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학적 힘 미학적 인간학의 근본개념

철학의 정원 16

크리스토프 멘케 지음, 김동규 옮김 | 2013-02-20 | 200쪽 | 17,000원


이 책은 이성과 감성을 하나로 통합시키려던 바움가르텐의 기획을 넘어서, ‘힘의 미학’이라는 이름으로 미학사를 다시 쓴다. 지금까지 조명되지 못했던 미학사의 흐름은 ‘힘’이라는 개념을 통해 새롭게 발굴된다. 데카르트로부터 시작해 니체에 이르기까지 저자는 계보학적인 방법으로 미학이 성립된 배경과 탄생, 그리고 전개 과정들을 추적하면서 미학적 주체의 탄생을 보여 준다. 미학의 역사를 살펴보면서, 저자는 미학적인 것의 철학적 의미와 윤리-정치적 의미를 전혀 새로운 각도로 설명한다. 미학적인 것이 무엇이고 왜 근대 철학의 중심 문제가 되었는지, 예술의 자율성과 전위성(또는 지고성)이 어떤 윤리적 함축을 내포하고 있는지를 보여 주고 있다.


저·역자 소개 ▼

저자 크리스토프 멘케 Christoph Menke
1958년에 태어나 독일 하이델베르크 대학교와 콘스탄츠 대학교에서 철학과 독문학, 예술사를 공부했다. 콘스탄츠 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후 베를린 자유대학교에서 논문 「인륜적인 것 속에서의 비극: 헤겔과 근대의 자유」(Tragödie im Sittlichen: Hegel und die Freiheit der Moderne)를 통해 교수 자격 취득학위를 받았다. 1997년부터 1999년까지 뉴욕의 사회연구를 위한 뉴스쿨(New School for Social Research)에서 부교수로 재직했다. 2001년부터 포츠담 대학교 인권센터의 공동 소장으로 활동 중이다. 이후 포츠담 대학교 철학교수를 거쳐 2009년부터 프랑크푸르트의 요한 볼프강 괴테 대학교 철학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역자 
김동규
연세대학교 철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이후 「상상과 기억의 불협화음」, 「탈근대 담론의 ‘차이의 선’에 대한 계보학적·윤리적 연구: 크리스토프 멘케의 미학적 담론을 중심으로」, 「니체 철학에서의 고통과 비극」 등의 논문을 발표했다. 저서로는 『하이데거의 사이-예술론: 예술과 철학 사이』, 『멜랑콜리 미학』, 『철학의 모비딕』이 있고, 번역서로는 『마르틴 하이데거: 너무나 근본적인』이 있으며, 『베스텐트』(한국판)의 번역 및 편집에도 관여하고 있다. 고대 그리스 철학, 독일 관념론과 낭만주의, 그리고 하이데거를 비롯한 독일 현대 철학/미학이 주요 관심 영역이며, 현재는 멜랑콜리 담론과 생물학과의 학제간 연구에 몰두 중이다.
차례 ▼

서문_무엇 때문에 미학인가?

 

1장 감각 : 상상력의 비규정성

제멋대로인 감관 | 병리학적 효과들 | 감각적인 것의 ‘내적 원리’| 힘과 능력

 

2장 실천 : 주체의 연습

감각적 명석성 | 연습 | 영혼이 주체다 | 개체와 규율

 

3장 유희 : 힘의 작용

미학적 계보학 | 표현으로서의 힘 | 영혼의 어두운 메커니즘 |일반성 없는 통일성 | 상위 힘들의 부상자

 

4장 미학화 : 실천의 변용

열광으로부터 활력으로 | 자기 자신에 대한 어떤 느낌 | 미학적으로 변화됨 | 조망 : 미학적 이론

 

5장 미학 : 철학의 싸움

완전성에서 자기확신으로 | 오래된 싸움과 새로운 싸움

 

6장 윤리 : 자기 창조의 자유

예술가로부터 배우기 | 할 수 없음을 할 수 있음 | 살아 있는 운동 | 또 다른 선 | 미학적 자기 향유 |

자기 스스로를 창조하기


부록

저자와의 인터뷰

옮긴이의 글_힘의 미학, 비극의 미학

참고문헌

선행연구

찾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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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학, 이성적 기획에 경종을 울리다!

미학적 인간의 도래를 알리는 예술 속 ‘힘’의 탐구

 

근대가 태동한 이래 오늘날처럼 예술이 넘쳐 났던 시대는 없는 듯하다. 낸시 랭에서 싸이에 이르기까지, 모든 이들이 예술가를 자처하고, 어느 곳이든 예술가를 필요로 한다. 예술은 상품시장, 매스미디어, 학계를 비롯한 사회 전 부문과 밀접하게 결부되고 있으며, 우리 시대의 문화적 정체성의 핵심이자 산업의 노른자위가 되었다. 그러나 예술이 갖는 어떤 의미가 우리에게 그토록 예술을 욕망하게 하는지, 예술에 내재된 진정한 ‘힘’이 무엇이기에 라스코 동굴 벽화부터 현대 예술에 이르는 시간의 침식을 견뎌 내고 있는지, 예술 그 자체는 아쉽게도 우리에게 그에 대한 확실한 대답을 제공하진 않는다.

그린비출판사에서 출간하는 독일철학자 크리스토프 멘케(Christoph Menke)의 책 『미학적 힘: 미학적 인간학의 근본개념』(원제는 Kraft: Ein Grundbegriff ästhetischer Anthropologie)은 예술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가 무엇이며, 예술이 갖는 ‘힘’은 무엇인지를 답하는 책이다. 저자는 근대 미학의 창시자인 바움가르텐과 헤르더뿐만 아니라, 데카르트, 칸트, 니체와 같은 빛나는 사상가들을 불러내어 그만의 독특한 미학이론을 제시한다. 이제까지 볼 수 없었던 미학에 대한 이 새로운 시선은 저자의 독특한 이력에서 연유한다. 현대 미학계에서 크리스토프 멘케는 프랑크푸르트학파 3세대 철학자로 분류되며, 특히 아도르노(Adorno)의 ‘미학’을 계승한 독창적인 미학이론가로 평가된다. 그는 아도르노 미학의 입장에서 데리다 및 해석학적 미학을 비판적으로 검토했으며, 하버마스의 아도르노와 데리다 비판에 반론을 제기했다. 그의 박사논문 『예술의 지고성: 아도르노와 데리다에 의거한 미학적 경험』(국내에는 미번역)은 책으로 출간되자마자 그를 최고의 미학자로 만들었다.

저자는 이제 ‘힘’이라는 개념으로 미학사의 흐름을 새롭게 발굴한다. 계보학적으로 미학의 성립 배경과 탄생 그리고 전개를 추적하면서, 그 모든 과정을 ‘힘의 미학’이라는 단어로 축약한다. 난해하게 느껴지는 현대 미학과 예술의 존재 이유를 밝혀 준다는 점은 󰡔미학적 힘󰡕만이 가진 빼놓을 수 없는 장점이다. 그것뿐만이 아니다. 이제까지 미학사에서 제기되어 왔던 핵심 화두들이 이 책 한 권에 모두 집약되어 있다는 것 또한 이 책이 지닌 가장 큰 매력이라 할 수 있다.

 

 

소크라테스 VS 아리스토텔레스

 

인류의 오래된 스승 소크라테스는 예술을 ‘힘’(force, Kraft)을 만들어 내 전달하는 것이라고 정의한 바 있다. 흥분과 열광의 힘. 이 힘은 먼저 예술가 안의 뮤즈를 일깨우고, 뮤즈는 그 힘을 다시 작품을 통해 감상자와 비평가에게로 전달하게 된다. 마치 자석의 자력에 휩싸인 물체가 다시 다른 물체를 잡아당기듯 전염되는 그 힘 안에서, 사람들은 영감에 휩싸여 이성과 사회의 윤리를 넘어서는 무아경(無我境)에 도달하게 된다. 그리하여 소크라테스는 이성의 토대 위에 세워진 도시국가에서 예술은 금지되어야 한다는 모진 결론을 내렸다.

고대 그리스의 아리스토텔레스에서 프랑스 현대시의 대표작가인 폴 발레리에 이르는 ‘시학’은 예술을 바라보는 소크라테스적 시선에 반대한다. 이들에 따르면 예술이 비-이성적 혹은 반-이성적 열광을 전달하는 것이라는 소크라테스의 전제는 애초에 틀렸다. 예술은, 다만 사회의 여러 스승들과 선배들을 통해 배우고 창조하고 감상하는 의식적이고, 안전한 유희의 영역이다. 이러한 예술관은 실상 여러 모로 사회에 도움이 되어 왔다.

하지만 이들의 안전한 예술관에 대해 반대하는 시각이 다시 생겨난다. 이것은 근대적 주체가 형성되는 과정에서 예술로 대변되는 감성이 그 위력을 나타냈기 때문이다. 생각을 통해 행위 하나하나를 지도하고 통제하려는 이성적 주체가 출현하면서, 비로소 그 강력한 적대자인 감성이 등장한다. 감성은 주체 속에 똬리를 튼 이성의 외부다. 감성은 이성이 빛날 때 나타나는 그림자이자 어둠이다.

18세기 낭만주의의 향취를 가득 담은 헤르더의 ‘미학’, 낭만주의를 가로질러 넘어서고자 했던 니체와 같은 이들의 ‘힘’의 사유는 바로 이런 맥락에서 나타난다. 이들의 사유의 근저에는 이성적인 주체의 무의식 속에서 자라나 이성을 유혹하고 끝내는 배반하며 분출하는, 예술의 경험이 놓여 있다. 헤르더는 이를 ‘어두운 힘’이라고, 니체는 ‘모든 기호적 힘(symbolic power)의 완전한 파괴’라고 불렀다. 이들의 사유에 따르면 예술은 이성의 성공을 위한 이성의 기획을 끊임없이 교란시키고 변형시킨다. 예술은 이성적 기획을 장식하는 승리의 종소리가 아니라, 도리어 이성적 기획의 파탄을 알리는 죽음의 종소리, 새로운 기획안을 제출하라는 경고의 종소리 역할을 한다.

 

 

예술이 지닌 ‘힘’과 이성적인 ‘능력’의 관계

 

그런데 이성을 전복시키는 이러한 ‘힘의 정체’는 무엇인가? 저자는 ‘힘’을 ‘능력’의 반대에 놓인 것이라 한다. ‘능력’을 갖는다는 것은 ‘주체’가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숙련된 기술과 판명한 원리 아래 이루어지는 작업의 창조자. 그는 주어진 과제를 성공으로 이끌어내고, 관객과 스승들이 상찬하는 우리가 찾는 바로 그 사람이다. 모두가 ‘좋다’고 부르는 것을 언제나 새롭고 독특하게, 매번 반복할 수 있는 ‘능력자’이다.

‘힘’ 역시 능력처럼 주체 안에서 실현된다. 그러나 힘은 능력의 대척점에 서 있다. 능력은, 주체의 의식적인 자기통제를 통해 행위하는 것이다. 그러나 힘은 무의식적으로, 자연적으로 발휘되며, 결코 주체나 주체의 의식에 의해 통제되지 않는다. 능력은, 사회의 수용과 스승의 가르침 속에서 배워 나가는 것이다. 하지만 힘은 사람들이 능력을 갖기 전에 이미 소유하고 있는, 전(前)-주체적인 것이다. 능력은 사회에서 이미 가치 있다고 평가된 예술적 형식을 따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힘은 형식 이전의 근원이며, 따라서 형식을 갖지 않는 것이다. 능력은 행위의 성공으로 가는 길을 인도하지만, 힘의 효과는 미로 속에서 벌어지는 유희와도 같다. 능력은 우리를 사회 체제의 뛰어난 참가자가 되게 해주지만, 힘은 우리를 주체 이전의, 혹은 주체 너머의, 자의식 없는 활동자, 이성으로부터 분리된 창조자가 되게 해준다.

예술을 미학적 ‘힘’의 생성/전이로 묘사하는 이들은 그러므로 소크라테스를 따랐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소크라테스와는 달리 이들은 이 힘을 ‘긍정적’으로 평가했을 뿐만 아니라 더 깊숙하게 이해하고자 했다. 예술은 단순히 힘을 생성하고 전이하는 것만이 아니다. 예술은 능력을 힘으로 바꾸고, 힘을 다시 능력으로 바꿀 수 있는 것이다. 이미 사회적으로 수용된 양식을 전복시켜 기이하고 낯선 힘을 생성하고, 파괴적인 힘으로부터 세련된 기법을 추출해 내는, 예술은 그러므로 모순적인 역능이다. 그것은 할 수 있는 것을 할 수 없는 것으로, 할 수 없는 것을 할 수 있는 것으로 만든다. 예술은 승리자의 능력도, 야만적인 힘의 유희도 아니다. 그것은 능력으로부터 힘을 발생시키고, 힘으로부터 능력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자유 : 미학적 주체가 꿈꾸는 유일한 목표


예술은 곧 우리 내면이 지닌 힘의 반영이다. 그것은 주체의 이름으로 쓰인 사회적 구습(舊習)을 부수고, 미래를 불러들이는 자유의 힘이다. 물론 생동감 넘치는 힘들의 유희처럼 이성의 실천 행위도 ‘인간적인 자유’에서 유래한다. 이성적 실천과 감성적 분출은 모두 ‘인간적인 자유’의 두 모습이다. 무겁고도 가벼운 자유의 두 상반된 이미지이다. 우리는 어느 것도 포기할 수 없다. 하나를 포기하면 다른 하나도 반드시 잃게 된다. 행위의 성공을 위한 실천 이성은 다양한 지식을 축적하고, 축적한 지식으로 알지 못하던 것들을 포섭하려 한다. 쌓여 있는 지식을 통해 엄중한 상황을 정확히 판단하려다 보니 항상 무겁고 진지하기만 하다. 반면 미학적 힘들은 실패조차 즐겁게 감내할 수 있게, 축적된 모든 것들을 비워 낸다. 지금까지 사람들은 성공을 위해 이성적 자유만을 주목해 왔다. 저자는 여기서 미학적 자유의 실천적 함의에 주목한다. 이미 알고 있던 지식을 없던 것처럼 만드는 미학적 자유가 없다면, 이성은 지식의 비대함으로 도리어 갇혀 있게 될 것이다. 미학적 자유는 인간을 새로운 “미학적 주체”로 탄생시키며, 예술은 우리 내면의 힘을 자극시켜 세상과 자기 자신을 변화하도록 만든다.

저자가 결론에서 말하듯 “미학의 마지막 말은 인간적인 자유다”. 사회적 실천은 합의된 관행과 양식을 전제로 한다. 예술가는 여기에 힘을 개입시키고, 그 힘으로부터 새로운 가능성을 만들어 내고자 한다. 예술가가 사회의 아웃사이더일 수밖에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예술가의 역할은 사회적인 가치를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미덕이든 이윤이든 그 가치를 전복시켜 자유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예술과 미적인 것이 고도 자본주의 문화 산업의 위대한 주인공이 되었을 때, 예술은 자신이 서 있는 무대를 배반하든지, 힘을 포기해야 한다. 물론 모든 이는, 모든 ‘예술가’는 두 극단 사이에서 자신의 삶을 살아가게 된다. 그러나 예술은, 우리 내면의 근저에 놓인 힘은, 이성적 사회를 넘어서는 폭발이고, 무대 자체를 전복하고 변화시키는 것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미학적 주체의 인간적 자유가 출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