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피노자와 표현 문제
철학의 정원 30
질 들뢰즈 지음, 현영종·권순모 옮김 | 2019-05-20 | 432쪽 | 32,000원
『스피노자와 표현 문제』는 들뢰즈의 박사학위 논문인 『차이와 반복』의 부논문으로, 국내에는 2003년 이진경, 권순모 번역으로 출간되었던 『스피노자와 표현의 문제』의 전면 개정판이다. 이전에는 그 누구도 주목하지 못했던 “표현” 개념을 스피노자의 텍스트에서 발굴해 낸 들뢰즈는 표현 개념에 비추어 스피노자의 철학이 일의성의 철학, 긍정과 기쁨의 철학임을 해명하고자 했다.
저·역자 소개 ▼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나, 파리 소르본 대학에서 페르디낭 알키에, 조르주 캉길렘, 장 이폴리트 등을 사사했다. 1969년 미셸 푸코의 뒤를 이어 파리8대학 철학과의 철학사 주임교수가 되었고 이후 동일성과 초월성에 반하는 차이와 내재성의 사유를 통해 기존 철학사를 독창적으로 재해석했다. 주요 저서로 『니체와 철학』, 『프루스트와 기호들』, 『베르그송주의』, 『차이와 반복』, 『의미의 논리』 등이 있으며, 펠릭스 가타리와 함께 『앙띠 오이디푸스』, 『천 개의 고원』, 『철학이란 무엇인가』 등을 썼다.
역자 현영종
서울대학교 컴퓨터공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철학과 대학원에서 스피노자에 대한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대학에서 철학 강의를 하고 있고, <수유너머104>에서 다양한 삶의 방식을 배우고 경험하고 있다.
역자 권순모
서울대학교 국사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석사과정을 수료했다. 옮긴 책으로는 보이지 않는 위원회의 『코뮨이 돌아온다 : 우리 친구들에게』(2019, 그린비)가 있고, 현재는 들뢰즈의 『서한집』을 번역하고 있다.
차례 ▼
서론: 표현의 역할과 중요성
1부. 실체의 삼항관계
1장. 수적 구별과 실재적 구별
2장. 표현으로서의 속성
3장. 신의 이름들과 속성들
4장. 절대적인 것
5장. 역량
2부. 평행론과 내재성
6장. 평행론에서의 표현
7장. 두 가지 역량과 신 관념
8장. 표현과 관념
9장. 부적합성
10장. 데카르트에 반대하는 스피노자
11장. 내재성과 표현의 역사적 요소들
3부. 유한양태이론
12장. 양태의 본질 : 무한에서 유한으로의 이행
13장. 양태의 실존
14장. 신체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15장. 세 가지 질서와 악의 문제
16장. 윤리적 세계관
17장. 공통 개념
18장. 3종 인식을 향하여
19장. 지복(至福)
결론 : 라이프니츠와 스피노자의 표현 이론(철학에서 표현주의)
부록
옮긴이 후기
편집자 추천글 ▼
긍정과 기쁨의 철학,
들뢰즈의 스피노자 읽기
『스피노자와 표현 문제』는 질 들뢰즈(Gilles Deleuze)의 박사학위 논문인 『차이와 반복』의 부논문으로, 국내에는 2003년 이진경, 권순모 번역으로 출간되었던 『스피노자와 표현의 문제』의 전면 개정판이다. 이전에는 그 누구도 주목하지 못했던 “표현” 개념을 스피노자의 텍스트에서 발굴해 낸 들뢰즈는 표현 개념에 비추어 스피노자의 철학이 일의성의 철학, 긍정과 기쁨의 철학임을 해명하고자 했다.
“어떻게 스피노자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20세기 전반에 스피노자는 데카르트를 추종하는 자, 특별할 것 없는 합리주의 철학자였다. 하지만 1968년 무렵에 프랑스의 몇몇 뛰어난 학자들에 의해서, 스피노자는 급진적이고 이단적인 사상가로서 그야말로 “재발견”되었다. 그 이후 스피노자의 철학은 학계와 대중들에게 급격한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어떻게 스피노자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현대 철학자 지젝은 들뢰즈의 스피노자 연구가 불러온 파급력을 이렇게 야단스레 언급하기도 했다. 다른 한편 이 책은 들뢰즈 현대 철학에 대한 좋은 입문서이기도 하다. 가타리와 함께 하기 이전에도 그는 절대적인 내재성이나 일의성에 천착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개념을 극단까지 밀고 나간 철학자가 스피노자이다. 감응, 역량, 관계 등 들뢰즈의 철학적 무기들은 스피노자를 읽으면서 다듬어졌다.
어떤 철학이 지닌 힘이란 그것이 창조하거나 그 의미를 갱신한 개념에 의해서 측정될 수 있다. 들뢰즈는 과거의 철학을 읽을 때마다 그 철학의 이념을 담는 개념을 포착해 낸다, 가령 흄의 주체성, 베르그손의 기억, 라이프니츠의 주름 등은, 철학사 연구자들이 충분히 주의를 기울이지 못하고 그냥 지나쳤던 개념들이다. 그것들에 의해 새롭게 조명된 고전들은 현행적인 철학으로 변모하게 된다. 『스피노자와 표현 문제』에서는 “표현”(expression) 개념이 문제다. 이 개념은 스피노자의 존재론, 인식론, 개체론 전체를 관통한다. 1부 “실체의 삼항관계”, 2부 “평행론과 내재성” 3부 “유한양태이론”에서 표현 개념은 각기 다른 수준에서 다루어진다. 신은 초월적이지 않고, 내재적이다. 그래서 존재하는 모든 것은 신의 표현이다. 다음으로 관념은 그 대상의 결과도 아니고, 대상을 모방하지도 않는다. 관념은 표현적이다. 마지막으로 개체의 수준에서도 표현 개념은 작동한다. 정신이나 신체, 그 어떤 것도 다른 것보다 더 우월하지 않다. ‘나’라는 개체를 구성하는 정신과 신체는 별개의 실체들이 아니라 동일한 것의 두 표현이기 때문이다.
윤리학과 접합된 스피노자의 형이상학
들뢰즈는 스피노자의 표현 이론 전체가 일의성을 위해 봉사한다고 결론을 내린다. 일의성이란 존재에 대한 순수한 긍정이고, 존재의 동등성에 대한 선언이다. 그런데 이러한 스피노자의 형이상학은 윤리학과 접합된다. 일의성에 따라 존재 사이에 질적 구별이 없다면, 선과 악도 있을 수 없다. 스피노자는 니체의 윤리학을 선취한다. 관습적이고 보편적인 명령에 불과한 도덕은 폐기되어야 한다. 대신 우리는 더 큰 기쁨을 산출할 수 있는 관계를 형성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스피노자의 철학은 긍정과 기쁨의 철학, 저 너머의 죽음이 아니라 지금 이곳의 삶에 대해 생각하는 철학이다.
『스피노자와 표현 문제』는 상당히 난해하다는 평판이 있다. 철학 전공자가 아니라면 실체, 속성, 양태 같은 추상적인 개념 속에서 헤매기 십상이다. 그래서 3부 “유한양태이론”, 특히 15장 “세 가지 질서와 악의 문제”나 “16장 “윤리적 세계관”부터 보는 것도 한 방법이다. 많은 이들을 충격에 빠뜨렸고 매료시켰던 스피노자의 불온한 “무도덕주의”가 구체적인 맥락 속에서 다루어진다. 이러한 결론을 미리 보고 대강의 방향을 잡는다면 책의 앞부분으로 돌아가도 한결 수월해질 것이다. 물론 이 책은 불친절한 책이다. 이 책은 학술 논문인 까닭에 저자는 근대 철학 연구자들을 그 독자로 상정하고 있고, 덕분에 상세한 설명을 생략하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스피노자나 데카르트의 주요 저작(대부분 한국어로 번역되어 있다)을 옆에 놓고 볼 필요가 있다. 들뢰즈가 축약해 놓은 부분을 풀어나가서 진도를 나가다 보면,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숨어 있음을 알아챌 수 있다.
이 책만 보면 스피노자는 데카르트의 철학을 전복한 자로 보인다. 그러면 스피노자와 데카르트 텍스트가 매우 유사하다는 사실을 자칫 놓치기 쉽다. 반대로 대개의 철학사 연구자들은 그 유사성 때문에 스피노자를 그저 데카르트주의자로 분류했다. 하지만 들뢰즈는 작은 차이들을 포착하는 데 탁월했다. 스피노자는 데카르트의 텍스트를 살짝 비틀어 놓는다. 들뢰즈는 스피노자의 의도를 간파하고, 매우 감탄스러운 방식으로 그것이 완전히 상반된 철학적 의미로 연결된다는 것을 보여 준다. 더불어 『스피노자와 표현 문제』가 논문이기 때문에 가지는 장점도 있다고 말하고 싶다. 우리는 적어도 형식적으로라도 들뢰즈의 주장과 그 근거가 무엇인지 재빨리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약간의 노력만 더 추가된다면 우리는 이 책을 들뢰즈의 다른 저서보다 쉽게 읽을 수 있고, 흥미진진하게 감상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