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좀 총서 I 9
- 이언 뷰캐넌 지음, 이규원·최승현 옮김 | 2020-02-28 | 240쪽 | 19,000원
그린비 리좀 총서 아홉 번째 책. 들뢰즈와 가타리의 1972년 저서 『안티-오이디푸스』에 대한 가이드북. 『안티-오이디푸스』의 배경, 즉 1968년 혁명(학생시위)과 베트남 전쟁이라는 역사적 맥락을 짚고, “자본주의와 정신분열증”이라는 주제에 대해 개괄한다.
저·역자 소개 ▼
저자 이언 뷰캐넌 Ian Buchanan
호주 울런공대학교 인문사회학부 교수. 학술지 《들뢰즈와 가타리 연구Deleuze and Guattari Studies》를 창간했으며, 에든버러대학교 출판부의 “들뢰즈 커넥션스Deleuze Connections” 시리즈의 편집자로 활동 중이다. 저서로 《『안티-오이디푸스』 읽기》, 《교양인을 위한 인문학 사전》 등이 있다.
역자 이규원
고양이를 사랑하는 번역가이자, 강의자, 연구자.
현재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인문의학교실 객원조교수로 의학사를 가르치고 있다. 《DK 고양이 백과사전》, 《우리의 더 나은 반쪽》, 《세계사를 바꾼 전염병 13가지》, 《정의의 아이디어》 등을 번역했다.
역자 최승현
충북대학교 교육학과 교수. 교육철학을 전공했고 현대철학과 시민교육, 학교교육, 정보윤리교육 등을 접목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포스트휴머니즘과 교육학』(공저), 『근대한국 교육 개념의 변용』(공저) 등이 있다. 옮긴 책으로 『정보사회의 철학: 구글・빅데이터・인공지능』, 『포스트모던 교육사상: 일본교육학은 포스트모던을 어떻게 수용했는가』 등이 있다. 논문으로 「정보사회에서 학교교육의 의미」, 「역사적 담론으로서의 인성교육론」 등이 있다.
차례 ▼
일러두는 말 7
약어표 8
1장 역사적 맥락에서 본 들뢰즈와 가타리 15
질이 펠릭스를 만났을 때 17
68년 5월 25
알제리, 베트남, 이탈리아… 32
2장 주제들의 개관 45
이론과 실천 50
정신분석을 혁신하기 56
3장 텍스트 읽기 73
욕망기계 73
정신분석과 가족주의 : 성가족(聖家族) 111
미개인들, 야만인들, 문명인들 146
분열분석 입문 190
4장 수용과 영향 217
더 읽어 보기 230
옮긴이 후기 238
편집자 추천글 ▼
『안티-오이디푸스』 독자들을 위한 가이드북
“이 책은 들뢰즈/가타리 애호가와 현대 자본주의 비평가 모두에게 없어서는 안 될 책이다.”
_ 윌리엄 코널리(William Connolly)
“이언 뷰캐넌은 역사와 유머를 사용하여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작품 중 하나를 설명한다.”
_ 클레어 콜브룩(Claire Colebrook)
들뢰즈와 가타리의 대표적인 정치철학서 『안티-오이디푸스』에 대한 가이드북이 그린비 리좀 총서 아홉 번째 책으로 출간된다. 호주 출신의 문화이론가 이언 뷰캐넌의 『『안티-오이디푸스』 읽기』는 들뢰즈와 가타리의 1972년 저서 『안티-오이디푸스』의 배경, 즉 1968년 혁명(학생시위)과 베트남 전쟁이라는 역사적 맥락을 짚고, “자본주의와 정신분열증”이라는 이 책의 주제에 대해 개괄한다.
이언 뷰캐넌은 『안티-오이디푸스』의 주요 주제를 매우 간결하고 읽기 쉬운 방식으로 설명하며, 들뢰즈와 가타리의 사상이 마르크스, 니체, 라캉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었는지를 성찰한다. 무엇보다 68혁명에 대해 성찰하려 했던 들뢰즈와 가타리의 기획이 어떤 문화적 배경에서 탄생되었는지를 성실하고 꼼꼼한 자료조사를 통해 설명한다.
기계에 종속된 근육,
자본이 호명한 주체
포르노그래피는 인간의 성욕을 그대로 보여주지 않는다. 수그러든 남성의 성기를 다시 세우고, 조명을 바꾸고, 카메라를 이동시키는 일련의 행위들은 성행위 자체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기보다는 상품으로서 누군가에게 팔리는 일에 복무한다. 때문에 포르노그래피는 공식에 따라 욕망을 채취한 뒤, 상업적으로 가치 있는 장면을 분리해내는 작업에서 성욕을 다루길 멈춘다. 들뢰즈와 가타리가 보기에 이런 식으로 실재하는 욕망을 조작하는 작업은 자본주의 사회뿐 아니라 국가 사회주의에도 만연해 있다. 사물에 대한 경제학적 사고, 들뢰즈와 가타리가 기획한 ‘안티’는 바로 이런 사고방식에 대한 도전이라고 할 수 있다.
마르크스의 MCM′ 공식, 곧 ‘유동적이고 선택 가능한 화폐(M)-이익을 목적으로 투자된 자본(C)-확장적이고 유동적인 화폐(M′)’가 개별 자본가를 위한 한 건의 이익을 넘어 자본의 보편적 운동을 증명하는 논리임은 잘 알려져 있다. 예를 들어, 오늘날 마이크로소프트사는 전 세계 시장의 98%를 독점한 끝에 이윤율 하락 법칙의 적용을 받기에 이르렀다. 새로운 고객에게 소프트웨어를 파는 것만으로는 더 이상 지탱할 수 없는 이 회사가 취한 전략은 구글과 경쟁하거나, 야후와의 합병을 추진하거나 혹은 기존 시스템과 호환되지 않는 새로운 시스템을 개발하여 기존 고객을 떼어내는 것이다. 마이크로소프트사는 기존의 관습과 단절하여 1990년대 초 인터넷과 같은 새로운 영역을 창출했지만(탈영토화), 투자 기회가 줄어듦에 따라 아마존과의 경쟁에 뛰어들었다(재영토화).
역사적으로 자본주의는 먼저 길드 조직을 해체하여 개별 노동자로 변신시켜 그의 근육을 기계의 리듬에 복속시켰다(원시적 축적의 과정). 이렇게 기계와 이어진 노동자라는 주체는 부르주아-노동자 관계의 재생산을 위해 끊임없이 호명된다. 누군가의 아버지이자, 산업일꾼으로 호명되는 노동자에게 다른 대안은 없다(사회적 관계의 재생산 과정). 노동자는 처음에는 자유를 얻은 것 같지만 알고 보면 특정한 사회적 관계 속에 갇힌 것이다. 자본주의는 이렇게 고정된 사회적 관계 위에서 개인들의 욕망이 흘러가도록 한다.
들뢰즈와 가타리는 두 종류의 돈을 구분한다. 하나는 개인이 물건을 사기 위해 쓰는 돈으로서 이는 그저 한 개인의 삶에 영향을 끼칠 뿐이다. 반면 자본가의 돈은 수십억 명의 삶에 영향을 끼친다. 제1세계의 자본가와 그를 대리하는 기관들(IMF, 세계은행 등)이 제3세계인의 삶을 개선한다는 명목하에 제3세계에 공공 기반시설을 만든다. 제3세계의 노동자들은 자신들이 진 빚을 갚기 위해 기꺼이 노동자가 된다. 여기서 공공 기반시설의 진짜 수혜자는 제1세계의 자본가인 것이다. 이러한 폐해들은 궁극적으로 지구 생태계 전체를 파괴한다. 수익률이 나지 않는다면 혁신도 없다는 자본주의의 명제는 지구온난화 문제에 대한 해법은 오직 시장밖에 없다는 아이러니를 낳았다. 예를 들어, EU는 배출권 거래제를 통해 기업들의 이익을 보장하면서도 겉으로는 탄소배출량을 제한하고 있다.
가족주의와 정신분석,
자본주의의 무의식적 작동원리
가족주의는 이 사회적 관계를 떠받치고 있다. “가족은 우리를 ‘완전한’ 사람들로 만드는 역할들을 배분한다.”(114쪽) 가족 속에서 우리는 부모로서의 권한과 형제간의 공평함 등 가족으로서 감당해야 몫을 할당 받는다. 가족의 논리는 사회 전체로 울려 퍼진다. 어머니와 결혼하지 말고, 아버지를 죽이지 말 것. 정신분석은 금지의 논리 위에서 이를 벗어나는 모든 것을 치료의 대상으로 간주한다. 오늘날 자본주의의 무의식적 작동 원리는 바로 정신분석이다. 자본가와 국가 그리고 노동자로서의 정체성을 명확히 할 것. 내가 자본가가 될 수 있다면 타인은 반드시 노동자로 남는다는 사실을 아는 신경증자가 될 것. 가족은 사회적으로 고정된 위치를 무의식적으로 내면화시켜주는 훌륭한 제도이다. 따라서 신경증자와 대비되는 분열증자는 자본주의의 한계를 대변한다. “오이디푸스적 삼각형은 개인적이고 사적인 영역성이며, 그 영역성은 사회적 재영토화에서의 모든 자본주의의 노력에 부합한다.”(189쪽)
결국 서구에 사는 대부분의 국민들이 좌파나 우파에 투표할 수는 있지만 기업에 반대하는 투표는 할 수 없다. 예를 들어, 미국에는 녹색당이 아예 존재하지도 않거니와 유럽에서도 녹색당에 투표하는 것은 기업이나 자본에 대항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친환경적인 기업에 투표하는 행위이다. 더 많은 친환경적인 사업의 발굴을 통해 하층부 국민의 일자리 확대를 기대한다는 것이다. 1972년 출간된 『안티-오이디푸스』는 이렇게 소비자로 축소되어 저항 행동을 거세당한 당대 유럽인의 현실을 직시하여 큰 주목을 받았다. 저항 행동을 거세당한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냉소밖에 없다. 이 책의 이러한 메시지는 오늘날 한국 사회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