번역할 것을 요구하며 사르트르의 현존철학을 재해석하는 연구가 출간되었다. 그린비출판사에서는 ‘철학의 정원’ 열다섯번째 책으로 한국의 현상학 연구자 조광제의 『존재의 충만, 간극의 현존: 장 폴 사르트르의 『존재와 무』 강해』를 출간했다. 이 책은 2009년 1월부터 2010년 12월까지 만 2년간 철학아카데미에서 진행한 강해작업을 수정․보완하여 출간한 것으로, 사르트르 『존재와 무』에 대한 기존 학계의 오해를 불식시킴과 동시에 치밀하고 친절한 해설로 원전의 난해함으로부터 독자의 혼란을 바로잡아 줄 것으로 기대된다.
이 책에서 저자 조광제가 가장 주목하는 것은 사르트르의 ‘현존’(existence, 現存) 개념이다. 하이데거(Martin Heidegger) 사상에 준거해 일반적으로 ‘실존’(實存)으로 번역되었던 이 개념에서 핵심은 인간의 자유가 이미 항상 ‘현존’한다는 것이다. 세계 속에서 자신을 잃어버린 인간이 양심의 부름을 통해 실존에 이르게 된다는 하이데거 철학과는 달리, 사르트르는 인간이 이미 그 자신의 존재 기반 자체에 자유를 숙명적으로 안고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에 착안해 이 책은 진정한(實) 존재(存)를 지향한다는 함의가 담긴 ‘실존’이 아니라 ‘지금-나타나 있음’의 뜻을 갖는 ‘현존’을 그 번역어로 제시한다.
이 강의록의 큰 장점 중 하나는 저자가 사르트르의 개념을 당대 현상학의 쟁점들과 연관지어 꼼꼼하게 강해함으로써 난해한 사르트르의 철학을 알기 쉽게 소개한다는 점이다. 기존 사르트르론의 오해를 비판함과 동시에 대중적 입문서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는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은 20세기 현상학의 치열한 논쟁적 맥락 속에서 사르트르 존재론의 핵심과 마주치게 될 것이다.
‘현존’ 개념을 통한 사르트르 존재론의 재구성
주지하다시피, 사르트르는 프랑스 현상학의 선구자이자 20세기 중반 프랑스 지성계를 뒤흔들었던 철학의 거장이다. 그의 사상은 당대 현상학 논쟁 전반에서 결정적인 위치에 있었으며, 미셸 푸코(Michel Foucault), 질 들뢰즈(Gilles Deleuze) 그리고 알랭 바디우(Alain Badiou) 등 20세기 후반에 가장 강력한 메시지를 던진 프랑스 철학자들의 사상에도 결정적인 영향력을 미치게 된다. 그렇다면, 그의 사상의 어떤 면이 이러한 영향력을 가능케 했을까? 이 책은 사르트르의 개념에서 특히 ‘현존’ 개념에 집중하며 이 물음에 답하고자 한다.
‣ 사르트르 존재론에서 ‘무’의 의미를 읽다
이 책에 따르면, 사르트르의 『존재와 무』는 근본적으로 존재의 결핍을 넘어서고자 하는 인간 욕망에 대한 연구이다. 인간이 의식을 갖는 것은 나의 외부, 나의 타자를 갖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책이 사르트르의 물음의 출발점으로 강조하는 곳은 바로 이 의식의 존재 조건 자체를 문제 삼는 지점이다.
나의 타자가 존재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나 스스로’ 혹은 타자 없이 ‘나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을 현상학에서는 흔히 ‘즉자’(卽自)라 칭한다. 이것은 나의 외부를 모르는 완전히 자기완결적인 존재방식을 뜻한다고 할 수 있다. 반면, 의식은 나의 외부에 대한 자각을 통해 나 자신을 스스로가 인식하면서만 생겨날 수 있는데, 이를 ‘자기 자신에 대해 존재한다’는 뜻의 ‘대자’(對自)라는 개념으로 명명한다.
사르트르에 따르면, 인간존재는 근본적으로 즉자적인 상태에서 대자가 생겨나면서 자기 분열을 겪게 된다. 나 혼자만의 완결적인 만족감이 붕괴되면서 타인의 세계를 마주하게 되는 이 충격으로부터 비로소 의식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의 모든 존재론적 문제들은 바로 이러한 조건 속에서 나타나게 된다.
인간 존재는 결핍입니다. 결핍을 메우기 위해 결핍된 것을 향해 초월하는 것이 인간 존재이고, 거기에서 욕망이 성립합니다. 그래서 근본적인 욕망은 대자와 즉자의 통일인 총체성에 대한 것이 됩니다. 이를 사르트르는 나중에 ‘존재 욕망’(désir d’être)이라 부릅니다.(1권, 256쪽)
나의 자기완결적인 존재가 찢겨지면서 생겨난 결핍은 인간에게 그 결핍을 메우고자 하는 영원한 존재론적 욕망을 부과한다. 사르트르의 책 제목에서 제시된 핵심 개념 ‘무’(néant, 無)는 바로 이 결핍을 지칭한다. 의식을 갖는 존재로서 인간은 근본적으로 이 ‘무’의 영원한 간극을 향한 존재 욕망을 갖게 되는데, 바로 여기서 사르트르 존재론의 두 가지 핵심 명제가 제시된다.
하나는, 이 무의 간극이 인간의 그 모든 구속으로부터 자유의 가능성을 보증한다는 것이다. 세계 속에서 자기를 잃고, 타인으로부터 불안을 느끼는 순간에도 인간은 언제나 타인의 시선에 완전히 구속될 수 없는 존재론적 간극을 안게 되기 때문이다. 바로 여기에서 사르트르의 유명한 명제 “[인간은] 자유롭지 않을 자유가 없다”라는 명제가 나온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인간은 언제나 존재론적 결핍을 초월한 절대적 존재(신)가 되고자 하는 욕망 속에서 자기 분열과 자기 초월의 경험을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이 두 가지 조건에 대한 성찰이 기본적으로 사르트르의 철학이 대자적 의식을 즉자보다 우위에 두었다고 보는, 즉 ‘실존주의’라는 이름으로 한국에 수용된 기존 사르트르론의 오류를 정면으로 비판하는 것이라는 점이다. 핵심은 의식이 아니라 의식의 결핍인 무이며, 이 무의 존재가 자유 그 자체의 가능성을 말할 수 있게 한다는 점에 있다. 조광제는 이러한 무의 간극을 통해 인간존재를 설명하는 사르트르의 현상학이 인간 욕망의 분열로 나타나는 ‘자기기만’, 시선의 문제와 연동된 ‘타인’의 문제, 그리고 ‘시간의식’ 등을 아우르며 인간 존재의 존재론적 물음을 풀어나갈 수 있었다고 말한다.
요컨대, 의식을 갖는 대자에 주목할 경우, 존재론은 대자인 의식이 자유(실존)를 향해 초월해 가는 과정에 주목하게 된다. 이것이 ‘진정한 존재’라는 의미를 갖는 ‘실존’ 개념에 착안해 이른바 ‘실존주의자’들이 해석한 기존 사르트르론의 오류였다. 하지만 앞서 간략히 봤듯이 사르트르는 존재 자체에 내재된 무의 균열 속에서 자유의 가능성을 봤고, 그 가능성은 진정한 존재를 향한 것이라기보다 이미 존재 자체의 조건으로 내포된 것이었다. 이에 이 책은 사르트르의 현상학으로부터 대자가 아니라 의식의 결핍점인 무가 강조됨을 읽고, 이로부터 자유가 그 자체로 이미 항상 현존함을 발견한다. ‘existence’의 번역어로 ‘현존’이 제안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존재와 무』로 가는 가장 체계적인 길을 놓다
사르트르의 『존재와 무』보다도 더 방대한 총 1456쪽으로 구성된 이 책은 현상학 연구의 오랜 길을 걸어온 현상학자 조광제의 야심찬 저작이자, 사르트르에 대한 그의 깊은 애정의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긴 분량만큼 사르트르의 문장 하나하나를 치밀하게 읽어 나간 저자의 강해작업은 2년여의 긴 시간을 인내한 뜻 깊은 철학적 결실이라고도 할 수 있다.
저자가 스스로 밝히고 있듯이, 이 강해록의 출간은 무엇보다 전후 한국에서 수용된 사르트르론의 오류를 근본적으로 바로잡는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갖는다 할 수 있다. 한국에서는 철학자들보다는 주로 문학연구자들 사이에서 활발히 수용되었던 현상학의 거장 장 폴 사르트르. 하지만 이 책을 통해 비로소 사르트르는 현상학 논쟁의 전반적인 맥락 속에서 엄밀한 철학적 체계를 갖추고 나타나게 되었다. 독자들은 이 연구를 통해 왜 사르트르의 현존주의가 20세기 중반 서양철학계에 파장을 몰고 왔는지, 왜 그의 철학이 오늘날의 철학자들 사이에서도 끊임없이 회자될 수밖에 없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