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설 현상학에서의 직관 이론

레비나스 선집 2

에마뉘엘 레비나스 지음, 김동규 옮김 | 2014-4-30 | 304쪽 | 23,000원


젊은 레비나스는 후설과 하이데거를 연구하며 독창적 사유 체계를 확립해 나갔다. 특히 세계에 대한 독단적 이해 방식을 넘어 엄밀한 객관적 진리를 추구하려 한 후설 현상학은, ‘주체에 우선하는 타자’라는 레비나스 철학의 핵심 원리에 결정적 영감을 주었다고 할 수 있다. 이 책에서 레비나스는 자신이 파악한 후설 철학의 요체를 제시하고 동시에 근본적 비판을 수행한다. 이 과정 가운데 레비나스는 하이데거적 시각을 후설 체계에 적용한다. 즉 레비나스에 의해 당시에는 인식론적 차원에 한정해 다뤄지던 현상학에 존재론적 시각이 도입된 것이다. 이를 통해 레비나스는 후설 현상학의 심오한 잠재력을 드러낼 뿐만 아니라 그 균열 또한 드러내는 데 이른다.


저·역자 소개 ▼

저자 에마뉘엘 레비나스 Emmanuel Levinas
리투아니아의 유태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1923년 프랑스로 유학해 스트라스부르 대학에서 수학했고, 1928~1929년 독일 프라이부르크 대학에서 후설과 하이데거로부터 현상학을 배운 뒤, 1930년 스트라스부르 대학에서 『후설 현상학에서의 직관 이론』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39년 프랑스 군인으로 2차 대전에 참전했다가 포로가 되어 종전과 함께 풀려났다. 1945년부터 파리의 유대인 학교(ENIO) 교장으로 오랫동안 일했다. 이 무렵의 저작으로는 『시간과 타자』(1947), 『존재에서 존재자로』(1947), 『후설과 하이데거와 함께 존재를 찾아서』(1949) 등이 있다. 1961년 첫 번째 주저인 『전체성과 무한』 이후 레비나스는 독자성을 지닌 철학자로 명성을 얻기 시작했으며, 1974년에는 그의 두 번째 주저 『존재와 달리 또는 존재성을 넘어』가 출판되었다. 다른 중요한 저작들로는 『어려운 자유』(1963), 『관념에 오는 신에 대하여』(1982), 『주체 바깥』(1987), 『우리 사이』(1991) 등이 있다. 레비나스는 기존 서양 철학을 자기중심적 지배를 확장하려 한 존재론이라고 비판하며, 타자에 대한 책임을 우선하는 윤리학을 제1철학으로 내세웠다. 1964년 푸아티에 대학에서 강의하기 시작하여 1967년 낭테르 대학 교수를 거쳐 1973년에서 1976년까지 소르본 대학 교수를 지낸 그는, 교수직을 은퇴한 후에도 강연과 집필을 계속하다가 1995년 성탄절에 눈을 감았다.

역자 
김동규
총신대 신학과를 졸업하고, 서강대 철학과에서 폴 리쾨르에 관한 연구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서강대 철학과 박사 과정을 수료하고 동대학 철학연구소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다. 또한 에마뉘엘 레비나스, 장-뤽 마리옹, 폴 리쾨르의 철학을 비교하고 종합하는 연구를 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레비나스의 『탈출에 관해서』(지만지, 2009), 리쾨르의 『해석에 대하여』(인간사랑, 2013, 공역) 등이 있고, 프랑스 현상학과 해석학에 관한 여러 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차례 ▼


옮긴이의 말 │ 들어가는 말 │ 후설의 저작 및 약어표

서론

1장 _ 자연주의적 존재론과 철학의 방법

2장 _ 현상학전 존재론 : 의식의 절대적 현존

3장 _ 현상학전 존재론 : 의식의 지향성

4장 _ 이론적 의식

5장 _ 직관

6장 _ 본질 직관

7장 _ 철학적 직관

결론

옮긴이 해제 │ 참고문헌 │ 찾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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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비나스가 드러내 보이는 후설 현상학의 심오한 잠재력과 그 균열!!

 

이 책 『후설 현상학에서의 직관 이론』(레비나스 선집 02)은 리투아니아 출신의 유대인 철학자, 에마뉘엘 레비나스의 박사논문으로 쓰인 책이다. 젊은 레비나스는 칸트의 고향 쾨니히스베르크에서 철학 공부를 하고자 했지만 허가를 얻을 수 없었고(반유대주의의 영향이라는 의혹도 있다), 대안으로 프랑스 알자스 지역에 소재한 스트라스부르 대학에서 수학하게 된다. 레비나스를 지도한 모리스 프라딘은 당시 프랑스에서 몇 안 되는 후설 현상학의 소개자 중 한 명이었고, 『논리 연구』 등 후설의 저작들을 프랑스어로 번역하며 현상학 연구를 계속하던 레비나스는 1928년 독일 프라이부르크 대학으로 유학하여 후설로부터 직접 배울 기회를 얻게 된다. 2년간의 유학 후 레비나스는 이 책을 상재했고, 책은 일차적으로는 레비나스의 철학자로서의 수련기를 결산하는 한편, 프랑스에 후설 현상학을 소개해 이후 프랑스 현상학 연구의 번성을 준비하는 역할까지 해냈다.


레비나스가 이 책에서 수행하는 작업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자신이 파악한 후설 현상학의 요체를, ‘직관’ 개념을 중심으로 제시하는 것이다. 개인적․독단적 사유 방식을 넘어 엄밀한 객관적․과학적 진리를 추구하려 한 후설 현상학은, ‘주체에 우선하는 타자’라는 레비나스 철학의 핵심 원리에 영감을 주었다고 할 수 있다. 둘째는 프라이부르크 유학기에 만난 하이데거 철학의 시선을 후설 철학 체계에 적용해 비판적 독해를 시도하는 것이다. 레비나스가 마르틴 하이데거를 만났을 때, 그는 이미 후설 현상학의 계승자이자 그 자신 독창적 철학자로서 명성이 높았다. 특히 그의 『존재와 시간』이 레비나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고 한다. 레비나스는 하이데거가 (특히 ‘로고스 중심주의’ 비판이라는 측면에서) 벌써 일정 부분 스승 후설을 넘어서고 있음을 발견한 것이다. 레비나스는 그런 하이데거의 존재론적 시각을 도입함으로써, 당시에는 주로 인식론적 차원에 한정해 다뤄지던 현상학의 새로운 잠재력과 함께 그 균열 또한 드러내는 데 이른다.

 

 

후설과 더불어, 후설을 넘어서

 

• 후설과 더불어: 철학의 위기와 새로운 존재론

제목이 드러내듯, 이 책은 후설 현상학에서도 ‘직관 이론’에 초점을 맞춰 논의를 전개하고 있다. 그리고 직관 이론은 ‘지향성’ 개념 안에서 전개된다. 레비나스는 이 개념이 후설 현상학의 핵심이라고 보았다. 지향성 개념은 순수 의식의 근본 속성으로서 제시된다. 그렇다면 순수 의식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후설 현상학의 현상학적 환원, 즉 ‘자연적 태도의 일반 정립에서 비롯되는 일상적이고 세속적인 앎과 이해를 모두 괄호 속에 집어넣는’ 특유의 철학적 방법의 결과로서 발견되는 것이다. 지향성은 이 순수 의식을 담지한 초월적 주체(순수 자아)로 하여금 주어지는 현상 자체, 개념화되기 이전에 생생하게 주어지는 것들을 향하도록 해준다. 여기서 “개념화되기 이전”이라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가 대상을 파악하는 일반적 방식은, 자연주의적․경험주의적 방식이다. 그리고 그것은 외부의 대상을 감각 지각을 통해 인상과 관념, 개념화로 포착하는 방식이다. 그런데 지향성을 매개로 순수 의식이 외부 대상과 맺는 관계는 그보다 앞서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즉 순수 의식은 지향성 속에서 개념화에 오염되지 않은 현상의 본질에 가닿는다. 이것이 후설 현상학에서의 ‘직관’이다.


이 책에서 레비나스는 먼저 철학사 안에서 후설 직관 이론이 갖는 의미를 검토한다. 후설 현상학의 등장 배경에는 헤겔 이후 자연과학이 보여 준 급속도의 진보가 있다. 자연과학과 달리 “철학은 인식 대상도 없이 존재하는 것처럼 보였”(23쪽)고 철학은 위기에 빠졌다. 그리고 이때 발견된 돌파구가 과학 자체를 대상으로 삼는 것이었다. 신칸트학파는 칸트적 비판의 인식론적 갱신(“자연 과학 위에 있는 ‘초월 철학’으로서의 인식론”, 23쪽)을 통해 이러한 경로를 취하려 했다. 그렇다면 후설 현상학은 어땠을까. 20세기 첫머리에 『논리 연구』를 출간하며 ‘엄밀한 학문으로서의 철학’이라는 기치를 내걸었던 후설 역시 같은 위기 인식을 가졌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레비나스에 따르면 후설 현상학에는 비판적 인식 이상의 것, 무엇보다 새로운 존재론(현상학적 존재론)의 가능성이 배태되어 있었다는 점에서 신칸트학파와 중요한 차이가 있었다. 이 책 『후설 현상학에서의 직관 이론』은 그 새로운 존재론을 통해 “자연학의 대상을 실체화하고 자연학의 형태로 실재의 전체성을 파악하는 자연화된 존재론을 어떤 식으로 넘어”(262쪽)설 수 있는지를 보여 준다. 그리고 여기서 직관은 단순히 우리에게 대상을 현전(現前)하는 작용에 그치지 않고, 진리 자체를 가능케 하는 근원적 현상임이 드러난다.

 

• 후설을 넘어서: 구체적 삶 속에서 존재의 위상을 찾기

모든 것을 자연과학의 대상으로 다룰 때, 사물들과 세계는 빈틈없는 인과성의 사슬에 묶이게 된다. 레비나스는 그런 자연과학적 존재론이 초래하는 문제에 대한 해법을 후설 현상학에서 찾았고, 그로써 삶의 세계의 풍성한 의미를 이해하는 일이 가능해진다고 말한다. 그러나 레비나스는 후설이 개시한 현상학적 존재론에 만족하지 못한다. 그 문제의식은 후설에서의 ‘이론적 의식의 우월성’에 대한 비판으로 드러난다. “레비나스의 후설 비판 중에서 가장 중요한 대목 하나는 후설의 이론적 의식과 표상적 사유의 우위성에 관해 다룬 부분이다”(272~273쪽). 이는 구체적 삶에서 오는 희노애락의 정서적․감성적 작용을 이론적 의식에 종속시키는 주지주의(主知主義)라고 레비나스는 평가한다. 결과적으로 후설은 실재하는 세계에의 문을 발견했지만, 인식의 세계에 머물러 버렸다는 것이다. 이런 입장에서 레비나스는 후설 현상학을 비판하고 또 극복하려 한다. 이제 레비나스는 하이데거를 참조하면서 지향성 개념을 새롭게 정립하려 한다. 후설이 ‘객관화하는 지향’과 ‘비객관화의 지향’을 구분하고 설정한 둘 사이의 위계 관계를 깨뜨리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