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적 절대 독일 낭만주의 문학 이론
프리즘 총서 19
필립 라쿠-라바르트·장-뤽 낭시 지음, 홍사현 옮김 | 688쪽 | 39,000원
낭만주의의 다양한 텍스트들을 독자들에게 보여 주며, 우리가 막연하게만 생각했던 독일 낭만주의의 면모를 세심하게 재구성한다. 그럼으로써 낭만주의가 열어젖힌, 문학과 철학에 대한 새로운 시각의 가치와 의미를 재평가할 수 있도록 돕는다. 이 책은 학계에서 낭만주의에 관한 가장 치밀한 연구 중 하나로 평가받는 책이다. 우리는 이제야 직접 번역되어 도착한 이 책을 통해 낭만주의의 현대성을 발견하고, 그로부터 어디로 다시 나선형의 운동을 이어갈 수 있을 것인지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
저·역자 소개 ▼
프랑스 스트라스부르 대학 철학과 교수를 역임했다. 독일 낭만주의와 하이데거 사상에 영향을 받아 시와 정치라는 두 축을 접목하여 미학적 관점에서 근대 철학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했으며 미메시스 및 표현/재현의 문제, 주체의 문제 등을 중심으로 독자적인 사유를 전개했다. 철학자의 시각에서 라캉의 문자 이론을 연구하고 평가한 『문자라는 증서』(1973)를 시작으로, 초기 독일 낭만주의자들의 문헌을 연구한 『문학적 절대』(1978) 등, 장-뤽 낭시와 함께 다수의 공저를 발표하고 수차례의 공동 강의를 기획하는 등 거의 40여 년에 걸쳐 많은 작업을 함께 수행했다. <안티고네>(1978), <페니키아의 여인들>(1980), <오이디푸스 왕>(1998) 등 희곡 번역 및 연극 제작에도 참여한 바 있다. 주요 저서로 『철학의 주체, 활자판 I』 『근대인의 모방, 활자판 II』 『무지카 픽타: 바그너의 인물들』 『하이데거: 시의 정치』 등이 있다.
저자 장-뤽 낭시 Jean-Luc Nancy
1940년 프랑스 코데랑 출생. 프랑스 스트라스부르 대학교 철학과에서 철학·미학 담당 교수로서 오랫동안 가르치다 은퇴했다. 낭시는 독일 낭만주의, 헤겔·니체·하이데거의 철학과 라캉의 사상을 재해석하는 동시에 독일 낭만주의, 니체와 하이데거의 철학 등 독일 사상으로부터 출발해 정치철학과 미학, 예술이론 분야에서 독창적인 사유를 전개했다. 특히 그는 교조주의적 맑스주의의 몰락 이후에 가능한 공산주의의 문제, 공동체의 문제를 다시 제기하는 것을 자신의 주요한 과제로 삼았다. 2021년 8월 타계 후 그에 대한 연구가 보다 더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주요 저서로 『문자의 지위』(필립 라쿠-라바르트와 공저), 『목소리의 나눔』, 『철학의 망각』, 『자유의 경험』, 『사유의 무게』, 『세계의 의미』, 『복수적 단수의 존재』, 『이미지 속 깊은 곳에서』 등이 있다.
역자 홍사현
연세대학교 철학과와 서울대학교 대학원 독어독문학과를 졸업하고, 오스트리아 클라겐푸르트대학에서 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연세대학교 철학과 강사다. 지은 책으로《니체의 행복론》,《예술의 시대: 예술의 발생과 해체, 그리고 진화》(공저) 등이 있으며, 옮긴 책으로는《문학적 절대》,《초기 희랍의 문학과 철학》(공역),《니체전집 12: 즐거운 학문?메시나에서의 전원시?유고(1881년 봄~1882년 여름)》(공역) 등이 있다. 논문으로는〈니체 이후의 디오니소스 상징 연구〉,〈쇼펜하우어의 음악철학: 감정미학과 절대음악 사이〉,〈망각으로부터의 기억의 발생: 니체의 기억 개념 연구〉,〈교육 속의 야만-니체와 아도르노의 교육 비판〉,〈니체와 다윈-가치 전환으로서의 힘에의 의지와 진화〉등이 있다.
차례 ▼
서문/ 문학적 절대
서곡
1. 체계-주체
2. 「독일 관념론의 가장 오래된 체계 구상」
1장 / 단상
1. 단상의 요청
2. 프리드리히 슐레겔 「비판적 단상」
3. 프리드리히 슐레겔 「아테네움 단상」
2장 / 이념
1. 예술의 한계 내에서의 종교
2. 프리드리히 슐레겔 「이념들」
3. 프리드리히 슐레겔 「철학에 대하여」
4. 셸링 「하인츠 비더포르스트의 에피쿠로스적 신앙고백」
3장 / 시
1. 이름 없는 예술
2. 프리드리히 슐레겔 「시문학에 관한 대화」
편집자 추천글 ▼
낭만주의로부터 현대성의 무의식을 읽다!
이제야 도착한 낭만주의 텍스트의 진본들!!
한국 사회에서 ‘낭만주의’라는 단어는 흔히 “질풍노도”로 대변되거나, 혹은 현실과 동떨어진 문학적 사변을 의미하는 말로 사용되곤 한다. 실상 낭만주의라는 말은 넘쳐나지만, 낭만주의의 핵심을 관통하는 정수, 즉 누가 무엇으로 그것을 만들었는지는 한국에 소개된 적이 없다. 낭만주의를 가리킬 만한 텍스트라면 괴테의 문학 작품들이나 혹은 헤겔의 낭만주의 비판, 어쩌면 슐레겔 형제까지도 떠올리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낭만주의에 대해 물으면 물을수록 우리가 낭만주의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이 없을뿐더러, 낭만주의 시기에 발표된 텍스트들을 한국어 번역본으로 읽어 본 적이 없다는 것도 어렴풋이 알게 된다. 낭만주의를 지성사의 맥락에서 설명한 책들은 간혹 있을지도 모르지만, 낭만주의 시기에 발표된 텍스트들은 아직도 이곳에 번역되어 도착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린비출판사는 프랑스의 철학자 필립 라쿠-라바르트(Philippe Lacoue-Labarthe)와 장-뤽 낭시(Jean-Luc Nancy)가 함께 작업한 『문학적 절대: 독일 낭만주의 문학 이론』(L'absolu litteraire: Theorie de la litterature du romantisme allemand)을 프리즘총서의 열아홉번째 책으로 출간하였다. 이 책에서 저자들은 1800년대를 전후로 출간되었던 낭만주의 시기 텍스트를 선별하여 싣고, 낭만주의가 가진 현대성을 다양한 맥락에서 드러낸다. 특히 이 책은 국내 최초로 낭만주의의 중요한 저자 중 한 사람인 프리드리히 슐레겔의 「비판적 단상」과 『아테네움 단상』, 그리고 ‘도로테아에게 보내는 편지’로 잘 알려진 「철학에 대하여」와 같은 많은 문헌들을 소개하고 있다. 또한 아우구스트 슐레겔의 『문학과 예술에 대한 강의』, 셸링과 노발리스의 텍스트들까지 모두 한국어로 번역하여, 이제까지 2차 문헌으로만 접할 수 있었던 낭만주의 시기의 대표적인 텍스트들의 다수를 이 책에서 만날 수 있다.
저자들은 독일 예나의 낭만주의 그룹들이 1800년을 기점으로 『아테네움』 같은 잡지 등에서 ‘문학’ 개념에 대한 반성과 ‘포에지’(poesie) 개념을 통해, 칸트 이후 독일 철학뿐만 아니라 유럽 사상계를 지배하고 있었던 관념론을 극복하려 했다고 말한다. 이는 포에지와 철학의 합일을 시도한 단상적 글쓰기로 이어진다. 포에지란 무엇인가? 프리드리히 슐레겔이 말한 “모든 예술이 학문이 되어야 하고, 모든 학문은 예술이 되어야 한다”라는 문구는 포에지가 단순히 시가 아니라 철학과 문학 전체를 아우르는 새로운 명제임을 보여 준다. 이들의 논의에는 고대 그리스부터 현대까지, 미메시스와 표현, 작품과 장르 등 예술의 모든 문제뿐 아니라, 시문학과 철학의 관계 및 사유와 이성, 주체와 체계, 세계와 형식의 문제들에 대한 현대철학의 모든 반성과 비판이 이미 싹을 틔우고 있다. 현대 철학에서 논란이 되는 많은 개념들, 즉 생성, 자기생산, 유기체, 자율적 창조 등의 이슈들은 벌써 1800년의 낭만주의 그룹 사이에서 치열하게 다루어지고 있는 내용들이었다. 저자들이 이 책에서 드러내고자 하는 것은 바로, 낭만주의 텍스트 안에서 이미 배태되어 있었던 현대성이다.
아테네움 그룹: 역사상 최초의 아방가르드
독일 낭만주의의 핵심 키워드는 아테네움(Athenaum)이다. 아테네움은 그룹의 이름이기도 했고, 그 그룹에 속한 이들이 발간하는 잡지의 이름이기도 하다. 아테네움 그룹의 중요 인물로는 우선 아우구스트 슐레겔, 프리드리히 슐레겔 형제를 들 수 있다. 거기에 슐라이어마허, 노발리스, 루트비히 티크, 셸링이 참여했을 뿐만 아니라, 당시 독일의 철학자, 언어학자, 미학자들의 많은 수가 아테네움 그룹과 적극적으로 교류하고 있었기에 아테네움 그룹은 실로 큰 세력을 형성하고 있었다. 아테네움 그룹은 2년이 채 되지 않는 시간 동안 짧고, 강렬하고, 번뜩이는 글쓰기의 순간을 열어젖혔다. ‘역사상 최초의 아방가르드’라는 평가를 받을 만큼 급진적이고 전위적이었지만, 자신의 본질과 목표를 유지할 수 없을 정도의 빠른 속도로 한계에 이르기도 했다.
아테네움 그룹의 핵심인 잡지 『아테네움』은 “지식과 재능의 형제애”를 표방하고 있었다. 문학적 실천에서 형제애가 의미하는 것은 ‘집단적 글쓰기’라는 의미였다. 이 집단적 글쓰기로 인해 잡지 『아테네움』은 다양한 저자들이 단상을 하나씩 채워 넣는 구성으로 만들어져 있다(물론 프리드리히 슐레겔이 가장 많이 쓰긴 했다). 그들의 관심은 고대 그리스에 대한 비판적 회복에 놓여 있었는데, 이는 낭만주의적 기획의 일관된 지평이었다. 그들은 완성되지 않았거나 완료되지 않은 고대 그리스를 통해 고전적 이상을 극복하는 동시에 완성하고자 하였다.
이들은 완전히 새로운 무엇을 생산하고자 하였으나, 실제로 그들이 생산하려는 것에 대한 이름은 알지 못하였다. 결국 그들은 생각했던 모든 것들을 통틀어 문학이라 부르게 되었다. 낭만주의자들은 이 포괄적인 개념의 경계를 제한하는 데 전력을 기울였지만, 그것은 그들의 의도를 뛰어넘어 산출된다. 하나의 큰 작품 속에서 스스로를 포착하고, 스스로의 외부로 스스로를 생산해 가는 (모리스 블랑쇼를 인용하자면) ‘작품 없는 작품’.
필립 라쿠-라바르트와 장-뤽 낭시는 여기서 문학의 생산이 곧 ‘문학의 절대(absolu)’라고 말한다. 그것은 ‘문학의 해방(ab-solu)’이기도 하다. 문학의 절대, 그것은 포에지(poesie)라기보다는 포이에시스(pooesis)이다. 포이에시스 그것은 생산이며, 문학적인 것에만 한정되기보다는 오히려 생산 그 자체와 더욱 관련이 깊다. 이 책에서 계속 밝혀지듯 문학적인 것은 생산 그 자체의 진리를 생산하고, 자기 스스로를 생산해 낸다. ‘문학의 절대’가 진정 중요한 이유는 그것이 주체의 아우토포이에시스, 즉 ‘작품으로서의 주체’란 진리를 가장 생생하게 드러내는 사례이기 때문이다.
낭만주의 : 진정한 현대적 무의식
낭만주의는 지난 시절의 고담준론이 아니다. 그것은 지금 우리의 시대정신을 관통한다. ‘낭만주의’라는 주제는 근대를 넘어서고, 현대적 학문 체계의 코기토와 자본주의 국가체제의 제국성에 대한 근본적인 거부에 이른다. 문학적이기에 불가피하게 무정부적이며, 무정부적이기 때문에 예술이 그 저항을 구현하는 그런 낭만주의 말이다. 그것은 자신의 주어진 정체성에 대한 무한한 유기적 재구성에 몰두하는 가운데 우리가 오늘날 인문학의 ‘이론’이라고 부르는 공간을 이끌어 내었다. 낭만주의는 현대적인 인문 정신의 무의식, 그 심층에 자리 잡고 있다.
그 어둠 속에서 낭만주의의 담론은 거대한 뱀처럼 나선형으로 몸을 구부려 스스로 담론을 들여다보며 끊임없이 자기자신의 중심축을 바꾸어 나간다. 여기에 변증법적 사변과는 사뭇 다른 아이러니와 과장과 풍자와 자기성찰이 동반된다. 낭만주의는 위기의 산물이다. 이것은 칸트적 의미에서의 초월적 주체의 위기이고, 혁명의 시대를 앞둔 도덕적 주체의 위기이기도 하다. 이 위기 속에서 낭만주의는 미처 예견하지 못했던 철학과 미학의 관계를 발견해 낸다. 미학적 실천은 이제 자신을 평가하고 규제하는 외부의 철학적 기준을 갖지 않는다. 예술적 행위 자체가 스스로를 굽어보며 이론이 된다. 이론은 실천과 유기적으로 결합하고, 감성은 다시 이성과 합일한다. 이른바 ‘이성주의자’ 혹은 ‘현실주의자’에게 이것은 토대 없는 공중누각과 같이 위태로워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우토포이에시스’, 자기생산성의 이 아슬아슬한 극단이야말로, 기실 인간 정신의 유일한 가능성임을 직시한 것이 낭만주의의 진정한 사상사적 공헌일 것이다.
낭만주의에는 또한 많은 요소들이 함께 뒤섞여 있다. 결코 함께 놓일 수 없을 것 같은 스피노자와 칸트, 피히테를 종합하려 했던 시도들이나, 낭만주의의 핵심 인물인 슐레겔의 개종과 정치적 입장의 변화들은 낭만주의의 다채로운 결을 부각하면서도 가늠할 수 없는 모호함을 안겨 준다. 연극, 소설, 시, 번역, 비평, 단상과 같은 다양한 장르 - 실상 이 장르 구분 자체가 낭만주의적 성찰의 중심 대상이기도 한데 - 에서 낭만주의의 문학적 절대는 모두 다른 양상으로 드러난다. 그러나 낭만주의의 모호성이 가진 이러한 이면을 무시해 버린다면, 낭만주의가 갖는 의미는 축소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문학적 절대는 주어진 전체성과 고정된 주체의 사유를 넘어서기 때문이다. 문학적 절대는 이 사유를 무한화시키며, 모호성은 이것의 불가피한 결과이다. 저자들은 낭만주의 운동 안에 담긴 복잡한 흐름과 그 밑에서 논리로 구성되지 못한 채 미분적으로 남아 있는 균열의 징후를 면밀히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낭만주의적 독법을 통해 낭만주의의 텍스트를 읽어 나갈 때에야 비로소 진정한 낭만주의적 무의식이라 할 수 있는 현대성의 토대, 스스로를 생산하는 ‘작품으로서의 주체’를 발견해 낼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