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정본 / 중용발휘
이토 진사이 선집 5
이토 진사이 지음, 최경열 옮김 | 2017-09-25 | 216쪽 | 16,000원
『어맹자의』, 『대학정본·중용발휘』 출간으로 이토 진사이 선집 완간!! 주자학을 넘어 새로운 유학의 지평을 연 이토 진사이의 사상을 만난다!
저·역자 소개 ▼
저자 이토 진사이 伊藤仁齋
에도 시대 전기에 활약한 유학자, 고의학파(古義學派)의 창시자. 초명은 고레사다(維貞)이고 뒤에 고레에다(維禎)로 개명했으며, 보통 겐시치(源七), 겐키치(源吉), 겐스케(源佐) 등으로 불렸다. 진사이는 그의 호이며, 고학선생(古學先生)으로도 불렸다. 경제와 문화의 중심지 교토에서 재목상(材木商) 가문의 아들로 태어나, 당시 가장 유명했던 화가 오가타 고린(尾形光琳)의 사촌 여동생과 결혼했다. 청년 시절 주자학에 몰두하였고 이십대 후반에는 가업을 포기하고 불도(佛道)에 전념했으나, 삼십대에 이르러서는 이를 비판하며 유교 고전의 새로운 읽기를 시도하였다. 1662년 사립 유학 학교인 고의당(古義堂)을 설립하여 후학을 양성하기도 한 그는 『논어고의』(論語古義), 『맹자고의』(孟子古義), 『어맹자의』(語孟字義), 『동자문』(童子問), 『중용발휘』(中庸?揮), 『고학선생문집』(古學先生文集), 『진사이일찰』(仁齊日札), 『동지회필기』(同志會筆記) 등의 저서를 남겼으며, 사후 그의 아들 이토 도가이(伊藤東涯)가 모두 교감해서 출판하였다.
역자 최경열
성균관대학교 대학원에서 한문학을 공부했습니다. 곡부서당(송양정사松陽精舍)에서 서암(瑞巖) 김희진(金熙鎭) 선생님께 한문을 익히며 낯선 세계에 눈을 떴습니다. 선생님과의 만남은 무엇보다 인간의 감화력이 무엇인지 체험할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한림원과 민추(현 고전번역원)에서도 고전을 공부했습니다. 서양인이 동양을 공부하는 치밀함에 자극받아 영어에도 주의를 게을리하지 않았고,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에서 방문학자로 연구하기도 했습니다. 18세기 조선 지식인들에 대한 관심을 품고 있으나 그보다 우선 넓게 공부해서 파야겠다는 생각으로 중국고대사상에 집중해, 선진(先秦)시대 저작을 두루 읽고 있습니다. 유학이 정통이나 주류로 자리 잡기 이전, 많은 담론이 쟁명(爭鳴)하는 모습이 장관이라서 공부가 흥미롭습니다.
『당시 300수』를 공역했고 일본의 유학자 이토 진사이(伊藤仁齊)의 대작인 『논어고의』(論語古義), 『맹자고의』(孟子古義), 『동자문』(童子問) 등을 잇달아 번역했습니다.
에도 시대 전기에 활약한 유학자, 고의학파(古義學派)의 창시자. 초명은 고레사다(維貞)이고 뒤에 고레에다(維禎)로 개명했으며, 보통 겐시치(源七), 겐키치(源吉), 겐스케(源佐) 등으로 불렸다. 진사이는 그의 호이며, 고학선생(古學先生)으로도 불렸다. 경제와 문화의 중심지 교토에서 재목상(材木商) 가문의 아들로 태어나, 당시 가장 유명했던 화가 오가타 고린(尾形光琳)의 사촌 여동생과 결혼했다. 청년 시절 주자학에 몰두하였고 이십대 후반에는 가업을 포기하고 불도(佛道)에 전념했으나, 삼십대에 이르러서는 이를 비판하며 유교 고전의 새로운 읽기를 시도하였다. 1662년 사립 유학 학교인 고의당(古義堂)을 설립하여 후학을 양성하기도 한 그는 『논어고의』(論語古義), 『맹자고의』(孟子古義), 『어맹자의』(語孟字義), 『동자문』(童子問), 『중용발휘』(中庸?揮), 『고학선생문집』(古學先生文集), 『진사이일찰』(仁齊日札), 『동지회필기』(同志會筆記) 등의 저서를 남겼으며, 사후 그의 아들 이토 도가이(伊藤東涯)가 모두 교감해서 출판하였다.
역자 최경열
성균관대학교 대학원에서 한문학을 공부했습니다. 곡부서당(송양정사松陽精舍)에서 서암(瑞巖) 김희진(金熙鎭) 선생님께 한문을 익히며 낯선 세계에 눈을 떴습니다. 선생님과의 만남은 무엇보다 인간의 감화력이 무엇인지 체험할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한림원과 민추(현 고전번역원)에서도 고전을 공부했습니다. 서양인이 동양을 공부하는 치밀함에 자극받아 영어에도 주의를 게을리하지 않았고,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에서 방문학자로 연구하기도 했습니다. 18세기 조선 지식인들에 대한 관심을 품고 있으나 그보다 우선 넓게 공부해서 파야겠다는 생각으로 중국고대사상에 집중해, 선진(先秦)시대 저작을 두루 읽고 있습니다. 유학이 정통이나 주류로 자리 잡기 이전, 많은 담론이 쟁명(爭鳴)하는 모습이 장관이라서 공부가 흥미롭습니다.
『당시 300수』를 공역했고 일본의 유학자 이토 진사이(伊藤仁齊)의 대작인 『논어고의』(論語古義), 『맹자고의』(孟子古義), 『동자문』(童子問) 등을 잇달아 번역했습니다.
차례 ▼
대학정본
『대학정본』 서문
대학정본
부록_『대학』은 공씨가 남긴 책이 아님을 변증함
중용발휘
『중용발휘』 서문
책의 유래를 서술함
강령
상편
하편
원문
대학정본
중용발휘
옮긴이 해제_사서 체계의 붕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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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맹자의』, 『대학정본·중용발휘』 출간으로
이토 진사이 선집 완간!!
주자학을 넘어 새로운 유학의 지평을 연
이토 진사이의 사상을 만난다!
일본의 주요 사상가 가운데 한 사람인 이토 진사이의 『어맹자의』, 『대학정본·중용발휘』가 발간됨으로써 이토 진사이 선집이 총 5권으로 완간되었다. 2013년 『동자문』을 시작으로 2016년에는 『논어고의』와 『맹자고의』가, 그리고 올해 2017년 마지막 두 권이 간행되어 만 4년 만에 진사이의 주요 저작을 모두 우리말로 볼 수 있게 되었다.
주자학에 대한 전면적인 비판, 『대학정본』
『대학정본·중용발휘』는 『대학』과 『중용』에 대한 주석을 합본한 책이다. 널리 알려진 대로 『대학』과 『중용』은 『예기』에 포함된 독립된 성격의 논문인데 송나라에 와서 특히 주희의 손에 의해 경전으로까지 승격된 드라마틱한 곡절을 겪은 책이다.
『대학』은 얇다. 책이라 부르기가 주저될 정도로 편폭이 짧다. 헌데 글자를 셀 수 있는 양에 비해 문장이 삼엄하고 밀도가 높으며 조직적인 체계를 담고 있다. 만만치 않은 글이다. 유학자들이 이 글을 주목한 것은 체계적인 글 안에 유학의 학문 전체를 유기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청사진이 담겨 있음을 간파했기 때문이다. 다만 문제라면 글이 함축적이라 어떻게 읽느냐에 따라 설명 방식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 주희는 최초로 정리된 원고를 재배열하고 편집해 자신만의 의견을 본문 안에 덧붙이기까지 했다. 당연히 주희 자신이 가한 문장을 두고 후대에 두고두고 비판이 쏟아졌다. 진사이도 예외는 아니어서 주희의 소위 「보망장」(補亡章)에 대해 비판한다. 진사이는 한 발 더 나가 『대학』이란 글 자체를 의심하고 『대학』이 공자와 관련된 글이 아니라고까지 주장한다. 여기서 두 가지 점이 중요하다. 진사이가 옳다 그르다하는 시비 문제가 아니다. 첫째 주자학을 전면 비판함으로써 자신의 학문을 완성했다는 사실. 올바른 의미로써의 비판이란 무엇인가를 정확하게 보여준다. 뻔한 비판, 하나마나한 말을 되풀이 하는 게 아니라 거대한 학문체계와 고투함으로써 진사이는 진사이가 될 수 있었다. 두 번째, 진사이의 『대학』 비판은 주희의 사서체계를 붕괴시켰다. 주희의 사서체계는 단순한 호칭이 아니라 주자학 체계의 근간을 이루는 학문의 관건이었다. 무엇보다 ‘도통론’(道統論)이라는 학문의 전통과 권위, 정통성의 기반이었다. 조선조에 사문난적이란 이름으로 선비를 죽이기까지 했던 사태를 떠올리면 도통론의 권위가 얼마나 엄중한 것인지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주희가 자신의 견해를 써넣은 일에 대해 비판할 수 있는 일이긴 하나 이를 주희의 독단으로만 치부하는 일은 단견이 아닐 수 없다. 송나라 때의 의경(疑經:경전을 의심하다) 전통이라 할 수 있는 텍스트 비판(text criticism)과 맞물려 있는 일이기도 하며 여기에는 송대의 방대한 출판문화 활성화라는 사회현상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대학정본』은 이런 저간의 사정을 담고 있는 획기적인 저술이란 점에 의의가 있으며, 새로운 『대학』 읽기의 한 모범으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유가적 합리주의를 통해 해석한 『중용』, 『중용발휘』
『중용발휘』는 『중용』에 대한 획기적인 재해석이다. 『중용』은 유가 경전 가운데 가장 철학적이라 할 수 있는 책이며, 고전을 읽는 사람들에게 가장 매혹적인 느낌을 주는 책이다. 정확한 의미를 몰라도 문장이 기품 있고 지향점이 고원하다는 점에서, 소위 ‘있어 보이는’ 책이다. 그럼에도 『중용』에는 다른 두 권의 책으로 나눌 수 있을 만큼 내부에 단절이 있기도 하다. 뒷부분에서 중용이란 테마가 성(誠)으로 바뀌기 때문이다. 또 하나, 사서 가운데 유일하게 귀신 문제를 다루고 있다는 점도 문제다. 진사이를 당혹스럽게 한 게 이 귀신 문제였다. 흔히 말하는 유가적 합리주의의 측면에 설 때 수용하기 까다로운 현상이 바로 귀신이란 존재와 현상이었다. 주희는 이 문제를 기(氣) 현상(즉 기氣철학)으로 파악해 추상화하여 문제를 해소했다. 주희에게도 당혹스런 문제였다는 말이다. 진사이는 『논어』에 보이는 공자의 말(“선생님은 괴이한 것[怪], 폭력[力], 난리[亂], 귀신[神]을 말씀하지 않으셨다”)을 엄격하게 해석, 적용해 『중용』에 보이는 귀신에 대한 언급을 공자와 관련이 없는 말로 보고 텍스트에서 괄호치고 볼 것을 권한다. 이 때문에 『중용』이란 책이 전례 없는 방식으로 분리돼 상하로 나뉘게 된 것이다. 『중용발휘』라고 제명한 데에는 이렇게 ‘중용의 뜻을 제대로 드러내 보였다’[發揮]는 의미가 담긴 것이다. 중용 주석에 대한 흥미로운 한 예라 할 수 있다.
* * *
진사이의 주요 저작이 모두 번역되면서 진사이를 이해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진사이 학문은 일본을 이해하고 공부를 하는 데 요긴하다. 사카이 나오키가 이토 진사이 연구로 세계적인 석학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진사이의 아들이며 학자인 도가이를 통해 진사이의 학문은 모토오리 노리나가라는 일본 국학의 대가와 연결되고, 진사이의 제자 다자이 슌다이가 교토에서 동경으로 건너가 다시 오규 소라이의 제자가 됨으로서 일본 유학의 큰 흐름이 형성된다는 점도 아울러 기억해야 할 것이다.
이토 진사이 선집 완간!!
주자학을 넘어 새로운 유학의 지평을 연
이토 진사이의 사상을 만난다!
일본의 주요 사상가 가운데 한 사람인 이토 진사이의 『어맹자의』, 『대학정본·중용발휘』가 발간됨으로써 이토 진사이 선집이 총 5권으로 완간되었다. 2013년 『동자문』을 시작으로 2016년에는 『논어고의』와 『맹자고의』가, 그리고 올해 2017년 마지막 두 권이 간행되어 만 4년 만에 진사이의 주요 저작을 모두 우리말로 볼 수 있게 되었다.
주자학에 대한 전면적인 비판, 『대학정본』
『대학정본·중용발휘』는 『대학』과 『중용』에 대한 주석을 합본한 책이다. 널리 알려진 대로 『대학』과 『중용』은 『예기』에 포함된 독립된 성격의 논문인데 송나라에 와서 특히 주희의 손에 의해 경전으로까지 승격된 드라마틱한 곡절을 겪은 책이다.
『대학』은 얇다. 책이라 부르기가 주저될 정도로 편폭이 짧다. 헌데 글자를 셀 수 있는 양에 비해 문장이 삼엄하고 밀도가 높으며 조직적인 체계를 담고 있다. 만만치 않은 글이다. 유학자들이 이 글을 주목한 것은 체계적인 글 안에 유학의 학문 전체를 유기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청사진이 담겨 있음을 간파했기 때문이다. 다만 문제라면 글이 함축적이라 어떻게 읽느냐에 따라 설명 방식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 주희는 최초로 정리된 원고를 재배열하고 편집해 자신만의 의견을 본문 안에 덧붙이기까지 했다. 당연히 주희 자신이 가한 문장을 두고 후대에 두고두고 비판이 쏟아졌다. 진사이도 예외는 아니어서 주희의 소위 「보망장」(補亡章)에 대해 비판한다. 진사이는 한 발 더 나가 『대학』이란 글 자체를 의심하고 『대학』이 공자와 관련된 글이 아니라고까지 주장한다. 여기서 두 가지 점이 중요하다. 진사이가 옳다 그르다하는 시비 문제가 아니다. 첫째 주자학을 전면 비판함으로써 자신의 학문을 완성했다는 사실. 올바른 의미로써의 비판이란 무엇인가를 정확하게 보여준다. 뻔한 비판, 하나마나한 말을 되풀이 하는 게 아니라 거대한 학문체계와 고투함으로써 진사이는 진사이가 될 수 있었다. 두 번째, 진사이의 『대학』 비판은 주희의 사서체계를 붕괴시켰다. 주희의 사서체계는 단순한 호칭이 아니라 주자학 체계의 근간을 이루는 학문의 관건이었다. 무엇보다 ‘도통론’(道統論)이라는 학문의 전통과 권위, 정통성의 기반이었다. 조선조에 사문난적이란 이름으로 선비를 죽이기까지 했던 사태를 떠올리면 도통론의 권위가 얼마나 엄중한 것인지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주희가 자신의 견해를 써넣은 일에 대해 비판할 수 있는 일이긴 하나 이를 주희의 독단으로만 치부하는 일은 단견이 아닐 수 없다. 송나라 때의 의경(疑經:경전을 의심하다) 전통이라 할 수 있는 텍스트 비판(text criticism)과 맞물려 있는 일이기도 하며 여기에는 송대의 방대한 출판문화 활성화라는 사회현상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대학정본』은 이런 저간의 사정을 담고 있는 획기적인 저술이란 점에 의의가 있으며, 새로운 『대학』 읽기의 한 모범으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유가적 합리주의를 통해 해석한 『중용』, 『중용발휘』
『중용발휘』는 『중용』에 대한 획기적인 재해석이다. 『중용』은 유가 경전 가운데 가장 철학적이라 할 수 있는 책이며, 고전을 읽는 사람들에게 가장 매혹적인 느낌을 주는 책이다. 정확한 의미를 몰라도 문장이 기품 있고 지향점이 고원하다는 점에서, 소위 ‘있어 보이는’ 책이다. 그럼에도 『중용』에는 다른 두 권의 책으로 나눌 수 있을 만큼 내부에 단절이 있기도 하다. 뒷부분에서 중용이란 테마가 성(誠)으로 바뀌기 때문이다. 또 하나, 사서 가운데 유일하게 귀신 문제를 다루고 있다는 점도 문제다. 진사이를 당혹스럽게 한 게 이 귀신 문제였다. 흔히 말하는 유가적 합리주의의 측면에 설 때 수용하기 까다로운 현상이 바로 귀신이란 존재와 현상이었다. 주희는 이 문제를 기(氣) 현상(즉 기氣철학)으로 파악해 추상화하여 문제를 해소했다. 주희에게도 당혹스런 문제였다는 말이다. 진사이는 『논어』에 보이는 공자의 말(“선생님은 괴이한 것[怪], 폭력[力], 난리[亂], 귀신[神]을 말씀하지 않으셨다”)을 엄격하게 해석, 적용해 『중용』에 보이는 귀신에 대한 언급을 공자와 관련이 없는 말로 보고 텍스트에서 괄호치고 볼 것을 권한다. 이 때문에 『중용』이란 책이 전례 없는 방식으로 분리돼 상하로 나뉘게 된 것이다. 『중용발휘』라고 제명한 데에는 이렇게 ‘중용의 뜻을 제대로 드러내 보였다’[發揮]는 의미가 담긴 것이다. 중용 주석에 대한 흥미로운 한 예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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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사이의 주요 저작이 모두 번역되면서 진사이를 이해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진사이 학문은 일본을 이해하고 공부를 하는 데 요긴하다. 사카이 나오키가 이토 진사이 연구로 세계적인 석학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진사이의 아들이며 학자인 도가이를 통해 진사이의 학문은 모토오리 노리나가라는 일본 국학의 대가와 연결되고, 진사이의 제자 다자이 슌다이가 교토에서 동경으로 건너가 다시 오규 소라이의 제자가 됨으로서 일본 유학의 큰 흐름이 형성된다는 점도 아울러 기억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