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화과나무 뿌리 앞에서 캄보디아에서 박정희를 보다
유재현 온더로드 3
유재현 지음 | 2007-10-30 | 232쪽 | 12,900원
아시아와 제3세계의 문제에 천착하고 있는 작가 유재현이 6개월간 캄보디아에 머물면서 훈센 독재와 그 체제 아래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기록한 에세이. 저자는 캄보디아인들의 삶을 통해 박정희 시대의, 그리고 오늘날의 한국을 되돌아본다. 때론 가슴 아프고 때론 분노를 일으키는, 또 때론 따뜻함이 담긴 사진과 문학적 글을 통해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생생하게 그려낸다. 그리고 이러한 사람들의 구체적인 삶에서 희망을 발견하고자 한다.
저·역자 소개 ▼
저자 유재현
1962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1992년 창작과 비평 봄호에 중편소설 「구르는 돌」을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저서로 소설집 『시하눅빌 스토리』, 『난 너무 일찍 온 것일까 늦게 온 것일까』, 역사문화 기행서 『메콩의 슬픈 그림자, 인도차이나』, 『샬롬과 쌀람, 장벽에 가로막힌 평화』, 『무화과 나무 뿌리 앞에서』, 『느린 희망』, 『아시아의 기억을 걷다』, 『아시아의 오늘을 걷다』, 『담배와 설탕 그리고 혁명』, 『시네마 온더 로드』, 『달콤한 열대』 등이 있다.
1962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1992년 창작과 비평 봄호에 중편소설 「구르는 돌」을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저서로 소설집 『시하눅빌 스토리』, 『난 너무 일찍 온 것일까 늦게 온 것일까』, 역사문화 기행서 『메콩의 슬픈 그림자, 인도차이나』, 『샬롬과 쌀람, 장벽에 가로막힌 평화』, 『무화과 나무 뿌리 앞에서』, 『느린 희망』, 『아시아의 기억을 걷다』, 『아시아의 오늘을 걷다』, 『담배와 설탕 그리고 혁명』, 『시네마 온더 로드』, 『달콤한 열대』 등이 있다.
차례 ▼
머리말
프롤로그) 캄보디아에서 만난 1970년대 그리고 박정희시대
훈센과 박정희
사쿠라와 체육관
원조(援助) 그리고 부패
성냥팔이 소녀
학교에서 쫓겨나는 아이들
아버지의 이름으로
장인의 이름으로
벽돌
사바사바사바
아르마니
얼굴
시선
훈센과 이명박
전태일과 이명박
메르세데스 벤츠
금
광주 대단지의 기억
양아치
합의
공포
존경
새마을 운동
그렇다고 그걸…
잠
살인
누명
강탈
사마키와 타이셍
고무
트나웃
모또 위의 삶
용접
번개
꽃나무에 적다
가족
우울
얌과 카사바
리아
묵시(?示)
아침
예의
버터플라이
압사라
대사관
김형욱과 헹포
도덕 1
도덕 2
도덕 3
걱정
그 동네 사회주의
무장
아이들
소
발전
폭탄
훈센비치
밥
충(蟲)
독재와 경제
프롱 두 바싹(Front Du Bassac)
강변에서
프놈펜
무화과나무 뿌리 앞에서
사람은 살아간다
방물
형
비
벙익라옴(익라옴 호수)의 평화
에필로그) 2006년 11월 프놈펜에서
보론) 캄보디아 약사
편집자 추천글 ▼
아시아와 제3세계의 문제에 천착하고 있는 작가 유재현이 6개월간 캄보디아에 머물면서 훈센 독재와 그 체제 아래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기록한 에세이. 저자는 캄보디아인들의 삶을 통해 박정희 시대의, 그리고 오늘날의 한국을 되돌아본다. 때론 가슴 아프고 때론 분노를 일으키는, 또 때론 따뜻함이 담긴 사진과 문학적 글을 통해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생생하게 그려낸다. 그리고 이러한 사람들의 구체적인 삶에서 희망을 발견하고자 한다.
캄보디아에서 만난 박정희 시대, 그리고 오늘의 한국
??무화과나무 뿌리 앞에서??는 저자 유재현이 2006년 7월부터 12월까지 6개월간 캄보디아에 머물면서 살펴본 훈센 독재와 그 체제 아래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기록한 것이다. 저자는 그 속에서 우리들의 모습을 발견한다. 쿠데타와 독재자의 장기 집권, 개발독재, 부정부패 그리고 그 속에서 억압받는 사람들의 모습은 과거 박정희 개발독재 시대의 우리와 너무나도 흡사하다. 나아가 저자는 그 속에서 박정희라는 이름이 여전히 강력한 힘을 지니고 대선 정국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오늘날의 우리 모습을 보며, 캄보디아 군부독재 정권을 직접적으로 지원하고 있는 현 정권에 대해서도 강력하게 비판하고 있다.
아시아와 제3세계의 문제에 천착하고 있는 작가 유재현은 ??메콩의 슬픈 그림자, 인도차이나??, ??시하눅빌 스토리??, ??아시아의 기억을 걷다??에 이어 또 한 번 캄보디아라는 주제와 마주한다. 과거의 책들이 여행기나 소설의 형식, 혹은 킬링필드의 역사 등 다소 우회적인 방식으로 캄보디아의 모습을 그려냈다면, ??무화과나무 뿌리 앞에서??는 좀 더 직접적으로 그 나라, 그 삶 속으로 들어간다. 그렇기에 그 속에서 건져낸 우리의 모습에 대한 성찰도 더욱 생생하고 구체적이다. 유재현은 때론 가슴 아프고 때론 분노를 일으키는, 또 때론 따뜻함이 담긴 사진과 문학적 글을 통해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생생하게 그려낸다. 그리고 그 삶을 통해서 우리의 과거와 현재의 삶을 되돌아보게 한다.
박정희 시대, 캄보디아에서 재현되다!
캄보디아는 우리에게 ‘킬링필드’, ‘앙코르와트’ 같은 몇몇 단편적인 대상을 통해서만 인식되어 왔다. 하지만 그곳은 남한의 1960~70년대 개발독재가 오늘날 거의 흡사하게 재현되고 있는 나라이다. 실제로 캄보디아의 독재자 훈센은 “죽은 사람으로는 박정희를, 살아 있는 사람으로는 전두환을 제일 존경한다고” 한다. 저자에 따르면 이는 단순히 독재자로서의 연대의 표현 수준이 아니다. 훈센은 세계의 어느 독재자들보다도 충실하게 박정희의 뒤를 밟아가고 있다.
훈센은 박정희처럼 군부를 권력의 기반으로 한 철권통치를 통해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고 있다. 그러면서도 개발이란 미명 아래 자신의 독재를 국가의 앞날을 위해 필요한 과정이라며 합리화하고 있다. 그 개발의 과정, 즉 “쿠데타 후 일본, 중국 등의 원조와 차관, 외국인직접투자(FDI)의 증가, 섬유산업 중심의 경공업 분야의 급속한 발전 등”은 박정희 시대 중기의 모습과 유사하다. 그리고 그 개발의 과정에서 벌어지는 부정부패까지 똑같이 닮아 있다. 박정희 시대처럼 캄보디아 역시 독재정권 하의 시스템으로 고착된 부정부패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부정부패는 국가적 차원뿐만이 아니라, 일상에까지 번져나가 있다. 지자체의 공무원이 출세하고 좌천되는 것은 뇌물의 액수에 달려 있고, 교통경찰은 운전자들의 주머니를 털려 비지땀을 흘리며, 학교 선생님들은 적은 월급을 보충하기 위해 촌지를 강요한다. 그리고 그 부정의 고리 끝에는 착취당하는 평범한 캄보디아인들이 있다.
개발에 파괴되는 삶
이러한 맹목적 개발과 부정부패 속에서 상처 입는 것은 캄보디아 인민들이다. 그리고 이는 박정희 시대, 그리고 오늘날 남한의 모습이기도 하다.
저자는 개발이란 명목으로 삶의 터전에서 쫓겨나 허허벌판에 버려질 위기에 놓인 빈민촌 ‘데이 크라옴’ 사람들의 모습에서, 서울과 전국 빈민촌의 철거민들을 군용 트럭에 싣고 쓰레기처럼 퍼부어 만들어졌던 성남 판자촌의 모습을 본다. 또 2005년 13.4%, 2006년 10.4%라는 경이적인 경제성장률의 뒤편에 존재하는 캄보디아인들의 파괴되는 삶, 시골에서 올라온 여공들에 대한 착취와 돈이 없어 학교에서 쫓겨난 아이들,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몸을 팔아야 하는 여자 아이들의 모습이 박정희 시대 혹은 오늘의 남한의 모습과 겹쳐진다.
저자는 이처럼 사람들이 인간으로서의 존엄마저 지키지 못하고 살게 만드는 상황에 대해, “인간으로서 증오해야 할 것”에 대해 분노한다. 그리고 그 인간적 분노에 바탕했기 때문에 저자의 캄보디아 정권과 남한 정권에 대한 비판에는 진정성이 느껴진다.
박정희식 개발독재가 판박이처럼 반복되고 있는 캄보디아 앞에서 저자는 말한다. “박정희 시대를 옹호하거나 희미한 태도를 보이는 자들이 정치ㆍ경제적 유사 박정희 시대인 훈센의 시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태도를 보일 수 있는지” 알고 싶었다고. “오늘 훈센 독재정권의 부정과 부패를 찬성하고 찬양할 수 있는 자들만이 박정희 독재를 찬양할 자격을 갖고” 있는 것 아니냐고.
사마귀의 논리를 넘어 인간의 논리를 향하여
그렇다고 저자가 성급히 정권 교체나 경제적 조치 같은 거시적 대안을 제시하는 건 아니다. 그가 처음 시작하는 지점은 캄보디아 사람들의 삶이다. 저자는 6개월간 캄보디아의 “농촌, 빈민촌, 공장, 철거 현장, 창녀촌, 고무농장, 부촌, 그리고 낮과 밤의 거리”를 오가며 그 속의 삶을 사진과 글로 담아냈다. 그는 그 속에서 만난 사람들의 고통 받는 사람들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저자가 그들의 삶을 담아낸 사진들에는 대상에 대한 애정, 분노, 슬픔, 그리고 연대감이 그대로 드러나며, 그에 따른 짧은 글들 역시 깊은 여운을 남긴다. 그는 그 속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을 살아가는, 살아가야 하는 그들에게서 희망을 발견하고자 한다.
저자는 캄보디아 훈센 개발독재와 박정희 개발독재, 그리고 지금까지 남한에서도 이어지고 있는 선(先)성장 후(後)분배의 논리를 인간이 아닌 “사마귀의 논리”라고 말한다. 알을 부화하기 위한 영양 공급을 위해 암컷이 수컷의 대가리를 잘라 먹는 사마귀의 논리가, 후대를 위해 끔찍한 고통을 강요하고 이를 경제발전의 불가피한 희생쯤으로 여기는 개발독재의 논리와 무엇이 다르냐고 말이다. 그리고 새로 태어난 사마귀의 암컷이 다시 수컷의 대가리를 잘라 먹게 되듯이, 당대의 지옥은 후대의 지옥으로 이어질 뿐이라고 말한다. 정권이 바뀌고 이른바 민주화가 된다고 해도, 이 사마귀의 논리가 변화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지옥에서 벗어날 수 없다. 저자가 사람들의 구체적인 삶에서 희망을 발견하고자 한 것은, 그곳에서 시작함으로써 사마귀의 논리가 아닌 ‘인간의 논리’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캄보디아뿐만 아니라 남한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캄보디아에서 만난 박정희 시대, 그리고 오늘의 한국
??무화과나무 뿌리 앞에서??는 저자 유재현이 2006년 7월부터 12월까지 6개월간 캄보디아에 머물면서 살펴본 훈센 독재와 그 체제 아래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기록한 것이다. 저자는 그 속에서 우리들의 모습을 발견한다. 쿠데타와 독재자의 장기 집권, 개발독재, 부정부패 그리고 그 속에서 억압받는 사람들의 모습은 과거 박정희 개발독재 시대의 우리와 너무나도 흡사하다. 나아가 저자는 그 속에서 박정희라는 이름이 여전히 강력한 힘을 지니고 대선 정국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오늘날의 우리 모습을 보며, 캄보디아 군부독재 정권을 직접적으로 지원하고 있는 현 정권에 대해서도 강력하게 비판하고 있다.
아시아와 제3세계의 문제에 천착하고 있는 작가 유재현은 ??메콩의 슬픈 그림자, 인도차이나??, ??시하눅빌 스토리??, ??아시아의 기억을 걷다??에 이어 또 한 번 캄보디아라는 주제와 마주한다. 과거의 책들이 여행기나 소설의 형식, 혹은 킬링필드의 역사 등 다소 우회적인 방식으로 캄보디아의 모습을 그려냈다면, ??무화과나무 뿌리 앞에서??는 좀 더 직접적으로 그 나라, 그 삶 속으로 들어간다. 그렇기에 그 속에서 건져낸 우리의 모습에 대한 성찰도 더욱 생생하고 구체적이다. 유재현은 때론 가슴 아프고 때론 분노를 일으키는, 또 때론 따뜻함이 담긴 사진과 문학적 글을 통해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생생하게 그려낸다. 그리고 그 삶을 통해서 우리의 과거와 현재의 삶을 되돌아보게 한다.
박정희 시대, 캄보디아에서 재현되다!
캄보디아는 우리에게 ‘킬링필드’, ‘앙코르와트’ 같은 몇몇 단편적인 대상을 통해서만 인식되어 왔다. 하지만 그곳은 남한의 1960~70년대 개발독재가 오늘날 거의 흡사하게 재현되고 있는 나라이다. 실제로 캄보디아의 독재자 훈센은 “죽은 사람으로는 박정희를, 살아 있는 사람으로는 전두환을 제일 존경한다고” 한다. 저자에 따르면 이는 단순히 독재자로서의 연대의 표현 수준이 아니다. 훈센은 세계의 어느 독재자들보다도 충실하게 박정희의 뒤를 밟아가고 있다.
훈센은 박정희처럼 군부를 권력의 기반으로 한 철권통치를 통해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고 있다. 그러면서도 개발이란 미명 아래 자신의 독재를 국가의 앞날을 위해 필요한 과정이라며 합리화하고 있다. 그 개발의 과정, 즉 “쿠데타 후 일본, 중국 등의 원조와 차관, 외국인직접투자(FDI)의 증가, 섬유산업 중심의 경공업 분야의 급속한 발전 등”은 박정희 시대 중기의 모습과 유사하다. 그리고 그 개발의 과정에서 벌어지는 부정부패까지 똑같이 닮아 있다. 박정희 시대처럼 캄보디아 역시 독재정권 하의 시스템으로 고착된 부정부패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부정부패는 국가적 차원뿐만이 아니라, 일상에까지 번져나가 있다. 지자체의 공무원이 출세하고 좌천되는 것은 뇌물의 액수에 달려 있고, 교통경찰은 운전자들의 주머니를 털려 비지땀을 흘리며, 학교 선생님들은 적은 월급을 보충하기 위해 촌지를 강요한다. 그리고 그 부정의 고리 끝에는 착취당하는 평범한 캄보디아인들이 있다.
개발에 파괴되는 삶
이러한 맹목적 개발과 부정부패 속에서 상처 입는 것은 캄보디아 인민들이다. 그리고 이는 박정희 시대, 그리고 오늘날 남한의 모습이기도 하다.
저자는 개발이란 명목으로 삶의 터전에서 쫓겨나 허허벌판에 버려질 위기에 놓인 빈민촌 ‘데이 크라옴’ 사람들의 모습에서, 서울과 전국 빈민촌의 철거민들을 군용 트럭에 싣고 쓰레기처럼 퍼부어 만들어졌던 성남 판자촌의 모습을 본다. 또 2005년 13.4%, 2006년 10.4%라는 경이적인 경제성장률의 뒤편에 존재하는 캄보디아인들의 파괴되는 삶, 시골에서 올라온 여공들에 대한 착취와 돈이 없어 학교에서 쫓겨난 아이들,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몸을 팔아야 하는 여자 아이들의 모습이 박정희 시대 혹은 오늘의 남한의 모습과 겹쳐진다.
저자는 이처럼 사람들이 인간으로서의 존엄마저 지키지 못하고 살게 만드는 상황에 대해, “인간으로서 증오해야 할 것”에 대해 분노한다. 그리고 그 인간적 분노에 바탕했기 때문에 저자의 캄보디아 정권과 남한 정권에 대한 비판에는 진정성이 느껴진다.
박정희식 개발독재가 판박이처럼 반복되고 있는 캄보디아 앞에서 저자는 말한다. “박정희 시대를 옹호하거나 희미한 태도를 보이는 자들이 정치ㆍ경제적 유사 박정희 시대인 훈센의 시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태도를 보일 수 있는지” 알고 싶었다고. “오늘 훈센 독재정권의 부정과 부패를 찬성하고 찬양할 수 있는 자들만이 박정희 독재를 찬양할 자격을 갖고” 있는 것 아니냐고.
사마귀의 논리를 넘어 인간의 논리를 향하여
그렇다고 저자가 성급히 정권 교체나 경제적 조치 같은 거시적 대안을 제시하는 건 아니다. 그가 처음 시작하는 지점은 캄보디아 사람들의 삶이다. 저자는 6개월간 캄보디아의 “농촌, 빈민촌, 공장, 철거 현장, 창녀촌, 고무농장, 부촌, 그리고 낮과 밤의 거리”를 오가며 그 속의 삶을 사진과 글로 담아냈다. 그는 그 속에서 만난 사람들의 고통 받는 사람들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저자가 그들의 삶을 담아낸 사진들에는 대상에 대한 애정, 분노, 슬픔, 그리고 연대감이 그대로 드러나며, 그에 따른 짧은 글들 역시 깊은 여운을 남긴다. 그는 그 속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을 살아가는, 살아가야 하는 그들에게서 희망을 발견하고자 한다.
저자는 캄보디아 훈센 개발독재와 박정희 개발독재, 그리고 지금까지 남한에서도 이어지고 있는 선(先)성장 후(後)분배의 논리를 인간이 아닌 “사마귀의 논리”라고 말한다. 알을 부화하기 위한 영양 공급을 위해 암컷이 수컷의 대가리를 잘라 먹는 사마귀의 논리가, 후대를 위해 끔찍한 고통을 강요하고 이를 경제발전의 불가피한 희생쯤으로 여기는 개발독재의 논리와 무엇이 다르냐고 말이다. 그리고 새로 태어난 사마귀의 암컷이 다시 수컷의 대가리를 잘라 먹게 되듯이, 당대의 지옥은 후대의 지옥으로 이어질 뿐이라고 말한다. 정권이 바뀌고 이른바 민주화가 된다고 해도, 이 사마귀의 논리가 변화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지옥에서 벗어날 수 없다. 저자가 사람들의 구체적인 삶에서 희망을 발견하고자 한 것은, 그곳에서 시작함으로써 사마귀의 논리가 아닌 ‘인간의 논리’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캄보디아뿐만 아니라 남한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