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신 3 

루쉰 전집 15

루쉰 지음, 서광덕·이보경·루쉰전집번역위원회 옮김 | 2018-04-15 | 808쪽 | 37,000원


1934년과 1935년의 루쉰 서신
편지 속에 숨어 있는 디테일한 행적   


저·역자 소개 ▼

저자 루쉰 周樹人
1881년 저쟝 성 사오싱紹興의 지주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할아버지의 투옥과 아버지의 죽음 등으로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난징의 강남수사학당과 광로학당에서 서양의 신문물을 공부했으며, 국비 장학생으로 일본에 유학을 갔다. 1902년 고분학원을 거쳐 1904년 센다이의학전문 학교에서 의학을 배웠다. 그러다 환등기에서 한 중국인이 총살당하는 장면을 그저 구경하는 중국인들을 보며 국민성의 개조를 위해서는 문학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절감하고 학교를 그만두고 도쿄로 갔다. 도쿄에서 잡지 《신생》의 창간을 계획하고 《하남》 에 「인간의 역사」 「마라시력설」을 발표하는 등 활발하게 활동했다. 1909년 약 7년간의 일본 유학 생활을 마치고 귀국하여 항저우 저쟝양급사범 학당의 교사를 시작으로 사오싱, 난징, 베이징, 샤먼, 광저우, 상하이 등에서 교편을 잡았고, 신해혁명 직후에는 교육부 관리로 일하기도 했다. 루쉰이 문학가로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것은 1918년 5월 《신청년》에 중국 최초의 현대소설이라 일컬어지는 「광인일기」를 발표하면서이다. 이때 처음으로 ‘루쉰’이라는 필명을 썼다. 이후 그의 대표작인 「아큐정전」이 수록된 『외침』을 비롯하여 『방황』 『새로 엮은 옛이야기』 등 세 권의 소설집을 펴냈고, 그의 문학의 정수라 일컬어지는 잡문(산문)집 『아침 꽃 저녁에 줍다』 『화개집』 『무덤』 등을 펴냈으며, 그 밖에 산문시집 『들풀』과 시평 등 방대한 양의 글을 썼다. 루쉰은 평생 불의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에 분노하고 저항했는데, 그 싸움의 무기는 글, 그중에서 잡문이었다. 마오쩌둥은 루쉰을 일컬어 “중국 문화혁명의 주장主將으로 위대한 문학가일 뿐만 아니라 위대한 사상가, 혁명가”라고 했다. 마오쩌둥의 말처럼 루쉰은 1936년 10월 19일 지병인 폐결핵으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활발한 문학 활동뿐만 아니라 중국좌익작가연맹 참여, 문학단체 조직, 반대파와의 논쟁, 강연 활동을 펼쳤다. 이를 통해 중국의 부조리한 현실에 온몸으로 맞서 희망을 발견하고 새로운 길을 제시하고자 했다.

역자 
서광덕
연세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졸업 후 연세대학교 대학원 석사?박사과정을 졸업했다. 저서로는 『루쉰과 동아시아 근대』(2018), 『중국 현대문학과의 만남』(공저, 2006), 『동북아해역과 인문학』(공저, 2020) 등이 있고, 역서로는 『루쉰』(2003), 『일본과 아시아』(공역, 2004), 『중국의 충격』(공역, 2009), 『수사라는 사상』(공역, 2013), 『아시아의 표해록』(공역, 2020) 등이 있으며, 『루쉰전집』(20권) 번역에 참가했다. 2020년 현재 부경대학교 인문사회과학연구소 HK교수로 재직 중이다. 

역자 이보경
연세대학교 중어중문학과에서 『20세기초 중국의 소설이론 재편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현재는 강원대학교 중어중문학과에 재직 중이다. 지은 책으로는 『문(文)과 노벨(Novel)의 결혼』, 『근대어의 탄생-중국의 백화문운동』이 있고, 옮긴 책으로는 『내게는 이름이 없다』, 『동양과 서양 그리고 미학』(공역), 『루쉰전집』의 『열풍』, 『거짓자유서』, 『풍월이야기』, 『먼 곳에서 온 편지』 등이 있다. 


역자 루쉰전집번역위원회 
공상철, 김영문, 김하림, 박자영, 서광덕, 유세종, 이보경, 이주노, 조관희, 천진, 한병곤, 홍석표

차례 ▼

『루쉰전집』을 발간하며

1934년
1935년

『서신 3』에 대하여
편집자 추천글 ▼

1934년과 1935년의 루쉰 서신
편지 속에 숨어 있는 디테일한 행적


루쉰의 서신은 공개적으로 발표되는 글이 아니기 때문에 소설, 산문, 잡문 등 다른 글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그의 행적과 속마음이 잘 드러난다는 특징이 있다. 특히 ‘서신 3’은 1934년과 1935년의 짧은 두 해 동안 550여 통에 이르는 엄청나게 많은 서신을 담고 있어 그의 행적 곳곳을 좀더 깊이 있게 들여다볼 수 있다.
이 시기 루쉰의 서신에서 주목할 점은 첫째, 목판화운동과 관련된 일이다. 뤄칭전, 장후이, 리화, 천옌차오, 라이사오치, 탕잉웨이 등 청년 목판화가들과 꾸준히 교유하며, 그들의 작품이 출판되도록 소개하고 인세의 정산을 돕고 서점 판매를 주선했다. 목판화 작품에 관하여 ‘경험, 관찰, 사색’을 바탕으로 할 것과 그것이 예술작품임을 잊어선 안 됨을 강조하여 청년 작가들의 작품 내적인 향상을 위해 노력했다. 나아가 목판의 성격, 인쇄와 출판 과정에서 일어나는 변수 등을 고려하며 완성도 높은 작품을 만들도록 독려하여 목판화운동에 불을 지폈다.
둘째, 번역 활동과 청년 작가들에 대한 지원이다. 국민당의 검열과 수배, 암살 등이 횡행하여 루쉰은 자신의 이름으로 집필 활동을 하지 못하고 가명을 쓰거나 번역에 매진했다. 고골의 『죽은 혼』, 판텔레예프의 『시계』 등이 대표적인 역서이다. 또 상하이에 거주하게 된 동북 출신 작가 샤오쥔, 샤오훙과 서신 왕래를 하며, 이들이 상하이 문단의 야수성을 극복하고 작품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적극 도왔다. 많은 청년 작가들의 출판을 돕고, 서문을 쓰고, 『역문』 등의 잡지에 작품을 발표할 수 있도록 도우며 문학이라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셋째, 정전둬(鄭振鐸)와 함께 고서를 수집, 정리한 일이다. 루쉰은 전 생애에 걸쳐 고대 문물을 수집해 왔고, 비문과 고적을 연구하여 정리하고, 지리지를 펴내는 등 늘 이를 관심의 범위에 두고 있었다. 이때에는 정전둬라는 고서에 능통한 동료를 만나 『베이핑전보』(北平箋譜), 『십죽재전보』(十竹齋箋譜) 등을 펴내며 교유했다.
이 외에도 양지윈과의 서신 교환을 통해 루쉰 자신의 초기 글에 대한 기억을 언급한 일, 베이징에 있는 어머니께 편지를 써서 안부를 묻고 자신의 상황을 전한 일도 주목해 볼 수 있다. 아들 하이잉이 커 가는 모습과 음식, 발병, 보양과 관련한 신변잡기도 곳곳에 녹아 있어 루쉰의 인간적인 면모를 만나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