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기술 · 미디어 철학의 갈래들
철학의 정원 21
이광석 엮음, 김재희·심혜련·김성재·백욱인·이재현·홍성욱·이지언·오경미 지음 | 2016-06-30 | 308쪽 | 20,000원
21세기 사회는 클라우드 컴퓨팅, 사물인터넷, 바이오 공학 등 불과 십수 년 전까지만 해도 대중에게는 공상의 영역으로 여겨지던 기술들로 에워싸이고 있다. 이 책 『현대 기술·미디어 철학의 갈래들』은 그러한 기술 발전에 의해 오늘날 우리 삶이 어떻게 포획되고 있는지, 그 효과로서 우리는 어떤 인간 주체로 형성되고 있는지를 묻고, 또한 지금 기술과 인간이 맺고 있는 관계란 과연 적절한 것인지, 아니라면 어떤 방향성을 어떻게 추구해 나갈 것인지를 궁구한 아홉 개의 시선을 담고 있다. 아홉 명의 국내 기술·미디어 연구자들이 각각 한 명씩 우리 현실에 중요한 의미를 던지는 철학자를 선정해 그들의 사유를 풀어내고 이해와 수용의 맥락을 짚는다. 이 책에서 독자들은 상업주의적 자장과 엘리트 관료의 구상에서 작동하는 기술적 대상들이 오랫동안 대다수 우리를 기술에 대한 예속적 지위에 묶어 왔음을 확인하는 한편, 또한 우리가 어떻게 과학 기술을 포용하고 기술적 대상과 인간의 공생을 구상할 수 있을지에 대한 중요한 시사점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저·역자 소개 ▼
현재 서울과학기술대학교 IT정책대학원 디지털문화정책 전공 교수로 재직 중이다. 기술철학, 디지털 이론, 미디어·예술 행동주의, 테크놀로지와 노동, 빅데이터 감시 등의 주제를 연구하고 있다.
저자 김재희
현재 이화여자대학교 이화인문과학원 HK 연구교수로 재직 중이다. 포스트휴머니즘과 기술정치철학 연구를 하고 있다.
저자 심혜련
현재 전북대학교 과학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발터 벤야민, 매체철학, 미학 등을 주요 연구 주제로 하고 있다.
저자 김성재
현재 조선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커뮤니케이션 이론과 매체철학, 매체미학, 소리 커뮤니케이션을 연구하고 있다.
저자 백욱인
현재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기초교육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인지자본주의에 관한 정치경제학 비판과 미디어 문화사를 연구하고 있다.
저자 이재현
현재 서울대학교 언론정보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기술철학, 디지털 미디어와 문화, 알고리즘 분석, 그리고 미디어 수용자 조사 분석이 주요 연구 분야다.
저자 홍성욱
현재 서울대학교 자연과학대학 생명과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현대 사회에서 과학 기술이 낳는 여러 논쟁과 위험에 대해서 연구하고 있다.
저자 이지언
현재 조선대학교 미술대학 시각문화큐레이터학과 초빙교수로 재직 중이다. 기술철학, 미학, 예술철학을 중심 연구 주제로 삼고 있다.
저자 오경미
현재 여성문화이론연구소에서 연구와 활동을 하고 있고 서울과학기술대학교 IT정책전문대학원 디지털문화정책과에서 박사 과정을 밟고 있다.
차례 ▼
들어가는 글 : 기술철학의 동시대적 맥락화(이광석)
1부 미디어·기계-인간의 앙상블
1장_인간과 기술의 공생이 우리의 미래를 개방한다 : 질베르 시몽동의 새로운 휴머니즘(김재희)
2장_기술복제의 시대와 그 이후 : 발터 벤야민의 예술과 아우라에 대한 사유(심혜련)
3장 테크노코드와 커뮤니케이션 혁명 : 빌렘 플루서의 기술적 형상과 코무니콜로기(김성재)
4장 SNS시대의 미디어철학 : 마셜 매클루언과 인터넷 미디어의 미래(백욱인)
2부 기술의 사회적 구성과 실천
5장_시간, 기억, 기술 : 베르나르 스티글레르의 기술철학(이재현)
6장_테크노사이언스에서 ‘사물의 의회’까지 : 브뤼노 라투르의 기술철학(홍성욱)
7장_테크노젠더와 몸의 미학 : 도나 해러웨이의 사이보그(이지언)
8장_여성과 과학 기술 화해시키기 : 주디 와이즈먼의 테크노페미니즘(오경미)
9장_기술의 민주적 합리화 : 앤드루 핀버그의 기술 비판과 대안적 실천(이광석)
필자 소개
편집자 추천글 ▼
알파고가 열어젖힌 인공지능의 시대!
철학은 기술과 인간의 미래에 대해 무엇을 말할 수 있는가?
2016년 3월, 구글이 만들어 낸 인공지능 알파고는 인류가 고안한 가장 복잡한 게임이라는 바둑에서 세계 최정상급 기사인 이세돌과 대결해 4승 1패의 완승을 거두었다. 본래 인간 문명의 소산인 기술이 어느새 인간 지성을 본질적으로 초월하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 준 사건으로서 이 사건을 바라본다면, 소비주의에 길들여지고 기술 발전에서 소외되어 온 일반 대중의 입장에서는 디스토피아적 전망을 떨쳐내기가 어렵다. 그러나 첨단 기술의 문제란 대개 거대 자본과 국가 정책의 테두리 안에 머무는 과학 기술 전문가들의 영역이라 치부되어, 기술 발전은 당장 재난을 초래하지 않는 한 반성의 대상이 되지 않고 다만 더 높은 수준으로의 도약이라는 단일 목적만이 이야기된다. 기술 변화의 거시적 결과를 예측하기 어려운, 그러나 고스란히 그것을 감당할 수밖에 없는 일반 대중들에게는 ‘더 나은 세상이 기다리고 있다’는 안심시키는 수사 정도가 주어질 뿐이다.
결국 지금 우리는 물어지지 않고 있는 질문들 앞에 서 있는 셈이다. 이 책 『현대 기술·미디어 철학의 갈래들』은 바로 그러한 질문들, 즉 기술이 오늘날 우리 삶을 어떻게 포획하고 있는지, 그 효과로서 우리는 어떠한 인간 주체로 형성되고 있는지, 지금 기술과 인간이 맺고 있는 관계란 과연 적절한 것인지, 아니라면 어떤 방향성을 어떻게 추구해 나갈 것인지를 궁구한 아홉 개의 시선을 담고 있다. 아홉 명의 국내 기술·미디어 연구자들이 각각 한 명씩 우리 현실에 중요한 의미를 던지는 철학자를 선정해 그들의 사유를 풀어내고 이해와 수용의 맥락을 짚는다. 이 책에서 독자들은 상업주의적 자장과 엘리트 관료의 구상에서 작동하는 기술적 대상들이 오랫동안 대다수 우리를 기술에 대한 예속적 지위에 묶어 왔음을 확인하는 한편, 또한 우리가 어떻게 과학 기술을 포용하고 기술적 대상과 인간의 공생을 구상할 수 있을지에 대한 중요한 시사점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인간과 기술적 대상의 ‘앙상블’은 가능할 것인가?
‘기술적 대상’이라는 표현은 직접적으로 프랑스의 기술철학자 질베르 시몽동(『기술적 존재들의 존재 양식에 대하여』)을 연상하게 한다. 1989년에 세상을 떠난 이 철학자는 오히려 21세기에 들어 미출간 강의록이 속속 발간되며 후대의 기술철학자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다. 이 책의 첫 장인 「인간과 기술의 공생이 우리의 미래를 개방한다: 질베르 시몽동의 새로운 휴머니즘」(김재희)은 그럼에도 아직 국내 독자들에게는 생소한 학자인 시몽동 사유의 의의를 그의 텍스트의 대한 섬세한 내재적 이해를 바탕으로 풀어내며, 또한 허버트 마르쿠제, 장 보드리야르, 폴 비르노, 브뤼노 라투르 등의 철학자, 나아가서는 현대 미디어아트 예술가들까지도 그를 적극적으로 참조하고 있는 이유를 짚는다. 즉 그의 철학이 현대 정보 기술 사회에 추구되어야 할 새로운 휴머니즘의 전망을 선구적으로 보여 준다는 것이다. 그의 구상 안에서 기술적 대상들은 단순한 예속적 도구이기를 그치고 인간과 공존하며 조화(앙상블)를 이루는 존재론적 지위를 얻는다. 이를 통해 기술과 자연의 대립 위에 성립한 기존의 휴머니즘의 갱신을 도모하는 것의 시몽동의 철학적 기획이라는 것이다.
기술과 자연의 이항 대립 구도를 변형시키려 했던 선구적 철학자로서는 또한 발터 벤야민을 들 수 있다. 이어지는 「기술복제의 시대와 그 이후: 발터 벤야민의 예술과 아우라에 대한 사유」(심혜련)에 따르면 벤야민은 우선 자연을 제1자연과 제2자연으로 나누어 기술이 두 번째 차원의 자연을 이룬다는 독특한 관점을 제시했다. 그리고 기술 역시 제1기술과 제2기술로 구분되어, 전자가 기술을 대상화하는 위계적이고 인간중심주의적인 의미에서의 기술이라면, 후자는 인간이 그것과 조화롭게 기예를 펼쳐 나가는 놀이와 해방의 기술로서 제시된다. 벤야민은 특히 미디어 영역에서 이와 같은 구분의 생겨나는 것을 첨예하게 인식했던 철학자이다. 심혜련은 이러한 벤야민의 이론 틀을 통해 전위적 예술 정신의 출현을 설명하고 ‘포스트휴먼’ 논의에까지 벤야민 이론이 적용될 잠재력을 가진다는 것을 입증해 보이고 있다.
3장 「테크노코드와 커뮤니케이션 혁명: 빌렘 플루서의 기술적 형상과 코무니콜로기」(김성재)는 이 책에서 다뤄지는 사상가들 중에서도 도드라지게 다가올 기술 사회에 대한 낙관적 비전을 가졌던 철학자 빌렘 플루서의 사상을 점검한다. 즉 그의 낙관이 작동하기 위한 토대가 무엇인지를 묻는 것이다. 흥미롭게도 기술이 예술을 매개함으로써 낙관적인 비전을 열어 갈 수 있다고 본 데서 플루서는 벤야민과 강하게 공명한다. 그는 텔레비전과 같은 대중 미디어가 전체주의적 일방성을 띠고서 작동하는 것과 달리, 다가올 디지털 사회는 창조적인 ‘신혁명가’들이 아래에서부터 민주적 소통 체계를 만들어 나감으로써 대중에 대한 ‘기구-전체주의’의 속박을 깨는 것이 가능하다고 주장하는데, 김성재의 글은 특히 이런 그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플루서 독창의 코드 이론과 그 틀로 본 인류 문화사를 개괄해 보여 주고 있다.
한편 아마도 역사상 가장 유명한 기술·미디어 철학자일 마셜 매클루언 또한 기술에 대한 낙관적 비전을 가진 이였다. 4장 「SNS시대의 미디어철학: 마셜 매클루언과 인터넷 미디어의 미래」(백욱인)는 우선 매클루언이 새로운 미디어 환경의 대표 이론가로 ‘대중화’되면서 추종자만큼이나 많은 오해를 떠안게 되었음을 말하고, 그의 다채로운 저작과 활동으로부터 주요한 연구 방법론과 개념들을 추출해 낸다. 매클루언은 그때까지의 개념 중심의 미디어 이해를 벗어나 감각 인지 능력과의 관계에서 미디어를 이해하는 길을 제시했고, 그로부터 후대의 ‘미디어 생태학’이 태동하게 되었다. 그는 적극적으로 기술이 가져오는 변화의 가치를 평가했고, 당대에는 부족한 근거를 상상력으로 메우는 듯했던 ‘예언’들 또한 미디어와 이용자를 구분할 수 없는 SNS 시대의 풍속도를 선취했던 것이다.
이상(1부)의 철학자들은 ‘기술의 존재론적 지위’를 질문하고, 기술과 인간의 공존, 기술 및 미디어를 매개로 한 인간 감각의 확장 등 기술이 열어 주는 가능성을 적극적으로 전유하려 기획할 때 끊임없이 참조하게 될 철학자들이라 할 만하다.
‘기술은 사회적 힘관계 속에서 구성된다’
위에서 언급된 철학자들은 모두 20세기 기술 사회의 발전이 막 가속도를 붙여 가고 있던 시기를 배경으로 활약했던 철학자들이다. 때문에 그 현대적 함의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현실적인 기술·미디어 환경의 문제들에 개입하고 변화를 이끌어 내는 데에는 그 활용성이 다소 원론적 차원에 한정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책의 2부는 현실의 계급·계층, 정치경제, 메이저리티와 마이너리티의 구분 위에서 사회적으로 구성되고 실천되는 기술의 문제를 다루는 현대 기술·미디어 철학자들을 다룸으로써 한 발짝 더 현실로 다가선 기술철학의 문제의식을 펼쳐내고 있다.
먼저 5장 「시간, 기억, 기술: 베르나르 스티글레르의 기술철학」(이재현)은 ‘감옥에서 철학자가 된’ 것으로도 유명한 베르나르 스티글레르를 다루는데, 국내에는 자크 데리다와의 공저서가 하나 번역되어 있을 뿐, 국제적 명성에 상응할 만한 소개 작업이 아직 이루어져 있지 않기에 값진 글이라 하겠다. 스티글레르는 스승인 데리다의 ‘그라마톨로지’(기록학) 논의에 의거해 자신의 기술론을 전개하면서, 산업화·외재화된 자본주의적 기술 체계를 해체하고 인간의 내재적 기억과 감각, 상상력을 되찾기 위한 ‘해독 능력’(literacy)과 ‘쓰기 감각’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6장은 과학기술학(Science and Technology Studies)의 거두 브뤼노 라투르를 다룬 홍성욱의 글이다(「테크노사이언스에서 ‘사물의 의회’까지: 브뤼노 라투르의 기술철학」). 그는 과학 기술의 발전에서 초래되는 온실가스나 유전자변형식품, 핵폐기물 등의 문제를 바로보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의사결정 과정에서 당연하다는 듯 배제해 왔던 ‘비인간 행위자’(세균, 화합물 등과 같은)의 문제를 적절하게 다룰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 기술과 과학적 사실이 혼종화하며 경계가 불분명해지는 현실을 가리키는 테크노사이언스의 개념과 이런 현실이 초래하는 혼종적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정치적 해결책으로서의 ‘사물의 의회’를 제안한다.
7장 「테크노젠더와 몸의 미학: 도나 해러웨이의 사이보그」(이지언)는 ‘포스트휴먼’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는 오늘날 ‘인종-젠더-자본-기술’의 혼종 관계에 초래되고 있는 변화를 성찰하는 데 매우 유용한 이론 틀로서 주목받는 도나 해러웨이의 사유를 조명한다. 그는 1985년 「사이보그 선언문」을 통해 이미 기존의 인간 종에 대한 관념은 형해화되고 새로운 생명공학적 주체들이 출현하기 시작했음을 선언하며 사이버네틱(cybernetic)과 유기체(organism)를 합성한 용어인 ‘사이보그’로 그들을 지칭했다. 이러한 존재들에 의해 기존의 젠더 개념 또한 변형되리라는 것이 ‘테크노젠더’ 개념이 전하는 함의이다. 즉 포스트휴먼 시대의 기계와 결합된 신체, 혹은 사이버 공간 속의 신체라면 여성과 남성의 생물학적 구분이 기존과 같은 의미를 지닐 수 없게 될 것이며 나아가서는 근대적 휴머니즘관 전체의 재고가 불가결하다는 함의를 읽어 낼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젠더와 기술의 문제는 8장 「여성과 과학 기술 화해시키기: 주디 와이즈먼의 테크노페미니즘」(오경미)으로 이어진다. 여기서는 주디 와이즈먼의 테크노페미니즘 논의가 중점적으로 소개되는데, 이는 이제까지 있어 온 페미니즘의 기술관이 혐오증(에코페미니즘)과 애호증(사이버페미니즘) 사이에서 양극화되어 왔음을 지적하며 양자를 지양하는 관점으로서 제시된 것이다. 이 관점 속에서 여성과 기술이 관련 맺는 양상의 젠더 권력적 측면, 그리고 유동하는 젠더의 사회 계급적 측면이 함께 조망될 것으로 기대된다.
마지막으로 9장 「기술의 민주적 합리화: 앤드루 핀버그의 기술 비판과 대안적 실천」(이광석)은 기술 비판과 실천 이론을 구상하는 데 있어 핀버그의 이론이 갖는 시사점들을 고찰한다. 핀버그는 허버트 마르쿠제의 제자로 알려져 있는데, 그는 기술 코드가 갖는 지배와 해방의 양가적 계기를 포착해 기술의 성찰적 설계를 도모하고 기술민주주의의 가능성을 찾는 기획을 발전시켜 왔다. 헤게모니 기술의 재전유, 일반 민주주의 전략과 병행하는 전문화된 기술 민주화 운동 등으로 기술 지배의 현실을 ‘해킹’을 고무하는 핀버그의 사유는 오늘날 기술로부터 소외되고 또 그 현실을 자연스럽게 여기기에 이른 대중이, 다시금 아래로부터 대안적 기술 세계를 설계해 나가는 데 있어서 중요한 참조점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