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 위의 소설들  소설과 영화 사이

사이 시리즈 05

송기정 지음 | 2013-04-15 | 2000쪽 | 9,800원


소설과 영화라는 두 예술 형식은 독자적인 미학을 통해 발전해 가는 와중에서도 서로의 존재를 의식하고 흡수함으로써 지평을 넓혀 왔다. 그 여러 양상 가운데서도 이 책은 ‘각색영화’에 초점을 맞춘다. 1장에서는 라클로의 소설 <위험한 관계>와 세 편의 각색영화, 즉 스티븐 프리어스의 <위험한 관계>와 로제 바딤의 <위험한 관계>, 이재용의 <스캔들>을 비교 감상함으로써 텍스트가 영상으로 재현되는 방식에 대해 알아본다.
2장에서는 발자크의 「미지의 걸작」과 자크 리베트의 <누드모델>을 통해 단순한 재현을 넘어 현존으로 나아가려는 예술(가)의 욕망을 보여 준다. 3~5장에서는 한국 문단의 거목 이청준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들을 모았다. 김기영의 <이어도>, 임권택의 <서편제>, 이창동의 <밀양> 세 편의 영화가 이청준의 문학세계를 어떠한 방식으로 재창조했는지를 살핌으로써 ‘좋은 각색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 본다. 


저·역자 소개 ▼

저자 송기정
이화여자대학교 명예교수. 이화여자대학교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파리3대학교에서 문학박사학위를 받은 후 파리3대학교와 파리동대학교에서 초빙교수로 강의와 연구 활동을 했다. 한국불어불문학회 회장, 한국프랑스학회 회장, 한국기호학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주요 저서 및 역서로는 『오노레 드 발자크, 세기의 창조자』(2021), 『스크린 위의 소설들』(2013), 『광기, 본성인가 마성인가: 종횡으로 읽는 광기의 문학 서설』(2011), 『미루다가 영영 못 읽을까봐』(공저, 2018), 『역사의 글쓰기』(공저, 2013), 『자본주의 사회와 인간 욕망』(공저, 2007),『현대 프랑스 문학과 예술』(공저, 2006), 『브르타뉴의 노래, 아이와 전쟁』(역, 2023), 『13인당 이야기』(역, 2018), 『빛나, 서울 하늘 아래』(역, 2018), 『폭풍우』(역, 2017), 『루이 랑베르』(역, 2010), 『여명』(역, 2010) 등이 있다. 이화학술상을 수상한 바 있다. 
차례 ▼

감사의 말 | 머리말

1부 _ 서술, 재현, 현존
1장 서술에서 재현으로: 라클로의 『위험한 관계』와 세 편의 각색영화
소설 『위험한 관계』, 각색의 보고 | 세 편의 각색영화들 | 서간체 소설의 재현 방식 | 리베르티나주의 변주 | 나가며
2장 재현에서 현존으로: 발자크의 「미지의 걸작」과 리베트의 <누드모델>
발자크와 리베트 | 존재의 진실을 탐구하는 화가 프렌호퍼 | 현존을 추구하기 위한 영화적 장치들 | 나가며

2부 _ 이청준 소설의 재탄생
3장 강렬한 이미지의 힘: 소설 「이어도」와 영화 <이어도>
이청준과 김기영 | 주제의 변용 | 형식의 변형
4장 이미지에 소리를 입히다: 소설 「서편제」와 영화 <서편제>
서편제, 임권택을 만나다 | 한을 넘어 판소리의 미학으로 | 인물 관계의 변형과 추가된 장면들 | 금기의 위반 | 나가며
5장·캐릭터로 구축한 사실주의: 소설 「벌레 이야기」와 영화 <밀양>
용서라는 화두 | 캐릭터를 구축한 명배우들 | 영화적 장치들 | 영화 속 상징 기호들 | 나가며

참고문헌 | 더 읽을 책 | 찾아보기 

편집자 추천글 ▼

소설은 어떻게 영화로 변주되는가 ― 각색의 미학

소설과 영화라는 두 예술 형식은 독자적인 미학을 통해 발전해 가는 와중에서도 서로의 존재를 의식하고 흡수함으로써 지평을 넓혀 왔다. 그중에서도 특히 ‘소설의 영화화’는 오늘날 만화·게임·뮤지컬 등으로까지 확장된 원소스멀티유즈(One Source Multi Use)의 원조 격이라고 할 수 있다. 영화라는 새로운 매체가 대중화되면서 문학사의 수많은 고전 명작들이 스크린 위로 옮겨졌다. “서사를 필요로 하는 영화에 있어서 스토리와 플롯이 탄탄한 소설은 이야깃거리를 제공하는 보고와도 같기 때문이다”(6쪽). 고전뿐만이 아니다. 2010년 이후만 보더라도 『완득이』, 『도가니』, 『은교』, 『상실의 시대』, 『파이 이야기』, 『해리포터와 죽음의 성물』 등 국내외 유명 소설이 영화화되어 관객들을 만났다. 물론 관객들의 평가가 항상 좋았던 것은 아니지만, 자신만의 방식으로 원작을 화면 속에 재현해 내고픈 영화작가들의 욕구는, 원작과의 비교라는 눈에 뻔히 보이는 위험부담을 감수할 만큼 강렬한 것이었나 보다.
『스크린 위의 소설들』은 이렇게 태어난 각색영화들을 원작과 비교하면서 읽어 보려는 시도이다. 텍스트로 서술된 소설이 영상으로 재현되는 다양한 방식을 살펴보기 위해 1장에서는 라클로의 소설 『위험한 관계』와 그것을 각색한 세 편의 영화, 즉 스티븐 프리어스의 <위험한 관계>와 로제 바딤의 <위험한 관계>, 이재용의 <스캔들>을 비교 감상한다. 세 영화의 각기 다른 시공간 배경 속에서 서간체 소설이라는 독특한 형식과 사교계의 방탕함이라는 파격적인 주제가 어떻게 구현되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다. 한편 발자크의 「미지의 걸작」과 이로부터 영감을 받아 만들어진 자크 리베트의 <누드모델>을 다룬 2장은 단순한 재현을 넘어 현존으로 나아가려는 예술(가)의 욕망을 보여 준다. 발자크의 소설 자체가 ‘영혼이 있고 피가 흐르는, 화폭 속에 갇히지 않을 불멸의 명작’을 그리고자 하는 화가의 이야기를 소재로 삼고 있는바, 이 모티프를 차용한 <누드모델>은 소재 차원에서뿐만 아니라 그 스스로 ‘스크린 속에 머무르지 않으려는 영화’가 되려 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그림을 그리는 과정을 지루할 만치 그대로 보여 주는 등 영화 속 시간과 실제 시간을 최대한 일치시키려 함으로써 상영시간이 네 시간에 육박하는가 하면, 배우들과의 공동 창작을 통해 창작 과정 자체가 또 하나의 예술일 수 있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1부에 속한 이 두 개의 장을 통해 독자들은 서술에서 재현으로, 그리고 재현에서 현존으로 이동하는 예술의 꿈을 음미하게 된다.
한편 2부는 한국 문단의 거목 이청준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들을 모았다. 김기영의 <이어도>, 임권택의 <서편제>, 이창동의 <밀양>이 그것이다. 웅숭깊은 이청준의 문학세계에서는 주술, 한(恨), 용서 등 고도의 지적 능력을 요구하는 추상 개념이 빈번히 등장하는데, 자신만의 독특한 영화철학으로 거장의 반열에 오른 세 감독이 이것들에 어떻게 반응하고 대결하면서(혹은 회피하면서) 그것을 스크린 위에 구현해 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다. 충격적이고 강렬한 이미지(김기영), 판소리라는 청각적 재료(임권택), 사실주의적 캐릭터(이창동) 등 각자의 개성을 살린 각색을 통해 새롭게 태어난 이 영화들은 그 자체로 깊은 감동을 줄뿐더러 우리에게 ‘좋은 각색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 보게끔 한다.
매체의 차이 및 자기 예술 자체의 미학과 적극적으로 대결하지 않는 각색, 기계적인 재현으로는 관객들의 감동을 이끌어 낼 수 없다. 앙드레 바쟁의 말처럼 “좋은 각색을 위해서는 영화 고유의 표현 수단인 영상과 소리를 가지고 언어로 표현한 것의 내면 깊숙이 파고 들어갈 수 있어야 한다”(14쪽). 이 책은 소설과 영화 사이에서, 활자와 영상 사이에서, 시간성과 공간성 사이에서 스스로의 예술을 향해 분투했던 작가들의 고민과 실천을 통해 ‘사이’가 제약인 공간인 동시에(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가능성의 공간임을 잘 드러내 보여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