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의 혁명

김민수·서정일 지음, 차지원·황기은 옮김 | 2023-06-26 | 416쪽 | 37,000원


20세기 초에 탄생한 아방가르드 잡지 『베시』에 대한 연구서다. 국제적인 현대 예술 평론지를 표방한 『베시』는 1922년 엘 리시츠키와 일리야 에렌부르크가 공동으로 기획, 편집하여 독일 베를린에서 발간되었다. 이 잡지는 러시아와 서방 국가 예술가들이 교류하여 현대적 삶을 위한 현대적 예술을 협력 창조하자는 진취적인 목표를 제시하였으며, 문학, 시각예술, 음악, 공연예술, 영화 등 현대예술의 여러 분야를 아우르며 당대 아방가르드의 혁신적인 주장들을 선별하였다.
나아가 그것들을 명쾌하고 정교한 편집술과 시각적 디자인을 통해 효과적으로 전달하려 하였다. 러시아어, 프랑스어, 독일어 세 언어로 쓰인 『베시』의 텍스트는 그러한 이유로 서양에서조차 대중과 전문가들에게 오래도록 접근하기 어려운 수수께끼 같은 존재였다.
2023년 그린비출판사가 출판한 『사물의 혁명』은 1994년 라스 뮬러 출판사 이후, 비서구권에서 『베시』의 원전 텍스트를 번역하고 해설한 첫 시도다. 『사물의 혁명』은 무엇보다도 원전을 충실하게 이해하려는 시도를 통해, 피상적으로 알려진 아방가르드와 러시아 구축주의의 의도 및 성과를 온전하게 파악하려 했다.


저·역자 소개 ▼

저자 김민수
서울대 미대에서 산업디자인 전공으로 학사와 석사, 미국 프랫 인스티튜트에서 산업 디자인학 석사(MID), 뉴욕대학교(NYU) 대학원에서 박사(Ph. D)를 받았다. 현재 서울대학교 디자인과 교수로 디자인 역사, 이론, 비평에 전념하면서, 대학원 과정 〈디자인역사문화 전공〉의 주임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요 저서로 『한국 구축주의의 기원』(2022), 『이상 평전』(2012), 『김민수의 문화사랑방 디자인사랑방』(2009), 『한국도시디자인 탐사』(2009), 『필로디자인』(2007) 등과 1997년 『월간 디자인』 선정 ‘올해의 디자인상’ 저술 부문 수상작 『21세기 디자인문화탐사』(2016 개정판) 등이 있다.


저자 서정일
서울대 공과대학 건축학과에서 건축학 전공 학사, 석사 및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펜실베이니아대와 뉴욕대의 방문학자 역임.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연구교수로 인문학과 건축의 상호 이해와 융합에 천착했고 태재연구재단에서 근무했다. 주요 저서로 『소통의 도시: 루이스 칸과 미국 현대 도시 건축』(심원건축학술상), 『뉴욕 런던 서울의 도시 재생 이야기』(공저, 2010 문화체육관광부 우수도서), 『그림일기: 정기용의 건축 드로잉』(공저), 『동서양의 접점: 이스탄불과 아나톨리아』(공저, 2018 세종도서) 등이 있고, 역서로 『루이스 멈퍼드 건축비평선』, 『레온 바티스타 알베르티의 ‘건축론’』(2019 대한민국학술원 우수도서)』, 『재현 분열 시대의 건축』(2019 세종도서) 등이 있다. 

자 차지원
서울대 노어노문학과 졸업, 동 대학원 석사학위(M.A), 러시아 국립학술원 러시아문학연구소에서 박사학위(Ph.D). 충북대학교 러시아알타이지역연구소 학술연구교수로 재직 중이며, 현재 서울대학교, 이화여자대학교, 중앙대학교 등에서 강의하고 있다. 러시아 상징주의 문학 및 현대여성문학, 러시아 은세기와 아방가르드 문화예술 등의 연구에 주력하고 있다. 주요 논문으로 “오리엔탈리즘인가, 오리엔탈인가: 발레 『셰헤라자데』의 오리엔탈리즘에 관하여”, 옮긴 책으로 『아방가르드 프런티어』(2017), 함께 지은 책으로 Design and Modernity in Asia: National Identity and Transnational Exchange 1945-1990(2022), 『우리에게 다가온 러시아 오페라』(2022), 『우리에게 다가온 러시아 발레』(2021) 등이 있다.


자 황기은
피츠버그대 박사. 현재 한양대학교 아태지역연구센터 HK연구교수로 재직 중이며, 연세대에서 강의하고 있다. 러시아 및 유라시아 지역 문화 연구에 주력하고 있으며, 특히 도시문화와 상호 매체성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주요 논문으로 「러시아 도시미술의 미학과 정치학」, 「마니자-РАШН WУМАН: 2021년 유로비전 스캔들로 본 러시아의 정체성」, “Walking Dostoevskii and Reading the City” 등이 있고, 함께 지은 책으로 『우리에게 다가온 러시아 오페라』(2022)와 『우리에게 다가온 러시아 발레』(2021)가 있다.
차례 ▼

1부 사물의 혁명과 그 이후: 일상의 구축, 삶과 예술_김민수
머리말—9
광고 한 편, “럭셔리는 사물이 아니다”—15
『베시』(Beщь, 사물)의 창간 취지—18
새로운 예술, 사물과 구축주의의 출현—23
『베시』의 체제와 내용—50
기념비적 예술과 국제적 구축주의—64
『베시』와 신타이포그래피—77
『베시』 이후: 신타이포그래피와 건축—101
다시 처음 질문으로—123
출전—136
참고 문헌—139

2부 사물의 세계, 그 종합의 열망_서정일
머리말_아방가르드의 귀환—145
『베시』의 정체—151
사물, 목적과 수단—161
절대주의와 구축주의—166
조형예술의 종합—181
미완의 과제—191
출전—194
참고 문헌—195

3부 『베시』 한국어 번역문_차지원, 황기은 옮김
베시 1~2호—199
베시 3호—305
미주—386

베시 관련 주요 연표: 1890~1925—409
찾아보기—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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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장식하지 말고 조직하라!
아방가르드의 핵심이 담긴 『사물의 혁명』


아방가르드의 창조력은 아직 소진되지 않았다
과거를 통해 미래를 상상할 혜안을 찾다


『사물의 혁명』은 20세기 초에 탄생한 아방가르드 잡지 『베시』에 대한 연구서로, 원전 텍스트 번역문을 함께 제공한다. 그런데 21세기인 지금 어째서 다시 아방가르드를 논하며, 유독 『베시』를 주목하는가? 현재 도서관과 미술관, 아카이브는 아방가르드의 다양한 문헌과 예술 작품을 소장하고 있고, 아방가르드 작품은 고가의 경매 아이템으로 거래되고 있다. 즉 마이너 취급을 받던 아방가르드가 이제 공인된 역사적 지식과 예술 상품으로 굳어진 것이다. 그렇다면 아방가르드가 가진 애초의 창조력은 소진되고 만 것일까? 그렇지 않다. ‘오늘’ 그리고 ‘여기’의 문제와 싸우고 미래를 상상하는 사람들에게 아방가르드는 여전히 중요한 대화상대다. 아방가르드가 품었던 여러 과제는 여전히 미완성이고, 그들의 의미 있는 비전들이 아직 실현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물의 혁명』의 저자와 번역자가 여러 아방가르드 잡지 중에서도 특히 『베시』에 주목한 것은 이 잡지가 그 과제와 전망에서 앞서 있으며 여러 혜안을 던져주기 때문이다.

국제적인 현대 예술 평론지를 표방한 『베시』는 1922년 당시 30대 초반이었던 두 젊은 예술가 엘 리시츠키와 일리야 에렌부르크가 공동으로 기획, 편집하여 독일 베를린에서 발간한 잡지다. 이 잡지는 러시아와 서방 국가 예술가들이 교류하여 현대적 삶을 위한 현대적 예술을 협력 창조하자는 진취적인 목표를 제시하였으며, 문학, 시각예술, 음악, 공연예술, 영화 등 현대 예술의 여러 분야를 아우르며 당대 아방가르드의 혁신적인 주장들을 선별하였다. 나아가 이 내용들을 명쾌하고 정교한 편집술과 시각적 디자인을 통해 효과적으로 전달하려 하였다. 즉 잡지 『베시』는 이른바 국제적 구축주의를 태동시키고, 이후 구축주의가 현대 예술로 발전하는 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지점을 차지하였다. 그 때문에 많은 학자와 예술가가 이 잡지에 주목해 왔다.

이 시대에 필요한 예술은 어떤 예술인가?
삶을 조직해 나가는 예술에 주목하라!


디자인 역사와 이론 평론가인 김민수는 『베시』 독해를 통해 디자인된 사물에 대한 오늘날의 몰역사적인 인식, 위기에 처한 일상의 삶과 현대예술의 상황을 반성하고 미래를 성찰할 것을 제시한다. 『베시』 출현 이전의 러시아에서 사물의 관점에서 예술을 인식하고 논의하는 과정, 그리고 러시아 구축주의가 전개되는 과정에서 타틀린과 말레비치 사이, 그리고 로드첸코와 리시츠키 사이에 발생한 내밀한 입장 차이들이 『베시』 이후 서구 예술의 전체 역사를 통해 어떻게 변증법적으로 통합되었는지를 『사물의 혁명』에서 상세히 밝힌 것이다. 특히 『베시』에 담긴 콘텐츠들을 하나의 종합적 완성체로 조직해 낸 리시츠키가 촉발시킨 신타이포그래피의 구축적 원리와 실제를 풍부한 사례와 함께 심층적으로 설명한다. 이로써 디자인은 예술의 하위 개념이 아니라 그 자체로 ‘일상적 삶의 예술’임을 증명하고, 인간의 과도한 욕망으로 인한 전쟁과 기후 위기, 자원고갈 등 일상의 삶을 위협하는 절체절명의 시대에 예술의 존재 이유와 역할에 대한 물음을 제기한다.

건축학자이자 건축가인 서정일은 『베시』의 과제가 건축을 포함한 조형예술에서 어떻게 구체화되었는지 살핀다. 그에 따르면 『베시』는 새 시대에 예술이 필요한가 하는 큰 물음에 대해, 예술 작품을 새로운 삶에 필요한 사물로 간주하고, 구축의 방법으로 그것을 만들어 내자는 답을 제시하였다. 예술 작품이 어떻게 해서 사물인지를 형태와 재료, 목적과 수단의 측면에서 설명하는 데 있어서 아방가르드 안에는 적지 않은 인식과 실천 방식의 차이가 있었다. 『베시』는 그 차이들을 종합하는 과제를 추진했는데, 특히 구축주의와 절대주의 간의 대립을 뛰어넘는 것은 힘든 과제였다. 저자는 예술과 예술가의 역할에 대한 물음에 대해 사물적 관점에서 답한 『베시』의 시도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시사하는 점이 많다고 주장한다.

마침내 한국어로 모습을 드러낸 『베시』
아방가르드의 핵심이 담긴『사물의 혁명』!


그러나 러시아어, 프랑스어, 독일어 세 언어로 쓰인 『베시』의 텍스트는 그러한 이유로 한국과 동양은 물론 서양에서조차 대중과 전문가들에게 오래도록 접근하기 어려운 수수께끼 같은 존재였다. 이런 『베시』를 베를린의 라스 뮬러 출판사가 1994년에 영인본을 재발간하고 독일어와 영어로 번역, 해설함으로써 비로소 텍스트의 총체적 내용이 알려졌고, 편집디자인과 긴밀히 통합된 내용의 실체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베시』가 세상에 나온 지 70여 년 뒤의 일이었다.

2023년 그린비출판사가 출판한 『사물의 혁명』은 라스 뮬러 출판사 이후 처음으로, 그것도 비서구권에서, 『베시』의 원전 텍스트를 번역하고 해설한 시도의 결과다. 『베시』와 이를 둘러싼 예술운동의 의의를 밝히는 작업은 이 잡지 발간을 둘러싼 당대의 총체적 맥락을 파악하는 것을 기초로 삼았다. 무엇보다도 원전 텍스트를 충실하게 이해하려는 시도를 통해, 피상적으로 알려진 아방가르드와 러시아 구축주의의 의도 및 성과를 더 온전하게 파악하려 했다.

책 후반부에는 『베시』 원문의 주요 텍스트 번역본이 실려 있는데, 러시아어 텍스트 중심으로 선별하였고, 러시아 아방가르드와 러시아 현대 문화 전공자인 차지원, 황기은이 난해한 러시아 원문을 정교하게 독해하고 주석을 달았다. 본문의 독일어 텍스트는 박배형가 번역했다.

『사물의 혁명』은 그동안 접근이 어려웠던 아방가르드 자료를 보다 접근하기 쉽게 하였고, 공동의 논의로 끌어들이는 데 이바지했다. 하지만 지금의 우리가 아방가르드를 이해하는 데에 겪는 진정한 문제는 정보의 부족이나 접근의 어려움에 있지 않다. 오히려 과다하게 늘어난 정보 속에서 핵심을 가려내고 의미 있는 교훈을 찾는 힘이 더 중요하게 되었다. 『사물의 혁명』은 아방가르드 자료들을 헤쳐 나아가고자 하는 진지한 예술가들과 연구자들에게 의미 있는 물음을 제시하고자 깊이 고민했다. 그리고 서양 현대 예술과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현대 예술을 큰 시야에서 함께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준다. 또한 오늘날 우리의 삶과 사회가 예술과 디자인에 요구하는 혁신적 방법 모색에도 그 내용이 부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