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꾸로 달리는 미국  유재현의 미국사회 기행

유재현 온더로드 5

유재현 지음 | 2009-05-15 | 464쪽 | 18,900원


미국사회의 역사와 문화를 비판적으로 그리고 있는 책. ‘유재현 온더로드’를 통해 3세계의 역사와 정치를 그곳에 뿌리내리며 살고 있는 사람들과의 소통을 통해 풀어내려고 노력하고 있는 저자 유재현은 서부 태평양 연안의 로스앤젤레스에서 출발해 62일 동안, 자동차로 2만 5천 킬로미터를 달려 미국을 일주한다. 이 독특한 여행에서 미국은 탐욕과 적대의 제국이며 오래된 패권의 피로가 충만한 나라로 묘사된다. 침략의 역사를 영토 확장의 역사로 당당하게 가르치는 교사, 낯선 아시아인에게 적대감부터 보이는 경찰과 자본주의의 외부로 밀려난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두려워할지언정 누구도 사랑하지 않는 나라, ‘미국’의 초상을 읽는다.


저·역자 소개 ▼

저자  유재현
1962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1992년 창작과 비평 봄호에 중편소설 「구르는 돌」을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저서로 소설집 『시하눅빌 스토리』, 『난 너무 일찍 온 것일까 늦게 온 것일까』, 역사문화 기행서 『메콩의 슬픈 그림자, 인도차이나』, 『샬롬과 쌀람, 장벽에 가로막힌 평화』, 『무화과 나무 뿌리 앞에서』, 『느린 희망』, 『아시아의 기억을 걷다』, 『아시아의 오늘을 걷다』, 『담배와 설탕 그리고 혁명』, 『시네마 온더 로드』, 『달콤한 열대』 등이 있다.
차례 ▼

머리말 - 적에 대한 애정
기행경로

1부 서발동진
캘리포니아 1
전자적 여행과 서발동진|반역이 아닌 반역|에덴의 동쪽|퍼시픽 그로브
캘리포니아 2
샌프란시스코의 사랑과 꽃|팬 아메리카의 단결|라이스 밸리 그리고 이세와 니세
워싱턴
쿨리와 인디언|브루스 리, 리샤오룽 혹은 이소룡|알제리(A)에서 짐바브웨(Z)까지
캐나다
방탕한 미국 씨의 달러|드래프트 다저 - 영장을 불태운 사람들

2부 몬태나 길 위에서
몬태나
딜런이네 마을|와이오밍 인터스테이트 80|오늘의 팀스터
네브래스카
대평원의 토르티야와 템페|철도와 시장|에프와 에스, 병신과 머저리
캔자스
턴파이크|아이들에게 즐거움을
미주리
카지노 옆 카길|제국으로의 관문|끊긴 연표
일리노이
링컨이 노예를 해방시키다?|잠든 시카고|마천루의 숲과 해군의 시카고|건재한 맥도날드

3부 몰락한 미국의 초상
미시간
산업혁명에 대한 헌사|몰락, 디트로이트와 미국|제국의 탄생|나이아가라 그리고 돌아오지 않는 강
메사추세츠
테러와의 전쟁 속으로|대통령과 닭장의 닭|제국의 선조|학살과 혁명에 대한 참을 수 없는 모욕
뉴욕
브루클린으로 가는 마지막 출구에서|타임스퀘어의 아우라|음모와 공포|갱스 오브 뉴욕
워싱턴 D.C.
스미스와 워싱턴 그리고 오벨리스크|알링턴의 묘비|서푼짜리 자유

4부 미국의 그늘
조지아
코카콜라가 기가 막혀|오늘 오후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악마의 고향은 평화롭다
플로리다
90마일의 이쪽과 저쪽|도미노 판 위의 인생|가장 오래된 도시에서
루이지애나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강타한 것들|그레이스랜드의 50년대
텍사스
포브레 메히코|론스타|멜키아데스 에스트라다의 텍사스|빈곤과 공포를 찧는 방앗간
치와와, 뉴멕시코
판초 비야의 치와와|배관공이 되고 싶었던 사나이|과학은 사회에 봉사한다. 죽음으로
네바다
라스베이거스의 디즈니랜드|후버빌과 부시빌

에필로그 - 잠수함의 토끼

편집자 추천글 ▼

미국사회의 역사와 문화를 비판적으로 그리고 있는 책. ‘유재현 온더로드’를 통해 3세계의 역사와 정치를 그곳에 뿌리내리며 살고 있는 사람들과의 소통을 통해 풀어내려고 노력하고 있는 저자 유재현은 서부 태평양 연안의 로스앤젤레스에서 출발해 62일 동안, 자동차로 2만 5천 킬로미터를 달려 미국을 일주한다. 이 독특한 여행에서 미국은 탐욕과 적대의 제국이며 오래된 패권의 피로가 충만한 나라로 묘사된다. 침략의 역사를 영토 확장의 역사로 당당하게 가르치는 교사, 낯선 아시아인에게 적대감부터 보이는 경찰과 자본주의의 외부로 밀려난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두려워할지언정 누구도 사랑하지 않는 나라, ‘미국’의 초상을 읽는다.

미국의 몰락을 읽는다!!
미국적인, 너무나 미국적인 하이웨이에서 쓰여진 미국 역사문화 리포트!


이스라엘의 폭격으로 폐허가 된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이스라엘과 미국에게 저주를 부르짖는다. 비단 이런 광경을 팔레스타인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미국이 일으킨 전쟁으로 삶의 터전을 잃은 사람들, 혹은 미국 자본의 침투로 직장에서 내쫓긴 사람들이 세계 곳곳에서 늘어나면서 이제 반미는 상식이 되어 버렸다. 20세기 내내 세계 헤게모니를 움켜쥐고 있던 미국의 몰락은 어디에 근원을 두고 있는가?
이 책 ‘거꾸로 달리는 미국’에서 저자 유재현은 미국사회의 문화와 역사를 비판적으로 그리고 있다. 서부 태평양 연안의 로스앤젤레스에서 출발해 62일 동안, 자동차로 2만 5천 킬로미터를 달린 이 독특한 여행에서 미국은 탐욕과 적대의 제국이며 오래된 패권의 피로가 충만한 나라로 묘사된다. 침략의 역사를 영토 확장의 역사로 당당하게 가르치는 교사, 낯선 아시아인에게 적대감부터 보이는 경찰과 자본주의의 외부로 밀려난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두려워할지언정 누구도 사랑하지 않는 나라, ‘미국’의 초상을 읽는다.
‘유재현 온더로드’ 시리즈를 통해 서구 근대화의 그늘에 가려진 아시아의 역사문화와 쿠바 사회주의의 가능성을 탐구해 왔던 저자는 지난 20여 년간 소설가로, 르포 작가로 세계를 돌아다니며 제3세계의 역사와 정치를 그곳에 뿌리내리며 살고 있는 사람들과의 소통을 통해 풀어내려고 노력해 왔다. 이 책은 세계 곳곳에서 목도되고 있는 반미주의의 근원을 찾기 위해 저자가 2007년 자동차로 미국을 일주하면서 남긴 기록이다. 저자는 2009년 초에 다시 미국을 방문해 오바마 당선 이후 미국의 풍경을 새롭게 보강하는 등, 미국사회를 다각적으로 묘사하고 전달하기 위해 노력했다.
지구상에 등장한 이래 단 한 번도 제국으로서의 자신의 진로를 수정한 적이 없는 미국. 미국이 만들어 낸 아메리칸 드림의 허상은 세계의 낮과 밤을 지배하며 모든 나라를 그 꿈을 향해 질주하도록 만들고 있다. 세계적 차원에서 끊임없이 재생산되는 미국적 모순과 싸우기 위해 부득이 우리는 미국을 살펴봐야 한다.

여행의 방법 : ‘서발동진’(西發東進) 그리고 자동차
저자는 미국의 서부에서 출발해 동부로 여행한다. 토크빌을 비롯해 미국을 여행한 유럽인들은 동부에서 서부로 여행하며 기록을 남겼고, 마크 트웨인과 존 스타인벡과 같은 미국의 지성들도 동일한 방향으로 미국을 여행했다. 이는 미국이라는 국가가 동부 연안 지역에서 시작해 서부 태평양 지역으로 팽창해 간 역사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관점에 따라 미국이라는 나라를 이해하는 방향은 저마다 다를 수밖에 없다. 저자는 아시아인이 처음 발을 디딘 서부에서 시작해 동부를 향해 이동한다. 유럽인과는 반대 방향으로 미국을 여행하면서 그들과 다른 시선으로 미국을 살핀다. 이는 미국이 주도하는 신자유주의에서 거꾸로 돌아가, 우리 삶의 희망을 발견하자는 바람의 표현이기도 하다.
저자는 로스앤젤레스에서 자동차를 렌트해 출발한다. 사실 자동차는 미국을 상징하는 아이콘이자 20세기 기계 문명의 상징이다. 자동차 산업은 미국에서 가장 먼저 꽃을 피웠고, 헨리 포드의 생산방식인 ‘포디즘’은 20세기 중반까지 미국 자본주의의 번영을 의미했다. 미국 주간고속도로(interstate highway) 건설 공사가 완료되자, 자동차는 미국인의 삶 속에서 필수적인 존재가 되었다. 전체 물류의 절반 이상이 이 도로를 따라 미국의 구석구석으로 운반되며 또한 많은 사람들이 이 도로를 통해 이동하기 때문이다. 이번 여행 내내 저자와 함께한 자동차야말로 가장 ‘미국적인’ 이동수단이다.
자동차로 달린 미국은 비행기와 같은 다른 교통수단으로는 볼 수 없는 풍경을 보여 준다. 저자는 몬태나의 황량한 벌판과 미시간의 대평원에 넓게 드리워져 있는 옥수수밭을 지나쳐 미시시피의 푸른 강물에 다다른다. 그리고 다시 자동차 산업의 고향인 디트로이트를 지나 대서양 연안에 위치한 보스턴과 뉴욕을 거쳐 플로리다의 맑은 바닷가 해안도로를 달렸다. 국립공원 빅벤(Big Bend)의 삭막한 사막에서 멕시코 불법이민자의 아픔을 느끼고 1930년대 대공황의 아픔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후버 댐과 환락의 도시 라스베이거스를 거쳐 다시 로스앤젤레스로 돌아오는 여정(8~9쪽 ‘기행경로’ 참고)을 자동차와 함께했다.

태평양의 동쪽, 미국의 서쪽 : 배제된 이방인
아시아인이 처음으로 북미 대륙에 발을 내디딘 곳은 미국의 서쪽 끝인 태평양 연안이었다. 18세기 중엽, 중국의 빈농들이 대거 미국으로 이주하면서 본격적으로 아시아인 이주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미국에서 아시아인들의 삶은 차별과 멸시로 점철된 고달픔의 연속이었다. 미 정부는 중국 이민자가 늘어나자 1882년 '중국인 배제법'을 제정해 중국인의 이주를 금지하고 국적 취득을 금지했다. 이 법은 이후 61년 동안 대표적인 인종차별법으로 존재하면서 중국인의 토지 소유와 혼인을 금지한다(‘쿨리와 인디언’, 61쪽).
저자는 오리건 주를 지나다 우연히 ‘라이스 밸리’라는 지명을 발견한다. 한때 중국인들이 벼농사를 지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실제로 미국에서 벼농사를 정착시킨 사람들은 일본인 이주민이었다. 중국인 이주민과 마찬가지로 인종차별에 시달리던 그들은 힘들게 모은 돈으로 농지를 구입해 벼농사를 지었다. 그러나 그들의 ‘아메리칸 드림’은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비극적인 결말을 맺는다. 미국 정부는 일본계 미국인들을 모두 적국 국민으로 취급해 재산을 몰수하고 수용소로 보내는 만행을 저지른다(‘라이스 밸리 그리고 이세와 니세’, 53쪽).
사실 미국의 역사는 아시아인들에게만 ‘배제’의 잔혹함을 보인 것은 아니다. “배가 고파요”라고 쓴 팻말을 들고 앉아 있는 흑인 홈리스들은 미국사회에서 밀려난 자들이다. 한때 미국 서부 지역에서 진보운동의 성지였던 샌프란시스코에는 이제 홈리스만 가득할 뿐이다. 1968년, 세계를 변화시키려는 기운이 미국사회를 맴돌 때, 많은 젊은이들이 샌프란시스코에 모여 반전평화시위를 열었다. 스콧 매킨지의 '샌프란시스코'는 당시 미국 진보운동의 낭만이 담겨 있는 노래다. 그래서 샌프란시스코에서 만난 홈리스는 더욱 슬프다. 이제 미국사회가 더 이상의 자정 능력을 상실한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샌프란시스코의 사랑과 꽃’, 37쪽).

중원에 세워진 자본의 성채
아직 굳건해 보이는 미국 자본과 달리, 미국 서민들은 불확실한 현실로 내몰리고 있었다. 많은 기업들이 미국을 떠나 임금이 싼 제3세계로 공장을 옮기자, 미국 내 제조업은 추락을 거듭한다. 공장이 옮겨 가자 미국의 노동운동 역시 몰락하는데, 이는 한때 가장 굳건한 조직력을 자랑했던 팀스터(Teamster)의 현재를 보면 알 수 있다. 팀스터는 노동운동에 대한 정부 규제가 심해지고 노조 내부 비리 문제가 터지자 급속하게 쇠락했다. 사실 미국 노동운동의 몰락은 예정된 것이었다. 노동운동가를 일종의 직업으로만 생각했던 노동조합 간부들은 자본가들의 파상공세에 단지 자신들의 이익을 챙기기에 급급했으며 이는 노조원의 불신을 불러 왔다. 저자가 휴게소에서 “팀스터 노조원이시오?” 하고 묻자 단호히 “이젠 아니오”라고 말하던 트럭운전사들은 오늘날 팀스터와 미국 노동운동의 현실을 쓸쓸하게 증언하고 있다(‘오늘의 팀스터’, 107쪽).
이 같은 상황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자본은 세계를 무대로 그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저자는 미주리의 대평원을 달리며 미국 자본의 흐름을 읽어 낸다. 미주리의 대평원에는 다국적 곡물 유통 기업인 카길(Cargill)의 곡물저장 창고가 곳곳에 서 있다. 카길은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 곡물 시장의 흐름을 좌지우지하는 이른바 ‘큰손’이다. 최근 대체연료가 각광을 받자, 카길은 옥수수를 선매해 큰 수익을 올렸다. 카길의 발 빠른 행보로 인해 피해를 입은 것은 옥수수를 주식으로 하는 멕시코의 서민들이다. 카길의 성장은 곧 우리 식탁의 위험으로 다가온다. 유전자 조작 식품을 주도하고 있는 것도, 식량을 무기 삼아 이윤을 높이는 것도 카길이다. 대평원에 우뚝 선 카길의 창고는 전 세계를 휘저으며 ‘맹활약을 펼치는’ 미국 자본의 현 모습이기도 하다(‘카지노 옆 카길’ 149쪽).

미국의 수도, 전쟁의 수도 : 전쟁기념비에 숨겨진 진실
“베트남전쟁. 미국의 가장 긴 전쟁, 우리의 자유를 수호하기 위해 싸운 미국의 병사들이 여기 잠들어 있다.”
미국 곳곳에 산재한 전쟁 기념비에는 대부분 앞과 같은 글귀가 새겨져 있다. 미국은 20세기 내내 전쟁을 벌여 왔다. 워싱턴 D.C.의 바로 옆에 있는 알링턴 국립묘지와 링컨 기념관 인근에 있는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 2차 세계대전 기념비는 전쟁으로 목숨을 잃은 미군 51만 7천여 명과 유엔군 6만 2천여 명의 영혼을 상징한다. 저자는 이곳에서 끊임없이 전쟁을 필요로 하는 나라, 미국의 본성을 꿰뚫어 본다.
죽은 자들을 미화함으로써 애국주의를 고취하거나 전쟁을 찬양하는 기념비만 압도적으로 많고 미국 어디에서도 미국이 일으킨 전쟁으로 억울하게 죽은 사람들을 추모하는 기념비를 찾아 볼 수 없다. 1960년대 그토록 격렬하게 반전시위가 있었고 그 때문에 전쟁 종식을 앞당겼음에도 불구하고 ‘반전기념비’란 존재하지 않는다. 베트남전쟁으로 300만을 웃도는 민간인들이 숨졌음에도 워싱턴 D.C.의 기념비에는 5만 명의 미군 병사 이름만 자리 잡고 있을 뿐이다. 5만의 이름 뒤에 무고하게 숨진 수백만의 이름도 함께 있음을 미국인들이 깨닫지 못한다면, 그들이 벌이는 제국주의 전쟁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서푼짜리 자유’, 318쪽).
미국이 벌이는 전쟁에 시대의 양심으로 비판한 사람들도 존재하긴 했다. 그러나 이런 정의로운 활동은 미국사회에서 의도적으로 지워지고 망각되고 있다. 저자는 이런 사실을 미국을 대표하는 작가인 마크 트웨인의 박물관에서 깨닫는다. ‘톰 소여의 모험’, ‘허클베리 핀의 모험’의 작가 마크 트웨인은 미국의 대외 정책에 끊임없이 비판의 목소리를 냈던 지식인이다. 그는 ‘미국반제국주의동맹’의 부의장을 맡아 미국의 제국주의 정책에 대한 비판을 쏟아냈으며, 필리핀에서 벌인 전쟁을 비판하는 ‘전쟁을 위한 기도’(The War Prayer)를 쓰기도 했다. 그러나 이 책은 게재 거부로 생전에는 발표되지 못했고, 한니발의 ‘마크 트웨인 박물관’에서도 그의 이런 활동상은 연표에 나와 있지 않다. 생의 마지막 10년 동안 가장 활발하게 미국을 비판해 온 이 ‘반체제 작가’를 미국사회는 아직도 껴안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제국주의 침략이 아직도 계속되고 있는 이유의 단상을 저자는 이 끊긴 연표에서 찾고 있다(‘끊긴 연표’, 163쪽).

옛날 옛적 텍사스에선 : 멕시코의 비극
미국의 제국주의적 팽창 정책으로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곳은 멕시코였다. 현재 미국 영토의 40% 이상을 차지하는 텍사스, 캘리포니아, 유타, 뉴멕시코, 네바다, 애리조나의 전부와 와이오밍과 콜로라도의 상당 부분은 원래 멕시코 영토였다.
문제의 발단은 1839년 멕시코공화국이 공식적으로 노예제도를 폐지하면서 시작되었다. 당시 멕시코에는 미국 출신 이주민이 많았는데, 그들 대부분은 노예를 소유하고 있었다. 노예제 폐지에 반발해 반란을 일으킨 이주민들은 멕시코 영토였던 텍사스를 독립시킨다. 독립한 텍사스를 22번째 주로 편입한 미국은 이후 노골적으로 멕시코 영토를 노리기 시작해, 1846년 전쟁으로 ‘과달루페 이달고 조약’을 강제로 체결한다. 이 조약으로 멕시코는 영토의 55%를 미국에 뺏긴다(‘포브레 메히코’, 399쪽).
비극은 계속된다. 1994년 체결된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은 멕시코인들의 생활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값싼 미국 농산품이 물밀듯이 몰려오자 살 길을 잃어버린 농민들은 ‘마킬라도라’ (Maquiladora)라고 불리는 국경 인근의 도시로 몰려들었다. 멕시코어로 “남의 옥수수를 갈아 주는 방앗간”을 뜻하는 ‘마칼라도라’는 미국의 자본이 투입되어 세금을 면제받는 공장지대이다. 삶의 터전을 빼앗긴 사람들은 이곳을 거쳐 미국으로 밀입국을 시도한다. 미국과 멕시코 국경을 삥 둘러 세워져 있는 장벽은, 북미자유무역협정 이후 멕시코인들의 삶이 얼마나 피폐해졌는지를 여실히 보여 준다.

부시빌, 미국사회를 비추는 깨진 거울
미국을 일주한 후 저자는 “힘을 가진 야만은 인류의 문명의 지구적 차원에서 퇴보시켰다”라고 통찰한다. 이미 정점에 도달한 “세계의 미국화”는 이제 지구화된 야만에 맞서 피할 수 없는 기로에 서 있음을 알려 준다. 저자는 미국을 ‘침몰하는 잠수함’ 신세라고 단언한다. 그것은 미국 내부에는 아직 해결되지 않은 채 산적해 있는 문제들, 인종차별, 빈곤, 전쟁이 여전히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2008년 미국을 강타한 모기지론 사태는 미국 속에서 새로운 풍경을 만들어 내고 있다. 미국 대도시 강변에 이번 일로 집을 잃은 사람들이 모여 텐트촌을 형성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텐트촌의 원조는 대공황 때 나타나 당시 대통령이었던 후버의 이름을 붙인 ‘후버빌’(Hoovervilles)이다. 최근 나타난 텐트촌은 ‘부시빌’(Bushville)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부시 대통령의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이 가져온 빈곤의 풍경을 고발한다(‘후버빌과 부시빌’, 451쪽). 오바마가 당선된 이후, 새로운 경제정책을 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전망은 그다지 밝아 보이지 않는다. 제국의 패권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결국 바뀌는 것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유재현이 미국을 자동차로 달리며 바라본 풍경은 사실 오늘날 남한사회의 풍경이기도 하다. 샌프란시스코의 홈리스, 자본의 횡포로 길거리에 내쫓긴 사람들, 불법이주자로 몰려 벼랑 끝에 서 있는 사람들, 자기 잇속만 챙기는 노동조합 등등.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은 ‘유사-미국’을 지향하는 남한에서도 이미 벌어지고 있고, 앞으로 닥칠 일이다. ‘세계화’란 이름으로 미국화가 진행되고 있는 지금, 세계 어느 곳에서도 미국적인 것 외의 새로움을 찾기 힘들어졌다. 미국이 초강대국으로 등장한 지 반세기 만에 우리는 거울을 보면 미국을 보게 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저자 유재현의 일침처럼, 우리는 미국이 아니라 이미 미국화를 완성시킨 우리 자신과 싸워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