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뢰즈로 말할 수 있는 7가지 문제들 차이의 존재론에서 미학적 실천까지
리좀 총서 I 3
- 신지영 지음 | 2008-05-25 | 200쪽 | 14,900원
들뢰즈로부터 논의할 수 있는 다양한 담론을 제기하고 있는 리좀 총서의 세 번째 권으로서 들뢰즈 철학이 갖고 있는 ‘존재론의 형이상학’과 함께 오늘날 문제 담론 중 하나인 ‘여성주의’와 ‘김기덕 영화’를 그의 차이의 철학을 바탕으로 해설하는 한편, ‘삶의 윤리’, ‘해학과 아이러니’, ‘자본주의와 가족’, ‘괴물성과 미학’ 등 들뢰즈와 관련된 7가지 주제를 현재적 관점에서 탐구한다.
저·역자 소개 ▼
저자 신지영
한국외국어대학교 불어과 졸업, 같은 대학교 대학원에서 철학석사, 프랑스 리용 3 대학교에서 들뢰즈의 윤리와 미학에 관한 주제로 철학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서울시립대학교에서 학술연구교수로 있다가 현재 경상국립대학교 철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지난 10여 년간 논문에만 몰두했는데, 긴밀한 구성의 논문 호흡으로는 못다 한 말들을 각종 장르와 각종 주제의 책으로 내자는 마음을 먹었다. <드라마>에 관한 이 책이 그 첫 결과물이다.
차례 ▼
책머리에
1부 존재와 차이
1_ 들뢰즈의 역사성
들뢰즈에 대한 오해│플라톤과 들뢰즈│맺음말
2_ 들뢰즈와 여성주의
차이의 담론│여성주의에서의 차이│여성주의의 차이와 들뢰즈의 차이│들뢰즈 철학에서 여성
3_ 김기덕 영화로 보는 이미지의 ‘잠재성’
김기덕 현상│김기덕 감독의 영화를 이해하는 열쇠―잠재성│김기덕과 들뢰즈를 잇는 세 개념―진실, 소통, 구원│영화 이미지가 표현하는 잠재성의 미학│보충 : 잠재성과 의미의 생성
2부 윤리와 의미
4_ 들뢰즈에게 어떤 윤리를 기대할 수 있는가?
도덕의 허구성과 억압성│들뢰즈의 새로운 윤리│들뢰즈의 윤리성에 대한 질문과 답변
5_ 해학과 아이러니 : 들뢰즈, 웃음, 도가
도가에 대한 변증법적 해석의 오류│희극적 윤리│결론 : 웃음의 윤리적 함축
3부 욕망과 실천
6_ 욕망의 문제로 보는 자본주의와 가족
왜 욕망인가?│자본주의가 역사의 끝일까?│가족의 문제
7_ 들뢰즈의 미학이 존재하는가?
들어가는 말│예술과 비예술의 구분│기괴한 진실│분열-되기│맺음말 : 미메시스와 되기
부록
들뢰즈의 「내재성: 비개인적 생명...」
참고문헌│찾아보기
1부 존재와 차이
1_ 들뢰즈의 역사성
들뢰즈에 대한 오해│플라톤과 들뢰즈│맺음말
2_ 들뢰즈와 여성주의
차이의 담론│여성주의에서의 차이│여성주의의 차이와 들뢰즈의 차이│들뢰즈 철학에서 여성
3_ 김기덕 영화로 보는 이미지의 ‘잠재성’
김기덕 현상│김기덕 감독의 영화를 이해하는 열쇠―잠재성│김기덕과 들뢰즈를 잇는 세 개념―진실, 소통, 구원│영화 이미지가 표현하는 잠재성의 미학│보충 : 잠재성과 의미의 생성
2부 윤리와 의미
4_ 들뢰즈에게 어떤 윤리를 기대할 수 있는가?
도덕의 허구성과 억압성│들뢰즈의 새로운 윤리│들뢰즈의 윤리성에 대한 질문과 답변
5_ 해학과 아이러니 : 들뢰즈, 웃음, 도가
도가에 대한 변증법적 해석의 오류│희극적 윤리│결론 : 웃음의 윤리적 함축
3부 욕망과 실천
6_ 욕망의 문제로 보는 자본주의와 가족
왜 욕망인가?│자본주의가 역사의 끝일까?│가족의 문제
7_ 들뢰즈의 미학이 존재하는가?
들어가는 말│예술과 비예술의 구분│기괴한 진실│분열-되기│맺음말 : 미메시스와 되기
부록
들뢰즈의 「내재성: 비개인적 생명...」
참고문헌│찾아보기
편집자 추천글 ▼
들뢰즈로부터 논의할 수 있는 다양한 담론을 제기하고 있는 리좀 총서의 세 번째 권으로서 들뢰즈 철학이 갖고 있는 ‘존재론의 형이상학’과 함께 오늘날 문제 담론 중 하나인 ‘여성주의’와 ‘김기덕 영화’를 그의 차이의 철학을 바탕으로 해설하는 한편, ‘삶의 윤리’, ‘해학과 아이러니’, ‘자본주의와 가족’, ‘괴물성과 미학’ 등 들뢰즈와 관련된 7가지 주제를 현재적 관점에서 탐구하고 있다.
“들뢰즈 철학에 대한 가장 명쾌한 국내 연구서!!”
― ‘차이의 철학’을 현재적 관점에서 심도 있게 해설하다!
이 책은 들뢰즈가 제시한 ‘차이의 철학’을 존재론의 바탕에서 명쾌하게 해설하고, 현실의 다양한 문제 속에 녹여내 실천적인 관점으로 연결시킨 연구서이다. 들뢰즈로부터 플라톤 이래 철학사를 장악했던 동일성 철학이 극복되고 차이에 기반한 존재론적 형이상학이 만개했음을 증명하면서 그의 철학을 여성·예술·자본 등과 같은 현재적 관점으로까지 확장시킨, 국내 들뢰즈 연구서 중 명실공히 가장 본격적인 책이라 할 만하다. 들뢰즈에 관한 연구서는 끊임없이 생산되고 있지만 대부분이 해외 연구자의 몫이거나 문화이론적 관점에서 단편적으로 분석되고 있는 출판 경향 속에서 단일 연구자가 들뢰즈 철학을 심도 있게 다루고 있다는 점은 고무적인 일이다.
지은이 신지영은 프랑스에서 「들뢰즈에게 있어서의 윤리학과 미학 : 도가 윤리와 비교하여」(?thique et esth?ique chez Gilles Deleuze; sources, principes et actualit? en comparaison avec l'?thique tao?ste)라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이래 국내에서 줄곧 들뢰즈 철학의 윤리와 미학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오늘날 현실의 문제를 사유하며 담론적 실천을 행하고 있는 소장학자이다. 온·오프라인의 세계를 유랑하는 것으로 치부되는 유목주의나 단순한 구별로서 논의되는 차이 등 들뢰즈 개념에 관한 오해를 씻고, 들뢰즈 철학의 독특함을 윤리학과 미학의 관점에 접목시키려는 노력이 이 결과물로 탄생한 것이다.
이 책은 ‘들뢰즈 이후’의 들뢰즈 철학에 관한 각종 논의를 담고 있는 리좀 총서의 세 번째 책으로서 들뢰즈 철학이 갖고 있는 ‘존재론의 형이상학’과 함께 오늘날 문제 담론 중 하나인 ‘여성주의’와 ‘김기덕 영화’를 그의 차이의 철학을 바탕으로 해설하는 한편, ‘삶의 윤리’, ‘해학과 아이러니’, ‘자본주의와 가족’, ‘괴물성과 미학’ 등 모두 7가지 주제를 탐구하고 있다. 이렇게 다양한 문제들에 대한 들뢰즈적 대답을 현재적 관점에서 실천한 이 책은 들뢰즈에 대한 철학적 관심과 함께 예술과 현실에 대한 접속 가능성을 불러일으킴으로써 그의 사유가 한국사회에 의미 있는 담론을 형성하는 데 무한 활용될 것이다.
여성주의의 차이는 들뢰즈의 차이와 다르다
이 책이 갖고 있는 특징 중 하나는 들뢰즈의 차이 개념에 대한 오해를 풀고 이를 여성주의와의 비교 속에서 명확히 한다는 점이다(1장과 2장 참조). 차이는 흔히 ‘나와 너는 다르다’라고 말할 때의 차이, 즉 동일자들 사이의 차이로 이해되거나 정치적인 의미에서 중심 체제에 포함되지 못하는 집단적인 소수로서의 차이, 즉 소외자를 일컬을 때 말하는 차이로 이해되고 있다. 그러나 이런 구별로서의 차이는 들뢰즈가 말하는 차이와 다르다. 들뢰즈는 동일성으로 포착되기 이전의 근거로서의 차이, 무수한 사건을 발생시키는 구체적인 것이지만 잠재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는 차이를 말하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들뢰즈의 차이는 차이 그 자체(difference en-soi)이다.
그런데 현대 여성주의의 차이에 대한 담론은 남성과 다른 여성성의 본질을 추구하거나 그 본질 너머의 차이를 고려하고 있다 해도 여성들 개체에 대한 정체성(동일성)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일례로 현대 여성주의 담론의 선두주자인 브라이도티(Rosi Braidotti)는 차이를 말할 때 “남성들과 여성들 간의 차이, 여성들 간의 차이, 각 여성 내의 차이들”이 모두 고려되어야 한다고 말한다(본문 36~38쪽). 하지만 이때의 차이란 개별 인간의 범주 안에 있는 유적인 차이를 넘어서지 못한다. 그녀가 말하는 ‘각 여성’이란 ‘실생활의 여성’, ‘페미니스트 여성 주체’를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들뢰즈가 말하는 차이 그 자체는 이런 유적인 차이 이전의 잠재적인 차원의 여성을 말한다. 다시 말해 차이 그 자체란 변별적인 차이 관계를 형성하는 지반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들뢰즈가 ‘여성-되기’를 말할 때는 이런 차이가 드러날 수 있도록 하는 ‘과정’의 의미를 지니는 것이다. 그리고 이때의 여성은 여성 일반도, 개별 여성도 아니며, 동일성에 포섭되지 않는 ‘어떤 여성’을 말하는 것이다. 이렇게 이 책은 여성주의가 유효한 지점을 들뢰즈에게서 발견한다. 여성주의가 남성성이나 가부장주의와 대결한다 할 때 그것은 동일성으로 환원되는 모든 보편주의와 미시 파시즘에 대한 거부여야 한다는 점에서 여성주의의 가능성을 찾고 있는 것이다.
들뢰즈의 윤리학은 구체적인 삶의 행동학이다
이 책은 차이 그 자체의 철학적 의미를 윤리학적으로, 현실 속에서의 실천적 의미로 사유하는 데까지 나아간다. 들뢰즈 윤리학의 흔한 오해 중 하나가 잠재성 차원의 차이는 결국 모든 동일성을 거부하므로 결국 어떠한 윤리적 지점도 없는 도덕적 무정부주의인 것처럼 인식되는 것이므로 이 책은 이와 관련한 상세한 논의를 전개하는 것이다(4장 참조).
들뢰즈는 말한다. “우선 잠옷 윗도리를 입고 다음에는 아랫도리를 입은 후에 저녁이면 침대로 기어 들어가고, 아침이면 침대 밖으로 나와 한 발짝 한 발짝 걸어가는 것은 얼마나 진절머리 나는 일인가.”(79쪽) 동일한 일이 반복되는 삶, 시간의 선적인 흐름과 인과성에 매여 있는 삶, 보편타당한 도덕 법칙을 따르는 삶. 이런 삶들은 허구이고 억압이다. 들뢰즈는 이런 질서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철학을 세우는데, 그것은 구체적인 삶을 모든 법칙 위에 두는 ‘내재성의 철학’이다. 내재성은 개개의 삶이 함축하고 있으나 표상되지는 않는 일종의 전체성과 같은 개념이다. 내재성은 어떤 것 안에 속하지 않고 어떤 주체에도 속하지 않는 즉자적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내재성이란 기존 질서와는 다른 이질적인 것을 생산할 수 있는 바탕이 되며, 이에 따라 삶에 대한 항구적인 답을 찾는 것이 아니라 각 삶과 각 사건으로부터 진실을 찾아야 하는 것이다. 이 책은 이런 들뢰즈의 윤리가 구체적인 행동학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
이와 결부해 이 책은 최근에 불고 있는 자본의 편집증적 운동, 즉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문제 삼고 있다(6장 참조). 이 운동이 문제인 이유는 세계화의 획일성을 모든 사회에 강요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 중심의 세계화에 대항하여 문화 다양성을 운위한다고 하여 그 다양성 아래 자행되고 있는 또 다른 상품화와 획일화를 눈감아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오히려 다양성은 동일자로 잡히기 전, 동일자로 환원되고 왜곡되기 전의 순수한 차이 그 자체로 돌아가야 한다고 이 책은 주장한다. 자본의 편집증적 운동에 매이지 않은 분열적 흐름에 따라 독특한 것들이 서로를 배제하지 않고 연대할 때 보편적인 소통에 이를 수 있다는 주장이다. 들뢰즈가 말하듯, “욕망은 언제나 더 많은 연결접속과 배치를 원하기 때문에 혁명적”이다. 이 책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에 맞서는 다양한 영화를 예로 들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러한 다양성은, 한국 영화를 블록버스터화하여 할리우드 영화에 대결시키는 것으로 지켜지는 것이 아니라, 한국에서만 만들어질 수 있는 독특한 영화들과 이란과 터키와 동유럽에서만 만들어질 수 있는 독특한 영화들이, 서로 너무나 다르면서도 보편적으로 소통하기 때문에 서로 연대하여 블록버스터 그 자체에 대항함으로써 지켜지는 것이다.”(141쪽)
들뢰즈의 미학, 소통과 해방의 비전을 제시하다
이 책의 또 다른 특징 중 하나는 김기덕 영화와 괴물성에 관한 분석 등을 통해 들뢰즈 철학이 예술에 어떠한 방식으로 적용 가능한지, 그리고 예술이 어떤 윤리적 비전을 던져 줄 수 있는지 보여 준다는 점이다. 들뢰즈는 “항상 문제는 삶을 그것이 갇혀 있는 곳으로부터 해방시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동일성만을 긍정하는 삶, 나 자신의 형태와 세계와의 통사적 관계에 묶여 있는 삶을 해방시키는 일은 삶 스스로가 실현할 수 없기 때문에 예술이 삶의 궁극적인 목적이 된다고 말한 바 있다. 왜냐하면 “예술은 필연적으로 어떤 예기치 않은 것, 인식되지 못한 것, 인식할 수 없는 것을 생산”하기 때문이다(7장 참조).
이 책은 이와 같은 예술의 윤리적 비전을 잘 보여 주고 있는 것으로 김기덕 영화를 꼽고 있다. 들뢰즈가 말한 이미지의 잠재성을 김기덕 영화가 그만큼 잘 실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는 특히 대학생 선화가 사창가 포주 한기의 계략에 말려 매춘을 하고, 이후 한기를 사랑하게 되는 영화인 「나쁜 남자」를 중점적으로 분석하고 있다(줄거리는 48~49쪽 참조).
이 영화는 시간 순서대로 그려져 있지 않고, 독자로 하여금 사건들을 통해 의미를 파악하도록 유도한다. 찢어진 사진을 나중에 찾아 맞춰 보니 자신들의 얼굴이었다든지, 칼에 찔린 일은 마치 아무렇지도 않은 일인 양 넘어간다든지, 선화는 계속해서 매춘을 하고 한기는 손님을 모으고 있다든지 하는 각각의 장면들은 시간의 순서대로 읽히지 않고 뫼비우스 띠처럼 꼬여 있다. 이는 영화가 확실하게 인식되지 않는 잠재성의 이미지를 나타내 준다는 것을 말해 준다. 잠재성의 세계에서는 각 사건들이 한 개인에게 귀속되지 않고 인과의 법칙을 벗어나 있기 때문에 모든 것이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공간이다. 각 개체가 이런 잠재성 차원으로 해방될 수 있다면 서로를 긍정하고 소통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김기덕 감독의 영화들은 비루한 존재들의 참담한 인생을 끈질기게 보여 주고 있다. 「나쁜 남자」에서도 선화와 창기가 사창가를 벗어나는 방식이 아니라 계속해서 매춘을 하며 함께 지내는, 쉽게 납득할 수 없는 방식으로 관계가 형성된다. 이는 김기덕 감독이 관객이 원하는 방식이 아니라 현재에 가까운 진실, 영화적 진실을 추구했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 당위의 편견과 도덕 법칙에 따르지 않고 개인적 정서의 노예 상태였던 이들이 그 너머의 차원에서 소통하고 화해하도록 만든 것이다.
김기덕 감독의 영화가 잠재성을 표현한다는 것은 당위적인 도덕률과 상상적인 판타지를 배제하고 각 개별 사건의 진실을 그대로 드러냄으로써, 어디에도 어떤 동일성에도 매이지 않는 존재자들 사이의 소통과 삶에 대한 해방을 가능하게 한다는 것을 뜻한다. 이 책은 들뢰즈의 철학으로부터 이렇게 영화 이미지가 갖고 있는 윤리와 미학을 도출하고, 예술이 갖고 있는 소통과 해방의 윤리적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
들뢰즈 철학의 본질은 존재론이다. 하지만 그것은 인간의 존재론이 아니라 우주 전체에 관한 존재론이며, 개별자들이 각각의 특이성에 따라 살아 숨쉴 수 있는 복수성의 세계 이론이다. 이와 같이 구체적인 것의 생산 원리로서의 세계를 본질로 내세운 들뢰즈 철학은 어떤 존재가 동일성으로 규정되고 왜곡되기 전, 그 근거가 되는 차이 그 자체를 통해 일자의 이데아가 아닌 복수성의 이데아를 구성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이데아는 구체적인 것이다.”(19쪽) 플라톤의 이데아를 전복한 이 들뢰즈의 형이상학이 있기에, 푸코는 “이 세기가 그의 세기로 기억될 것”이라고 말한 것이며, 오늘날 우리는 사유의 넓은 지대를 맞이하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이 책은 이 넓은 지대를 오늘날의 시각에서 사유한 리좀적인 책이다.
“들뢰즈 철학에 대한 가장 명쾌한 국내 연구서!!”
― ‘차이의 철학’을 현재적 관점에서 심도 있게 해설하다!
이 책은 들뢰즈가 제시한 ‘차이의 철학’을 존재론의 바탕에서 명쾌하게 해설하고, 현실의 다양한 문제 속에 녹여내 실천적인 관점으로 연결시킨 연구서이다. 들뢰즈로부터 플라톤 이래 철학사를 장악했던 동일성 철학이 극복되고 차이에 기반한 존재론적 형이상학이 만개했음을 증명하면서 그의 철학을 여성·예술·자본 등과 같은 현재적 관점으로까지 확장시킨, 국내 들뢰즈 연구서 중 명실공히 가장 본격적인 책이라 할 만하다. 들뢰즈에 관한 연구서는 끊임없이 생산되고 있지만 대부분이 해외 연구자의 몫이거나 문화이론적 관점에서 단편적으로 분석되고 있는 출판 경향 속에서 단일 연구자가 들뢰즈 철학을 심도 있게 다루고 있다는 점은 고무적인 일이다.
지은이 신지영은 프랑스에서 「들뢰즈에게 있어서의 윤리학과 미학 : 도가 윤리와 비교하여」(?thique et esth?ique chez Gilles Deleuze; sources, principes et actualit? en comparaison avec l'?thique tao?ste)라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이래 국내에서 줄곧 들뢰즈 철학의 윤리와 미학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오늘날 현실의 문제를 사유하며 담론적 실천을 행하고 있는 소장학자이다. 온·오프라인의 세계를 유랑하는 것으로 치부되는 유목주의나 단순한 구별로서 논의되는 차이 등 들뢰즈 개념에 관한 오해를 씻고, 들뢰즈 철학의 독특함을 윤리학과 미학의 관점에 접목시키려는 노력이 이 결과물로 탄생한 것이다.
이 책은 ‘들뢰즈 이후’의 들뢰즈 철학에 관한 각종 논의를 담고 있는 리좀 총서의 세 번째 책으로서 들뢰즈 철학이 갖고 있는 ‘존재론의 형이상학’과 함께 오늘날 문제 담론 중 하나인 ‘여성주의’와 ‘김기덕 영화’를 그의 차이의 철학을 바탕으로 해설하는 한편, ‘삶의 윤리’, ‘해학과 아이러니’, ‘자본주의와 가족’, ‘괴물성과 미학’ 등 모두 7가지 주제를 탐구하고 있다. 이렇게 다양한 문제들에 대한 들뢰즈적 대답을 현재적 관점에서 실천한 이 책은 들뢰즈에 대한 철학적 관심과 함께 예술과 현실에 대한 접속 가능성을 불러일으킴으로써 그의 사유가 한국사회에 의미 있는 담론을 형성하는 데 무한 활용될 것이다.
여성주의의 차이는 들뢰즈의 차이와 다르다
이 책이 갖고 있는 특징 중 하나는 들뢰즈의 차이 개념에 대한 오해를 풀고 이를 여성주의와의 비교 속에서 명확히 한다는 점이다(1장과 2장 참조). 차이는 흔히 ‘나와 너는 다르다’라고 말할 때의 차이, 즉 동일자들 사이의 차이로 이해되거나 정치적인 의미에서 중심 체제에 포함되지 못하는 집단적인 소수로서의 차이, 즉 소외자를 일컬을 때 말하는 차이로 이해되고 있다. 그러나 이런 구별로서의 차이는 들뢰즈가 말하는 차이와 다르다. 들뢰즈는 동일성으로 포착되기 이전의 근거로서의 차이, 무수한 사건을 발생시키는 구체적인 것이지만 잠재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는 차이를 말하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들뢰즈의 차이는 차이 그 자체(difference en-soi)이다.
그런데 현대 여성주의의 차이에 대한 담론은 남성과 다른 여성성의 본질을 추구하거나 그 본질 너머의 차이를 고려하고 있다 해도 여성들 개체에 대한 정체성(동일성)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일례로 현대 여성주의 담론의 선두주자인 브라이도티(Rosi Braidotti)는 차이를 말할 때 “남성들과 여성들 간의 차이, 여성들 간의 차이, 각 여성 내의 차이들”이 모두 고려되어야 한다고 말한다(본문 36~38쪽). 하지만 이때의 차이란 개별 인간의 범주 안에 있는 유적인 차이를 넘어서지 못한다. 그녀가 말하는 ‘각 여성’이란 ‘실생활의 여성’, ‘페미니스트 여성 주체’를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들뢰즈가 말하는 차이 그 자체는 이런 유적인 차이 이전의 잠재적인 차원의 여성을 말한다. 다시 말해 차이 그 자체란 변별적인 차이 관계를 형성하는 지반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들뢰즈가 ‘여성-되기’를 말할 때는 이런 차이가 드러날 수 있도록 하는 ‘과정’의 의미를 지니는 것이다. 그리고 이때의 여성은 여성 일반도, 개별 여성도 아니며, 동일성에 포섭되지 않는 ‘어떤 여성’을 말하는 것이다. 이렇게 이 책은 여성주의가 유효한 지점을 들뢰즈에게서 발견한다. 여성주의가 남성성이나 가부장주의와 대결한다 할 때 그것은 동일성으로 환원되는 모든 보편주의와 미시 파시즘에 대한 거부여야 한다는 점에서 여성주의의 가능성을 찾고 있는 것이다.
들뢰즈의 윤리학은 구체적인 삶의 행동학이다
이 책은 차이 그 자체의 철학적 의미를 윤리학적으로, 현실 속에서의 실천적 의미로 사유하는 데까지 나아간다. 들뢰즈 윤리학의 흔한 오해 중 하나가 잠재성 차원의 차이는 결국 모든 동일성을 거부하므로 결국 어떠한 윤리적 지점도 없는 도덕적 무정부주의인 것처럼 인식되는 것이므로 이 책은 이와 관련한 상세한 논의를 전개하는 것이다(4장 참조).
들뢰즈는 말한다. “우선 잠옷 윗도리를 입고 다음에는 아랫도리를 입은 후에 저녁이면 침대로 기어 들어가고, 아침이면 침대 밖으로 나와 한 발짝 한 발짝 걸어가는 것은 얼마나 진절머리 나는 일인가.”(79쪽) 동일한 일이 반복되는 삶, 시간의 선적인 흐름과 인과성에 매여 있는 삶, 보편타당한 도덕 법칙을 따르는 삶. 이런 삶들은 허구이고 억압이다. 들뢰즈는 이런 질서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철학을 세우는데, 그것은 구체적인 삶을 모든 법칙 위에 두는 ‘내재성의 철학’이다. 내재성은 개개의 삶이 함축하고 있으나 표상되지는 않는 일종의 전체성과 같은 개념이다. 내재성은 어떤 것 안에 속하지 않고 어떤 주체에도 속하지 않는 즉자적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내재성이란 기존 질서와는 다른 이질적인 것을 생산할 수 있는 바탕이 되며, 이에 따라 삶에 대한 항구적인 답을 찾는 것이 아니라 각 삶과 각 사건으로부터 진실을 찾아야 하는 것이다. 이 책은 이런 들뢰즈의 윤리가 구체적인 행동학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
이와 결부해 이 책은 최근에 불고 있는 자본의 편집증적 운동, 즉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문제 삼고 있다(6장 참조). 이 운동이 문제인 이유는 세계화의 획일성을 모든 사회에 강요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 중심의 세계화에 대항하여 문화 다양성을 운위한다고 하여 그 다양성 아래 자행되고 있는 또 다른 상품화와 획일화를 눈감아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오히려 다양성은 동일자로 잡히기 전, 동일자로 환원되고 왜곡되기 전의 순수한 차이 그 자체로 돌아가야 한다고 이 책은 주장한다. 자본의 편집증적 운동에 매이지 않은 분열적 흐름에 따라 독특한 것들이 서로를 배제하지 않고 연대할 때 보편적인 소통에 이를 수 있다는 주장이다. 들뢰즈가 말하듯, “욕망은 언제나 더 많은 연결접속과 배치를 원하기 때문에 혁명적”이다. 이 책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에 맞서는 다양한 영화를 예로 들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러한 다양성은, 한국 영화를 블록버스터화하여 할리우드 영화에 대결시키는 것으로 지켜지는 것이 아니라, 한국에서만 만들어질 수 있는 독특한 영화들과 이란과 터키와 동유럽에서만 만들어질 수 있는 독특한 영화들이, 서로 너무나 다르면서도 보편적으로 소통하기 때문에 서로 연대하여 블록버스터 그 자체에 대항함으로써 지켜지는 것이다.”(141쪽)
들뢰즈의 미학, 소통과 해방의 비전을 제시하다
이 책의 또 다른 특징 중 하나는 김기덕 영화와 괴물성에 관한 분석 등을 통해 들뢰즈 철학이 예술에 어떠한 방식으로 적용 가능한지, 그리고 예술이 어떤 윤리적 비전을 던져 줄 수 있는지 보여 준다는 점이다. 들뢰즈는 “항상 문제는 삶을 그것이 갇혀 있는 곳으로부터 해방시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동일성만을 긍정하는 삶, 나 자신의 형태와 세계와의 통사적 관계에 묶여 있는 삶을 해방시키는 일은 삶 스스로가 실현할 수 없기 때문에 예술이 삶의 궁극적인 목적이 된다고 말한 바 있다. 왜냐하면 “예술은 필연적으로 어떤 예기치 않은 것, 인식되지 못한 것, 인식할 수 없는 것을 생산”하기 때문이다(7장 참조).
이 책은 이와 같은 예술의 윤리적 비전을 잘 보여 주고 있는 것으로 김기덕 영화를 꼽고 있다. 들뢰즈가 말한 이미지의 잠재성을 김기덕 영화가 그만큼 잘 실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는 특히 대학생 선화가 사창가 포주 한기의 계략에 말려 매춘을 하고, 이후 한기를 사랑하게 되는 영화인 「나쁜 남자」를 중점적으로 분석하고 있다(줄거리는 48~49쪽 참조).
이 영화는 시간 순서대로 그려져 있지 않고, 독자로 하여금 사건들을 통해 의미를 파악하도록 유도한다. 찢어진 사진을 나중에 찾아 맞춰 보니 자신들의 얼굴이었다든지, 칼에 찔린 일은 마치 아무렇지도 않은 일인 양 넘어간다든지, 선화는 계속해서 매춘을 하고 한기는 손님을 모으고 있다든지 하는 각각의 장면들은 시간의 순서대로 읽히지 않고 뫼비우스 띠처럼 꼬여 있다. 이는 영화가 확실하게 인식되지 않는 잠재성의 이미지를 나타내 준다는 것을 말해 준다. 잠재성의 세계에서는 각 사건들이 한 개인에게 귀속되지 않고 인과의 법칙을 벗어나 있기 때문에 모든 것이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공간이다. 각 개체가 이런 잠재성 차원으로 해방될 수 있다면 서로를 긍정하고 소통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김기덕 감독의 영화들은 비루한 존재들의 참담한 인생을 끈질기게 보여 주고 있다. 「나쁜 남자」에서도 선화와 창기가 사창가를 벗어나는 방식이 아니라 계속해서 매춘을 하며 함께 지내는, 쉽게 납득할 수 없는 방식으로 관계가 형성된다. 이는 김기덕 감독이 관객이 원하는 방식이 아니라 현재에 가까운 진실, 영화적 진실을 추구했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 당위의 편견과 도덕 법칙에 따르지 않고 개인적 정서의 노예 상태였던 이들이 그 너머의 차원에서 소통하고 화해하도록 만든 것이다.
김기덕 감독의 영화가 잠재성을 표현한다는 것은 당위적인 도덕률과 상상적인 판타지를 배제하고 각 개별 사건의 진실을 그대로 드러냄으로써, 어디에도 어떤 동일성에도 매이지 않는 존재자들 사이의 소통과 삶에 대한 해방을 가능하게 한다는 것을 뜻한다. 이 책은 들뢰즈의 철학으로부터 이렇게 영화 이미지가 갖고 있는 윤리와 미학을 도출하고, 예술이 갖고 있는 소통과 해방의 윤리적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
들뢰즈 철학의 본질은 존재론이다. 하지만 그것은 인간의 존재론이 아니라 우주 전체에 관한 존재론이며, 개별자들이 각각의 특이성에 따라 살아 숨쉴 수 있는 복수성의 세계 이론이다. 이와 같이 구체적인 것의 생산 원리로서의 세계를 본질로 내세운 들뢰즈 철학은 어떤 존재가 동일성으로 규정되고 왜곡되기 전, 그 근거가 되는 차이 그 자체를 통해 일자의 이데아가 아닌 복수성의 이데아를 구성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이데아는 구체적인 것이다.”(19쪽) 플라톤의 이데아를 전복한 이 들뢰즈의 형이상학이 있기에, 푸코는 “이 세기가 그의 세기로 기억될 것”이라고 말한 것이며, 오늘날 우리는 사유의 넓은 지대를 맞이하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이 책은 이 넓은 지대를 오늘날의 시각에서 사유한 리좀적인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