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인들의 목소리 시민과 디아스포라 사이
사이 시리즈 06
이선주 지음 | 2013-04-15 | 204쪽 | 9,800원
일전 지구적인 ‘이주’가 국경의 강고한 벽에 균열을 내고 있지만, 이주자들이 ‘시민’의 지위에 다다르기 위한 여정은 여전히 힘겨워 보인다. ‘시민권’에의 진입 장벽이 만만치 않을뿐더러, 시민권을 취득한다 하더라도 타국에서 소수자로서 겪는 정체성의 혼란과 자기 배반 또한 녹록지 않기 때문이다.
이 책 『경계인들의 목소리』는 이들 디아스포라라는 존재에 주목한다. 이들이 직접 쓴 문학작품을 통해 이들이 처한 현실을, 이들의 삶과 고민을, 이들이 취하는 전략과 그것의 사회적 의미 등을 폭넓게 고찰함으로써 ‘시민’이라는 경계선의 의미를 되묻고 우리 자신의 폐쇄성을 성찰할 것을 요청한다.
저·역자 소개 ▼
이화여자대학교 영문과에서 『디킨즈의 소설에 나타난 근대성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영국과 미국의 근현대소설을 주로 섭렵했다. 현재 이화여대 이화인문과학원 HK연구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는 『디킨즈와 신분과 자본』, When the Korean World in Hawaii was Young 1903-1940 등이 있다. 문화번역과 혼종문화에 관심을 가지고서 근현대의 문학과 문화 속에서 이 문제를 탐구하려고 힘쓰고 있다.
차례 ▼
머리말
1장 시민권, 통합의 역사 혹은 배제의 역사
시민권의 역사 | 프랑스혁명과 인권선언 | 근대 시민권의 특성과 한계 | 자본주의와 디아스포라의 산포
2장 모국과 이주국 사이에 끼이다: 존 오카다의 『노노 보이』
1940년대 일본계 미국인의 강제 수용 | 정체성을 강요당한 자들
3장 민족을 가로질러 공통분모를 찾는 자들: 창래 리의 『네이티브 스피커』
디아스포라의 확장되는 지평 | 유대와 결속에 기반한 디아스포라 | 스파이와 동화주의자 | 민족을 넘나드는 비주류층의 연대
4장 동화와 그 이면 창래 리의 『제스처 라이프』
전체주의에의 추종: 패싱 | 주류 사회에의 적극적 순응: 동화 | 주체적 행위의 회복
5장 이주국에서의 문화번역 수키 김의 『통역사』
문화번역의 일상화 | 문화번역 이론 | 번역되지 않는 이들을 위한 문화번역
6장 지구화시대 이주자들의 혼종성: 카렌 테이 야마시타의 『오렌지 회귀선』
혼종사회의 키워드로서 이주와 미디어 | 복합적 혼종사회 제시를 위한 서사적 특징 | 혼종사회의 중요 인자인 미디어의 행위성 | 서로 스며드는 서사와 행위성의 인계
7장 이주자, 시민권을 넘어서
민족에 근거한 한국 시민권의 폐쇄성 | 「방가? 방가!」 그리고 「깊고 푸른 밤」 | 시민권을 넘어서, 혼종성의 문화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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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추천글 ▼
― 혼종사회의 윤리학을 찾아서
바야흐로 ‘이주의 시대’다. 사실상 국경이 봉쇄된 이 작은 대한민국 땅에도 100만 명이 넘는 이주노동자가 살고 있고, 해외에서 살고 있는 한국(계) 교민도 700만 명이 넘을 정도니 전 지구적 차원에서의 이동은 실로 상상 그 이상일 것이다. 아르준 아파두라이가 『고삐 풀린 현대성』에서 현대성의 핵심 인자 중 하나로 꼽은 ‘전 지구적 이주’는 이처럼 국경의 강고한 벽에 균열을 내고 있지만, 이러한 무수한 이동에도 불구하고 이주자들이 ‘시민’의 지위에 다다르기 위한 여정은 여전히 힘겨워 보인다. 일차적으로는 특정 공동체에 귀속될 수 있고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존재로서의 자격 증명인 ‘시민권’에의 진입 장벽이 만만치 않을뿐더러, 시민권을 취득한다 하더라도 (그것과는 별개로) 타국에서 소수자로서 겪는 정체성의 혼란과 자기 배반 또한 녹록지 않기 때문이다.
이 책 『경계인들의 목소리』는 이러한 이주자의 존재에 주목한다. 그러면서도 이들을 ‘이주자’ 혹은 ‘비(非)시민’이 아닌 ‘디아스포라’라는 용어로 포지셔닝한 것은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용어보다는 “세계화 속에서 가장 주변적 존재로 부각되는 이주자들이 각기 고유한 민족적 속성을 담지하면서 자기와 동병상련하는 다른 소수집단과 어떠한 점에서 서로 지향을 같이할 수 있는지도 함축할 수 있는 용어”를 원했기 때문이다(8쪽). 모국과 이주국 어디에도 온전히 속하지 않으며 문화적 경계 위에 선 이들 디아스포라들은, 그야말로 온몸으로 ‘사이’를 살아가는 존재들이다.
이 책은 이들 디아스포라들이 직접 쓴 문학작품을 통해 이들이 처한 현실을, 이들의 삶과 고민을, 이들이 취하는 전략과 그것의 사회적 의미 등을 폭넓게 고찰한다. 2장에서 다루는 존 오카다의 『노노 보이』는 진주만 공습 이후 자국 내 일본인들을 강제 수용/입영시켰던 미국 정부의 부당한 폭력을 고발하는 동시에 이들 일본인들이 ‘사이에 끼인 존재’로서 겪는 무력감과 내면화되는 폭력을 잘 보여 준다. 가장 성공한 한국계 미국 작가 중 하나로 꼽히는 창래 리의 두 편의 소설 『네이티브 스피커』(3장)와 『제스처 라이프』(4장)는 무비판적 동화를 통해, 심지어는 패싱(passing, 다른 인종/민족인 척하기)을 통해 거주국 사회에 통합되고자 열망하는 인물들의 좌절과 깨달음을 치밀하게 그려 낸 작품들이다. 특히 『네이티브 스피커』는 뉴욕 시장에 도전하는 한국계 정치인을 등장시켜 소수민족의 정치화와 초(超)민족적 연대 가능성이라는 만만치 않은 주제까지 포괄함으로써 작품의 층위를 풍부화한다.
한편 한국계 1.5세 작가 수키 김은 미국 법정에 고용된 한국인 통역사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소설 『통역사』를 통해 하나의 문화가 다른 문화로 번역되는 것의 의미를 묻는다(5장). 이 장에서는 문화번역에 대한 레이 초우, 테자위니 니란자나, 호미 바바 등의 문화이론을 끌어들여, 소외되는 존재들을 위한 적극적인 번역이 필요함을 주장한다. 6장에서 다루는 일본계 3세 작가 카렌 테이 야마시타의 『오렌지 회귀선』은 다인종 사회인 로스앤젤레스를 배경으로 다양한 민족과 인종에 속한 7명의 주인공이 번갈아 가며 서술하는 독특한 형식의 소설이다. 1992년 로스앤젤레스 폭동에서 모티프를 얻은 이 소설은 멕시코식 민중 서사, 미디어의 작동 양태와 자본의 생리, 탈중심성에 대한 천착 등 다양한 소재를 녹여 혼종사회의 거대한 지도를 그려 낸다. 이 책 『경계인들의 목소리』는 이처럼 디아스포라들의 삶이 가진 다층적인 모습들을 생생하게 그려 내는 동시에, 관련된 사회학적 개념들을 적절히 호출하여 알기 쉽게 설명하고 있다.
이를 통해 이 책은 우리에게 ‘시민’이라는 경계선의 의미를 되묻게 한다. ‘인권’을 실현하는 실질적 수단이 되었던 ‘시민권’이 차근차근 확장되어 오는 과정의 이면에는 테두리 바깥 타자들의 배제와 희생이 차폐되어 있었다. 아니, 그 확장 자체가 이 타자들의 치열하고도 집요한 문제 제기에 의해 가능했다고 보는 것이 오히려 정확할 것이다. 지구화시대의 디아스포라는 ‘역사의 피해자’라는 과거의 일차원적 심상을 넘어 다양한 정체성을 하나의 신체에 체현한 능동적 주체로서 바로 그 시민의 경계에 도전하는 자들이다. 이들의 존재를 통해 스스로의 폐쇄성을 성찰하고 삶과 문화를 더욱 풍부하게 만드는 것은 우리의 몫임을, 이 책은 주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