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신 2
루쉰 전집 14
루쉰 지음, 박자영·루쉰전집번역위원회 옮김 | 2018-04-15 | 640쪽 | 33,000원
1927년부터 1933년까지의 루쉰 서신
상하이 생활의 교유 관계를 알 수 있는 기록문학의 보고
저·역자 소개 ▼
저자 루쉰 周樹人
1881년 저쟝 성 사오싱紹興의 지주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할아버지의 투옥과 아버지의 죽음 등으로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난징의 강남수사학당과 광로학당에서 서양의 신문물을 공부했으며, 국비 장학생으로 일본에 유학을 갔다. 1902년 고분학원을 거쳐 1904년 센다이의학전문 학교에서 의학을 배웠다. 그러다 환등기에서 한 중국인이 총살당하는 장면을 그저 구경하는 중국인들을 보며 국민성의 개조를 위해서는 문학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절감하고 학교를 그만두고 도쿄로 갔다. 도쿄에서 잡지 《신생》의 창간을 계획하고 《하남》 에 「인간의 역사」 「마라시력설」을 발표하는 등 활발하게 활동했다. 1909년 약 7년간의 일본 유학 생활을 마치고 귀국하여 항저우 저쟝양급사범 학당의 교사를 시작으로 사오싱, 난징, 베이징, 샤먼, 광저우, 상하이 등에서 교편을 잡았고, 신해혁명 직후에는 교육부 관리로 일하기도 했다. 루쉰이 문학가로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것은 1918년 5월 《신청년》에 중국 최초의 현대소설이라 일컬어지는 「광인일기」를 발표하면서이다. 이때 처음으로 ‘루쉰’이라는 필명을 썼다. 이후 그의 대표작인 「아큐정전」이 수록된 『외침』을 비롯하여 『방황』 『새로 엮은 옛이야기』 등 세 권의 소설집을 펴냈고, 그의 문학의 정수라 일컬어지는 잡문(산문)집 『아침 꽃 저녁에 줍다』 『화개집』 『무덤』 등을 펴냈으며, 그 밖에 산문시집 『들풀』과 시평 등 방대한 양의 글을 썼다. 루쉰은 평생 불의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에 분노하고 저항했는데, 그 싸움의 무기는 글, 그중에서 잡문이었다. 마오쩌둥은 루쉰을 일컬어 “중국 문화혁명의 주장主將으로 위대한 문학가일 뿐만 아니라 위대한 사상가, 혁명가”라고 했다. 마오쩌둥의 말처럼 루쉰은 1936년 10월 19일 지병인 폐결핵으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활발한 문학 활동뿐만 아니라 중국좌익작가연맹 참여, 문학단체 조직, 반대파와의 논쟁, 강연 활동을 펼쳤다. 이를 통해 중국의 부조리한 현실에 온몸으로 맞서 희망을 발견하고 새로운 길을 제시하고자 했다.
역자 박자영
연세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졸업하고 중국 화둥사범대학 중어중문학과에서 「공간의 구성과 이에 대한 상상: 1920, 30년대 상하이 여성의 일상생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협성대학교 중국통상문화학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문화/과학》 편집위원. 지은 책으로 『상하이의 낮과 밤』(2020), 『도시로 읽는 현대중국1』(공저, 2017), 『동아시아 문화의 생산과 조절』(공저, 2011), 『냉전 아시아의 문화풍경2: 1960~1970년대』(공저, 2009) 등이 있다. 옮긴 책으로는 『루쉰전집14: 서신2』(2018), 『세상사는 연기와 같다』(2000), 『루쉰전집4: 화개집?화개집속편』(공역, 2014), 『나의 아버지 루쉰』(공역, 2008) 등이 있다.
1881년 저쟝 성 사오싱紹興의 지주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할아버지의 투옥과 아버지의 죽음 등으로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난징의 강남수사학당과 광로학당에서 서양의 신문물을 공부했으며, 국비 장학생으로 일본에 유학을 갔다. 1902년 고분학원을 거쳐 1904년 센다이의학전문 학교에서 의학을 배웠다. 그러다 환등기에서 한 중국인이 총살당하는 장면을 그저 구경하는 중국인들을 보며 국민성의 개조를 위해서는 문학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절감하고 학교를 그만두고 도쿄로 갔다. 도쿄에서 잡지 《신생》의 창간을 계획하고 《하남》 에 「인간의 역사」 「마라시력설」을 발표하는 등 활발하게 활동했다. 1909년 약 7년간의 일본 유학 생활을 마치고 귀국하여 항저우 저쟝양급사범 학당의 교사를 시작으로 사오싱, 난징, 베이징, 샤먼, 광저우, 상하이 등에서 교편을 잡았고, 신해혁명 직후에는 교육부 관리로 일하기도 했다. 루쉰이 문학가로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것은 1918년 5월 《신청년》에 중국 최초의 현대소설이라 일컬어지는 「광인일기」를 발표하면서이다. 이때 처음으로 ‘루쉰’이라는 필명을 썼다. 이후 그의 대표작인 「아큐정전」이 수록된 『외침』을 비롯하여 『방황』 『새로 엮은 옛이야기』 등 세 권의 소설집을 펴냈고, 그의 문학의 정수라 일컬어지는 잡문(산문)집 『아침 꽃 저녁에 줍다』 『화개집』 『무덤』 등을 펴냈으며, 그 밖에 산문시집 『들풀』과 시평 등 방대한 양의 글을 썼다. 루쉰은 평생 불의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에 분노하고 저항했는데, 그 싸움의 무기는 글, 그중에서 잡문이었다. 마오쩌둥은 루쉰을 일컬어 “중국 문화혁명의 주장主將으로 위대한 문학가일 뿐만 아니라 위대한 사상가, 혁명가”라고 했다. 마오쩌둥의 말처럼 루쉰은 1936년 10월 19일 지병인 폐결핵으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활발한 문학 활동뿐만 아니라 중국좌익작가연맹 참여, 문학단체 조직, 반대파와의 논쟁, 강연 활동을 펼쳤다. 이를 통해 중국의 부조리한 현실에 온몸으로 맞서 희망을 발견하고 새로운 길을 제시하고자 했다.
역자 박자영
연세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졸업하고 중국 화둥사범대학 중어중문학과에서 「공간의 구성과 이에 대한 상상: 1920, 30년대 상하이 여성의 일상생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협성대학교 중국통상문화학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문화/과학》 편집위원. 지은 책으로 『상하이의 낮과 밤』(2020), 『도시로 읽는 현대중국1』(공저, 2017), 『동아시아 문화의 생산과 조절』(공저, 2011), 『냉전 아시아의 문화풍경2: 1960~1970년대』(공저, 2009) 등이 있다. 옮긴 책으로는 『루쉰전집14: 서신2』(2018), 『세상사는 연기와 같다』(2000), 『루쉰전집4: 화개집?화개집속편』(공역, 2014), 『나의 아버지 루쉰』(공역, 2008) 등이 있다.
역자 루쉰전집번역위원회
공상철, 김영문, 김하림, 박자영, 서광덕, 유세종, 이보경, 이주노, 조관희, 천진, 한병곤, 홍석표
차례 ▼
『루쉰전집』을 발간하며
1927년
1928년
1929년
1930년
1931년
1932년
1933년
『서신 2』에 대하여
1927년
1928년
1929년
1930년
1931년
1932년
1933년
『서신 2』에 대하여
편집자 추천글 ▼
1927년부터 1933년까지의 루쉰 서신
상하이 생활의 교유 관계를 알 수 있는 기록문학의 보고
『루쉰전집』 14권은 루쉰이 1927년부터 1933년 사이에 보낸 편지 452통을 담았다. 이 시기는 15년간의 베이징 생활을 마치고 6개월 정도 샤먼대학 교수로 있다가 광저우 중산대학을 거쳐 상하이에 정착하는 급격한 변화의 시기로부터 시작하고 상하이 10년 생활 중 7년을 포괄한다. 교수직과 강의를 마다하고 집필에 힘쓰고자 한 과정과 국민당 당국의 검열과 탄압, 논적들의 공격에 대항해 펜을 들고 저항하는 루쉰의 속마음이 드러나 있다.
특히 루쉰이 맺고 있는 다양한 관계망과 다른 문집에서는 드러나지 않는 다양한 활동에 주목할 수 있다. 리샤오펑, 리지예, 웨이충우를 비롯한 베이신(北新)과 웨이밍사(未名社) 등의 문학계 인사에게 보낸 편지들에는 상황이 변하면서 관계의 양상도 변하는 내밀한 행적이 드러난다. 또한 이 서신집 속에는 ‘지푸 형’이라고 불렀던 평생 뜻을 같이한 쉬서우창 같은 오래된 벗들도 있고, 무엇보다 ‘새롭게 알게 된 청년들’도 있다. 주로 1930년 이후에 알게 된 좌익작가연맹 소속 작가와 목판화 작가, 외국 문학작품 번역가 등이 그들이다. ‘인생의 지기’로 꼽았던 취추바이를 알게 되고, 뤄칭전 등 젊은 예술가들과 열정을 교유한다. 1.28상하이사변과 국민당의 겁박, 논적들의 협잡질 등 대내외 고통 속에서도 중국자유운동대동맹, 민권보장동맹, 좌익작가연맹 등에 참여하고 문학작품 번역과 지원뿐 아니라 목판화 예술 운동으로 영역을 넓히며 맞서 싸우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상하이 생활의 교유 관계를 알 수 있는 기록문학의 보고
『루쉰전집』 14권은 루쉰이 1927년부터 1933년 사이에 보낸 편지 452통을 담았다. 이 시기는 15년간의 베이징 생활을 마치고 6개월 정도 샤먼대학 교수로 있다가 광저우 중산대학을 거쳐 상하이에 정착하는 급격한 변화의 시기로부터 시작하고 상하이 10년 생활 중 7년을 포괄한다. 교수직과 강의를 마다하고 집필에 힘쓰고자 한 과정과 국민당 당국의 검열과 탄압, 논적들의 공격에 대항해 펜을 들고 저항하는 루쉰의 속마음이 드러나 있다.
특히 루쉰이 맺고 있는 다양한 관계망과 다른 문집에서는 드러나지 않는 다양한 활동에 주목할 수 있다. 리샤오펑, 리지예, 웨이충우를 비롯한 베이신(北新)과 웨이밍사(未名社) 등의 문학계 인사에게 보낸 편지들에는 상황이 변하면서 관계의 양상도 변하는 내밀한 행적이 드러난다. 또한 이 서신집 속에는 ‘지푸 형’이라고 불렀던 평생 뜻을 같이한 쉬서우창 같은 오래된 벗들도 있고, 무엇보다 ‘새롭게 알게 된 청년들’도 있다. 주로 1930년 이후에 알게 된 좌익작가연맹 소속 작가와 목판화 작가, 외국 문학작품 번역가 등이 그들이다. ‘인생의 지기’로 꼽았던 취추바이를 알게 되고, 뤄칭전 등 젊은 예술가들과 열정을 교유한다. 1.28상하이사변과 국민당의 겁박, 논적들의 협잡질 등 대내외 고통 속에서도 중국자유운동대동맹, 민권보장동맹, 좌익작가연맹 등에 참여하고 문학작품 번역과 지원뿐 아니라 목판화 예술 운동으로 영역을 넓히며 맞서 싸우기를 주저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