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정체  데자뷔·인과론·양자론 

리좀 총서 II 7

군지 페기오-유키오  지음, 박철은 옮김 | 2019-03-15  | 288 쪽 | 20,000원


들뢰즈의 존재론을 과학철학, 수리철학적으로 계승, 발전시켜 가는 데 독보적인 면모를 보여 주고 있는 일본의 물리학자 군지 페기오-유키오의 저작. 이 책에서 그는 ‘시간’을 주제로 다시 한번 그의 독창성을 발휘한다. 시간의 문제가 ‘존재의 양의성’이라는 문제와 얽힌 가장 근본적인 측면임을 주장하면서, 베르그송-들뢰즈적 시간 개념과 맥태거트의 시간론을 대조하며 맥태거트가 제시한 ‘시간의 역설’ 문제를 해소하고자 하는 것이다.
아울러 시간이 빨리 흐르거나 느리게 흐르는 체험을 자신의 집합-원소 혼동 이론에 기반해서 설명하고, 인과 역전과 관련된 인지과학의 실험 및 그 가능성에 대해서 또한 소개하고 있다. 과학과 철학의 경계를 넘나들며 펼쳐 내는 그의 사상은 독자들에게 새로운 지적 충격을 선사할 것이다.


저·역자 소개 ▼

지은이 군지 페기오-유키오 郡司ぺギオ-幸夫
1959년생. 도호쿠(東北)대학 대학원 이학연구과 박사후기과정을 수료하고 현재 고베(神戶)대학 대학원 이학연구과 지구혹성과학 비선형과학 전공교수로 있다. 관측자가 관측대상의 외부에 수동적으로 머무르지 않고, 관측한다는 행위로 인해 끊임없이 관측대상과 상호작용한다는 <내부관측> 개념을 발전시켜, 관측 이전, 이후의 논리적 불일치의 상태를 확정하여 무모순화하려는 것을 지양하고, 끊임없이 불일치되는 관측 과정 자체에 주목하여 시간을 사상하지 않는 논리, 수학적 모델을 주창하고 있다. <생명이란 무엇인가?>, <생명과 물질의 차이는 무엇인가?>라는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생명의 기원과 진화, 자기조직계 이론, 바이오컴퓨팅, 인공지능, 인지과학 연구 등 폭넓은 분야에서 독자적인 성과를 올리고 있다. 저서로『원생계산과 존재론적 관측』(原生計算と存在論的觀測), 『살아 있는 것의 과학』(生きていることの科學), 『생명이론』(生命理論), 『시간의 정체』(時間の正體), 『생명일호』(生命壹號), 『무리는 의식을 갖는다』(群れは意識をもつ)등, 그 외 다수의 공저와 논문이 있다.   

옮긴이 
박철은
고베대학 이학연구과에서 비선형과학(이론생명과학)을 전공, 이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와세다대학 이공학술원 종합연구소 초빙연구원, 고베대학 이학연구과 연구원을 역임했으며 현재 시가대학 대학원 교육연구과 객원연구원으로 있다. 공저로 『사유의 새로운 이념들』이 있으며 『생명과 장소』(공역), 『허구세계의 존재론』, 『생명이론』, 『과학으로 풀어낸 철학입문』, 『고쿠분 고이치로의 들뢰즈 제대로 읽기』, 『무리는 생각한다』, 『과학혁명과 세계관의 전환 1』(공역) 등을 옮겼다.
 

차례 ▼

한국어판 서문

1장 / 왜 시간인가
2장 / 데자뷔와 나무/숲의 가환성
3장 / 마르코풀루 : 시공의 내적 기술(記述)
4장 / 내부 관측에서 A계열, B계열로
5장 / 맥태거트적 불가능성의 전회: 데자뷔 재고
6장 / 인과론-숙명론의 상극(相克)과 양자론
7장 / 인지적 시간에서 A계열, B계열 간의 조정

후기
참고문헌 | 찾아보기
편집자 추천글 ▼

과학적 시간론과 철학적 시간론의 랑데부!
‘들뢰즈를 연구하는 과학자’ 군지 페기오-유키오, ‘시간’을 말하다!!


들뢰즈 이후, 단순히 그의 철학을 해설하거나 주석을 붙이는 것을 넘어 그의 사유와 대결하며 자신만의 독창적인 사유를 펼쳐 가고 있는 저자들의 사유를 모은 그린비출판사 ‘리좀총서 II’의 신간으로 『시간의 정체: 데자뷔?인과론?양자론』이 출간되었다. 동 시리즈로 이미 번역 출간된 『생명이론』(2013)을 통해 생명과학의 입장에서 들뢰즈에 대한 과감한 해석을 전개한 바 있으며, 들뢰즈의 존재론을 과학철학, 수리철학적으로 계승, 발전시켜 가는 데 가히 독보적인 면모를 보여 주고 있는 일본의 물리학자 군지 페기오-유키오(郡司ペギオ幸夫)의 저작이다.
이 책에서 그는 ‘시간’을 주제로 다시 한번 그의 독창성을 발휘한다. 시간의 문제가 ‘존재의 양의성’이라는 문제와 얽힌 가장 근본적인 측면임을 주장하면서, 베르그송-들뢰즈적 시간 개념과 맥태거트(J. M. E. McTaggart)의 시간론을 대조하며 맥태거트가 제시한 ‘시간의 역설’ 문제를 해소하고자 하는 것이다. 아울러 시간이 빨리 흐르거나 느리게 흐르는 체험을 자신의 집합-원소 혼동 이론에 기반해서 설명하고, 인과 역전과 관련된 인지과학의 실험 및 그 가능성에 대해서 또한 소개하고 있다. 과학과 철학의 경계를 넘나들며 펼쳐 내는 그의 사상은 독자들에게 새로운 지적 충격을 선사할 것이다.


철학과 과학의 경계를 넘나들고 부수기

이 책은 마누엘 데란다가 『강도의 과학과 잠재성의 철학』(리좀총서 II의 첫 권이기도 하다) 서문에서 언급했던 것과 같은 종류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완전히 배타적인 두 철학 진영, 즉 유럽 대륙과 영미권 어느 쪽에서도 난색을 표하며 전혀 동의/이해하지 못한다고 말하기 십상일 것이라는 점에서 말이다. 더구나 철학 내에서 들뢰즈라는 철학자의 철학을 재구성하여 해설하는 작업에 중점을 둔 데란다와는 달리, 이 책 『시간의 정체』는 과학자가 철학을 참조하면서, 특정 철학자의 사상을 해설한다기보다는 자신의 추상적인 수학적 모델을 만들어 내고 있는 저작이라는 점에서 더더욱 곤란함을 안겨 준다. 철학과 과학, 양 분야의 연구자/독자들 또한 난색을 표하며 전혀 동의/이해하지 못한다고 말하기 십상이지 않은가!
하지만 역으로, 양측 진영에 동시에 호소할 수 있는 지점도 여기에서 발생할 것이다. 보통의 ‘인문적’ 철학 논증 내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수학적 도구, 모델을 매우 구체적으로 제시하면서 어느 한쪽 스타일에서의 논증이 아닌, 새로운 논증 스타일을 보여 주고 있기 때문이다.
수학기초론이나 수학사, 수리 철학에 관심이 있는 독자들은 이 책에서 여러 흥미로운 논점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배중률의 붕괴, 원소와 집합의 혼동 등의 개념이 그러하다, 1차 술어 논리와 이산 수학, ZFC 공리계 등 그 안전성이 보장된 영역에서 벗어나 체나 군론을 이용하여 ‘모순’을 다루고, 최소한 양가적인 예/아니오라는 대답을 보류한 상태의 수학적 구조에 주목하는 것이다. 즉, 생성 과정의 최종 산물로서의 언어적 명제를 다루는 논리학에서는 발견할 수 없는, 생성을 함께 사유하는 수학적 도구를 내세운다. 역사적으로는 시대적 한계와 제반 조건 때문에, 배중률과 모순율을 필연적인 진리로서 받아들여 왔으나(아리스토텔레스, 라이프니츠) 이 흐름에 역행해 보는 것이다. 이는 나아가 ‘계산의 본질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과도 자연스럽게 연관된다. 컴퓨터를 이용한 계산이 연역이나 귀납 등 전통적인 추론법을 비롯한 언어적으로 표상할 수 있는 진리만이 아니라, 언어적 표상을 초월한, 자연의 수학적 ‘이성’을 드러내는 새로운 도구로서 철학에 새로운 빛을 비출 잠재성을 갖고 있는 것이다.


데자뷔로부터 시간의 근본적 양의성까지

이 책의 논의는 ‘데자뷔’라는 특수한 시간 감각으로부터 시작한다. 데자뷔의 시간 감각에 내포된 부유감, 혼동감이 논의의 실마리이다. 군지는 물리학자 마르코풀루와 철학자 맥태거트는 공히 삼인칭적인 이전-이후라는 순서 관계로 구성되는 B계열과 일인칭적인 현재-과거-미래로 구성되는 A계열의 상호작용을 받아들이지만, 전자의 논의는 철저하지 못했고 후자는 논리적으로 시간은 존재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고 지적한다. 이에 비해 베르그송과 들뢰즈는 마찬가지로 시간을 사고할 때 어떤 역설에 도달했음에도 그것을 긍정적으로 전개했다.
군지는 이들의 논점을 검토한 뒤 현재는 점(원소)이자 폭(집합)의 양의성(a/{a})을 갖는다고 논하고 인식론(=존재론)적으로 이 양의성은 근본적인 것이라고 주장한다. 말하자면 이 모순을 베르그송과 들뢰즈처럼 긍정적으로 전개해 보자는 것이다. A계열과 B계열은 서로 끊임없이 어긋나고, 조정되면서 다시 어긋나는 과정을 반복한다. 이 운동이 시간의 흐름을 낳는다. 데자뷔는 현재의 원소-집합 쌍의 대응에 혼동이 오는 순간인 것이다.
저서의 후반에서는 양자론이나 시간 감각, 인과 개념에 대한 논의가 등장한다. 이들 모두는 이 A계열과 B계열의 상호작용, 원소와 집합의 혼동이라는 대전제 위에서 논의된다. 독립적인 성분의 합이라는 기저 상태의 중첩(선형 독립성)과 복합계의 텐서곱을 함께 허용하는 양자계에서는 이른바 토큰과 타입이 서로의 안에서 그 자신을 발견하는, 기묘한 양의성을 띤다. 인과론과 숙명론은 타입과 토큰이 스스로에 내재하는 상대의 존재를 은폐하고 그저 단적으로 타입과 토큰일 뿐이라고 주장하는 데서 생겨난다. 허나 아이러니하게도 이 이중성을 완전히 은폐할 수 없기 때문에 양자는 서로 대화 및 논쟁이 가능하며, 근본적으로는 이 대립 자체가 무효인 것이다. 시간이 늘어나거나 줄어드는 감각, 인과가 역전된 것 같은 기묘한 감각도 기본적으로는 데자뷔와 같은 돌출적인 사태이다. 실상 우리는 어느 때는 타입과 토큰을 구분하고, 어느 때는 혼동하면서 자유롭게 구별과 혼동을 오간다. 이들을 단성분으로서 구분하는 것이 아니라 이 이중성을 살려서 전개하는 것이 열쇠가 된다.
객관적인 시간과 주관적인 시간을 명확하게 구별하기란 불가능하다. 구별한 순간, 들여다보면 그 속에서는 다시 상대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문제는 위에서 길게 기술한 이 양상을 기술로서 끝내는 것이 아니라 수학적인 모델로, 눈에 보이는 형태로 제시할 수 있는가에 있다. 이 책은 그러한 전개 과정을 흥미롭고 아름답게 보여 주는 하나의 작품으로서, 깊이와 통찰을 겸비한 학제 간 연구의 한 전범이라 하기에 부족함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