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자문 주자학 아닌 유학을 묻는다
이토 진사이 선집 1
이토 진사이 지음, 최경열 옮김 | 2013-01-25 | 520쪽 | 23,000원
주자학을 버리고 논어·맹자의 길을 추구한 일본 유학!! ―이토 진사이의 ‘고의학’(古義學) 대표서 『동자문』(童子問) 완역!
저·역자 소개 ▼
에도 시대 전기에 활약한 유학자, 고의학파(古義學派)의 창시자. 초명은 고레사다(維貞)이고 뒤에 고레에다(維禎)로 개명했으며, 보통 겐시치(源七), 겐키치(源吉), 겐스케(源佐) 등으로 불렸다. 진사이는 그의 호이며, 고학선생(古學先生)으로도 불렸다. 경제와 문화의 중심지 교토에서 재목상(材木商) 가문의 아들로 태어나, 당시 가장 유명했던 화가 오가타 고린(尾形光琳)의 사촌 여동생과 결혼했다. 청년 시절 주자학에 몰두하였고 이십대 후반에는 가업을 포기하고 불도(佛道)에 전념했으나, 삼십대에 이르러서는 이를 비판하며 유교 고전의 새로운 읽기를 시도하였다. 1662년 사립 유학 학교인 고의당(古義堂)을 설립하여 후학을 양성하기도 한 그는 『논어고의』(論語古義), 『맹자고의』(孟子古義), 『어맹자의』(語孟字義), 『동자문』(童子問), 『중용발휘』(中庸?揮), 『고학선생문집』(古學先生文集), 『진사이일찰』(仁齊日札), 『동지회필기』(同志會筆記) 등의 저서를 남겼으며, 사후 그의 아들 이토 도가이(伊藤東涯)가 모두 교감해서 출판하였다.
역자 최경열
성균관대학교 대학원에서 한문학을 공부했습니다. 곡부서당(송양정사松陽精舍)에서 서암(瑞巖) 김희진(金熙鎭) 선생님께 한문을 익히며 낯선 세계에 눈을 떴습니다. 선생님과의 만남은 무엇보다 인간의 감화력이 무엇인지 체험할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한림원과 민추(현 고전번역원)에서도 고전을 공부했습니다. 서양인이 동양을 공부하는 치밀함에 자극받아 영어에도 주의를 게을리하지 않았고,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에서 방문학자로 연구하기도 했습니다. 18세기 조선 지식인들에 대한 관심을 품고 있으나 그보다 우선 넓게 공부해서 파야겠다는 생각으로 중국고대사상에 집중해, 선진(先秦)시대 저작을 두루 읽고 있습니다. 유학이 정통이나 주류로 자리 잡기 이전, 많은 담론이 쟁명(爭鳴)하는 모습이 장관이라서 공부가 흥미롭습니다.
『당시 300수』를 공역했고 일본의 유학자 이토 진사이(伊藤仁齊)의 대작인 『논어고의』(論語古義), 『맹자고의』(孟子古義), 『동자문』(童子問) 등을 잇달아 번역했습니다.
차례 ▼
간행 서(序)
동자문 上
1장. 공자와 맹자의 올바른 가르침
2장. 공맹 외에 도에 이르는 지름길은 없습니까
3장. 도에 이르는 길에 대해 더 듣고 싶습니다
4장. 『논어』는 너무 평이하지 않습니까
5장. 『논어』에 대한 분명한 깨우침을 내려 주십시오
6장. 어째서 『논어』가 육경보다 훌륭하다 하십니까
7장. 『맹자』는 읽지 않아도 됩니까
8장. 알기 쉽고 행하기 쉬운 것이 지극하다는 가르침
9장. ‘사람 밖에 도가 없다’는 것은 무슨 말입니까
10장. 후세의 학문은 어째서 『논어』와 배치됩니까
11장. 성인의 도에는 아주 어려운 게 있지 않습니까
12장. 『논어』는 왜 본성의 선함을 말하지 않습니까
13장. 성·도·교의 구분을 상세히 듣고자 합니다
14장. 성·도·교의 순서가 『중용』에서와 다릅니다
15장. 도를 말하지만 교가 그 가운데 있다
16장. 교가 성보다 귀한 것입니까
17장. 성이 교보다 귀한 것입니까
18장. 성과 교에는 우열이 없는 것입니까
19장. 교의 조목을 상세히 알고 싶습니다
20장. 문을 배우는 것을 그르다 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21장. 학문의 위대함에 대해 자세히 듣고 싶습니다
22장. 학문은 본성의 안과 밖 중 어디에 있습니까
23장. 외물에 유혹당해도 되겠습니까
24장.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도는 비근하지 않습니까
25장. 비근을 소홀히 하지 말라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26장. 안회에 따르면 공자의 도는 비근하지 않습니다
27장. 도에 대한 시비가 생기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28장. 알기 쉽고 행하기 쉬운 것이 옳은 것입니까
29장. 지금 유학자들은 도에 들어가기 어렵습니까
30장. 자하가 한 말에 대해 듣고 싶습니다
31장. 성인의 말의 쉽고 어려움을 어찌 생각하십니까
32장. 『논어』의 도리에 대해 더 말씀해 주십시오
33장. 옛사람들의 올바른 처방을 여쭙니다
34장. 『논어』·『맹자』의 핵심을 듣고자 합니다
35장. 어째서 충신이 인을 행하는 기초입니까
36장. 어째서 경보다 충신을 위주로 하는 것입니까
37장. 경은 쓰지 말아야 합니까
38장. 배우기를 좋아하지 않으면 폐단이 있습니까
39장. 인의 뜻은 무엇입니까
40장. 인을 알기 어려운 까닭은 무엇입니까
41장. 궁리는 인을 구하는 데 방해가 됩니까
42장. 공자와 맹자가 말씀하신 인이란 무엇입니까
43장. 완성된 덕으로서의 인에 대해 여쭙니다
44장. 인을 학문의 종지로 삼았다는 말씀을 여쭙니다
45장. 인은 반드시 사랑에서 그치는 것입니까
46장. 공맹의 인이 사랑과 관계가 있습니까
47장. 공자는 어째서 관중이 인하다고 하셨습니까
48장. 자로, 염유, 공서화는 인하지 않습니까
49장. 관중이 왕도를 돕지 못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50장. 자문과 진문자는 어째서 인하지 않습니까
51장. 이치에 합당하고 사심이 없으면 인한 것입니까
52장. 성인의 인과 관중의 인은 같습니까
53장. 공자의 인에 대해 여쭙겠습니다
54장. 덕을 완성하지 못해도 인이라 할 수 있습니까
55장. 한유의 박애가 비판받은 까닭은 무엇입니까
56장. 인을 성이라 해서 헛되게 만들어 버렸다는 뜻
57장. 장식이 만든 「수사언인록」은 합당합니까
58장. 서를 실천하여 인을 구한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59장. 증자는 어째서 부자의 도가 충서라 했습니까
동자문 中
1장. 책마다의 강령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2장. 어찌 중을 두고도 인의만을 주장하십니까
3장. 인의가 중보다 소중한 것입니까
4장. 중용이 공문의 심법이라는 말을 어찌 보십니까
5장. 성인은 중으로 도통을 전했다고 합니다
6장. 인의가 공맹의 종지가 되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7장. 맹자는 어째서 지를 미워하셨습니까
8장. 맹자가 왕도를 말씀하신 까닭은 무엇입니까
9장. 선유의 말은 왕도와 함께 말할 수 없습니까
10장. 왕도는 욕구를 경계하지 않습니까
11장. 왕도를 행하는 학문이 우선할 일입니까
12장. 왕도를 공부에 받아들여 쓰는 게 절실합니까
13장. 학문이 왕도를 근본으로 하는 뜻은 무엇입니까
14장. 경세제민의 책들도 왕도를 잘 밝히고 있습니까
15장. 왕도를 상세하고 분명히 논한 곳은 어딥니까
16장. 호화·호색에 대한 맹자의 본뜻은 무엇입니까
17장. 임금에게 정심성의를 말하면 안 됩니까
18장. 왕의 덕이란 어떤 것입니까
19장. 후세에는 왕도를 행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20장. 고례회복보다 여민동락이 우선입니까
21장. 삼대 이후는 모두 타락한 것입니까
22장. 옛날 왕들도 검약을 숭상했습니까
23장. 문왕이 영대를 지은 일에 대해 여쭙니다
24장. 혹독한 세금을 경계한 까닭은 무엇입니까
25장. 검약으로 다스린들 사람들이 따르겠습니까
26장. 당 태종의 예악에 대해 여쭙니다
27장. 예가 절약과 검소에서 생깁니까
28장. 왕자와 패자의 구분을 여쭙겠습니다
29장. 백성을 자식처럼 기른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30장. 어떻게 하늘께 영원한 명을 빌 수 있습니까
31장. 치도의 요점을 여쭙겠습니다
32장. 상벌을 공과에 합당하게 할 수 있습니까
33장. 검약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어찌 인색합니까
34장. 천하에서 어떤 선이 가장 귀합니까
35장. 맹자가 제선왕에게 행한 예가 오만해 보입니다
36장. 효에 대해 여쭙겠습니다
37장. 효에도 크고 작음이 있습니까
38장. 달효란 무엇을 말합니까
39장. 충에 대해 여쭙겠습니다
40장. 충과 효 가운데 무엇이 중합니까
41장. 사제지간의 도리를 여쭙니다
42장. 스승을 구하는 방도를 여쭙니다
43장. 스승의 도리를 여쭙니다
44장. 붕우의 뜻을 여쭙니다
45장. 붕우유신의 ‘신’은 무엇을 말합니까
46장. 선생님께서도 소원이 있으십니까
47장. 자기 의론과 다르면 교류하지 않습니다
48장. 세상의 학자들은 서로를 비방하고 있습니다
49장. 자기 스승의 문하만을 사사롭게 감쌉니다
50장. 자신을 지키는 법도를 여쭙니다
51장. 검소함을 지키는 방도를 여쭙니다
52장. 집안을 다스리는 것에 대해 여쭙니다
53장. 세상일에 대응하는 방법을 여쭙니다
54장. 비방이나 칭찬에 마음이 흔들립니다
55장. 화와 복이 생기는 연유를 여쭙니다
56장. 학문의 요체를 여쭙니다
57장. 돌이켜 찾는 것과 충서에 차이가 있습니까
58장. 유학자의 심법은 무엇입니까
59장. 하학상달의 뜻을 여쭙니다
60장. 상달 공부를 여쭙니다
61장. 상달했을 때는 어떻게 됩니까
62장. 갑작스런 깨달음은 있습니까
63장. 소이연의 리에는 미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64장. 이학·심학·성학 등의 명칭은 옳은 것입니까
65장. ‘리’를 가볍게 볼 수는 없습니다
66장. 리가 전부 다 좋은 것은 아니겠지요
67장. 리를 학문의 근본으로 삼으면 안됩니까
68장. 리는 왜 만물의 근본이 될 수 없습니까
69장. 천지는 하나의 거대한 생물이라는 이치
70장. ‘통함은 있으나 막힘은 없다’는 무슨 뜻입니까
71장. 심학이란 명칭은 어떠합니까
72장. 본연의 덕이란 무엇입니까
73장. 가르침에 성을 우선으로 해야 합니까
74장. 천지만물과 일체된다 함은 무슨 뜻입니까
75장. 장재의 「서명」에 대해 여쭙니다
76장. 가장 사랑하는 선유의 말씀은 무엇입니까
77장. 선유의 어떤 말씀이 가장 지극합니까
동자문 下
1장. 맹자의 성선설에 대해 말씀해 주십시오
2장. 송명 유학자들에 대해 듣고 싶습니다
3장. 오로지 『논어』·『맹자』만 공부하면 됩니까
4장. 오경의 이치를 여쭙니다
5장. 오경 각각의 대의를 여쭙겠습니다
6장. 『예기』에 대해 여쭙겠습니다
7장. 혼천의 제도에 대해 여쭙겠습니다
8장. 도에 부합되는 중은 무엇입니까
9장. 오경과 『논어』·『맹자』의 차이가 궁금합니다
10장. 명을 안다는 말에 대해 여쭙겠습니다
11장. 명을 안다는 말의 깊은 뜻을 듣고 싶습니다
12장. 공자께서 논란을 꺼리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13장. ‘곧다’는 말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14장. 굴원에 대해 여쭙겠습니다
15장. 사물에 얽매이지 않고 세상과 함께 움직인다
16장. 이단의 말에도 취할 만한 것이 있습니까
17장. 노장을 좋아하는 것이 해가 됩니까
18장. 삼대 이후에는 성인이 불교에서 나왔습니까
19장. 불법은 번창하는데 유학은 그렇지 못합니다
20장. 고명하고 박학한 선비가 선(禪)을 좋아한 까닭
21장. 주자와 육상산의 같고 다름을 여쭙겠습니다
22장. 주자와 육상산에 대한 양명의 견해를 여쭙니다
23장. 옛사람들은 어디에서 도를 구했습니까
24장. 방심 찾기와 무슨 차이가 있습니까
25장. 활법으로 활물을 다스린다는 말은 무엇입니까
26장. 유와 무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
27장. 노씨의 허무와 석씨의 적멸에 차이가 있습니까
28장. 유가와 불가를 구분하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29장. 유가의 도통은 선림의 정통과 같지 않습니다
30장. 이단의 가르침을 구분할 수 있습니까
31장. 후세에 인재가 드문 까닭은 무엇입니까
32장. 박문·박학의 가르침과 다른 듯합니다
33장. 어째서 박학과 다학이 상반됩니까
34장. 독서에는 무엇이 긴요합니까
35장. 천문·지리 등 여러 학문을 이해해야 합니까
36장. 역사서를 읽을 필요가 있습니까
37장. 역사서 읽는 법을 여쭙겠습니다
38장. 훌륭한 역사서란 어떤 것입니까
39장. 시 짓기를 좋아해도 해가 되지 않겠습니까
40장. 문장을 짓는 것은 해가 되지 않겠습니까
41장. 정도를 얻은 시문집에는 어떤 것이 있습니까
42장. 어째서 성학에 뜻을 둔 사람이 적습니까
43장. 천하의 선 가운데 무엇이 으뜸입니까
44장. 노불의 언어로 풀이된 성인의 글은 어떻습니까
45장. 선생님을 믿지 않고 비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46장. 선과 노장의 언어를 분별해 주십시오
47장. 명경지수란 말을 미워하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48장. 선생님 학문의 가법에 대해 여쭙겠습니다
49장. 공자에 대한 맹자의 평가를 어찌 보십니까
50장. 공자가 요순보다 현명한 까닭은 무엇입니까
51장. 공자께서는 어찌 조술하기만 하셨습니까
52장. 공자는 왜 상고의 성신들을 택하지 않았습니까
53장. 부처와 노자의 명성도 오랑캐에까지 미칩니다
간기(刊記)
원문
해제 _ 유학의 자기화 혹은 독립으로서의 『동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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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 진사이의 ‘고의학’(古義學) 대표서 『동자문』(童子問) 완역!
조선에 다산 정약용(丁若鏞 1762~1836)이 있었다면 일본에는 이토 진사이(伊藤仁齋 1627~1705)가 있었다. 이 둘은 주자학이 강력한 이념으로 작용하던 시대에 이를 비판하거나 창조적으로 혁신하고자 노력한 유학자라는 공통점이 있다. 그리고 일본이 임진왜란 이후 조선에서 성리학을 받아들여 계승했지만 이토 진사이에 이르러 주자학을 버리고 『논어』의 참뜻을 이해하고자 시도했고, 거꾸로 조선의 다산은 이를 통해 유학에 관한 새로운 영감을 얻어냈다는 점에서 근세 유학의 중요한 고리를 형성하고 있다. 이런 이토 진사이의 저서를 국내에 처음으로 완역하여 선을 보인다(이 책 『동자문』 외에 그의 주요 저서인 『논어고의』, 『맹자고의』, 『어맹자의』 등을 ‘이토 진사이 선집’으로 구성해 2015년까지 완역하여 펴낼 예정이다).
『동자문』(童子問)은 이토 진사이 사후 2년 뒤인 1707년에 그의 아들 도가이가 편찬한 ‘유학의 길(道)’에 관한 문답서이다. 『논어』와 『맹자』, 공자와 맹자의 가르침, 인(仁), 효(孝), 충(忠), 왕도(王道) 등의 유학 개념, 이학(理學)과 노불(老佛) 비판 등등에 관해 동자(어린아이)가 묻고 스승이 대답하며 그 뜻을 밝혀주는 책이다. 여기서 문답의 핵심은 『논어』에 대한 올바른 이해이다. 주자학은 도쿠가와 막부에 의해 관학으로 지정될 정도로 위세를 확장하고 있긴 했지만, 이토 진사이가 보기에 주자학은 초월적인 리(理)를 강조하여 인간의 자연스런 관계 형성과 내면의 욕망을 억압한다고 보았다. 그리하여 현실과 괴리된 주자학을 통해서가 아니라 공맹의 말을 직접 보고 가르침을 얻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토 진사이는 공자와 『논어』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저 알기 어렵고 행하기 어려우며 굉장하고 광대해 살펴 헤아릴 수 없는 말들은 모두 없애 버리고, 알기 쉽고 행하기 쉬우며 영원히 바뀌지 않는 진리를 세워 백성들의 삶의 표준으로 삼으신 것이다. 이를 제자들에게 전해 주시고 후세에 알려 주셨지. 그러므로 『논어』 한 권은 실상 가장 지극한, 우주 제일의 책인 것이다.”(『동자문』 상권 5장) 주자의 주석을 배제하고 직접 『논어』, 『맹자』의 본문을 해독해서 성인의 원뜻을 구하자는 진사이의 이런 유학 사상을 ‘고의학’(古義學)이라 부른다. 『동자문』은 고의학의 종지를 알기 쉽게 전달하는 이토 진사이의 대표 저서이자 일본 유학의 고전이다.
일본 사상사의 변곡점, 이토 진사이
이토 진사이는 일본 사상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주자학의 세례를 받았으면서도 그것에서 벗어나 유학을 다른 관점에서 사고할 수 있는 기틀을 제공했기 때문이다. 에도 시대 일본은 조선과 마찬가지로 처음에는 주자학을 통치의 이념으로 삼았고, 후지와라 세이카(藤原惺窩 1561~1619), 야마자키 안사이(山岐闇齎 1619~1682) 등의 걸출한 주자학자를 배출해 내기도 했다. 교토에서 꽤 상층에 속하는 재목상의 아들로 태어난 이토 진사이 역시 11세 때 『대학』을 읽고 감명을 받아 주자학에 뜻을 두었다. 그러나 그는 현실과 거리가 먼 고원한 논의에 의문을 품고 불교와 도가의 학문에도 기웃거리다가 종국에는 유학의 가르침을 찾아 나선다. 즉, 『논어』와 『맹자』의 본문을 자세히 읽고 이곳에 있는 내용만이 성인의 원뜻을 전달한다고 주장하기에 이른다. 그 뒤 36세 때 교토에 고의당(古義堂)이라는 강습소를 열고 성인의 학문 연구와 유학의 보급에 힘쓰게 된다.
이토 진사이의 이러한 탈-주자학적인 행보와 사유는 일본 사상계에 큰 영향을 끼쳤다. 주자학적 세계관에서 벗어나 있는 그대로의 현실과 일상적인 관계에 성인의 도가 있다는 발상은, 나아가 정치적인 문맥에서 발전되어 중국 중심의 세계관에서 벗어날 수 있는 여지를 후세에 남겨 준 것이다. 그 결과, 예컨대 오규 소라이(荻生?徠 1666~1728)의 고학(古學)은 정치적 측면(공적 세계)을 중시해 예악형정과 제도문물을 통해 국가를 다스리는 도를 추구했고, 더 나아가 모토오리 노리나가(本居宣長 1730~1801)는 일본 중심의 국학(國學)을 진흥하기에 이른다. 한마디로, 일본 사상사의 측면에서 이토 진사이는 ‘유학의 일본화’라는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고 평가되고 있다.
주자학을 넘어선 복고 유학, 고의학
『동자문』은 송대의 주석을 버리고 『논어』와 『맹자』 원문을 숙독하고 계속 완미하면 스스로 터득하는 바가 있을 것이라고 한 말을 논증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성인의 뜻은 그런 것이 아니었는데, 송대 유학에 이르러 왜곡되었다는 것을 지적해 본래의 가르침이란 이렇다라는 것을 보여 준다. 예컨대, 주자학에서 말하는 리(理)는 근원적이고 초월적인 리로서 기(氣) 혹은 사물 이전에 리가 먼저 있고, 리가 없으면 사물도 없다고 주장하지만, 이토 진사이가 보기에 리는 그저 ‘기 안에 있는 조리’에 불과할 뿐 초월성이나 근원성을 담지하지는 않는다며, 주자학의 형이상학적 성격을 비판한다.
더구나 이런 리 중심의 세계관이 현실의 문맥으로 확장되었을 때에는 인간의 자연스런 감정과 관계를 억압하고 지나치게 엄숙한 도덕만이 강조되어 일용에 필수적인 도움과는 거리가 멀어진다고 진단한다. 실제로 주자학이 실용적 측면 내지는 윤리적 가치를 결한 것은 아니지만, 그가 보기에 주자학은 ‘리’를 지나치게 강조함으로써 그 폐단이 작지 않다. 이토 진사이는 “모든 일을 오로지 리에 의지해 결단하면 잔인하고 각박한 마음이 많아지고, 관대하고 인후한 마음은 적어지지. 위의 덕(德)이 박절하면 아래에는 반드시 상처를 입어 사람들도 마음으로 복종하지 않는다”(중권 65장)라며 ‘리’에 대한 편협한 강조를 경계한다.
이에 비해 이 책이 주장하는 바의 근거는 성인, 즉 공자와 맹자의 말씀이다. 공자가 한 말과 그가 주목한 일이 고의학이 추구하는 학문적·윤리적 가치를 결정한다. 예컨대, 한때 주자학에 심취했던 이토 진사이의 호가 교사이(敬齋)였던 데서 알 수 있듯이 주자학에서는 경(敬) 공부를 강조하지만, 『동자문』에서는 이를 비판한다. 마음을 고요하게 만들어서 마음속 깊은 곳에 내재된 본성을 밝게 드러내도록 하는 이런 경 공부는 공자의 관심사와는 멀다는 것이다. 공부에는 여러 가지 방도가 있는데, 마치 의사가 병을 치료하는 여러 방법과도 같다, 그런데 경만을 위주로 삼는 것은 단방에 온갖 병을 다스리려는 것과 같아 사람을 그릇된 길로 인도할 수 있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동자문』은 공자와 맹자의 올바른 가르침이 어떤 것인지 밝히는 데 중점을 두고 있는 것이다.
동자에게 전해주는 일상적 윤리로서의 유학, 『동자문』
- 일상일용의 강조
『동자문』에서 누누이 강조하고 있는 것은 고원한 논의가 아니라 비천한 일상생활에 쓸모가 있는 실질적인 덕성이다. 일례로 인의예지를 강조하는 방식을 보자면, 그것이 당연한 이치이기 때문이 아니라 일상의 관계를 엮어 주는 바람직한 토대이기 때문이다. 도(道)는 고원한 것이 아니다. “도는 대지와 같은 것이다. 천하에 땅보다 낮은 것이 없고, 사람이 밟는 것은 땅 아닌 게 없어 땅을 떠나서는 살 수가 없다.”(상권 24장) 이토 진사이에게 도란 부모를 사랑하고 어른을 대우하며 처자 사이의 정이 좋고 뜻이 맞으며 형제간에 화합하는 것에 지나지 않다. 유학의 참된 가르침을 설명하기 위해 굳이 ‘동자’를 등장시킨 것도 성인의 도가 대단히 형이상학적이고 알기 어려운 논의가 아니라 일상에 있는 친근하고 가까운 것이라는 점을 말하기 위해서였던 것이 아닐까 싶다.
- 사랑으로서의 인(仁)
현대 유학에서 인(仁)은 ‘인함’, ‘어질다’, ‘사람다움’ 등 다양한 의미로 이해되고 있다. 특이하게도 이토 진사이는 인을 사랑(愛)으로 해석한다. “인은 사랑에서 그친다. 사랑은 실질적인 덕이다. 사랑이 아니라면 그 덕을 볼 수 없다.”(상권 45장) 예컨대, 오륜오상이 사랑이 뒷받침되지 않은 단순한 외적 규범이라면 사람은 위선에 빠지기 쉬우며, 자칫 남3
에게 잔인하고 각박하며 해할 수도 있다고 한다. 사랑이란 곧 참된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오륜오상의 도덕도 사랑에서 나오지 않으면 거짓일 뿐이다. 성인 공자의 문하에서 인을 덕의 으뜸으로 삼은 까닭도 바로 여기에 있다고 이토 진사이는 주장한다.
그에게 인은 인간의 참된 덕성에 다름 아니며, 성인의 도에 다름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사랑은 박애와도 통한다. 여기에 가지고 있으면서 저기에서 행하지 않는 것은 인이 아니다. 한 사람에게 베풀면서 열 사람에게 미치지 않으면 인이 아니다. 마음은 사랑과 떨어지지 않고 사랑은 마음에서 온전히 하나가 되는 것이 바로 인이다. 그러므로 사람을 사랑하는 것보다 큰 덕이 없고 사람을 해치는 것보다 선하지 않은 것이 없다. 사랑이 있어야만 ‘완성된 덕으로서의 인’을 비로소 말할 수 있다.
이와 같이 『동자문』에서 말하는 성인의 도는 사랑으로 사람들과 관계 맺고 인의로써 세상과 함께 움직이는 것이다. 이러한 진사이의 사상 내용은 고의학의 보편적 성격을 잘 드러내고 있다. 이곳에 무가 권력에 대한 긍정이나 국가주의적 색채가 없는 것은 두말할 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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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유학 전통이라 할 만한 것이 있는가? 라는 물음에 답할 만한 것이 많지는 않으나, 『동자문』을 비롯한 이토 진사이의 저서들은 다른 동아시아인들이 읽어도 많은 가르침을 얻을 수 있는 보편적인 성격을 담고 있다. 조선시대 다산 정약용이 그의 글을 읽고선 일본이 군사력에만 의존해 이웃나라를 약탈하는 미개한 나라인 줄로만 알았는데 유학의 올바른 가르침을 받아들여 예의를 알게 된 개명된 나라로 여겼다 할 정도였다고 한다. 그러므로 이토 진사이의 『동자문』은 동아시아 지성사·유학사에서 함께 거론되어야 할 중요한 정신 유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