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족과 거인족의 투쟁  이데아와 시뮬라크르

소운 이정우 철학 대계 1

이정우 지음 | 2022-07-20 | 416쪽 | 25,000원


철학자 이정우가 탐구한 21세기 존재론에 대한 2008년의 저작 『신족과 거인족의 투쟁』이 개정증보되어 <소운 이정우 철학 대계> 1권으로 출간되었다. 현대 사유에서 종종 단순화된 형태로만 다루어지던 플라톤주의를 헬라스로 옮겨옴으로써, 한편으로 단순화된 플라톤 상(像)을 깨고서 이데아론의 보다 심층적인 모습을 들여다보고 있는 이 책은 우선 『소피스테스』 편을 읽어 가면서 새로운 논의의 지형을 짜고 있다. 


저·역자 소개 ▼

저자  이정우
소운(逍雲) 이정우(李正雨)는 1959년 충청북도 영동에서 태어났고 서울에서 자랐다. 서울대학교에서 공학과 미학 그리고 철학을 공부했으며, 아리스토텔레스 연구로 석사학위를, 푸코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5~1998년 서강대학교 철학과 교수, 2000~2007년 철학아카데미 원장, 2009~2011년 어시스트윤리경영연구소 소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소운서원 원장(2008~ )과 경희사이버대학교 교수(2012~ )로 활동하고 있다. 
소운의 사유는 ‘전통, 근대, 탈근대’를 화두로 한 보편적인 세계사의 서술, ‘시간, 사건, 생명’을 중심으로 하는 사건의 철학, 그리고 ‘진보의 새로운 조건들’을 탐색하는 실천철학의 세 갈래로 진행되어 왔다. 철학사적 저작으로는 『세계철학사 1: 지중해세계의 철학』, 『세계철학사 2: 아시아세계의 철학』, 『세계철학사 3: 근대성의 카르토그라피』 등이 있으며, 존재론적 저작으로는 『사건의 철학』, 『접힘과 펼쳐짐』, 『파라-독사의 사유』 등이, 실천철학적 저작으로는 『천하나의 고원』, 『전통, 근대, 탈근대』, 『진보의 새로운 조건들』 등이 있다. 현재 『세계철학사 4: 탈근대 사유의 갈래들』을 집필하고 있다.
차례 ▼

개정판에 부쳐 6


서론: 신족과 거인족 11


I. 이데아와 시뮬라크르 25

1. 분할술의 의미 35

2. 시뮬라크르, 거짓, 비존재 60

3. 신족과 거인족 사이: 역능으로서의 실재 94

4. ‘koinonia’의 문제 124

5. 타자로서의 비존재 133


II. 시간, 생명, 창조 149

1. 생성의 무죄 153

2. 영원회귀와 역능의지 195

3. 초인에의 길 227

4. 존재와 시간 254

5. 생명의 약동 300

6. 창조하는 삶 336


결론: 생성에서 존재로 361

보론1: 시뮬라크르와 시뮬라시옹 367

보론2: 플라톤과 원근법의 문제 381


찾아보기 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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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 존재론을 넘어 세계 존재론으로

― 소은 박홍규의 사유로 21세기 한국 철학의 외연을 넓히다



이 책은 철학자 이정우가 스승 박홍규의 사유세계를 정리한 2016년의 저작 『소은 박홍규와 서구 존재론사: 동일성과 차이생성』을 주제와 부제를 바꾸어 개정 출간한 것이다. 현재 한국 철학계의 대표적 학자들을 키워 낸 “한국의 소크라테스” 소은(素隱) 박홍규. 그의 도저한 사상세계를 동·서양의 이분법을 넘어서는 철학사를 쓰는 데 오랜 세월을 바쳐 온 이정우의 시각으로 살펴본다.


소은의 사유는 지난 한 세기에 걸쳐 한국에서 전개된 서구 존재론사 이해의 정점을 이룬다. 그 중심은 아페이론의 사유와 생명철학이다. 우리의 시대는 동일성과 차이생성의 존재론을 동일자와 타자의 윤리학·정치철학으로 잇고 있으며, 생성존재론을 사건의 철학으로 잇고 있다. 그러나 후자의 흐름을 보다 정치하게 사유하려면 전자의 기초를 닦는 과정이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그 시작은 바로 소은의 서구 존재론사 분석을 습득하는 일이다. 소은 사유의 이해를 통해 우리는 21세기 한국 철학 전개의 한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존재론은 메타과학이다”

소은의 관점으로 본 플라톤과 베르그송


소은에게 존재론사는 진리체계의 역사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미숙과 오류, 허위와 왜곡”의 역사이기도 하다. 헬라스 역사를 통해 철학, 특히 존재론이 탄생한 맥락을 검토해 보면, 결국 철학이란 종교, 신화, 주술로 구성된 세계에서 빠져나옴으로써 가능했기 때문이다. 박홍규는 이것을 ‘영혼이 자기 자신을 찾아낸 것’으로 파악한다. 따라서 그는 모든 형태의 주관주의를 거부하며, 주어진 데이터를 기준으로 그에 부합하는 것만을 진정한 인식으로 인정하는 객관성의 철학, 사물의 철학, 데이터의 철학을 강조한다.


즉, 소은에게 존재론이란 과학사적으로 실증되어야 할 메타과학이다. 존재론의 데이터는 곧 과학의 탐구 결과들 전체이다. 존재론은 이 결과를 가장 종합적이고 근본적으로 성찰해 존재론적 가설을 제시하는 작업이다. 그러나 과학의 데이터는 계속 변해 간다. 따라서 과학적 탐구의 결과가 전반적으로 변혁을 이룰 때, 존재론의 역사 또한 새로운 단계로 접어들게 된다. 각각의 시대에는 각각의 존재론이 창조되는 것이다. 이 과정이 존재론사를 형성한다. 소은은 서양과학 전체의 역사를 놓고 이런 존재론사의 흐름을 분석했다. 또한 그 결과로 영원의 철학자 플라톤의 존재론과 생성의 철학자 베르그송의 존재론을 대표적인 그리고 대조적인 존재론으로서 다룬다.



‘철학함의 자양분’으로서의 소은 철학

생명 존재론으로의 길을 열다


소은에게 철학은 모든 데이터들과 모든 추상공간이 연결되는 그 전체적 구도를 잡아낼 때 비로소 탁월한 학문으로서의 존재론이 된다. 그렇지 못한 ‘철학’들은 그저 ‘사상’들일 뿐이다. 그에게 존재론은 과학 이상의 담론이지만 사상들은 과학 이하의 담론들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은의 존재론 개념은 지나치게 엄밀하여, 존재론이 할 수 있고 또 해야 할 작업을 제한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현재의 관점에서 소은의 사유는 과학주의에 물들어 있는 듯하다. 철학은 과학적 경험만이 아니라 정치적 경험, 예술적 경험 등을 모두 포괄하는 경험 일반에 대한 성찰이어야 한다. 즉, 어떤 철학/사상(text)이든 그것의 맥락(context)을 주시하면서 그것에 대해 논해야 하는 것이다. 이정우는 이것이 소은의 ‘서구 존재론사’를 확장해 가야 하는 핵심적인 이유라고 말한다.


그러나 동시에 이정우는 소은의 철학사적 작업이 “우리의 철학함의 자양분”이 된다고 본다. 그로부터 서구 존재론사와 세계철학사를 탐구하고 더 나아가 ‘생명’을 사유하는 법을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소은이 서구 존재론사의 두 축으로 파악한 플라톤의 형상존재론과 베르그송의 생성존재론을 잇는 사유의 길은 이정우에 의해 ‘생명의 존재론’으로 독해된다. 플라톤 철학에서 끊임없이 운동하는 자기운동자는 세계에 생명이 늘 존재하게 하는 근원이며 생명 그 자체이다. 또한 베르그송의 지속의 존재론에서는, 생명의 지속이 구체적으로 전개된 ‘진화’라는 과정에 대한 분석이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을 수밖에 없다. 이처럼 소은의 사유를 이어받아 생명철학과 생명과학, 동북아의 기학이 합류하는 지점에서 ‘생명 존재론’을 다듬어낼 수 있다면, 그런 이론적 기반 위에서 보다 현실적인 연구들(환경철학, 생명윤리, 인간의 새로운 이해, 문화에 대한 반성 등등)의 시도가 가능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