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다고지 50주년 기념판
그린비 크리티컬 컬렉션 5
파울루 프레이리 지음, 남경태 옮김 | 2018-09-30 | 256쪽 | 15,000원
비판적 교육사상의 선구자였던 파울루 프레이리의 『페다고지』는 1968년 포르투갈어로 처음 발간된 이후 전 세계 교육학계의 고전으로 자리 잡았다. 그동안 30주년 기념판을 번역 출판해 온 그린비출판사가 2018년 새롭게 발간된 50주년 기념판 역시 번역 출간하여 독자들에게 소개한다. 30주년 기념판에 「파울루 프레이리와 페다고지」를 실었던 도나우두 마세두가 변화된 현실에 맞게 새로 쓴 서문 「50주년 기념판 발간에 부쳐」를 실었으며, 이라 숄의 후기 「투쟁은 계속된다」와 놈 촘스키 등과 나눈 「현대 학자들과의 인터뷰」를 만나 볼 수 있다. 괄목할 만한 기술적 진보의 이면에 여전히 자행되고 있는 비인간적 교육, 경쟁 위주 교육, ‘은행 저금식’ 교육이 우리를 절망시키는 이 시대, 『페다고지』는 여전히 ‘희망의 교육학’을 위한 선언문이자 실천의 지침서이다.
저·역자 소개 ▼
브라질을 대표하는 교육사상가이자 진보적 학자로, 민중교육의 고전으로 평가받는 『억압받는 이들과 페다고지(Pedagogy of The Oppressed)』의 저자로 유명하다. 브라질 북동부의 빈민지역인 헤시피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민중의 어려운 삶과 고통, 억압받는 현실을 목도하였고 그로부터의 해방을 꿈꾸었다. 1959년 논문 「브라질의 현실과 교육」으로 헤시피 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1964년에 군부 쿠데타가 일어나기 전까지 브라질 민중의 문해교육에 힘썼다. 군사정권하에서는 반체제 인사라는 이유로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석방 이후 1979년까지 망명생활을 하며 전 세계 민중의 문해교육 운동을 이끌었고 각종 교육 프로그램에 동참했으며 세계 28개 대학에서 명예교수를 지냈다. 브라질 귀국 이후에는 노동자당(PT) 결성에 참여했으며 루이자 에룬지나(Luiza Erundina)가 이끈 상파울루시 노동자당 행정부에서 교육사무국장으로 시의 교육개혁을 이끌었다. 1997년 치명적인 심장 발작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교육사상은 『억압받는 이들과 페다고지』 이외에도 『교육과 의식화』, 『우리가 걸어가면 길이 됩니다』, 『프레이리의 교사론』, 『망고나무 그늘 아래서』, 『자유의 교육학』 등 20여 권의 저서에 담겨 있다.
역자 남경태
대표적인 인문학 전문 번역가이자 저술가이다. 그는 학문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듦으로써 국내 대중 교양서의 새 지평을 열었다. 20여 년의 작가 생활 동안 39권의 저서와 106권의 번역서를 세상에 내놓았고, 2014년 별세했다. ‘종횡무진 인문학자’, ‘우리 시대 최고의 르네상스맨’, ‘종합 지식인’이라는 그의 별칭이 말해주듯 그가 전하는 지식의 세계는 넓고 풍요롭다. 과거와 현재, 동양과 서양, 역사와 철학을 종횡무진한 그의 책들은 독자들에게 경계 간의 울타리를 허물고 인문학이라는 숲을 볼 수 있도록 돕는다. 평생 읽고 쓰는 삶을 살며 혼자 공부하는 것의 즐거움과 자유로움을 누려온 그이기에, 지금 ‘혼자 공부’하려는 이들에게 그의 책은 든든한 안내자가 되어줄 것이다. 지은 책으로 《혼자 공부하는 이들을 위한 최소한의 지식: 역사》, 《개념어 사전》, 《한눈에 읽는 현대 철학》, 《철학 입문 18》, 《종횡무진 한국사 1, 2》, 《종횡무진 서양사 1, 2》, 《종횡무진 동양사》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는 《30년 전쟁》, 《페다고지》, 《비잔티움 연대기 1~6》 등이 있다.
차례 ▼
저자 서문
제1장
피억압자를 위한 교육의 정당성 / 억압자와 피억압자의 모순 및 그것을 극복하는 방법 / 억압과 억
압자 / 억압과 피억압자 / 해방 : 선물이나 자기성취가 아닌 상호 과정
제2장
억압의 도구로 이용되는 ‘은행 저금식’ 교육 개념, 그 전제와 비판 / 해방의 도구로 이용되는 문제
제기식 교육 개념, 그 전제 / ‘은행 저금식’ 교육 개념과 교사 - 학생 모순 / 문제 제기식 교육 개념과 교사 - 학생 모순의 해소 / 세계를 매개로 하는 상호 과정 / 미완성의 존재로서의 인간, 미완성의 의식, 완성에 이르려는 노력
제3장
대화 : 자유를 실천하는 교육의 본질 / 대화와 토론 / 대화와 교육 내용의 모색 / 인간 - 세계의 관
계, ‘생성적 주제’, 자유를 실천하는 교육 내용 / ‘생성적 주제’의 탐구와 그 방법론 / ‘생성적 주제’의 탐구를 통한 비판적 의식의 자각 / 탐구의 여러 단계
제4장
반(反)대화와 대화 : 대립하는 문화 행동 이론의 두 가지 토대, 억압 도구로서의 반대화와 해방 도구로서의 대화 / 반대화적 행동 이론과 그 특징 : 정복, 분할 통치, 조작, 문화 침략 / 대화적 행동 이론과 그 특징 : 협동, 단결, 조직, 문화 통합
“투쟁은 계속된다”(A luta continua): 『페다고지』 후기 / 이라 숄
현대 학자들과의 인터뷰
1970년 영어판 초판 머리말
편집자 추천글 ▼
페다고지, 비판적 교육학의 살아 있는 고전!
― 더 완숙하고, 덜 추하며, 더 정의로운 세계를 위한 교육을 말하다!!
『페다고지』(Pedagogy of the Oppressed; 억압받는 자들을 위한 교육학)는 이미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은, 아니 어느 한때 금서 목록의 한 칸을 차지했을 만큼 잘 알려진 책이다. 이 책은 197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까지 암울했던 군사독재 시기 금서 목록에 올라 비합법적으로 유통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진보적 지식인, 노동자, 학생들에게 민중의 의식을 깨우치는 책이자 교육자 자신이 교육받는 책으로 널리 읽힌 바 있다. 합법적으로 유통되는 시기가 오자 그 기세가 조금은 꺾였지만, 그래도 꾸준히 읽히며 이제 가히 교육학의 ‘고전’ 반열에 올랐다고 할 만하다. ‘페다고지’(pedagogy)라는 말은 본디 ‘교육학’을 뜻하는 일반명사이지만, 오히려 이 책을 먼저 떠올리는 사람들이 더 많을지도 모른다.
이번에 국내 독자들에게 새로 선보이는 판본은 2018년 미국에서 발간된 『페다고지』 50주년 기념판의 한국어판이다. 이번 판본에서는 도나우두 마세두가 새로 쓴 서문과 함께 이라 숄의 후기, 「현대 학자들과의 인터뷰」가 추가되었고, 추가된 부분은 영미문학 전문 번역가인 허진의 번역으로 만나 볼 수 있다.
아직 ‘자유의 실천’이 되지 못한 교육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교육의 중립을 이야기한다. 전교조가 처음 결성될 때도 사람들은 “학생들이 중립적인 사고를 하도록 인도해야지 의식화하는 것은 편향된 교육”이라 말하며 “인간화 교육”을 외치는 많은 교사들을 강단에서 몰아냈다. 그러나 1970년에 발간된 『페다고지』 초판의 서문을 쓴 리처드 숄은 이렇게 말한다. “교육 과정에서 중립적인 것이란 없다. 교육은 젊은 세대를 기존 체계의 논리에 통합시키고 따르도록 만드는 도구로 기능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자유의 실천’으로서 현실에 대해 비판적이고 창조적으로 대응하고 세계의 변혁에 참여하는 방법을 발견하기 위한 수단으로 기능할 뿐이다.”
교육이 궁극적으로 목표하는 것이 무엇인가? 다수의 아이들을 희생시켜서라도 소수의 아이들이 더 나은 계층으로 편입하도록 도와주는 것인가? 아니면 아이들 하나하나가 진정한 한 사람의 “인간”으로 자라게 하는 것인가? 이 질문의 답은 의심의 여지 없이 명확해 보이지만 현실은 그 답과는 반대의 길을 가고 있다. 대학 입학이 이후의 삶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가 되고, 서울대와 비서울대, 명문대와 비명문대, 대졸자와 비대졸자가 끊임없이 구분되는 사회에서 행해지는 교육의 목표가 무엇인지는 자명하다. 그리고 이런 사회 분위기 속에서도 “인간화 교육”(인간화는 프레이리 교육 철학의 주요 개념이기도 하다)을 외치는 선생님들은 무능력한 선생님으로 간주되고 있다.
프레이리는 『페다고지』에서 억압자의 교육에서는 학생들이 세계 바깥에 있는 하나의 대상이 되어 사물로 전락하는 반면, 피억압자의 교육에서는 학생들이 세계 속에서 세계와 더불어 한 인격체가 된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렇게 학생들과 교사들이 세계 속에서 주체와 주체로 만날 때 교육은 비로소 ‘자유의 실천’이 된다고 역설한다.
여전히 존재하는 억압과 피억압
프레이리는 말년에 무한 경쟁을 추구하는 신자유주의 사상이 팽배하고 있는 것을 우려했다. 그가 『페다고지』 50주년 기념판에 서문을 쓴 도나우두 마세두 매사추세츠 대학 교수와 함께 작업한 책에서 한 말을 들어보자.
“우리는 금세기 말(20세기 말)에 전개되고 있는 신자유주의적 숙명론, 즉 다수의 삶을 희생시키면서 소수가 대부분의 이득을 취하는 시장 윤리에 대해 결단코 반대해야만 한다. 이것은 바꿔 말해서 경쟁할 수 없는 자는 죽는다는 윤리다. 그것은 잘못된 윤리며, 사실상 윤리가 부재한 윤리다. 나는 계속 인간으로서 살아갈 것을 주장한다.” (Paulo Freire and Donaldo Macedo, 「Ideology Matters」)
프레이리의 사망 후 신자유주의가 세계를 휩쓴 속도는 가히 상상 이상이었다. 그리고 우리 사회에서는 기회의 평등 속에 자유로운 경쟁이라는 원리가 만고불변의 진리로 굳어진 듯하다. 하지만 기회의 균등과 자유경쟁이 과연 의미 있는 구호일까? 물론 눈에 보이는 억압은 사라졌다. 그러나 프레이리는 계급이 없어졌다고 이제 그런 구분은 무의미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브라질 북동부의 어느 가족이 쓰레기 더미에서 먹을거리를 찾고, 잘려진 사람의 가슴 살덩이를 일요일 점심으로 먹을 만큼 끔찍한 생활조건에 대해서는 무시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프레이리가 이 책에서 언급하고 있는 것처럼 다음과 같은 신화가 여전히 힘을 발휘하는 한 누구도 이제 억압은 사라졌다고 쉽게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모든 사람이 원하는 대로 자유롭게 일하며, 따라서 직장 상사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언제든 직장을 떠나 다른 일자리를 찾을 수 있다는 신화, 근면하기만 하면 누구나 기업가가 될 수 있다는 신화, 노점상도 대규모 공장주에 못지않은 기업가라는 신화, 모든 초등학생 중에 대학까지 진학하는 학생은 극히 일부인데도 교육의 보편적 권리가 보장되고 있다는 신화, ‘내가 누군지 알아?’ 하는 식의 말이 여전히 통용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개인이 평등하다는 신화, …… 억압자는 근면하며 피억압자는 게으르고 부정직하다는 신화, 피억압자는 본성적으로 열등하며 억압자는 우월하다는 신화 …… ”. 우리의 현실은 여전히 『페다고지』의 사상을 필요로 한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인간다움을 회복하여 보다 사랑하기 쉬운 세상을 다 함께 만들어 가길 바랐던 프레이리의 염원은 여전히 유효한 것이다.
희망을 주는 교육학, 『페다고지』
우리는 무한경쟁의 시장 속에 내던져져 있고, 우리의 아이들은 여전히 입시지옥 속에서 괴로워하고 있다. 대화적인 교육을 실천하기엔 아직도 교사 대 학생의 비율은 턱없이 높고, 문제제기식 교육을 실천하기엔 교사들을 억압하는 환경이 너무나 공고하며, 프레이리가 말한 대로 세계를 이름 짓는 주체로 학생들을 거듭나게 하는 의식화 교육은 아직도 빨간색을 연상시킨다. 하지만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역설적이게도 우리는 『페다고지』를 ‘희망의 교육학’으로 부를 수 있다. 한 사회의 미래는 자라나는 아이들에게서 볼 수 있다. 지금의 우리 아이들에게서 볼 수 있는 우리의 미래는 어떤 모습인가? 무한경쟁 속에서 친구를 누르고 명문대에 진학하는 것만이 인생의 목표가 되어 버린 아이들, 돈만을 인생에서 쟁취해야 할 가장 큰 가치로 아는 아이들, 이런 아이들에게 인간과 세계에 대한 따스한 시선을 기대한다는 게 과연 가능한 일일까? 아이들은 어른을 보고 자란다. 어른들은 아이들의 끔찍한 폭력과 이기심에 혀를 차지만 아이들을 그렇게 만든 책임은 분명 어른들에게 있다. 의식화되지 못한 채, 즉 자신과 세계의 관계를 깨닫지 못한 채 은행 저금식 교육만 받은 아이들이 이런 모습을 보이는 건 어쩌면 너무 당연한 일이 아닐까? 프레이리가 제기하는 사랑과 신뢰를 바탕으로 한 대화, 그리고 그 대화를 통해 이루어지는 문제제기식 교육이 우리에게 희망의 교육학으로 다가오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