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 망각

블랑쇼 선집 4

모리스 블랑쇼 지음, 박준상 옮김 | 2008-01-20 | 168쪽 | 16,000원


『기다림 망각』(L’attente L’oubli, 1962)은 블랑쇼가 허구(fiction)의 형식으로 쓴 마지막 작품이다. 철학적 성찰과 단편 형식의 문학적 구조가 어우러진 독특한 형식의 책이다. 어느 호텔에 한 여자가 머물고 있었고, 이웃한 방에 한 남자가 들어와 여자에게 신호를 보내 그의 방으로 오게 했고, 두 남녀가 함께 시간을 보낸다는 것이 줄거리다. 이 작품에서 사건·인물·상황은 모두 소거된 채 극도로 추상화(인물의 생김새, 나이, 출신지역 등이 나오지 않는다)되어 있다. 책 안에 ‘현전’, ‘시간’, ‘공간’, ‘존재’, ‘죽음’ 등의 철학 개념들이 그대로 노출되어 있지만, 작품 자체는 철학적·개념적인 정식에 들어앉혀지기에 저항한다. 이 책에서 블랑쇼는 아무것도 주장하지 않고 가르치지 않는다.


저·역자 소개 ▼

저자  모리스 블랑쇼 Maurice Blanchot
1907년 프랑스 켕 출생, 2003년 이블린에서 사망. 젊은 시절 몇 년간 저널리스트로 활동한 것 이외에는 평생 모든 공식 활동으로부터 물러나 글쓰기에 전념하였다. 작가이자 사상가로서 철학·문학비평·소설의 영역에서 방대한 양의 글을 남겼다. 문학의 영역에서는 말라르메를 전후로 하는 거의 모든 전위적 문학의 흐름에 대해 깊고 독창적인 성찰을 보여 주었고, 또한 후기에는 철학적 시론과 픽션의 경계를 뛰어넘는 독특한 스타일의 문학작품을 창조했다. 철학의 영역에서 그는 존재의 한계·부재에 대한 급진적 사유를 대변하고 있으며, 한 세대 이후의 여러 사상가들에게 큰 영향을 주는 동시에 그들과 적지 않은 점에서 여러 문제들을 공유하였다. 주요 저서로 『토마 알 수 없는 자』, 『죽음의 선고』, 『원하던 순간에』, 『문학의 공간』, 『도래할 책』, 『무한한 대화』, 『우정』, 『저 너머로의 발걸음』, 『카오스의 글쓰기』, 『나의 죽음의 순간』 등이 있다.

역자  
박준상
프랑스 파리 8대학교 철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사단법인 철학아카데미 상임위원이며 전남대학교 철학연구교육센터 연구원으로 있다. 지은 책으로 『바깥에서: 모리스 블랑쇼의 문학과 철학』(2006), 『빈 중심: 예술과 타자에 대하여』(2008)이, 옮긴 책으로 모리스 블랑쇼·장-뤽 낭시의 『밝힐 수 없는 공동체/마주한 공동체』(2005)가, 논문으로 「원음악」(原音樂), 「메를로-퐁티에 비추어 본 미적 경험과 예술」 등이 있다.
차례 ▼

『모리스 블랑쇼 선집』을 발간하며

 

『기다림 망각』

I

II

 

옮긴이 해제_언어의 현전

모리스 블랑쇼 연보

모리스 블랑쇼 저작목록

편집자 추천글 ▼

문학작품의, 나아가 글쓰기라는 예술의 추상화

 

“모리스 블랑쇼의 책들에는 어떤 음조, 어떤 목소리가 담겨 있으며, 절대적으로 유일한 세계로 다가가는 방법이 제시되어 있다. 나는 어떤 다른 작가에서도 그러한 것들을 본 적이 없다. 그 목소리를 들어 본 사람은 그것을 결코 잊어버릴 수 없을 것이다. 그 목소리는 20년 이상 내 곁에 머물러 있었다. 내 내면세계의 가장 아래에 자리하고 있는 이 음악을 전해 준 블랑쇼에게 감사드린다. 그의 책들은 책 그 이상이다. 그의 책들은, 정확히 말해, 영혼 자체의 전투이다.”_폴 오스터

 

음악적 추상화 속에 완성되는 공동의 텍스트

 

『기다림 망각』(1962)은 블랑쇼가 허구(fiction)의 형식으로 쓴 마지막 작품이다. 이 책에서 철학적 성찰이 작품을 구성하는 중요한 한 축을 이룸에는 틀림이 없지만, 그렇다고 철학 소설이라 부르기는 어렵다. 설정된 허구의 시공간에서 허구의 두 남녀가 나누는 대화에 기반한 허구의 이야기가 전체의 구조다. 어느 호텔에 한 여자가 머물고 있었고, 이웃한 방에 한 남자가 들어와 여자에게 신호를 보내 그의 방으로 오게 했고, 두 남녀가 함께 시간을 보낸다는 것이 줄거리다. 이 작품에서 사건·인물·상황은 모두 소거된 채 극도로 추상화(인물의 생김새, 나이, 출신지역 등이 나오지 않는다)되어 있다. 『기다림 망각』의 형식은 어떠한 형태로든 눈에 보이게 드러나는 독특한 것이 아니다. 책 안에 ‘현전’, ‘시간’, ‘공간’, ‘존재’, ‘죽음’ 등의 철학 개념들이 그대로 노출되어 있지만, 작품 자체는 철학적·개념적인 정식에 들어앉혀지기에 저항한다. 이 책에서 블랑쇼는 아무것도 주장하지 않고 가르치지 않는다. 이 책은 작가의 ‘쓰는’ 행위인 동시에, 독자의 ‘읽는’ 행위에 의해 완성되는 ‘공동의’ 텍스트이다. 이 책의 형식은 미리 정해져서 작품의 주제를 담아 놓은 틀이 아니다. 그 형식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어떤 경험을 포착하기 위해서, 그 어떤 경험을 전하기 위해서 저자가 낚아챘던 단어들 하나하나가 결합되어 나중에 형성된다. 그것도 책 안이 아니라 책 바깥의 독자 안에서. 블랑쇼는 극단적인 추상화를 통해 독자가 책에 쓰여져 있는 단어들로부터 눈을 돌려서 자신 안에서 다시 쓰여져 가는, 그려져 가는 어떤 흔적(어떤 스크래치 또는 어떤 떨림)을 ‘읽을 수’ 있도록, ‘문학의 공간’을 책 바깥으로 이동시켜 놓는다. 독자에게는 저자가 썼지만, 독자 자신 안에서 흩어져 가는 단어들이 남긴 흔적을 읽는 행위가, 즉 단어들이 사라져 가면서 남긴 음악을 듣는 행위가 요구된다. 이것이 소설의 추상화가 심화되어 이르게 된 음악적 추상화다.

 

 

수동성만이 존재 이해를 가능케 한다

 

이 책에 등장하는 ‘그녀’는 ‘그’에게 자기 자신에 대해 말하지 않으려 애쓰면서, 또한 그가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기(그리고 자신을 받아들이기)를 바란다(“들으세요, 다만 들으세요.”). 말함으로써, 또한 말하지 않음으로써 ‘그녀’가 목소리를 통해 자신을 드러내기를 ‘기다리는’ 동안 ‘그’는 그 드러남을 보고, 듣고, 느끼고, 망각하면서 그녀의 존재를 느끼게 된다.

 

▶ 망각, 존재의 사건

보이는 것이 그저 보여지기만 하는 상황을 벗어나서, 그 존재가 우리 안에 흔적으로 스며들어 무언가를 느끼게 하는 보이지 않는 원음악(源音樂)으로 울리는 사건, 그것이 존재의 사건, 망각이다. 블랑쇼가 말하는 망각은 무엇보다 존재의 경험 그 자체를 가리킨다(“존재는 또한 망각을 가리키는 하나의 이름이다”, 61쪽). 즉 망각이란, 관계에 언어가 개입하기 이전에 ‘보이는 대상’과 ‘보는 자’ 사이의 사건이다. 보이는 대상이 보는 주체와 관계를 맺고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감지할 수 있는가? 만약 보이는 것이 단지 보이는 그대로 ‘명석판명’하기만 하다면, 그것은 우리와 결코 관계를 맺지 못하고 영원히 대상으로만 남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보이는 객체를 보이지 않는 것(어떤 느낌, 정서)과 함께 경험한다. 즉 대상이 느낌을 통해 우리 내부로 들어오는 것이다. 그러나 그 느낌은 또한 사라져 간다. 그 사라져 가는 느낌은 우리 눈앞에서 증발하여 공백의 무로 돌아간다는 것은 아니다. 대상이 정서의 차원에서 변형되어 내면화된다는 것이다.

 

▶ 수동성의 주체성, 기다림

기다림은 수동적이다. 무엇보다 기다리는 일에는 기다리는 것 외에는 다른 것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망각은 고통스럽다. 보는 내가 “이것은 무엇이다”라고 대상을 규정할 수 있게 하는 모든 능동성을 포기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망각은 다만 그 존재가 ‘무엇인지’가 아니라 ‘어떠한지’ 감각하는 수동적인 행위, “어떠한 수동성보다도 더 수동적인”(레비나스) 행위이다. 따라서 한없이 망각 속으로 들어가기를 요구받은 그들은 언제나 대상 그 자체로부터는 돌아서서, 그 대상에 대한 말(규정, 파악)을 다시 지워야 한다. 그것은 봄을 통해 포착된 대상을 결코 언어로는 온전히 표현(재현)할 수 없다(“언어는 살해한다”―헤겔)는 사실을 자각할 때만이 가능하다. 즉 봄과 말함 사이에 언제나 건널 수 없는 간극이 있다. 그 심연 속에는 침묵과 결핍이 있다. 존재를 경험하려는 이는 그 심연 속에서 존재를 듣도록, 그 목소리를 통해 현전하는 가운데 존재를 감각하도록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글쓰기라는 내기

 

『기다림 망각』의 화자는 저자 블랑쇼도 아니고, 독자를 포함한 어느 누구도 아니다. 이 책은 분명 하나의 허구적 이야기지만, 곳곳에 ‘어떤 자’(quelqu’un)의 사유의 궤적이 그려져 있다. 그는 글 속의 1인칭 주인공이 아니라 인물과 독자를 매개하는 익명적인, 공동의 인물이다. 그 ‘어떤 자’는 말하기와 글쓰기란 어느 시점에서 결국 관계에 내맡겨질 수밖에 없음을 보여 준다. 주체는 궁극적으로 언어를 통해 ‘나’를 주장할 수 없다. 오히려 ‘내’가 바깥으로 뒤집어지고 ‘나’ 자신을 맡길 수밖에 없다. 근대성의 주체는 자기 자신을 보편의 기준으로 삼고, 타인들을 그 기준에 종속시킨다. 『기다림 망각』은 그 행위의 반대 행위를 보여 줌으로써, 모든 타자는 그 존재 자체로 유일무이하다는 것, 글쓰기란 그 하나의 타자에게 다가가 ‘나’를 뒤집어 열고 그에게 이후의 일을 맡길 수밖에 없는 하나의 내기, 즉 ‘주사위 던지기’와 같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