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자유서 / 풍월이야기 / 꽃테문학
루쉰 전집 7
루쉰 지음, 이보경·유세종·루쉰전집번역위원회 옮김 | 2010-12-10 | 816쪽 | 35,000원
대륙을 뒤흔든 혁명인의 삶, ‘루쉰전집’ 발간!
저·역자 소개 ▼
1881년 저쟝 성 사오싱紹興의 지주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할아버지의 투옥과 아버지의 죽음 등으로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난징의 강남수사학당과 광로학당에서 서양의 신문물을 공부했으며, 국비 장학생으로 일본에 유학을 갔다. 1902년 고분학원을 거쳐 1904년 센다이의학전문 학교에서 의학을 배웠다. 그러다 환등기에서 한 중국인이 총살당하는 장면을 그저 구경하는 중국인들을 보며 국민성의 개조를 위해서는 문학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절감하고 학교를 그만두고 도쿄로 갔다. 도쿄에서 잡지 《신생》의 창간을 계획하고 《하남》 에 「인간의 역사」 「마라시력설」을 발표하는 등 활발하게 활동했다. 1909년 약 7년간의 일본 유학 생활을 마치고 귀국하여 항저우 저쟝양급사범 학당의 교사를 시작으로 사오싱, 난징, 베이징, 샤먼, 광저우, 상하이 등에서 교편을 잡았고, 신해혁명 직후에는 교육부 관리로 일하기도 했다. 루쉰이 문학가로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것은 1918년 5월 《신청년》에 중국 최초의 현대소설이라 일컬어지는 「광인일기」를 발표하면서이다. 이때 처음으로 ‘루쉰’이라는 필명을 썼다. 이후 그의 대표작인 「아큐정전」이 수록된 『외침』을 비롯하여 『방황』 『새로 엮은 옛이야기』 등 세 권의 소설집을 펴냈고, 그의 문학의 정수라 일컬어지는 잡문(산문)집 『아침 꽃 저녁에 줍다』 『화개집』 『무덤』 등을 펴냈으며, 그 밖에 산문시집 『들풀』과 시평 등 방대한 양의 글을 썼다. 루쉰은 평생 불의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에 분노하고 저항했는데, 그 싸움의 무기는 글, 그중에서 잡문이었다. 마오쩌둥은 루쉰을 일컬어 “중국 문화혁명의 주장主將으로 위대한 문학가일 뿐만 아니라 위대한 사상가, 혁명가”라고 했다. 마오쩌둥의 말처럼 루쉰은 1936년 10월 19일 지병인 폐결핵으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활발한 문학 활동뿐만 아니라 중국좌익작가연맹 참여, 문학단체 조직, 반대파와의 논쟁, 강연 활동을 펼쳤다. 이를 통해 중국의 부조리한 현실에 온몸으로 맞서 희망을 발견하고 새로운 길을 제시하고자 했다.
역자 이보경
연세대학교 중어중문학과에서 『20세기초 중국의 소설이론 재편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현재는 강원대학교 중어중문학과에 재직 중이다. 지은 책으로는 『문(文)과 노벨(Novel)의 결혼』, 『근대어의 탄생-중국의 백화문운동』이 있고, 옮긴 책으로는 『내게는 이름이 없다』, 『동양과 서양 그리고 미학』(공역), 『루쉰전집』의 『열풍』, 『거짓자유서』, 『풍월이야기』, 『먼 곳에서 온 편지』 등이 있다.
역자 유세종
유년기에서 청년기까지 화가가 되겠다는 일념으로 이젤과 팔레트를 들고 강과 산, 마을과 교외를 돌아다녔다. 물감이 귀할 때였으나 수채화, 유화, 파스텔화로 자유롭게 그렸다. 지는 해와 고요한 숲을 그리러 돌아다니다 강둑에 혼자 멍하니 어둑해지도록 앉아 있기도 했다. 고독했지만 나쁜 사람들을 무서워하지 않아도 되는 평화로운 시절이었다. 당시엔 그림 그리기가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신성하고 즐거운 노동이라고 치기 어린 생각을 했다. 그러다 미학이론에 꽂혀 한.중.일 미론 공부를 시작했지만 종잡을 수 없던 가슴 밑바닥의 갈증은 여전했다. 중도에 그만두었다. 대학원에 들어가 불교의 정신세계와 당시(唐詩)의 미학세계에 한걸음씩 깊이 빠져들었다. 마치 무언가를 초월한 듯한 정신적 조로현상을 겪었다. 가짜 초월이었으나 마음은 편안하고 고요해졌다. 선후배들이 최루탄 맞으며 결사항전을 외치고 감옥엘 들락거려도 나는 당시와 불경을 외우며 색즉시공(色卽是空)의 논리로 자신을 ‘무장’했다.
오랜 ‘편안함’ 속에 중국 고전을 뒤적이다 『묵자』를 만났다. 난생 처음으로 가슴이 환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민중에게 이로운 것이 미(美)이며 민중에게 이롭지 못하고 민중을 빈곤하게 하는 것은 아름답지 않다는 간단명료한 주장 앞에 의식의 빙판에 금이 쩍 가는 느낌이었다. 만민의 이로움을 미의 기준으로 내세운 묵자 앞에서 그동안의 모든 공부를 한 점 미련 없이 내려놓을 수 있었다. 그리고 묵자의 연장선에서 루쉰을 만나고 중국을 만나고 중국영화를 만났다. 루쉰과 중국, 중국영화는 민중미학과 그림 그리기, 불교가 다 어우러져 있는 거대한 화엄세계 같았다. 비슷한 시기 동아시아의 한용운과 나쓰메 소세키도 마찬가지였다. 루쉰, 한용운, 나쓰메 소세키, 지아장커에게는 조용하지만 도저하고 도발적인 ‘저층’의 미학, ‘패배’의 미학이 관통하고 있다. 그들을 통해 패배와 고통이 깨달음에 이르는 지름길이란 걸 알았다.
몇 해 전 허우샤오셴(侯孝賢)의 '자객 섭은낭'(刺客?隱娘)을 보았다. 허우샤오셴은 자신의 평생 공부 영화로 ‘득도’를 하였구나 하는 생각에 잠시 절망감 같은 걸 느꼈다. 나의 공부는 지금 어디쯤 와 있는 것인가, 생각하고 있는 중이다.
역자 루쉰전집번역위원회
공상철, 김영문, 김하림, 박자영, 서광덕, 유세종, 이보경, 이주노, 조관희, 천진, 한병곤, 홍석표
차례 ▼
『루쉰전집』을 발간하며 … 11
● 거짓자유서(僞自由書)
서문 … 27
1933년
싸움 구경 … 32
도망에 대한 변호 … 35
사실 숭상 … 38
전기의 장단점 … 41
항공구국의 세 가지 소원 … 44
두 가지 불통 … 47
[이 글로 인해 일어난 통론] ‘가장 잘 통하는’ 문예(왕핑링) … 49
[‘통’에 관한 논의에서 보이는 ‘통’의 할인] 관화일 따름 … 52
저주 … 55
전략 관계 … 57
[비고] 멋진 글을 다함께 감상하다(저우징차이) … 59
쇼에 대한 송가 … 63
[또 대주필의 분노를 사다] 버나드 쇼는 여하튼 비범하다(『다완바오』 사설) … 65
[역시나 대주필은 존경스럽지 않다] 앞글에 대한 주석(러원) … 68
전쟁에 대한 기도???독서 심득 … 71
풍자에서 유머로 … 74
유머에서 엄숙으로 … 77
왕도시화 … 80
억울함을 호소하다 … 84
곡의 해방 … 89
문학의 에누리 … 93
마주보기경 … 97
‘광명이 도래하면……’ … 101
울음막이 문학 … 105
[비고] 고추구국 제창(왕츠) … 108
[한사코 고추로 울음을 막으려 하다] 함부로 사람을 씹지 말라(왕츠) … 109
[하지만 아무래도 아니다] 이를 일러 점입가경이라 한다 … 111
‘사람의 말’ … 113
영혼을 파는 비결 … 116
문인무문 … 119
[비고] 악취미(뤄구) … 121
[서늘한 말?] 제4종인(저우무자이) … 122
[바람 쐬기] 두 가지 오해와 한 가지 차이점 … 124
가장 예술적인 국가 … 127
현대사 … 131
추배도 … 134
「사람을 잘못 죽였다」에 대한 이의 … 138
[비고] 사람을 잘못 죽였다(차오쥐런) … 140
중국인의 목숨 자리 … 144
안과 밖 … 147
바닥까지 드러내기 … 150
[보내온 편지] 자간 선생님께(주슈샤) … 152
[답신] 슈샤 선생께 … 154
‘이이제이’ … 157
[펄쩍 뛰다] ‘이화제화’(리자쭤) … 160
[술렁거림] 허물이 있더라도 고칠 수 있다(푸훙랴오) … 162
[딱 몇 마디만] 부연 설명 … 164
언론 자유의 한계 … 167
대관원의 인재 … 171
글과 화제 … 175
신약 … 179
‘다난한 달’ … 182
무책임한 탱크 … 185
성쉬안화이와 이치에 맞는 억압 … 188
왕의 교화 … 192
하늘과 땅 … 196
유보 … 200
유보에 관해 다시 말하다 … 204
‘유명무실’에 대한 반박 … 207
깊은 이해를 추구하지 않는다 … 210
후기 … 213
● 풍월이야기(准風月談)
서문 … 261
1933년
밤의 송가 … 265
밀치기 … 268
얼처우 예술 … 271
우연히 쓰다 … 274
박쥐를 말하다 … 277
‘차오바쯔’ … 281
‘바이샹 밥을 먹다’ … 284
중·독의 국수보존 우열론 … 286
중·독의 분서 이동론(異同論) … 289
‘타민’에 대한 나의 견해 … 293
서문의 해방 … 297
불을 훔친 또 다른 사람 … 301
지식과잉 … 303
시와 예언 … 306
‘밀치기’의 여담 … 310
묵은 장부 조사 … 313
신새벽의 만필 … 317
중국인의 기발한 생각 … 322
호언의 에누리 … 325
발차기 … 329
‘중국 문단에 대한 비관’ … 332
가을밤의 산보 … 336
‘웃돈 쓱싹하기’ … 338
우리는 어떻게 아동을 교육했는가? … 341
번역을 위한 변호 … 344
기어가기와 부딪히기 … 348
각종 기부금족 … 351
사고전서 진본 … 354
초가을 잡기 … 357
식객법 폭로 … 360
등용술 첨언 … 363
귀머거리에서 벙어리로 … 367
초가을 잡기(2) … 371
남성의 진화 … 375
동의와 설명 … 379
문인 침상의 가을 꿈 … 383
영화의 교훈 … 387
번역에 관하여(상) … 391
번역에 관하여(하) … 395
초가을 잡기(3) … 399
예 … 402
인상 물어보기 … 405
교회밥을 먹다 … 408
차 마시기 … 412
사용금지와 자체제작 … 415
마술구경 … 418
쌍십절 회고 - 민국 22년에 19년 가을을 돌이켜 보다 … 420
33년에 느낀 과거에 대한 그리움???1933년에 광서 말년을 기억하다 … 427
‘과거에 대한 그리움’ 이후(상) … 431
[비고] 『장자』와 『문선』(스저춘) … 434
‘과거에 대한 그리움’ 이후(하) … 438
황화 … 442
돌진하기 … 445
‘골계’의 예와 설명 … 449
외국에도 있다 … 453
헛방 … 457
[비고] 추천인의 입장 -『장자』와 『문선』 논쟁(스저춘) … 461
「헛방」의 오류 수정 … 464
포위망 뚫기(스저춘) … 465
‘함께 보냄’에 대한 답변 … 469
[비고] 리례원 선생께 보내는 편지???펑즈위 선생께도 함께 보냄(스저춘) … 471
중국 문장과 중국인 … 476
야수 훈련법 … 479
되새김질 … 482
후덕함으로 돌아가다 … 485
난득호도 … 489
고서에서 살아 있는 어휘 찾기 … 493
문호를 ‘협정하다’ … 496
청년과 아버지 … 499
후기 … 503
● 꽃테문학(花邊文學)
서언 … 549
1934년
미래의 영광 … 555
여자가 거짓말을 더 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 558
비평가의 비평가 … 562
함부로 욕하다 … 565
‘경파’와 ‘해파’ … 568
북쪽 사람과 남쪽 사람 … 572
「이러한 광저우」 독후감 … 577
설 … 580
운명 … 583
크고 작은 사기 … 587
‘어린아이 불가’ … 590
옛사람은 결코 순박하지 않았다 … 593
법회와 가극 … 598
양복의 몰락 … 602
친구 … 606
청명절 … 608
소품문의 생기 … 614
칼의 ‘스타일’ … 618
신종 가명법 … 621
책 몇 권 읽기 … 624
한번 생각하고 행동하자 … 628
나에 견주어 남을 헤아리다 … 632
문득 드는 생각 … 635
친리자이 부인 일을 논하다 … 639
‘……’ ‘??????’론 보충 … 643
누가 몰락 중인가? … 647
거꾸로 매달기 … 650
[부록] ‘꽃테문학’론(린모) … 652
완구 … 658
군것질 … 661
이 생(生) 혹은 저 생(生) … 664
때를 만났다 … 666
중역을 논함 … 669
중역을 다시 논함 … 672
‘철저’의 진면목 … 676
매미의 세계 … 679
결산 … 682
수성 … 686
농담은 그저 농담일 뿐(상) … 689
[부록] 원궁즈가 캉바이두에게 보낸 편지 … 692
[부록] 캉바이두가 원궁즈에게 보낸 답신 … 693
농담은 농담일 뿐(하) … 698
글쓰기 … 702
독서 잡기 … 705
독서 잡기(2) … 709
시대를 앞서 가는 것과 복고 … 712
안빈낙도법 … 717
기이하다 … 721
기이하다(2) … 725
영신(迎神)과 사람 물어뜯기 … 728
독서 잡기(3) … 732
‘대설이 분분하게 날리다’ … 735
한자와 라틴화 … 739
‘셰익스피어’ … 744
상인의 비평 … 748
중추절의 두 가지 소원 … 751
시험장의 세 가지 추태 … 756
또 ‘셰익스피어’다 … 759
구두점 찍기의 어려움 … 763
기이하다(3) … 767
메이란팡과 다른 사람들(상) … 771
메이란팡과 다른 사람들(하) … 775
욕해서 죽이기와 치켜세워 죽이기 … 779
독서 금기 … 783
『거짓자유서』에 대하여 … 789
『풍월이야기』에 대하여 … 792
『꽃테문학』에 대하여 … 795
편집자 추천글 ▼
대륙을 뒤흔든 혁명인의 삶, ‘루쉰전집’ 발간!
흔히 중국 현대문학은 루쉰(魯迅, 1881~1936)에서 시작해서 루쉰으로 끝난다고 한다. 중국 현대문학을 연 첫 작품(「광인일기」)을 루쉰이 창작했을 뿐만 아니라 그의 문체와 사상, 그가 관련한 굵직한 현대 사건이 지금도 여전히 문제적이기 때문이다. 그 없이는 중국의 오사운동을 논할 수 없고, 중국 현대혁명사와 문학사, 학술사, 심지어는 미술사까지도 논할 수 없으며, 최근의 저명 학자들(예컨대 첸리췬錢理群과 왕후이汪暉)은 그를 통해 오늘날의 중국을 사유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중국 고문(문언문)에 정통했지만 구어체(백화문)를 제창하여 문학혁명을 주도했고, 서양의 근대지식을 선구적으로 학습했지만 중국의 현실과 인민의 입장에서 발언하고 행동했으며, 국민당의 수배령을 피해 도피생활을 하면서도 문학청년을 지도하고 판화운동을 전개하며 중국의 미래를 주도한 루쉰. 이제 그의 모든 글을 한국어로 만나게 되었다.
이번에 처음으로 펴내는 한국어판 『루쉰전집』은 중국 런민문학출판사(人民文學出版社)에서 펴낸 1981년본과 2005년본을 바탕으로 번역, 모두 20권으로 구성하고, 지금까지의 국내외 연구성과와 주석을 참조하여 각 옮긴이들이 새롭게 주석을 정리하였다. 특히 기존에 많이 소개된 소설작품뿐만 아니라 아직까지도 소개되지 않은 수많은 잡문(주로 신문·잡지 등에 발표한 짧은 글을 말함), 서신, 일기를 수록하고 있어 루쉰 글의 정본을 세우게 되었다.
루쉰은 중국 근대의 산증인이기도 하지만 이미 인류의 정신유산, 인류의 고전이라 할 수 있다. 자신이 발 딛고 서 있는 땅에서 끊임없이 전투를 펼쳐 온 혁명인의 삶을 산 그는 그 자체로 현대 독자가 읽어야 할 중요한 텍스트이다. 민족 간, 좌우 간 첨예한 대립상황에서 억압받는 자가 다시 서는 세계를 꿈꾸며 한평생 투쟁했던 그의 삶이 오롯이 이 『전집』 속에 녹아들어 있다.
제7권_권력에 맞서는 투쟁과 논쟁
잡문 43편이 수록된 『거짓자유서』, 64편이 수록된 『풍월이야기』, 61편이 수록된 『꽃테문학』으로 구성된 제7권은 1933~34년 사이 루쉰 만년의 투쟁을 그리고 있다. 당시는 일본의 중국 침략이 거세져 장성의 관문 산하이관(山海關)이 함락되고, 일본이 리턴보고서를 무시하고 국제연맹을 탈퇴하여 정세가 매우 급박한 때였다. 그러나 국민당 정권은 나라 밖에서는 나라를 팔아먹고 투항하며 나라 안에서는 민중들을 탄압하는 기만적인 정책을 펴 루쉰을 분노케 했다. 이 시기 루쉰은 매달 8~9편의 단평을 『자유담』(신문 『선바오』의 부간) 등에 게재하며 권력과 그에 아첨하는 이들을 비판하고 문단의 행태와 민중이 억압받는 세태를 풍자하며 분노를 표출했다.
‘거짓자유’라는 자유의 아이러니
1933년 루쉰이 『자유담』에 연재한 글들은 1931년 만주사변 이후 벌어진 중국 내 여러 정치사회적 상황과 밀접한 관련을 가지는데, 그 상황은 한마디로 문집 제목과도 같은 ‘거짓자유’라는 아이러니이다. 일본군의 산하이관 공격(1월 3일)에 무저항 정책으로 일관하면서 이에 항의하는 학생들을 체포·살해하고 반공전투에 올인하는 아이러니, 함락 와중에 베이핑(베이징)의 고대유물은 상하이로 옮기지만 대학생들의 피난은 금지하는 아이러니, 외세의 조종으로 중국인이 중국인을 죽이게 되는 이화제화(以華制華)의 아이러니, 이는 곧 『자유담』에 글을 쓰지만 검열과 삭제로 결코 자유를 보장받지 못하는 루쉰의 상황과도 일치하는 자유의 아이러니이다. 중국은 침략자 외세와 권력자 국민당 사이에서 민중의 자유는 철저히 억압당하는 상황이고(“폭격하는 사람은 다르지만 폭격을 당하는 사람은 똑같다.”), ‘광명’이 잠시 비출 때 자유를 연출하지만 이내 ‘광명이 지나가면 어둠이 다시 오는’ 거짓자유의 상황임을 루쉰은 고발한다.
‘풍월’을 말하지 않는 풍월이야기
1933년 5월이 되면 『자유담』에 대한 국민당의 탄압도 거세져 편집인은 “앞으로는 풍월을 더 말하고 불평을 덜 드러내기를 호소한다”며 고충을 토로한다. 당시 국민당이 가장 적절한 글로 간주한 원앙호접(鴛鴦胡蝶)류의 연애담이나 풍류에 중점을 두고 루쉰이 쓰는 것과 같은 시사 비판적 글은 자제하겠다는 의지였다. 그러나 루쉰은 필명을 계속 바꿔 가며 풍월을 말하는 것과 비슷한, 즉 풍월에 준하는 이야기인 척하며 글을 발표한다. 박쥐를 비유로 들며 논적을 공격하는 것(「박쥐를 말하다」)처럼 우화를 활용하기도 하고, 독일의 상황을 중국과 비교하며 양국가를 모두 비판하기도 하며(286~292쪽), 지식의 과잉으로 인해 세계 경제공황과 같은 상황이 중국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교묘히 비꼬기도 한다(「지식과잉」). 정치적 현안에 관한 평이 『거짓자유서』에 비해 줄어든 듯하지만 여전히 도저한 세태 비평으로 비판의 칼을 휘두름에 변함이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밀치기’와 ‘발차기’, ‘속임수’와 ‘뺑소니’로 민중이 죽거나 다치는 세태, 경멸과 고통 속에서 다른 사람의 종노릇을 하는 타민(墮民)이 자유가 아닌 억압을 욕망하는 세태 등을 풍자한다. 이러한 민중들에 대한 풍자는 루쉰 스스로 “분명 사람들로 하여금 구역질나게 하지만, 이로 말미암아 그것의 중요성을 더욱 잘 알 수 있다. 왜냐하면 ‘중국 대중의 영혼’이 지금 나의 잡문 속에 반영되어 있기 때문이다”(『풍월이야기』, 「후기」)라고 말한 것처럼 그 속에 숭고한 인간애를 깔고 있는 것이다. 『자유담』에 기고를 하며 “적막한 이들을 위하여 소리치기 위해서”(「서문」)라고 했듯, 루쉰은 소외된 자들의 고달픈 삶을 드러내 보이며 중국인의 각성을 촉구한 것이다.
수많은 적들과 대결한 전투의 기록
‘거짓자유서’, ‘풍월이야기’, ‘꽃테문학’이라는 제목은 언뜻 수필집을 연상케 하지만, 이 잡문집들은 수많은 적들과 대결한 전투의 기록을 보여 준다. 혁명문학의 길을 가다 전향하여 ‘예술을 위한 예술’을 주장한 제3종인, 사리사욕을 위해 자비로 출판하고 스스로 호평하며 대표문인 지위에 오른 부패한 문인, 좌익인사를 색출하고 살해하는 데 혈안이 된 국민당 정권, 이 정권에 기댄 문인·학자·언론인, 영화사·출판사 등에 백색테러를 자행한 우익 깡패 등 수많은 적들과 싸운 기록이 이 문집 안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일생 동안 140여 개의 필명을 사용한 루쉰은 이 글들을 발표한 1933~34년 동안에만 60여 개의 필명을 사용해 적을 따돌렸다. 열네 편의 글에서 일부를 삭제당해 골기(骨氣)가 사라진 글을 발표하기도 하고, 여덟 편의 글은 아예 게재되지도 못했지만, 발표를 향한 집념을 멈추지 않았다. 언론 탄압이 거세져 『자유담』의 편집인이 사직당하고 『선바오』의 사장이 암살당하는 위기 속에서도 작법을 고치고 다른 사람에게 베끼게 하는 방법까지 써서 지금 절박하게 요구되는 사안을 발언했다. 어떠한 탄압에도 굴하지 않는 자유인 루쉰. 『역문』(譯文)의 정간에 화가 난 젊은 작가에게 그는 나직하지만 강한 어조로 이렇게 말했다. “이건 아주 작은 일에 불과하네. 그런데, 우린 계속 싸워 나가야 할 것인가? 물론일세. 계속 싸워 나가야지! 상대가 누구이든지 간에 말일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