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유럽사회의 제도·문화 어휘 연구 2 권력, 법, 종교
프리즘 총서 13
에밀 뱅베니스트 지음, 김현권 옮김 | 2016-03-10 | 440쪽 | 37,000원
구조주의 언어학의 거장 에밀 뱅베니스트의 고전적 저서 <인도유럽사회의 제도·문화 어휘 연구>가 그린비출판사 ‘프리즘 총서’의 열세번째 책으로 번역·출간되었다. 이 책에서 저자는 서구 사유의 기원을 형성하는 인도유럽의 주요 어휘들을 분석한다. 하나의 단어가 어떻게 탄생하였는지, 탄생 후 다른 어휘 및 문화들과 상호작용하며 어떻게 변모하였는지를 밝히고 있는 이 책은 서구의 문화와 사상의 기원을 이해하는 단초를 제공해 줄 것이다.
저·역자 소개 ▼
저자 에밀 뱅베니스트 Emile Benveniste
인도유럽어 비교언어학자이자 일반언어이론가로서, 1902년 오스만 제국 알레포의 스파라드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으며 1927년 프랑스 국적을 취득했다. 실뱅 레비의 추천으로 언어학자 페르디낭 드 소쉬르의 제자인 앙투안 메이예의 제자가 되었고, 고대 페르시아어, 소그드어, 아베스타어, 아르메니아어 등을 연구했다. 비교언어학자로서 다양한 언어와 접하며 점차 일반언어이론에까지 관심을 가졌다. 『고대 페르시아어 문법』(Grammaire de vieux perse, 1931, 앙투안 메이예와의 공저), 『소그드어 문법』(Grammaire sogdienne, 1929), 『소그드어 텍스트』(Textes sogdiens, 1940), 『아베스타어 부정법』(Infinitifs avestiques, 1935), 『오세트어 연구』(Etudes sur la langue ossete, 1959), 『고대 이란어의 칭호와 고유명사』(Titres et noms propres en iranien ancien, 1966), 『인도유럽사회의 제도·문화 어휘 연구 1, 2』(Le vocabulaire des institutions indo-europeens, 1969), 『일반언어학의 여러 문제 1, 2』(Problemes de linguistique generale, 1966/1974) 등의 저서를 남겼다. 1969년 뇌졸중에 걸려 교수직을 사임했으나, 같은 해에 국제기호학회의 초대 회장으로 선출되어 1972년까지 역임했다. 1976년 파리에서 7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지금까지도 인도유럽어 비교문법의 역사에서 소쉬르-메이예의 연구 노선을 계승하는 가장 탁월한 학자로 인정받고 있다.
역자 김현권
1975년에 서울대 문리대 언어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문학 석박사과정을 마쳤다. 파리7대학(DEA)에서 수학한 바 있으며 2002년에는 초빙교수로서 파리13대학 전산언어학연구소에서 연구했다. 한국언어학회장을 역임하기도 했으며 현재 한국방송통신대학 명예교수로 일하고 있다. 역서로는 소쉬르의 『일반언어학 강의』와 『일반언어학 노트』, 벵베니스트의 『일반언어학의 여러 문제 1, 2』와 『인도유럽사회의 제도·문화 어휘 연구 1, 2』, 『마지막 강의』, 바르트부르크의 『프랑스어 발달사』, 로지의 『프랑스어 사회언어학사』, 렌프류의 『언어고고학』 등이 있고, 「소쉬르와 역사언어학의 전통」, 「동사의 다의와 전자사전에서의 표상」, 「소쉬르의 『인도유럽어 원시 모음체계 논고』와 『일반언어학 강의』의 방법론적 비교」, 「소쉬르의 《일반언어학강의》와 《제3차 강의노트》의 비교」 등 다수의 논문들을 발표했다. 또한 방송대학 대학원(아프리카 불어권 언어문화학과)에 있으면서 『아프리카 지정학』, 『아프리카 아이덴티티: 2,000개의 언어를 둘러싼 발전과 통합의 과제』, 『한 권으로 읽는 아프리카』를 번역 출간했다.
차례 ▼
| 2권 |
권력, 법, 종교
제1편 / 왕권과 그 특권
1장 rex
2장 xSay-와 이란의 왕권
3장 그리스의 왕권
4장 왕의 권위
5장 명예와 명예의 표시
6장 마법적 힘
7장 kr?tos
8장 왕권과 귀족
9장 왕과 그 백성
제2편 / 법
1장 themis
2장 dike
3장 ius와 로마에서의 서약
4장 *med-와 척도의 개념
5장 fas
6장 censor와 auctoritas
7장 quaestor와 *prex
8장 그리스에서의 서약
제3편 / 종교
1장 신성
2장 신주의 헌납
3장 희생제사
4장 서원
5장 기도와 간구
6장 징조와 전조의 라틴 어휘
7장 종교와 미신
옮긴이 해제
인도유럽어 목록표
인용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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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추천글 ▼
언어의 계보와 구조의 해석을 통해
이해하는 서구 사유의 기원
구조주의 언어학의 관점에서 인도유럽어족의 언어적 뿌리를 찾다!
오늘날 우리는 ‘인문’이 화두가 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곳곳에서 인문학적 지식이 대중교양의 기초로 이해되고, CEO들조차 ‘인문적’ 경영을 말하지 않을 수 없는 시대가 오고 있다. 하지만 ‘인문학’의 붐이라 할 수 있는 이 시대에 직면해 사람들을 주저케 하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인문이 무엇인가’라는 근원적인 물음일 것이다. 삶과 노동의 총체적 위기의 시기라 불리는 신자유주의 시대에 있어서 ‘인문’학이란 어떤 것일까? 그것은 어떤 문화적 맥락으로부터 와서 어떠한 변화를 겪고 있을까?
그린비출판사에서는 신자유주의 시대에 비판적 인문학의 복원을 지향하는 ‘프리즘 총서’의 열세 번째 책으로 프랑스 구조주의 언어학의 고전인 에밀 뱅베니스트의 『인도유럽사회의 제도·문화 어휘 연구』(Le Vocabulaire des Institutions indo-europeennes, 1969) 개정판을 출간했다. 이 책은 지난 1999년 아르케출판사에서 초판이 출간되었던 것을 개정하여 내는 것으로, 서구의 삶과 문화를 규정하는 핵심 어휘들을 중심으로 그 어원적 뿌리와 구조적 변화를 분석함으로써 오늘날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서구 문화와 그 인문학적 사유의 근간을 파헤치고자 한다.
인도유럽어족의 어원적 기원을 찾아 가는 이 책에서 주목할 점 중 하나는 저자가 언어의 역사를 그 당대의 언어패러다임과의 연관 속에서 구조적으로 분석해 간다는 점이다. 오늘날 ‘부’, ‘교환’, ‘혼인’, ‘도시’, ‘권위’라고 부르는 단어들은 어떤 기원과 역사적 변화 속에서 형성된 것일까? 뱅베니스트는 이 어휘들을 그와 인접한 다른 어휘들과 비교하고, 상이한 여러 어족의 동의어들 속에서 그 구체적인 의미맥락을 밝혀내면서 분석한다. 그러한 분석을 통해 저자가 돌아가는 곳은 고대 인도유럽어족의 문화와 제도이며, 이것을 통해 드러내는 것은 서구사상의 기초를 제공하는 정치.종교.문화.경제 어휘들의 탄생 맥락이다.
이러한 뱅베니스트의 연구는 오늘날 조르조 아감벤(Giorgio Agamben)을 비롯해 근대성의 정치적/문화적 구조를 분석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중요한 학문적 준거점으로 기능하고 있다. 근대성이라는 것이 근본적으로 서구 문화에 그 정신사적 뿌리를 내리는 것인 한, 서구의 언어구조를 분석하는 뱅베니스트의 이 연구는 현대문명의 이해를 위한 학문적 디딤돌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더욱 정교해진 번역과 깔끔해진 편집체제를 기반으로 복간되는 『인도유럽사회의 제도·문화 어휘 연구』를 통해 현대 인문학의 중요한 쟁점들이 한국에서 보다 깊고 치밀하게 이해되는 통로가 열리길 기대해 본다.
언어의 계보에 담긴 서구 정신의 기원
현대철학으로부터 다시 읽는 뱅베니스트
뱅베니스트에 따르면 ‘서약’(serment)한다는 것과 ‘신성케 한다’(sacer)는 것은 깊은 연관을 갖는다. 인류학과 정신분석학 연구에서, 사케르(sacer)라는 라틴어는 ‘신성케 한다’와 ‘저주한다’는 두 가지의 상반된 뜻을 갖는 것으로 알려져 있고, 이는 오늘날 이탈리아의 철학자 조르조 아감벤의 연구를 통해 일정하게 수정?보완되어 현대 정치철학의 핵심 개념인 주권의 구조를 밑받침하는 단어로 주목받고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 단어가 ‘서약’의 의미와 연관되는 것일까?
‘신성하다’라는 것은 인간의 영역 너머에 있다는 것으로, 인간의 문명 구조 속에는 놓일 수 없는 어떤 것을 의미한다. 이 때문에 ‘사케르’는 동시에 인간 영역으로부터의 추방의 근거가 되는 ‘저주하다’를 뜻하기도 하는데, 뱅베니스트에 따르면 바로 이 지점이 ‘서약하다’와 ‘신성케 하다’가 연루되는 지점이다.
이 ‘신성화’는 산스크리트어 ?ap-(저주하다)에서 파생된 용어 ?apatha(거짓 맹세)와 슬라브어군의 고대 슬라브어 kl?ti(저주하다)에서 다시 나타난다. kl?ti s?는 러시아어 kljast(저주하다), kljast’sja(서약하다)처럼 (서약하다)를 의미한다. 이 표현은 서약의 현상학을 잘 드러낸다. 서약자는 거짓 맹세를 하는 경우에는 저주를 받으며, 그는 가공할 힘이 있는 물건이나 물체에 손을 대고 자신의 서약 행위를 성대한 의식으로 만든다(본서 2권 2편 8장).
서약한다는 것은 저주받을 위험 앞에 놓인다는 것이고, 서약을 어긴다는 것은 사케르한(신성하고 저주받은) 사람이 되어 공동체(혹은 정치체)로부터 추방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요컨대, ‘서약’과 ‘신성함’은 서구 정치/공동체 질서의 핵심적 논리를 드러내는 것으로, 뱅베니스트는 이를 ‘법’을 다루는 2권의 2편에서 ‘Themis’(가족법), ‘Dek?’(가족 간 관계에 대한 법), ‘Auctoritas’(권위) 등과 더불어 세밀히 연구한다.
서구의 총체적인 문화 구조를 향한 언어학적 해석의 모험
책의 전체 구성에서 볼 수 있듯, 이 책은 법적 구조와 연관된 어휘뿐 아니라 경제, 친족관계, 사회적 지위, 왕권, 종교 등에 이르기까지 서구 정신사를 아우를 수 있는 포괄적인 어휘 목록들을 그 대상으로 한다. 오늘날의 ‘경제’ 관념과는 다른 호메로스 시대의 ‘부’의 개념은 어떤 것이었을까(1권 1편 3장)? ‘가부장제’라는 개념처럼 아버지의 권위 및 혈통적 계보와 연결되는 어휘들이 어머니의 계보에서 파생된 어휘 목록에는 없었을까(1권 2편 2장)? 도시를 지칭하는 그리스와 로마의 어휘들(각각 polis, urbs), 그리고 시민을 지칭하는 그 각각의 어휘들(각각 polet?s, ciuitas)은 어떤 기원과 의미맥락을 갖는 것일까(1권 3편 6장)?
주제별로 총 2권 각 3편의 체제로 구성된 이 책에서 각 주제들은 그리스어, 라틴어, 게르만어, 베다 산스크리트어 등의 대응어들 속에서 비교?분석되고, 호메로스, 타키투스, 헤로도토스 등의 작품, 그리고 성경 구문의 인용 속에서 그 충실한 의미맥락을 드러낸다.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각 장의 분석들이 나름의 독립적 주제를 담고 있으면서도 전체적으로 하나의 지도처럼 서구 정신의 구조를 비춰 준다는 점이다.
인간의 총체적 현상에 주목하는 언어학의 혁신
인간이 살면서 만들어 낸 문화에 대한 이러한 인종지학적 의미론은 인간의 발화행위와 개념적 공간이 구성하는 우주관을 밝혀 줄 수도 있다. 뱅베니스트는 고대 구술사회가 만들어 낸 독특한 언어표현 양식의 분석을 통해 고대 사회에서 인간의 발화행위가 갖는 사회·문화 제도적 의미를 발견해 낸다.(「옮긴이 해제」)
앞서 봤듯, 이 연구는 서구 정신의 기원을 조명할 수 있는 매우 포괄적인 영역들을 망라하고 있다. 그러나 이 연구의 포괄성은 비단 범위나 인용 자료의 포괄성에 한정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뱅베니스트는 무엇보다 고대 인도유럽어족의 언어를 그 발화행위가 만들어 내는 의미작용 속에서 구조적으로 이해하려 했다. ‘하나의 어휘와 그 유사 어휘군이 어떤 의미론적 자장 속에서 탄생하고 변화했는가’라는 질문을 담은 이 연구는 언어학 연구를 동시에 인문학 연구 전반의 문제틀과 함축적으로 연결시키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바로 이러한 점에서 뱅베니스트의 연구가 갖는 함의는 더욱 두드러진다. 이 한국어 개정판의 출판을 통해 인문학 기초 연구와 현대 철학의 쟁점들이 더욱 깊이 있게 논의되길 기대한다.
이해하는 서구 사유의 기원
구조주의 언어학의 관점에서 인도유럽어족의 언어적 뿌리를 찾다!
오늘날 우리는 ‘인문’이 화두가 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곳곳에서 인문학적 지식이 대중교양의 기초로 이해되고, CEO들조차 ‘인문적’ 경영을 말하지 않을 수 없는 시대가 오고 있다. 하지만 ‘인문학’의 붐이라 할 수 있는 이 시대에 직면해 사람들을 주저케 하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인문이 무엇인가’라는 근원적인 물음일 것이다. 삶과 노동의 총체적 위기의 시기라 불리는 신자유주의 시대에 있어서 ‘인문’학이란 어떤 것일까? 그것은 어떤 문화적 맥락으로부터 와서 어떠한 변화를 겪고 있을까?
그린비출판사에서는 신자유주의 시대에 비판적 인문학의 복원을 지향하는 ‘프리즘 총서’의 열세 번째 책으로 프랑스 구조주의 언어학의 고전인 에밀 뱅베니스트의 『인도유럽사회의 제도·문화 어휘 연구』(Le Vocabulaire des Institutions indo-europeennes, 1969) 개정판을 출간했다. 이 책은 지난 1999년 아르케출판사에서 초판이 출간되었던 것을 개정하여 내는 것으로, 서구의 삶과 문화를 규정하는 핵심 어휘들을 중심으로 그 어원적 뿌리와 구조적 변화를 분석함으로써 오늘날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서구 문화와 그 인문학적 사유의 근간을 파헤치고자 한다.
인도유럽어족의 어원적 기원을 찾아 가는 이 책에서 주목할 점 중 하나는 저자가 언어의 역사를 그 당대의 언어패러다임과의 연관 속에서 구조적으로 분석해 간다는 점이다. 오늘날 ‘부’, ‘교환’, ‘혼인’, ‘도시’, ‘권위’라고 부르는 단어들은 어떤 기원과 역사적 변화 속에서 형성된 것일까? 뱅베니스트는 이 어휘들을 그와 인접한 다른 어휘들과 비교하고, 상이한 여러 어족의 동의어들 속에서 그 구체적인 의미맥락을 밝혀내면서 분석한다. 그러한 분석을 통해 저자가 돌아가는 곳은 고대 인도유럽어족의 문화와 제도이며, 이것을 통해 드러내는 것은 서구사상의 기초를 제공하는 정치.종교.문화.경제 어휘들의 탄생 맥락이다.
이러한 뱅베니스트의 연구는 오늘날 조르조 아감벤(Giorgio Agamben)을 비롯해 근대성의 정치적/문화적 구조를 분석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중요한 학문적 준거점으로 기능하고 있다. 근대성이라는 것이 근본적으로 서구 문화에 그 정신사적 뿌리를 내리는 것인 한, 서구의 언어구조를 분석하는 뱅베니스트의 이 연구는 현대문명의 이해를 위한 학문적 디딤돌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더욱 정교해진 번역과 깔끔해진 편집체제를 기반으로 복간되는 『인도유럽사회의 제도·문화 어휘 연구』를 통해 현대 인문학의 중요한 쟁점들이 한국에서 보다 깊고 치밀하게 이해되는 통로가 열리길 기대해 본다.
언어의 계보에 담긴 서구 정신의 기원
현대철학으로부터 다시 읽는 뱅베니스트
뱅베니스트에 따르면 ‘서약’(serment)한다는 것과 ‘신성케 한다’(sacer)는 것은 깊은 연관을 갖는다. 인류학과 정신분석학 연구에서, 사케르(sacer)라는 라틴어는 ‘신성케 한다’와 ‘저주한다’는 두 가지의 상반된 뜻을 갖는 것으로 알려져 있고, 이는 오늘날 이탈리아의 철학자 조르조 아감벤의 연구를 통해 일정하게 수정?보완되어 현대 정치철학의 핵심 개념인 주권의 구조를 밑받침하는 단어로 주목받고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 단어가 ‘서약’의 의미와 연관되는 것일까?
‘신성하다’라는 것은 인간의 영역 너머에 있다는 것으로, 인간의 문명 구조 속에는 놓일 수 없는 어떤 것을 의미한다. 이 때문에 ‘사케르’는 동시에 인간 영역으로부터의 추방의 근거가 되는 ‘저주하다’를 뜻하기도 하는데, 뱅베니스트에 따르면 바로 이 지점이 ‘서약하다’와 ‘신성케 하다’가 연루되는 지점이다.
이 ‘신성화’는 산스크리트어 ?ap-(저주하다)에서 파생된 용어 ?apatha(거짓 맹세)와 슬라브어군의 고대 슬라브어 kl?ti(저주하다)에서 다시 나타난다. kl?ti s?는 러시아어 kljast(저주하다), kljast’sja(서약하다)처럼 (서약하다)를 의미한다. 이 표현은 서약의 현상학을 잘 드러낸다. 서약자는 거짓 맹세를 하는 경우에는 저주를 받으며, 그는 가공할 힘이 있는 물건이나 물체에 손을 대고 자신의 서약 행위를 성대한 의식으로 만든다(본서 2권 2편 8장).
서약한다는 것은 저주받을 위험 앞에 놓인다는 것이고, 서약을 어긴다는 것은 사케르한(신성하고 저주받은) 사람이 되어 공동체(혹은 정치체)로부터 추방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요컨대, ‘서약’과 ‘신성함’은 서구 정치/공동체 질서의 핵심적 논리를 드러내는 것으로, 뱅베니스트는 이를 ‘법’을 다루는 2권의 2편에서 ‘Themis’(가족법), ‘Dek?’(가족 간 관계에 대한 법), ‘Auctoritas’(권위) 등과 더불어 세밀히 연구한다.
서구의 총체적인 문화 구조를 향한 언어학적 해석의 모험
책의 전체 구성에서 볼 수 있듯, 이 책은 법적 구조와 연관된 어휘뿐 아니라 경제, 친족관계, 사회적 지위, 왕권, 종교 등에 이르기까지 서구 정신사를 아우를 수 있는 포괄적인 어휘 목록들을 그 대상으로 한다. 오늘날의 ‘경제’ 관념과는 다른 호메로스 시대의 ‘부’의 개념은 어떤 것이었을까(1권 1편 3장)? ‘가부장제’라는 개념처럼 아버지의 권위 및 혈통적 계보와 연결되는 어휘들이 어머니의 계보에서 파생된 어휘 목록에는 없었을까(1권 2편 2장)? 도시를 지칭하는 그리스와 로마의 어휘들(각각 polis, urbs), 그리고 시민을 지칭하는 그 각각의 어휘들(각각 polet?s, ciuitas)은 어떤 기원과 의미맥락을 갖는 것일까(1권 3편 6장)?
주제별로 총 2권 각 3편의 체제로 구성된 이 책에서 각 주제들은 그리스어, 라틴어, 게르만어, 베다 산스크리트어 등의 대응어들 속에서 비교?분석되고, 호메로스, 타키투스, 헤로도토스 등의 작품, 그리고 성경 구문의 인용 속에서 그 충실한 의미맥락을 드러낸다.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각 장의 분석들이 나름의 독립적 주제를 담고 있으면서도 전체적으로 하나의 지도처럼 서구 정신의 구조를 비춰 준다는 점이다.
인간의 총체적 현상에 주목하는 언어학의 혁신
인간이 살면서 만들어 낸 문화에 대한 이러한 인종지학적 의미론은 인간의 발화행위와 개념적 공간이 구성하는 우주관을 밝혀 줄 수도 있다. 뱅베니스트는 고대 구술사회가 만들어 낸 독특한 언어표현 양식의 분석을 통해 고대 사회에서 인간의 발화행위가 갖는 사회·문화 제도적 의미를 발견해 낸다.(「옮긴이 해제」)
앞서 봤듯, 이 연구는 서구 정신의 기원을 조명할 수 있는 매우 포괄적인 영역들을 망라하고 있다. 그러나 이 연구의 포괄성은 비단 범위나 인용 자료의 포괄성에 한정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뱅베니스트는 무엇보다 고대 인도유럽어족의 언어를 그 발화행위가 만들어 내는 의미작용 속에서 구조적으로 이해하려 했다. ‘하나의 어휘와 그 유사 어휘군이 어떤 의미론적 자장 속에서 탄생하고 변화했는가’라는 질문을 담은 이 연구는 언어학 연구를 동시에 인문학 연구 전반의 문제틀과 함축적으로 연결시키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바로 이러한 점에서 뱅베니스트의 연구가 갖는 함의는 더욱 두드러진다. 이 한국어 개정판의 출판을 통해 인문학 기초 연구와 현대 철학의 쟁점들이 더욱 깊이 있게 논의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