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심집 / 남강북조집

루쉰 전집 6

루쉰 지음, 이주노·공상철·루쉰전집번역위원회 옮김 | 2014-02-15 | 568쪽 | 29,000원


1930~1년에 쓴 잡문을 모은 『이심집』


저·역자 소개 ▼

저자 루쉰 周樹人
1881년 저쟝 성 사오싱紹興의 지주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할아버지의 투옥과 아버지의 죽음 등으로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난징의 강남수사학당과 광로학당에서 서양의 신문물을 공부했으며, 국비 장학생으로 일본에 유학을 갔다. 1902년 고분학원을 거쳐 1904년 센다이의학전문 학교에서 의학을 배웠다. 그러다 환등기에서 한 중국인이 총살당하는 장면을 그저 구경하는 중국인들을 보며 국민성의 개조를 위해서는 문학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절감하고 학교를 그만두고 도쿄로 갔다. 도쿄에서 잡지 《신생》의 창간을 계획하고 《하남》 에 「인간의 역사」 「마라시력설」을 발표하는 등 활발하게 활동했다. 1909년 약 7년간의 일본 유학 생활을 마치고 귀국하여 항저우 저쟝양급사범 학당의 교사를 시작으로 사오싱, 난징, 베이징, 샤먼, 광저우, 상하이 등에서 교편을 잡았고, 신해혁명 직후에는 교육부 관리로 일하기도 했다. 루쉰이 문학가로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것은 1918년 5월 《신청년》에 중국 최초의 현대소설이라 일컬어지는 「광인일기」를 발표하면서이다. 이때 처음으로 ‘루쉰’이라는 필명을 썼다. 이후 그의 대표작인 「아큐정전」이 수록된 『외침』을 비롯하여 『방황』 『새로 엮은 옛이야기』 등 세 권의 소설집을 펴냈고, 그의 문학의 정수라 일컬어지는 잡문(산문)집 『아침 꽃 저녁에 줍다』 『화개집』 『무덤』 등을 펴냈으며, 그 밖에 산문시집 『들풀』과 시평 등 방대한 양의 글을 썼다. 루쉰은 평생 불의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에 분노하고 저항했는데, 그 싸움의 무기는 글, 그중에서 잡문이었다. 마오쩌둥은 루쉰을 일컬어 “중국 문화혁명의 주장主將으로 위대한 문학가일 뿐만 아니라 위대한 사상가, 혁명가”라고 했다. 마오쩌둥의 말처럼 루쉰은 1936년 10월 19일 지병인 폐결핵으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활발한 문학 활동뿐만 아니라 중국좌익작가연맹 참여, 문학단체 조직, 반대파와의 논쟁, 강연 활동을 펼쳤다. 이를 통해 중국의 부조리한 현실에 온몸으로 맞서 희망을 발견하고 새로운 길을 제시하고자 했다.

역자 
이주노
한국 전남대학교 인문대학 중어중문과 교수. 중국현대문학과 신화, 민간문학 등을 연구. 저서로는 『중국의 민간전설 양축이야기』, 『루쉰의 광인일기, 식인과 광기』 등이 있고, 역서로는 『역사의 혼 사마천』(공역), 『서하객유기』(공역) 등이 있다. 


역자 공상철
중국을 공부하며 숭실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중국의 문명사적 자산을 우리 시대의 지평으로 불러오는 데 관심이 많다. 학술과 창작이 만나는 어디쯤에서 모종의 글쓰기 형식을 찾고 있는 중이다. 『중국을 만든 책들』(돌베개, 2011)을 썼고, 『루쉰전집』(그린비, 2018) 번역 작업에 참가해 소설, 잡문, 일기 몇 꼭지를 번역했다. 그 외 현대 중국의 문학과 문화에 관한 몇 편의 논문을 썼다. 


역자 루쉰전집번역위원회 
공상철, 김영문, 김하림, 박자영, 서광덕, 유세종, 이보경, 이주노, 조관희, 천진, 한병곤, 홍석표

차례 ▼

『루쉰전집』을 발간하며

* 이심집(二心集)
서언

1930년
‘경역’과 ‘문학의 계급성’
습관과 개혁
비혁명적인 급진 혁명론자
장쯔핑 씨의 ‘소설학’
좌익작가연맹에 대한 의견 - 3월 2일 좌익작가연맹 창립대회에서의 강연
우리에게는 비평가가 필요하다
‘호정부주의’
‘집 잃은’ ‘자본가의 힘없는 주구’
『진화와 퇴화』 서언
『예술론』 역본의 서문
고문을 짓는 비결과 착한 사람이 되는 비결 - 밤에 쓴 글 5

1931년
『당삼장취경시화』의 판본에 관하여
러우스 약전
중국 프롤레타리아 혁명문학과 선구자의 피
암흑 중국의 문예계의 현상 - 미국의 『신군중』을 위하여
상하이 문예의 일별 - 8월 12일 사회과학연구회에서의 강연
이바이사의 습작전람회의 서문
문예신문사의 물음에 답함 - 일본이 동삼성을 점령한 의미
‘민족주의문학’의 임무와 운명
찌꺼기가 떠오르다
발로 나라에 보답하다
당대의 딩사오
『이브의 일기』 서문
새로운 ‘여장’
선전과 연극
알기도 어렵고 행하기도 어렵다
몇 가지 ‘순통’한 번역
풍마우
또 한 가지 ‘순통’한 번역
중화민국의 새로운 ‘돈키호테’들
『들풀』 영역본 서문
‘지식노동자’ 만세
‘우방의 경악’을 논함
중학생 잡지사의 질문에 답함
북두 잡지사의 질문에 답함 - 창작은 어떻게 해야 좋을까?
소설 제재에 관한 통신
번역에 관한 통신
현대영화와 부르주아

* 남강북조집(南腔北調集)
제목에 부쳐

1932년
“계략한 바 아니다”
린커둬의 『소련견문록』 서문
우리는 더 이상 속지 않는다
『하프』를 펴내며
‘제3종인’을 논함
‘이야기그림’을 변호하여
욕설과 공갈은 결코 전투가 아니다
『자선집』 서문
중러 문자 교류를 경축하며

1933년
꿈 이야기를 듣고
‘재난에 맞섬’과 ‘재난을 피함’에 대하여
학생과 옥불
망각을 위한 기념
누구의 모순?
쇼와 ‘쇼를 보러 온 사람들’ 인상기
『상하이에 온 버나드 쇼』 서문
중국 여인의 다리에서 중국인의 비중용을 추정하고 또 이로부터 공부자에게 위장병이 있었음을 추정함 - ‘학비’파의 고고학(1)
나는 어떻게 소설을 쓰게 되었는가?
여인에 관하여
진짜 돈키호테와 가짜 돈키호테
『서우창 전집』 제목에 부쳐
김성탄에 대하여
다시 ‘제3종인’을 논함
‘꿀벌’과 ‘꿀’
경험
속담
그래, 전부 등급을 하나씩 낮춰 보자
모래
문학사에 보내는 편지
번역에 관하여
『어느 한 사람의 수난』 서문
『파도소리』를 경축하며
상하이의 소녀
상하이의 어린이
‘논어 1년’ - 이를 빌려 다시 버나드 쇼를 논하며
소품문의 위기
9?18
붓 가는 대로
내키는 대로
세상물정 삼매경
낭설의 명가
여성해방에 관하여

목판화 복인을 논함
『목판화 창작법』 서문
글쓰기 비결
농간의 계보학
가정은 중국의 근본이다
『총퇴각』 서문
양춘런 선생의 공개서신에 대한 공개답신

『이심집』에 대하여
『남강북조집』에 대하여

편집자 추천글 ▼

1930~1년에 쓴 잡문을 모은 『이심집』

『이심집』(二心集)의 ‘이심’이란 ‘두마음을 품다’, ‘딴마음을 먹다’라는 의미이다. 『삼한집』에서 자신에 대한 상대의 비판을 책의 제목으로 삼은 것과 같이 『이심집』 역시 논적의 말을 그대로 맞받아치고 있는 것이다. 혁명문학 논쟁을 거치는 동안 소련의 여러 문예론과 예술론을 번역 출간한 루쉰에 대해 논적들은 도리어 문단의 이신(貳臣), 즉 ‘두 임금을 섬긴 불충한 신하’라고 비난하였다. 이에 대해 루쉰은 “조금이나마 상이한 의견을 품고서 딴마음을 지니는 것 자체가 자신과 같은 계급인 논적에게는 가증스러운 반역이겠지만, 오직 신흥하는 프롤레타리아만이 미래가 있다”며 전혀 개의치 않는다. 『이심집』에는 문학과 계급성에 관한 그의 이런 새로운 인식과 그에 기반한 글쓰기가 포함되어 있다.

<문학의 계급성 논쟁>
문학의 계급성에 관한 루쉰의 글쓰기는 「‘경역’과 ‘문학의 계급성’」에 잘 드러나 있다. 이 글은 후스(胡適), 쉬즈모(徐志摩) 등 영미에서 유학한 지식인들이 중심이 되어 만든 신월사(新月社)라는 단체를 겨냥한 비판이며, 구체적으로는 량스추(梁實秋)의 「문학은 계급성을 지닌 것인가?」에 대한 반론이다. 량스추는 자본가든 노동자든 인간이라면 누구나 희노애락의 인성을 지니고 있고 이 기본적인 인성을 표현하는 예술이 바로 문학이라고 주장하며 문학의 계급성을 부정하지만, 루쉰은 문학 또한 사람을 빌리지 않고서는 인성을 나타낼 수 없으며, 사람은 게다가 계급사회라면 절대로 자신이 소속된 계급성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예컨대 “가난뱅이는 거래소에서 본전을 날릴까 봐 걱정하는 일이 결코 없고, 석유왕이 베이징의 석탄 찌꺼기를 줍는 할머니가 겪는 고생을 어찌 알겠으며, 굶주림에 시달리는 지역의 이재민은 부자 나으리처럼 난꽃을 가꾸지 않을 것이다.” 문학가 또한 자신의 계급에서 벗어날 수 없는 법이니, 량스추 또한 재산을 문명의 기원으로 여기고 가난뱅이를 못나서 패배한 찌꺼기로 여기는 부르주아임을 스스로 드러내고 있다고 비판한다. 문학에는 계급성이 있으며, 계급사회에서는 문학가가 스스로는 자유롭고 계급을 초월한다고 여기더라도, 무의식적으로는 끝내 자기 계급의 계급의식에 지배받고 있다는 것이 루쉰의 주장인 것이다.

<국민당의 만행과 좌련 5열사 사건>
1930년부터 1931년까지의 이태 동안은 중국현대사에서 정치뿐만 아니라 문화 등 사회 전반에 걸쳐 좌우의 대립이 첨예해지는 시기이다. 군벌들에 대해 군사적 우위를 확보한 장제스는 곳곳에서 세력을 넓혀 가던 공산당을 공격하는 한편, 문화 면에 있어서도 특히 혁명적이거나 진보적인 활동에 대해서 강력한 제재를 가하였다. 1930년 12월에 공포된 출판법, 1931년 1월의 긴급조치법, 같은 해 10월의 출판법 시행세칙 등 언론, 출판의 자유를 억압하는 법안들이 잇달아 공포되었고, 진보적 문화기구에 대한 사찰과 봉쇄, 문인들에 대한 협박과 암살 등이 행해졌다. 이른바 ‘좌련 5열사’에 대한 체포 및 총살 사건은 국민당의 이러한 폭압적 정책을 여실히 보여 주는 대표적 사례이다.
루쉰은 자신의 동료이자 제자인 러우스(柔石), 번역을 독려한 바 있었던 인푸(殷夫) 등이 포함된 이 사건을 비감에 잠겨 회상하고 기념한다. 또 한편으로는 분연히 떨쳐 일어나 중국 프롤레타리아 혁명문학의 깃발을 올린다. “오늘과 내일의 갈림 속에서 발생하고, 모멸과 압박 속에서 성장하여, 가장 컴컴한 어둠 속에서 마침내 우리 동지의 선혈로써 최초의 글을 써냈다”며 이들 ‘선구자의 피’를 딛고서 “적의 비열한 흉포를 드러내고 끊임없는 투쟁을 계시하자”고 외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국민당 당국과 그 노예들에 대해서는 장차 제국주의로부터 얻어 낸 총기와 앞잡이 몇 놈 외에는 아무것도 가진 게 없어질 것이라며 저주하고 있다.


1932~3년에 쓴 잡문을 모은 『남강북조집』

『남강북조집』(南腔北調集)의 제목은 ‘남방가락에 북방타령’ 정도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즉 맥락에 맞지 않게, 얼렁뚱땅, 내키는 대로 말을 하고 있다는 의미로, 누군가가 루쉰의 화법을 조롱한 말이다. 루쉰이 자신의 글에 대해 세상 잡사를 다룬 잡문일 뿐이라며 짐짓 겸양을 나타내고 있는 듯하지만, 실은 이전 문집 제목들이 그러하듯 조롱을 되돌려주고자 하는 의도가 더 강하게 보인다. 하지만 어쨌든 『남강북조집』에는 다른 문집에 비해 밀도 있고 논쟁적인 성격의 글이 적은 편이고, 일제의 침략으로 위기에 처한 정세와 국민당 비판, 좌우가 첨예하게 대립되어 있는 상황 속에서 기회주의적인 행태를 보이는 어용문인 및 ‘제3종인’ 비판, 잡다한 문화 비평, 여성과 어린이 등에 관한 생활 비평, 서문과 발문, 편지글 등 여전히 여러 종류의 글이 혼재되어 있다. 이 중 다른 문집에서와는 달리 특징적으로 주목해야 할 부분은 목판화와 이야기그림 등으로 문예 대중화를 위해 힘쓰고자 한 루쉰의 바람과 그 활동이다.
1930년 이후로 좌익작가연맹에서 활동을 시작한 루쉰은 그 일환으로 예술과 문학의 대중화를 위해 더욱더 박차를 가하게 되었다. 고관대작이나 산수를 그린 전통회화보다는 고전이나 신문에 실린 삽화가 오히려 미래지향적이라고 판단한 그는 목판화 유산을 되살리고자 노력한다. 목판화의 장점은 한 판으로 여러 장을 인쇄할 수 있다는 대중적 성격과 그 그림이 담고 있는 내용이 이해하기 쉽고 소통하기 쉽다는 현재적이고도 민중적인 성격이 강하다는 점이다. 그리하여 루쉰은 『목판화 창작법』을 펴내고, 서양의 판화 기법과 정신도 가미할 수 있도록 『어느 한 사람의 수난』, 『시멘트』 등 판화첩을 (번역)출판하고, 사재를 털어 콜비츠 전시회를 열었으며, 일본인 판화가를 초빙해 강습회를 열기도 하는 등 목판화 보급에 정력을 다했다. 1936년 생을 마감할 때까지 루쉰은 이와 같은 문예운동에 투신하여 근대중국의 사회문화사 전반에 큰 족적을 남기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