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의 탄생 일본, 그리고 조선이라는 경계
아이아 총서 106
성공회대학교 동아시아연구소 기획 | 권혁태·차승기 엮음 | 2013-04-10 | 328쪽 | 20,000원
제2차 세계대전 패전 이후를 가리키는 ‘전후’라는 개념을 현재까지도 일상적으로 빈번하게 사용하고 있는 일본. 그런데 일본과 함께 세계대전의 한가운데에 있었던 독일이나 유럽의 많은 국가들이 1960년대를 지나면서부터 ‘전후’라는 말을 자주 사용하지 않는 실정을 떠올려 보면,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일본인들에게 ‘전후’란 과연 어떤 의미일까? 왜 이토록 전쟁 이후를 강조하는 것일까?
이 책 <‘전후’의 탄생>은 제국주의 침략을 정당화하는 역사 왜곡의 시도, 민주화의 흐름을 거스르는 우경화의 흐름, 평화헌법 개정 시도를 필두로 한 군사주의화에 이르기까지, 갑작스럽게 많은 가치가 전도된, 일본의 모순적인 ‘현재’를 설명하기 위해 ‘전후’의 기원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리고 ‘전후’ 일본을 재건하는 과정에서 소거되고 봉인되었던 것들을 끄집어냄으로써,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고자 한다.
일본 연구자들의 다양한 주제의 논문들로 구성되어 있는 이 책은, 공통적으로 일본의 ‘전후’가 국민국가의 건설과 미국 주도의 안보체제에의 종속, 제국주의적 과거에 대한 책임연관의 봉인 등이 뒤얽혀 형성되었음을 밝히고 있다. 특히 식민지 ‘조선’과의 관계 속에서 이를 고찰하고 있기에, 해방 직후 한국과 일본의 관계, 그 안에 해결되지 못한 채 미봉되어 있는 다양한 문제점들을 그려 볼 수 있을 것이다.
저·역자소개 ▼
1959년 대전에서 태어났다. 고려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일본 히토쓰바시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야마구치대학 교수를 거쳐 현재 성공회대학교 일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릿쿄대학 초빙 연구원, 규슈대학 대학원 초빙 교수를 지냈고, 계간 『황해문화』의 편집위원이다. 「재일조선인과 한국 사회」, 「1960년대 단카이 세대의 반란과 미디어로서의 만화」 등의 논문과 『일본의 불안을 읽는다』, 『아시아의 시민사회』(공저), 『동아시아 인권의 새로운 탐색』(공저), 『반일과 동아시아』(공저), 『한·중·일 3국의 8·15 기억』(공저) 등의 책을 썼으며, 『히로히토와 맥아더』를 우리말로 옮겼다.
엮은이 차승기
조선대학교 국어국문학부 부교수. 일제 말기의 근대비판 언설을 탐구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일제 말 전시체제기의 문학, 사상, 언설을 초경계적 관점에서 연구하는 한편, 식민주의 재생산의 구조 속에서 식민지/제국 체제의 한계 지점을 발견하기 위한 연구에 주력해 왔다.
지은 책으로는 《반근대적 상상력의 임계들》, 《비상시의 문/법》이 있고, 공저로 《‘전후’의 탄생》, 《주권의 야만》 등이 있다. 최근에는 근대 동아시아의 교착된 경험과 글쓰기의 관계를 새롭게 개념화하는 일에 관심을 두고 있다.
차례 ▼
머리말 _ 소거를 통해 만들어진 ‘전후’ 일본
1부 _ 사상 : 소거의 정치
1장 _ ‘전후 일본’에 저항하는 전후사상 : 그 생성과 좌절 _ 나카노 도시오
2장 _ 사상捨象의 사상화思想化라는 방법 : 마루야마 마사오와 조선 _ 권혁태
3장 _ 전후복구와 식민지 경험의 파괴 : 아베 요시시게와 존재/사유의 장소성 _ 차승기
2부 _ 제도 : 배치의 역학
4장 _ ‘강제연행’과 ‘강제동원’ 사이: 이중적 역사화 과정 속에서의 ‘식민지 조선인’의 배제 _ 한혜인
5장 _ 인권의 ‘탄생’과 ‘구획’되는 인간: 전후 일본 인권제도의 역사적 전환과 모순 _ 이정은
3부 _ 표상 : 교착의 풍경
6장 _ 종단한 자, 횡단한 텍스트 : 후지와라 데이의 인양서사, 그 생산과 수용의 정신지精神誌 _ 김예림
7장 _ 나카노 시게하루와 조선: 연대하는 사유의 모놀로그 _ 서동주
8장 _ ‘조선인 사형수’를 둘러싼 전유의 구도: 고마쓰가와 사건과 일본/‘조선’ _ 조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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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추천글 ▼
자기모순적인 일본 ‘전후’(戰後)의 기원을 추적한다!
소거되고 봉인된 식민지 ‘조선’의 기억을 통해 분석하는 전후 일본의 욕망!!
오늘날 일본에서 ‘전후’(戰後)라 하면 틀림없이 1945년 패전 이후의 시기를 가리킨다. 하지만 이 단어가 함의하는 것이 단순히 시간적인 시기구분만이 아니라는 점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군국주의에서 평화주의로, 군부 전제(專制)의 시대에서 민주주의 시대로, 전쟁 재난의 시대에서 경제 번영의 시대로. 일본에서 일반적으로 넓게 회자되는 ‘전후’란 이같이 ‘전중’(戰中)으로부터 그 시대 기조가 변화했다는 인식을 전제로 한다. 그리고 이 전제하에서 많은 일본인들은 지금도 ‘평화와 민주주의’라는 특별한 시대에 살고 있다는 자기의식을 공유한다. 이런 의미에서 ‘전후 일본’이란 일반적인 일본인에게 하나의 가치개념이다.
― 나카노 도시오, 본문 16쪽
제2차 세계대전 패전 이후를 가리키는 ‘전후’라는 개념을 현재까지도 일상적으로 빈번하게 사용하고 있는 일본. 그런데 일본과 함께 세계대전의 한가운데에 있었던 독일이나 유럽의 많은 국가들이 1960년대를 지나면서부터 ‘전후’라는 말을 자주 사용하지 않는 실정을 떠올려 보면,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일본인들에게 ‘전후’란 과연 어떤 의미일까? 왜 이토록 전쟁 이후를 강조하는 것일까?
제2차 세계대전 이전과 그 과정 속에서 일본은 제국주의적 침략과 폭력을 일삼았음에도, 오늘날 많은 일본인들의 머릿속에 ‘전쟁’은 ‘히로시마 원폭 피해’로 상징되는 피해의 경험으로 각인되어 있다. 일본은 이런 독특한 기억방식을 통해 아시아에 대한 전쟁 책임을 봉인하고, 그 책임을 패전의 피해자 의식으로 대체함으로써, 긍정적인 ‘전후’를 새롭게 구성할 수 있었다. 물질적·정신적 폐허 위에서 다시 경제 성장을 이룩하고, 평화와 민주주의라는 가치를 구축해 나간 역사. 그것이 바로 일본인들 스스로가 인식하고 있는 ‘전후’의 모습이다.
그런데 1990년대 이후부터 일본에서는 ‘전후’가 환기했던 평화, 민주주의 등 긍정적인 가치가 전도되는 일들이 숱하게 벌어지고 있다. 제국주의 침략을 정당화하는 역사 왜곡의 시도, 민주화의 흐름을 거스르는 우경화의 흐름, 평화헌법 개정 시도를 필두로 한 군사주의화에 이르기까지! 일본인들이 자랑스럽게 여기기 마지않던 ‘전후’의 가치가 뿌리째 흔들리고 있는 이유는 대체 무엇일까? 이 책 『‘전후’의 탄생』은 갑작스럽게 많은 가치가 전도된, 일본의 모순적인 ‘현재’를 설명하기 위해, ‘전후’의 기원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리고 ‘전후’ 일본을 재건하는 과정에서 소거되고 봉인되었던 것들을 끄집어냄으로써,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고자 한다.
일본 연구자들의 다양한 주제의 논문들로 구성되어 있는 이 책은, 공통적으로 일본의 ‘전후’가 국민국가의 건설과 미국 주도의 안보체제에의 종속, 제국주의적 과거에 대한 책임연관의 봉인 등이 뒤얽혀 형성되었음을 밝히고 있다. 특히 식민지 ‘조선’과의 관계 속에서 이를 고찰하고 있기에, 해방 직후 한국과 일본의 관계, 그 안에 해결되지 못한 채 미봉되어 있는 다양한 문제점들을 그려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2003년 개소한 이래 아시아 각국의 역사·문화연구자들과 지속적인 학술교류를 진행해 온 성공회대 동아시아연구소가 출간하는 ‘아시아문화연구 시리즈’의 결과물 중 하나다. 이 시리즈는 (제국주의적?식민주의적) 지구화 과정 속에서 아시아가 겪었던 공통의 경험과, 그로 인한 사상적?현실적?감각적 변화를 구체적인 ‘문화’의 장에서 비판적으로 성찰한다. 서구에 대한 타자로서 기술?전유되던 아시아의 경험을, 그 자신을 주체로 하여 새롭게 구성하는 것에 그 목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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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총 3부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각 ‘사상’적인 면에서, ‘제도’적인 면에서, ‘표상’적인 면에서 어떻게 ‘전후’가 형성되어 왔는가를 고찰하고 있다.
‘전후’ 사상: 단절과 봉인을 통한 성립
이 책의 시작을 여는 글은, 바로 위안부 문제를 비롯하여 일본의 역사적 책임에 대해 지속적으로 학문적 목소리를 내온, 일본의 대표적인 진보 역사학자 나카노 도시오의 글이다(「‘전후 일본’에 저항하는 전후사상」). 나카노 도시오는 동아해방전쟁이라는 명분을 찬성하고 지지했던 많은 사상가들이 패전 직후, “패전=일대 변혁의 날”, “패전으로 일본이 크게 거듭났다”고 하며 갑작스럽게 비약하는 장면을 우리에게 보여 준다. 나카노는 여기서 일본의 ‘전후’가 과거와의 단절, 전쟁책임의 봉인, 논리의 비약을 통해 형성되었다는 점을 발견한다. 여기에는 특히 미국 중심의 안보체제에 일본을 편입시키기 위한 미국의 적극적인 개입이 많은 영향을 끼쳤다. ‘천황제 민주주의’라는 독특한 형태의 민주주의를 고안하게 된 것도, ‘국민’이라는 내셔널한 주체의 자각을 호소하는 것도 모두 공산당의 국제주의적 혁명노선(아시아 피지배 민중의 국제적 연대)을 약화시키기에 이른다. ‘아시아주의’를 강조하는 흐름 속에서도, 일본적 전통과 아시아적 전통을 찾아내려는 시도로 인해 침략에 대한 책임의 문제는 점차 희미해졌음을, 나카노는 비판적으로 성찰하고 있다.
이어지는 권혁태의 글은 일본사상의 계보를 새롭게 구축했다고 평가받고 있는 마루야마 마사오의 전후 사상을 다루는데, 마루야마가 글 속에서 무엇을 소거, 사상시키고 있는가를 탐색한다(「사상捨象의 사상화思想化라는 방법」). ‘일본 정치학의 아버지’라고까지 불리는 그의 방대한 연구에 어떻게 식민지 조선에 대한 문제가 사상되었는가를 ―심지어 그는 조선 체류의 경험이 있다―, 그의 사상 형성의 근본 구조와 연결시켜 비판적으로 분석하는 글이다. 같은 부에 배치된 차승기의 글 역시 조선에 체류한 경험이 있는 일본의 대표적인 ‘올드 리버럴리스트’ 아베 요시시게의 사상을 비판적으로 검토한다(「전후복구와 식민지 경험의 파괴」). 이 글은 패전을 경험한 아베가 기억 속에서 식민지 경험을 완전히 삭제함으로써, 즉 자유, 민주주의 등을 논하는 ‘사유의 장소’와 자신이 놓인 구체적 ‘존재의 장소’ 간의 거리를 은폐함으로써(좀더 적나라하게 말하자면, 폭력과 살육의 윤택한 대가를 누리면서 폭력과 살육을 부정하는 이율배반을 은폐함으로써) ‘전후’ 복구의 이데올로기를 생산했음을 드러내고자 한다.
제도를 통한 책임의 회피: 구획과 배제
이 책의 2부는 전후 일본 사회가 형성되는 과정에서, 일본 제국주의의 흔적을 지우거나 은폐했던 제도적 전환의 실상을 문제 삼고 있다. 한혜인의 「‘강제연행’과 ‘강제동원’ 사이」는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 시 자행했던 강제징용, 강제징병의 사실을 어떻게 은폐하고 책임회피하고 있는가를 살펴보는 글이다. 제목에서도 언급되고 있는 ‘강제연행’과 ‘강제동원’이란 표현은 얼핏 비슷한 듯 보이나, 실제로 적지 않은 의미 차이가 존재한다. ‘강제연행’이 폭력적?불법적 성격을 띤 전쟁범죄로서의 의미를 가진다면, ‘강제동원’은 식민지 지배 피해이나 비교적 체계적이고 합법적인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 일본이 ‘강제연행’이라는 말을 선호하고 사용했다는 점에서 우리는 전쟁에 대한 책임 이외에 식민 지배의 책임은 회피하고자 했다는 사실을 유추해 볼 수 있다. 일본은 또한 징용 노동자들의 모집이 자발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졌다는 점을 강조하여 관련 사업체의 책임을 회피하려 했다. 하지만 식민지배하에서 ‘모집’은 강제성을 띨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 일본의 책임회피를 비판하는 이들의 공통된 목소리다. 이처럼 노무동원의 강제성이 부인되어 왔던 역사를 되짚어 보는 것은 일본에 식민지 지배 책임을 묻지 않았던 ‘전후’의 정치적 맥락을 그려 보는 동시에, 일본이 어떤 방식으로 식민지 책임을 축소해 갔는가를 알 수 있는 중요한 작업이 될 것이다.
전후 일본의 인권제도를 다루는 이정은의 글(「인권의 ‘탄생’과 ‘구획’되는 인간」)은 일본의 인권제도가 식민지민이었던 재일조선인을 배제하고 차별하는 방식으로 성립되었음을 말한다. 개정헌법이 인권보장 범위를 “일본 국민”에 한정 짓는 것으로 인해, 식민지민에 대한 차별적 처우문제는 헌법보호의 경계 밖에 놓이게 되었다. 이정은은 이러한 국민주의적 인권 담론이 담론화된 이데올로기일 뿐 현실사회에서 인간의 권리, 사회적 약자에 대한 권리로 구체화되기 어려웠다는 점을 현실의 사례들을 통해 비판하고 있다. “일본 국민”이라는 주체에 한정된 인권 담론의 극복 가능성이 (다수가 재일조선인인) 부락민들의 해방운동 속에서 엿보인다는 점은 주목할 만한 부분이다. 장애인, 피폭자 등과 연대하여 사회적 약자에 대한 차별을 사회가 용인하고 있다는 점을 부단히 문제제기하고 있는 부락민 운동은 내셔널한 근대적 주체를 벗어날 때에 비로소 공허한 인권 담론으로부터 탈피할 수 있음을 보여 주고 있다.
전후 ‘조선’, ‘조선인’의 재현과 표상
마지막 3부는 ‘전후’ 일본의 문화 또는 대중적 재현의 차원에서 ‘조선(인)’이 처리되는 방식을 통해, 일본이 제국주의 과거는 물론 동시대 일본 내에 존재하는 타자를 배제하며 국민국가의 신화를 만들어 가는 과정에 주목하고 있다. 3부를 여는 김예림의 글(「종단한 자, 횡단한 텍스트」)은 그 자신이 식민지로부터 일본으로의 귀환 경험이 있는 후지와라 데이의 자전적 인양서사를 다루면서, 조선과 일본의 서로에 대한 기억이 교차되는 양상을 살펴본다. 또한 이러한 인양서사가 전후 일본과 남한에서 재생산되고 소비되어 온 과정에 식민지 경험과 냉전 경험이 교차하고 있음을 포착해 낸다.
뒤이어진 서동주의 글(「나카노 시게하루와 조선」)은 조선과 일본의 프롤레타리아트 연대를 작품의 주된 주제로 삼았던 나카노 시게하루가 자신의 시를 개작하여 조선과의 관계를 재조정해 간 과정을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패전 후, 나카노는 천황 암살의 모티프를 삭제하고, 이전에 함께 연대할 상대였던 조선인들과의 이별을 고하는 내용으로 시를 개작함으로써 국제주의적 계급연대를 주창하던 과거로부터 떠나온다. 이러한 분리 이후에도 나카노는 여전히 조선(인)과의 연대를 말하기는 하지만, 그것은 조선과 일본의 ‘차이’와 조선인의 ‘타자성’을 인식하지 못한 채 발화되는 공허한 메시지일 뿐임을 필자는 강조한다.
조경희의 「‘조선인 사형수’를 둘러싼 전유의 구도」는 1950년대 후반에서 1960년대 초에 걸쳐 일본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고마쓰가와 사건’과 그 범인으로 체포된 소년 사형수 이진우를 둘러싼 일본 사회, 재일조선인 사회, 한국 사회의 반응과 개입과정을 검토하고 있다(소년 이진우에 대한 일본 지식인들의 관심과 분석, 재현에의 의지는 상당했는데, 일례로 ‘고마쓰가와 사건’은 이후 「교사형」이라는 제목으로 영화화되기도 한다). 이 글은 이들 공동체가 보인 각기 다른 반응을 통해 ‘전후’ 일본의 국민국가 체제와 그 안에서 배제되는 재일조선인 사회가 남한과 북한의 존재에 의해 더 한층 복잡하게 어긋난 관계를 맺고 있었음을 보여 준다.
포스트-전후 일본의 과제
전후 50주년, 60주년을 기념하여 발표된 무라야마 담화와 고이즈미 담화에 이어, 전후 70주년을 맞는 2015년에도 역시 아베 총리의 담화가 예고되어 있다. 아베는 유명 시사지의 인터뷰를 통해 그 내용에 대해 잠깐 언급하기도 했는데, 일본의 대표적 보수 우익인사답게 식민지 지배와 침략을 사죄한 무라야마 담화의 내용을 무력화시킬 것으로 예상되면서 동북아시아 주변국들과의 새로운 갈등구도 형성이 예견되고 있다.
이처럼 책임 있는 전후 처리를 요구하는 주변국들의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이 같은 요구를 묵살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오히려 반한·반중의 감정을 고조시키며 독단적인 외교 행보를 보이고 있다. ‘전후’의 형성 과정에서 미처 해결되지 못한 채 봉인되고 소거되기에 급급했던 문제들이 터져 나오는 것에 대해 일본은 이러한 미봉적인 ‘전후’의 가치를 비판적으로 재검토하고 책임 있는 행동을 보이기보다, 이전보다 더 강한 국가적 질서를 재건하여 세계정세 속에서 다시금 우위를 점하려는 듯 보인다.
‘전후’의 기원으로 거슬러 올라가 일본의 현재 위기를 조망하는 이 책은 ‘포스트-전후’의 위기가 ‘전후’의 붕괴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많은 것을 해결하지 않은 채 봉인한 토대 위에 세워진 ‘전후’의 한계에서 비롯되었음을 역설한다. 그렇기에 ‘전후’의 기조와 가치들이 붕괴되고 있는 ‘포스트-전후’의 과제는 전후질서의 재건 혹은 제국주의적 세력 확장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의 해체여야 할 것이며, 과거는 ‘전후’에 대한 반성과 재구성을 전제로 다시 소환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