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욕망하는 경건한 신자들 경건과 욕망 사이
사이 시리즈 04
백소영 지음 | 2013-03-10 | 228쪽 | 9,800원
세계 최다의 신자 수를 자랑하는 교회를 보유한 나라, 대통령이 임명한 내각의 별명에 특정 교회 이름의 머리글자가 들어가는 나라, 찬란히 빛나는 붉은 십자가가 도시의 야경을 수놓는 나라… 어느덧 당연한 것이 되어 버린 한국 개신교의 ‘세속화된 모습’은 ‘종교적인 경건’과 ‘세속적 욕망’(성공)이 어떻게 공존할 수 있는가 하는 성찰을 필요로 한다.
이화인문과학원 탈경계인문학연구단 기획 ‘사이 시리즈’의 네번째 권으로서 ‘경건과 욕망 사이’를 탐구하는 이 책은 권력과 부를 향한 한국의 근본주의적·복음주의적 개신교의 왜곡된 ‘욕망’이 ‘경건’의 이름으로 어떻게 정당화되어 왔는지를 밝히는 한편, 개신교의 여성관이 현대 여성들을 어떻게 억압하고 있는지를 고찰한다. 기독교의 역사와 교리를 알기 쉽게 풀어 쓰고 한국 개신교의 독특한 현상과 사건들을 아우름으로써 기독교인과 비기독교인 모두가 흥미롭게 읽을 수 있다.
저·역자 소개 ▼
이화여자대학교에서 기독교학(BA)과 기독교사회윤리학(MA)을 전공했다. 이후 미국 보스턴대학교 신과대학에서 기독교사회윤리학과 비교신학 박사학위(Th.D.)를 취득하였다. 그러나 박사학위 논문을 쓸 무렵 결혼을 했고 한 아이의 엄마가 되어 7년간 경력 단절을 겪었다. 우여곡절 끝에 늦깎이로 이화여자대학교 이화인문과학원 HK연구교수, 기독교학과 초빙교수로 직업 현장에 들어섰고 현재 강남대학교 기독교학과 교수로 일하고 있다.
저서로는 《우리의 사랑이 義롭기 위하여》, 《엄마되기 힐링과 킬링 사이》, 《세상을 욕망하는 경건한 신자들》, 《삶, 그 은총의 바다》, 《페미니즘과 기독교의 맥락들》, 《살아내고 살려내고》, 《기독교 허 스토리》 등이 있으며 저서의 주제를 중심으로 대중 특강과 북콘서트, 교양강좌를 진행해왔다. CBS, CGNTV, 유튜브 ‘잘 믿고 잘 사는 법’ 등에서 활동했으며, 개인 유튜브 채널 ‘So young한 인문신학’을 통해 대중과 소통하고 있다.
차례 ▼
머리말
1장 _ 개신교와 근대적 주체의 탄생
1. 종교개혁, 근대 세계를 향한 시금석
2. 영국의 청교도들, 경건을 사회화하다
3. 미국에 세우는 ‘하나님의 도성’
2장 _ ‘경건한 지도자’, 정치적 욕망의 개신교적 기원
1. 교회와 국가, 애증의 관계사
2. 근대 한국의 정치권력과 개신교
3. 21세기 한국, 복음주의적 개신교의 정치화
3장 _ ‘경건한 부자’, 경제적 욕망의 개신교적 동력
1. 대박을 부르는 하나님의 은총
2. 청빈에서 청부로! 노동 윤리의 변화
3. 한국 교회의 물질적 욕망
4장 _ ‘경건한 알파맘’, 개신교의 여성 통제와 욕망
1. 기독교 가부장제, 강하거나 혹은 부드럽거나
2. 여성의 낭만화, 여성 통제의 근대적 기획
3. 21세기 대한민국 기독교 여성의 ‘경건’
맺는 말·‘사이’를 사는 사람들, ‘이미’와 ‘아직’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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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추천글 ▼
현직 신학교수의 근본주의적.복음주의적 개신교 비판
세계 최다의 신자 수를 자랑하는 교회를 보유한 나라, 대통령이 임명한 내각의 별명에 특정 교회 이름의 머리글자가 들어가는 나라, 찬란히 빛나는 붉은 십자가가 도시의 야경을 수놓는 나라……. 누군가에게는 영광스러운, 누군가에게는 못마땅한 한국 개신교의 풍경들이다. 하지만 이러한 ‘세속화된 개신교’에 대한 비판적 고찰은 목사 개개인의 비리와 전횡,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과잉 전도, 비판적인 언론에 대한 실력행사, 타 종교에 대한 불관용, 끊임없는 이단 시비 등 잊을 만하면 눈에 밟히는 사건사고들로 인해 설 자리를 잃었다. ‘개독교’라는 비판(혹은 비난)과 ‘일부의 문제일 뿐’이라는 반박(혹은 변명)이 긋는 평행선 속에서 대화는 불가능했다. 오늘날 한국 개신교는 그 어느 때보다도 세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만, 오히려 ‘그들만의 세계’로 점점 고립되어 가는 모양새다.
『세상을 욕망하는 경건한 신자들』은 바로 이 지점에 주목하여 한국 개신교의 욕망을 해부한 대중 교양서이다. 작년 출간된 ‘주체와 타자 사이’, ‘텍스트와 이미지 사이’, ‘매체와 감각 사이’에 이어 이화인문과학원 탈경계인문학연구단 ‘사이 시리즈’의 네번째 권으로 출간되는 이 책이 주목하는 사이는 ‘경건과 욕망 사이’이다. 종교적 뉘앙스가 물씬 풍기는 ‘경건’과 세속의 삶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욕망’. 얼핏 섞일 수 없을 것 같은 이 두 단어는 오늘날 미국과 한국의 복음주의적?근본주의적 개신교 안에서 그야말로 ‘평화롭게’ 공존하고 있다. 이들은 신정일치에의 열망을 버리지 못하고 호시탐탐 정치에 관여하려 하며, 신앙과 부(富)를 결합시킨 덕분에 재물에의 욕심을 애써 숨기지도 않는다. 이 책은 권력과 부를 향한 이러한 한국 개신교의 왜곡된 ‘욕망’이 ‘경건’의 이름으로 어떻게 정당화되어 왔는지를 밝히고자 한다. 기독교의 역사와 교리를 알기 쉽게 풀어 쓰고 한국 개신교의 독특한 현상과 사건들을 아우름으로써 기독교인과 비기독교인 모두가 흥미롭게 읽을 수 있다.
그 자신이 독실한 개신교도로서 이화여대에서 학생들에게 신학을 가르치고 있는 여성 신학자 백소영이 이러한 작업에 나섰다. 『드라마틱: 예수님과 함께 보는 드라마』, 『엄마되기, 아프거나 미치거나』 등의 저서를 통해 기독교적 세계관을 바탕으로 끊임없이 세상과 소통하고자 했던 저자는 이 책에서 기독교인들에게는 반성과 통찰을 요청하고 비기독교인들에게는 이해와 용서를 구함으로써 그 ‘사이’가 되기를 자처한다. 이러한 ‘사이’에서의 발화를 통해 독자들은 기독교와 기독교인들이 이 세계와 맺고 있는 관계에 대해, 그리고 그 관계의 올바른 방향에 대해 고민하는 기회를 갖게 될 것이다.
종교적 경건과 세속적 욕망, 그 자의적인 연결고리
‘종북좌파’ 척결을, 무상급식 반대를, 한미FTA 찬성을 외치는 집회장에서, 특정 후보를 찍지 않으면 “생명책에서 지워 버릴 것”이라고 말하는 설교문에서, 기독교정당을 통해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려는 꿈에서……. 한국 개신교의 정치적 야심 혹은 욕망은 다양한 형태로 드러난다. 신앙이란 본디 “초월과 참여라는 두 갈등적 가치를 양손에 잡고서 시대와 상황에 따라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감행”하는 법이라지만(111쪽), 한국 주류 개신교의 경우 정치적 압력의 강도에 따라 다소 노골적이고 민망한 왕복운동을 해온 것이 사실이다. 일제 문화통치나 박정희 정권하에서는 ‘종교 본연의 목적은 영혼 구원’이라며 탈정치화를 고수하다가, 친개신교적 색채를 드러내는 정권(이승만, 이명박 정권)하에서나 자신들의 기득권이 위협받는 상황(참여정부)이 오면 기다렸다는 듯 정치화에 나섰던 것이다.
한편 한국 대형 교회의 설교들은 ‘은총’의 수사로 가득 차 있다. 한국화된 종교들이 대체로 기복신앙과 결합함을 감안하더라도, “예수 잘 믿으면 영혼 구원뿐 아니라 물질과 건강까지 얻는다”라는 ‘삼박자 축복론’이 초대형 교회의 주요 설교 내용이 되고 ATM 헌금기까지 등장한 현실이 썩 바람직해 뵈지는 않는다. 애초부터 ‘서구식 근대화’를 향한 열망으로 도입되었고 6?25 직후의 기아 해결과 국가 재건에도 크게 공헌한 미국발 개신교의 물질적 은총은 “우리도 한번 잘살아 보세”라는 유신 정권의 메시지와 아무런 위화감 없이 어울린다. 이러한 경향은 고도성장기에 중산층 이데올로기와 결합하면서 더욱 공고화되었고, 신자유주의적 경쟁이 전면화된 최근에는 팍팍한 삶의 조건에 처한 사람들에게 더더욱 매력적으로 어필하고 있다. ‘하나님의 축복’이 시대를 살아가는 ‘경쟁력’ 혹은 ‘스펙’이 된 것이다.
권력과 부를 향한 이러한 개신교적 욕망의 기원을 밝히기 위해 이 책은 중세 교회의 타락을 극복하기 위한 16세기의 종교개혁, 이로부터 태동한 개신교와 그 한 뿌리로서의 영국 청교도, 진정한 ‘하느님의 도성’을 건설하고자 식민지 아메리카로 건너간 일단의 청교도 무리, 바로 이 미국식 개신교를 수입한 이래 독자적 발전 양상을 보이는 한국 개신교에 이르는 기독교사를 되짚어 본다. 그 역사를 통해 독자들은 금욕이라는 가치가 어떤 변화를 겪었는지, 국가(정치)와 교회는 어떤 상호작용을 주고받았는지, 노동 윤리는 개신교 교리 속에서 어떻게 변화하게 되는지, 가난에 대한 종교적?도덕적 비난은 어떻게 강화되어 왔는지, 자본주의와 개신교의 친화성이 어떻게 서구 근대 문명을 이끌어 왔는지 등을 이해하게 된다.
이러한 관찰이 드러내 주는 것, 그리고 오늘날의 ‘경건한 기독교도’들이 직시해야 할 것은 오늘날 한국 개신교가 보이는 정치적 행보는 세속적 욕망에 경건을 동원하여 신앙적 정당성을 부여하려는 동기에서 나온 것이라는 사실, 그리고 경건의 실천과 경제적 욕망 사이의 친밀성은 역사적 우연에 의해 결합되어 있을 뿐이라는 사실이다. 경건과 욕망 사이에 맺어진 자의적이면서도 강고한 연결고리를 해체하는 것이야말로 자신의 신앙에 성실하려는 개신교인이 우선적으로 성취해야 하는 시급한 과제인 것이다.
아직과 이미 사이, 개신교도들이 살아야 할 ‘사이’
남성보다 적어도 한 겹의 구속은 더 걸치고 살아야 하는 여성들에게는 해체해야 할 고리가 또 있다. ‘스위트홈의 관리자’로서의 근대 청교도적 여성상과 정절과 희생을 강조하는 유교 가부장적 여성상의 교묘한 결합이 그것이다. 하지만 여성 개신교도들은 이러한 여성상을 체화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더 이상 기혼 여성을 가정에 머물 수 없게 하는 여러 현실적인 조건들(맞벌이의 필요성이라든가 자아성취의 측면 등)과도 맞닥뜨려야 한다. 그뿐인가? 한국의 높은 교육열과 (앞서 살펴본) 개신교의 성공 지향성은 여성들로 하여금 단순한 전업주부가 아닌 육아와 입시의 ‘전문가 엄마’가 되기를 요구한다. 이러한 현실에서 “몸과 정신은 현대의 어느 여성보다 분주하건만 자아존중감이나 성취감은 바닥을 친다”(180쪽). 그러면서도 ‘천상소명’이자 ‘지상명령’으로서의 엄마-아내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끊임없이 자신을 벼리는 여성들을 만들어 내는 것이 21세기 한국 개신교의 한 단면이다. 이 책의 4장 「‘경건한 알파맘’, 개신교의 여성 통제와 욕망」에는 여성 개신교도로서 느끼는 저자의 이러한 고민과 문제의식이 잘 녹아 있다.
경건과 욕망이라는 상반된 가치들을 어떻게든 포괄하면서 그 ‘사이’를 잡아 보려는 개신교의 노력은 안타깝게도 성공을 거두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권력과 부를 대하는 태도나 여성을 다루는 방식 모두에서 발견되는 것은 세속의 기득권과 결별하지 못하고 오히려 신앙의 이름으로 그것을 정당화하려는 모습이다. 그렇기에 “교회 안에서는 영적이고 순수하고 신앙만을 바라고 이성적 성찰은 접고서 오직 아멘으로 임하고, 세상에 나가면 직업인으로서 영민하고 이성적이고 계산적이고 효율성을 추구하고 합리적이려 하는”, 즉 “교회에 갈 때는 ‘뇌’를 빼고 가고 세상에 나아갈 때는 ‘그리스도의 심장’을 빼고 가는” 이중생활이 조화롭고 또 평화롭게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153쪽).
따라서 저자는 개신교도가 신앙의 이름으로 살아야 하는 ‘사이’는 ‘경건과 욕망 사이’가 아니라 ‘아직과 이미 사이’라고 말한다. ‘아직’ 오지 않은 진정한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욕망하고, 이를 위해 살기로 결단하고 한 걸음 한 걸음 실천하는 속에 ‘이미’ 하나님 나라가 그들 가운데 도래한다는 것이다(207쪽). ‘경건과 욕망 사이’의 어색한 동거를 끝내고 하나님 나라의 실현을 위해 ‘보편성’을 갖는 개별 사건들을 끊임없이 만들어 가는 것, 그것이야말로 예수의 가르침에 가장 충실한, 또한 한국 개신교의 신뢰를 회복하는 가장 정직한 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