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모크리토스와 에피쿠로스 자연철학의 차이  맑스 박사 학위 논문 

그린비 크리티컬 컬렉션 2

카를 마르크스 지음, 고병권 옮김 | 2001-06-05 | 400쪽 | 23,000원


고대의 원자론을 다룬 맑스의 박사논문「데모크리토스와 에피쿠로스 자연철학의 차이」와 맑스가 이 시기 작성했던 고대 철학자들(주로 에피쿠로스 학파)에 대한 노트들을 번역한 책.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유물론의 고대적 원형이라 할 수 있는 원자론을 이해할 수 있으며, 데모크리토스나 에피쿠로스의 원자론뿐만 아니라 맑스의 유물론도 새로운 각도에서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저·역자 소개 ▼

저자  카를 마르크스 Karl Heinrich Marx    
1818년 5월 5일 독일 트리어에서 태어났다. 김나지움을 마치고 1835년에 본 대학에 진학해 법학을 전공했다. 아버지의 압박으로 베를린 대학으로 전학해 철학을 공부했다. 이곳에서 헤겔 철학을 연구하며 청년헤겔파 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진보적 성향이 덜한 예나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땄다. 1842년 <라인신문>에서 일하기 시작해 편집장이 되었다. 마르크스는 사설을 통해 프로이센 정부와 언론의 검열을 매섭게 비난했다. 그 결과 신문은 이내 폐간됐다. 1843년 프랑스 파리로 이주해 정치경제학과 프랑스혁명의 역사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이때 <경제학·철학 초고> <헤겔의 법철학 비판> 등의 원고를 썼다.
파리에서 프로이센 정부를 비판하는 글을 쓰다가 프랑스에서 추방되어 벨기에 브뤼셀로 이주했다. 이 무렵 <철학의 빈곤> <자유무역에 대하여>의 원고를 썼다. 1847년 파리에 거주하는 독일 출신 노동자를 중심으로 생겨난 조직 ‘정의 동맹’의 요청을 받고 강령에 해당되는 글을 작성했다. 바로 <공산당 선언>이다. 프랑스를 시작으로 유럽 전역에서 혁명이 일어나자 파리로 잠시 피신했다가 쾰른으로 돌아갔다. <신라인신문>으로 이름을 바꾸고 신문을 재발행하기 시작했다. <임금노동과 자본>은 노동자를 일깨우기 위한 글로, 이 신문에 다섯 편으로 나뉘어 실렸다. 정부 탄압을 받던 <신라인신문>은 이내 기소당해 마르크스는 추방 명령을 받고 영국 런던으로 망명했다. 이곳에서 어려운 생계를 꾸리며 경제학을 연구했다.
1851년 유럽 특파원으로서 영국을 비롯한 유럽 각국의 사정을 분석하는 기사와 사설을 기고하기 시작했다. 이후 몇 년간 <정치경제학 비판 요강> <정치경제학 비판> 등을 집필했다. 49세 되던 해에 《자본》이 출간됐다. 프랑스 파리에서 최초의 사회주의 자치정부인 파리 코뮌이 수립됐으나, 정부군 진압과 학살로 무너졌다. 마르크스는 파리 코뮌의 기록과 의의를 적은 《프랑스 내전》을 썼다. 국제노동자연맹을 이끌며 아나키스트파와 내분을 겪기도 하고, 독일사회주의 노동자당의 강령을 비판하는 등 사회적 활동을 이어 갔다. 1883년 3월, 엥겔스가 잠시 자리를 비운 새 조용히 세상을 떠났다. 

역자 
고병권
작가, 노들장애학궁리소 회원. ‘읽기’에 대한 열정을 가진 사람들의 모임 ‘읽기의집’에서 일명 ‘고집사’로 살림하며 지내고 있다. 주로 국가, 자본, 인간의 한계에 대해 공부하고 있다. 대학에서 화학을 전공했고, 대학원에 들어가서는 사회학을 공부했다. 1991년 마르크스의 《자본》을 처음 읽었고, 그 후 여러 번 다시 읽었으며, 다양한 공부 모임에서 《자본》 읽기 강의를 진행한 바 있다. 2016년 어느 공부 모임에서 열두 번에 걸쳐 이뤄진 《자본》 강의가 이 책의 뿌리가 되었다.
니체에 대한 깊은 애정과 이해를 담은 《니체, 천개의 눈 천개의 길》, 《니체의 위험한 책,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언더그라운드 니체》, 《다이너마이트 니체》, 현장에서 사람들을 만나며 삶과 철학의 관계를 고민한 《고추장, 책으로 세상을 말하다》, 《“살아가겠다”》, 《철학자와 하녀》, 《묵묵》, 대의제와 민주주의, 정치참여의 문제를 비판적으로 성찰한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점거, 새로운 거번먼트》 등 다양한 책을 썼다.
차례 ▼

제1부 데모크리토스의 에피쿠로스 자연 철학의 일반적 차이

1. 논문의 대상
2. 데모크리토스와 에피쿠로스 자연학의 관계에 대한 판단들
3. 데모크리토스와 에피쿠로스 자연철학의 동일성에 대한 난점들
4. 데모크리토스와 에피쿠로스 자연철학의 일반적 원리상의 차이
5. 결론

제2부 데모크리토스와 에피쿠로스 자연철학의 세부적 차이
1. 직선으로부터의 원자의 편위
2. 원자의 질들
3. 아토모이 아르케와 아토마 스토이케이아
4. 시간
5. 천문 대기 현상

부록 - 에피쿠로스 신학에 대한 플루타르크의 논쟁에 대한 비판
Ⅰ. 신에 대한 인간의 관계
Ⅱ. 개인적 불멸

노트 - 에피쿠로스 철학 노트
에피쿠로스 철학 첫번째 노트
에피쿠로스 철학 두번째 노트
에피쿠로스 철학 세번째 노트
에피쿠로스 철학 네번째 노트
에피쿠로스 철학 다섯번째 노트
에피쿠로스 철학 여섯번째 노트
에피쿠로스 철학 일곱번째 노트

- 역자서문
- 저자서문
- 저자서문 - 새로운 구상
- 칼 프리드리히 바흐만에게 보내는 편지
- 오스카 루드비히 베른하르트 볼프에게 보내는 편지
- 칼 맑스의 논문에 대한 추천사
- 역자 해제 : 맑스와 에피쿠로스
- 인명 사전
- 찾아보기

편집자 추천글 ▼


이 책은 고대의 원자론을 다룬 맑스의 박사논문 「데모크리토스와 에피쿠로스 자연철학의 차이」와 맑스가 이 시기 작성했던 고대 철학자들(주로는 에피쿠로스 학파)에 대한 노트들을 번역한 책이다. 사실 원자론은 우리에게 데모크리토스Democritus라는 사상가의 이름 이상으로 알려진 게 없다.

그동안 철학에서 원자론은 거의 다루어지지 않았으며, 원자란 기껏해야 자연과학자들이 연구하는 작은 입자의 이름이거나 막대한 파괴력을 지닌 폭탄에 붙은 이름이었을 뿐이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맑스의 박사논문을 통해 유물론의 고대적 원형이라 할 수 있는 원자론을 선명하게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이 책을 통해 새롭게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것은 데모크리토스나 에피쿠로스의 원자론만이 아니다. 바로 이 책에는 저자인 맑스의 유물론을 새롭게 해석할 수 있는 근거가 들어 있다. 프랑스의 맑스주의자 알튀세르Althusser는 말년에 자신이 ‘마주침의 유물론’이라고 불렀던 그 독특한 유물론의 전통을 원자론에 대한 맑스의 독해에서 찾아냈다. 그는 이러한 유물론이 그동안 맑스 유물론에 상시적으로 따라다녔던 변증법을 제거해 주는, 다시 말해서 ‘변증법적 유물론’과는 전혀 다른 철학을 가능하게 한다고 주장한 적이 있다.

이 새로운 유물론은 세계에 대한 어떤 목적론적 해석과도 대결한다. 그것이 천상의 신으로 불렸든, 절대정신으로 불렸든, 아니면 과학적 사회주의로 불렸든 세계를 어떤 하나의 본질로 환원해 버리는 시도에 대해서 반대하는 것이다. 맑스가 이 책에서 높이 평가하고 있는 에피쿠로스의 이론에 따르자면 세계란 원자들이 조성과 해체를 반복하면서 일어나는 사건들의 집합일 뿐이다.

세계의 단단한 질서나 구조, 혹은 목적처럼 보이는 존재들도 사실상 원자들의 복합체에 불과하며 단지 원자들의 조성이 응고되어 있기 때문에 그렇게 보이는 것이다. 하지만 다른 원자들은 어디서든 날아들기 마련이며 그렇게 되면 조성에 따라서는 아주 작은 충돌로도 견고한 구조가 붕괴되는 사건이 일어날 수 있다.


탈주하는 원자들이 만들어내는 새로운 세계

에피쿠로스는 직선으로 낙하하는 운동, 원자가 직선에서 벗어나면서 생기는 운동, 많은 원자들의 충돌을 통해 정립되는 운동 등을 원자들의 삼중의 운동으로 가정했다. 이 가운데 견고한 직선으로부터 벗어나는 원자의 미세한 일탈을 클리나멘(clinamen)이라고 부르는데, 이러한 클리나멘은 사회 질서의 도관(導管)에서 벗어나려는 욕망을 지닌 자유정신을 표상한다. 미세한 클리나멘에 성공한 원자가 다른 원자들과 연쇄적인 충돌을 불러올 경우 사회 전체를 뒤흔드는 사건도 가능하다.

1970년 한 원자의 직선으로부터의 일탈이 다른 원자들과 충돌하여 사회 전체를 흔드는 노동운동 이라는 사건이 일으켰듯이, 1980년대 후반 직선으로부터 일탈한 교사라는 원자들의 충돌이 전교조 건설이라는 사건을 불러왔듯이 지금 또 사회 곳곳의 직선에서 벗어나는 원자들이 어떤 충돌로 어떤 사건을 일으키고 어떤 모양의 새로운 조성을 가져올지 모른다.

세계에 예정되어 있는 목적이란 없으므로 어떤 충돌을 일으키느냐, 그래서 어떤 조성체가 새로 생겨나느냐에 따라서 세계의 의미는 완전히 달라진다. 따라서 에피쿠로스의 원자론은 세계를 바꾸고 싶어하는 어떤 투쟁에 대해서도 정당성을 부여한다. 아마도 나비의 날개짓이 갖는 의미를 이해하는 카오스 이론가들은 이 투쟁의 의미 역시 가장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에 따르면 유물론은 더 이상 정신에 대한 물질의 우위를 주장하는 이론이 아니며, 세계에 대한 보편 과학으로서의 지위를 차지하려는 이론도 아니다. 데모크리토스와 에피쿠로스의 대비는 낡은 유물론과 새로운 유물론의 차이를 분명하게 드러낸다. 데모크리토스가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어떤 원리를 찾으려 해서 원자를 추상적이고 순수한 원리로 만들어버린 반면, 에피쿠로스는 원자론이 사실상 원자를 찾는 이론이 아니라 그것의 실천적 운동을 이해하는 이론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데모크리토스에게 원자가 보석이었다면 에피쿠로스에게 원자는 무기였던 것이다. 원자론은 마치 영화 「터미네이터2」에 등장하는 액체금속 사이보그처럼 배열과 배치를 바꾸어 무엇도 될 수 있는 괴물의 탄생을 보장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곳곳에서 탈주를 시도하는 자유정신들에게 새로운 유물론은 가장 큰 축복의 메시지임에 틀림없다. 탈주는 낡은 질서를 붕괴시킬 것이고 새로운 조성을 가능하게 할 것이다. 나쁜 배치를 깨뜨리고 좋은 배치를 구성하라!


맑스주의를 구성하는 새로운 전통

그동안 맑스의 초기 저작들에 대한 헤겔의 영향력이 과도하게 강조되어 온 측면이 없지 않다. 이 책은 사실상 맑스의 최초의 저작이라 할 수 있어 저작 곳곳에 관념론적인 용어들이 등장하고, 방법론상에 있어서도 헤겔의 냄새가 짙게 배여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헤겔은 단지 출발점에서만 인정되어야 할 것이다. 맑스는 에피쿠로스에 대한 헤겔의 언급에서 자신의 연구를 시작했지만 연구 도중 루크레티우스Lucretius를 만나게 되었고, 헤겔이 에피쿠로스에 대한 최고의 해석자인 루크레티우스를 언급하지 않은 사실에 대해 깜짝 놀라게 된다. 짧은 시기 동안에 이루어진 강렬한 경험으로 맑스는 자신의 유물론의 단초들을 마련할 수 있게 되었다.

어떤 이들은 맑스가 헤겔의 불완전한 변증법을 완성한 것처럼 말해왔다. 그들에 따르면 헤겔은 불철저한 변증법 이론가가 된다. 그러나 에피쿠로스와 루크레티우스에서 출발한 유물론의 전통에서 보자면 맑스의 독창적인 사상은 헤겔의 완성이나 헤겔의 전도에서가 아니라 헤겔로부터의 이탈에서 시작된다(클리나멘!).

분명히 유물론은 변증법과는 기원과 발전 과정이 다르며 맑스와 헤겔, 유물론과 변증법의 관계는 재검토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오히려 우리는 에피쿠로스와 루크레티우스 (그리고 스피노자)로 이어지는 자연 철학의 전통 속에서 맑스를 이해함으로써, 처음부터 두드러지는 그의 헤겔에 대한 비판이나 종교와 형이상학에 대한 비판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또 유물론이 왜 코뮨주의(communism)를 향할 수밖에 없는지 에피쿠로스의 정원에서부터 맑스의 자유로운 개인들의 자발적 결사체에 이르기까지 새롭게 구명해낼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처음 시작하는 다른 모든 것들처럼 이전 시대의 그림자들과 얽혀있으면서도 놓칠 수 없는 새로운 차이를 또렷하게 드러내고 있다.


아름다운 원자들의 공동체 - 에피쿠로스의 정원

에피쿠로스는 그가 살았던 시대부터 현실로부터 도피해 변태적 쾌락을 꿈꾸었던 사람으로 오해되었고, 그 오래된 오해의 전통은 오늘 우리의 교과서에도 그를 단순한 ‘쾌락주의자’로 기록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그가 말한 즐거움과 쾌락에 대한 오해에 대해서는 에피쿠로스의 다음 대답으로 족할 것이다.

“우리가 ‘쾌락이 목적이다’고 할 때, 이 말은 우리를 잘 모르거나 우리의 입장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이 생각했던 것처럼, 방탕한 자들의 쾌락이나 육체적 쾌락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말하는 쾌락은 몸의 고통이나 마음의 혼란으로부터의 자유다. 왜냐하면 삶을 즐겁게 만드는 것은 계속 술을 마시고 흥청거리는 일도 아니고, 육체를 만족시키는 일도 아니며, 물고기를 마음껏 먹는 풍성한 식탁을 갖는 일도 아니기 때문이다.”(「메노이케우스에게 보내는 편지」)

에피쿠로스의 정원에 사는 사람들은 검소했다. “그들은 정말 4분의 1리터의 술로 만족했고, 대부분의 경우 물을 마셨다.” 또한 에피쿠로스는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즐겁게 살지 않고서 사려 깊고 아름답고 정의롭게 사는 것은 불가능하다.”(「메노이케우스에게 보내는 편지」) 그는 그것이 진리로 불리든 선으로 불리든, 훌륭함은 항상 즐거운 삶과 연결되어 있으며 즐거운 삶으로부터 훌륭함을 떼내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믿었다. 그는 사려 깊은 생각으로부터 즐겁고 건강한 삶이 나온다고 말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그의 생각이 즐겁고 건강한 삶에서 나왔던 게 아닐까.

에피쿠로스의 정원에 창녀와 노예와 아이들이 들끓었던 것을 두고 사람들은 수치스러운 일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들이 성적 노리개가 되었거나 온갖 굴욕을 감수하는 노예가 되었을 거라는 변태적 상상은 에피쿠로스의 정원에서 일어난 것이 아니라 그를 비난했던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일어난 것이다.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가 전하는 것처럼 그는 여성이든, 창녀이든, 노예든, 어린아이든 많은 이들에게 친절했고 그들과 함께 철학했다. “에피쿠로스의 장점으로는 부모에 대한 감사, 형제에 대한 선행, 집안 노예들에 대한 친절을 들 수 있다. 노예들이 그와 함께 철학 활동을 했다는 점은 분명하다.”(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 『철학자의 생애와 사상』, 제10권)이 책에 실린 ‘에피쿠로스 철학 노트’ 전 7권에서 우리는 그동안 오해되어왔던 에피쿠로스가 아닌 새로운 에피쿠로스를 만날 수 있다. 아마 그의 사려 깊음과 삶에 대한 탁월한 혜안에 놀라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 책의 구성에 대하여

본래 맑스의 박사 논문은 총 2부로 구성되었으며 각 부마다 다섯 개의 장으로 이루어졌다. 하지만 1부의 4장은 본문은 유실된 채 주석만이 전하고, 5장은 본문과 주석이 모두 유실되었다. 그리고 부록으로 첨부되어 있던 「에피쿠로스 신학에 대한 플루타르크의 논쟁에 대한 비판」도 맑스는 각 부 세 장씩 총 2부로 구성했지만 본문은 2부, 주석은 1부만이 전해지고 있다.

에피쿠로스 철학 노트는 총 일곱 권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 역시 부분적으로 유실된 상태다. 맑스가 고대철학에 대한 저서를 쓰기 위해 작성되었던 이 노트들은 고대 철학자들(주로 에피쿠로스 학파)의 라틴어나 그리스어 원문이 그대로 길게 인용되어 있고, 사이사이 맑스가 덧붙인 자신의 생각이 쓰여져 있었다.

이 노트들은 각각 표지에 「에피쿠로스 철학」이라는 제목이 붙여져 있었는데, 5권과 6권의 표지는 발견되지 않았다. 특히 5권은 시작 부분뿐 아니라 남아 있는 부분의 몇 쪽도 분실된 상태고, 6권 역시 표지와 인용된 저자들의 목록이 유실되어 있었기 때문에 소련에서는 1956년 발간한 맑스-엥겔스 『초기 저작집』에서는 이 책에서 다섯번째 노트로 번역한 부분을 여섯번째 노트에 포함시켰다. 그러나 1968년 베를린에서 발간된 『맑스-엥겔스 저작집』에는 맑스의 인용 표시 등을 근거로 이 부분을 다섯번째 노트로 묶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었으며 이 책의 번역은 이 주장을 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