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 트라우마  식민지/제국의 경계와 탈경계의 경험들

아이아 총서 103

성공회대학교 동아시아연구소 기획 | 유선영·차승기 엮음 | 2013-04-10 | 240쪽 | 18,000원


20세기 전반기, 제국 일본을 매개로 혹은 그것을 우회하여 초국적 이동을 생존과 실존의 문제로 선택하게 된 피식민지인 이주자들에게, 일본이 내세운 ‘대동아주의’(大東亞主義)는 제국의 ‘아시아’를 트라우마로 경험하게 했다. 이 트라우마 속에서 피식민인들의 사회관계와 정체성은 산산이 깨어져 나갔다.
성공회대학교 동아시아연구소에서 수행한 인문한국(HK) 프로젝트 ‘이동하는 아시아’ 연구의 성과물 중 하나인 이 책 『‘동아’ 트라우마 : 식민지/제국의 경계와 탈경계의 경험들』은, 바로 그와 같은 인식을 바탕으로, 식민지/제국 체제의 아시아인들에게 부과되었던 트라우마적 원경험을 재구성하고 대면함으로써 아시아에 대한 정치적 상상의 회로를 복원하고자 하는 시도로 읽혀야 할 것이다. 


저·역자소개 ▼

엮은이  유선영
2013년 현재 성공회대학교 사회문화원 HK교수. Journal of Inter-Asia Cultural Studies 편집위원(현), 인터아시아문화학회 회장(현), 한국문화연구학회 감사(현). 한국여성커뮤니케이션학회 회장(역임), 학술지 ≪언론과 사회≫ 편집장, ≪한국언론정보학보≫ 편집위원 장 및 ≪한국언론학보≫, ≪한국방송학보≫ 편집위원 역임. 주요 저서: ≪한국미디어문화사≫(2007,편저). 한국의 초기영화 관람과 문화적 수용, 식민지 대중가요(신민요)의 잡종화, 초기영화 관객성, 식민지 외화관람과 문화적 실천, 근대적 대중의 형성, 근대주체의 형성, 아메리카나이제이션, 식민지 미국의 헤게모니 등을 분석한 논문이 다수 있음.


엮은이  차승기
조선대학교 국어국문학부 부교수. 일제 말기의 근대비판 언설을 탐구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일제 말 전시체제기의 문학, 사상, 언설을 초경계적 관점에서 연구하는 한편, 식민주의 재생산의 구조 속에서 식민지/제국 체제의 한계 지점을 발견하기 위한 연구에 주력해 왔다.
지은 책으로는 《반근대적 상상력의 임계들》, 《비상시의 문/법》이 있고, 공저로 《‘전후’의 탄생》, 《주권의 야만》 등이 있다. 최근에는 근대 동아시아의 교착된 경험과 글쓰기의 관계를 새롭게 개념화하는 일에 관심을 두고 있다.

차례 ▼

머리말 _ ‘동아’ 트라우마 : 식민지/제국의 경계와 탈경계의 경험들
서론 20세기 전반기, 초국적 이동의 예외로서 식민지민의 이동: 트랜스내셔널 디아스포라와는 다른 식민지민의 예외성 _ 유선영

1부 _ 동아 민족들의 지정학적 배치와 적대의 장치
1장 _ ‘동아’ 트라우마, 제국의 지정학적 공간과 ‘이등신민’의 정치학 _ 유선영
2장 _ ‘척식’이라는 비즈니스?: 식민지 국가기업으로서의 척식회사 _ 조정우

2부 _ 식민지/제국의 역내 이동과 ‘내지’의 구멍들
3장 _ 내지의 외지, 식민본국의 피식민지인, 또는 구멍의 (비)존재론 _ 차승기
4장 _ 지방주의의 역사-지정학?: 식민지 시기 내지 이주 조선인들의 지방주의적 갈등 _ 차승기

3부 _ 아시아 민족들의 혼거와 긴장, 식민지라는 장소
5장 _ 제국의 경계를 재구성하는 관점에서 바라본 식민지 조선의 중국인 이주 노동자 문제 _ 마이클 김
6장 _ 나카지마 아쓰시의 조선소설?: 식민지 도시공간 ‘경성’을 중심으로 _ 이헬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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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라우마로 경험된 제국의 ‘동아’를 넘어서라!!
식민의 역사가 새겨 넣은 아시아 민족들의 분열적 상흔에 직면한다!


이 책 『‘동아’ 트라우마 : 식민지/제국의 경계와 탈경계의 경험들』은 성공회대학교 동아시아연구소에서 수행한 인문한국(HK) 프로젝트 ‘이동하는 아시아’ 연구의 성과물 중 하나이다.
자본과 전쟁, 그리고 식민화가 만들어 낸 이동선(移動線) 위에서 아시아 제 민족들에게 강제되었던 이민과 이주의 경험은, 그들에게 제국주의와 식민주의가 만들어 낸 균열과 적대가 중첩된 공간으로서의 아시아를 각인시켰다. 이동하는 주체들의 시좌(視座)에서 보면 아시아는 다양한 주체들에 의해 부단히 재전유되는 복수의 상대적 공간들로 쪼개져 있다. 초국적(transnational) 이동 주체들은 소수민족, 이민, 이주노동자, 불법체류자, 귀환이민, 식민의 위치에서 아시아를 상대화하는, 타자화된 주체들이기 때문이다. ‘이동하는 아시아’ 프로젝트는 이러한 이동을 역사화함으로써 현재의 아시아라는 공간을 상대화하는 한편, 그 안에서 분할되는 복수의 공간들의 관계성을 드러냄으로써 아시아를 새롭게 구성하고자 한다.

인종질서와 민족 간 갈등의 ‘동아’

1931년 7월, 조선 전국은 ‘중국인 대학살’(평양 사건)의 광풍에 휩싸였다. 며칠 앞서 중국 지린성 창춘에서 발생한 이주 조선인과 중국인 농민들 사이의 분쟁(완바오산 사건)을 조선 언론이 ‘중국인에 의한 조선인 상해 사건’으로 오보한 것이 도화선이 되어, 사망자만도 142명에 달한 참극으로 폭발한 것이다. 그러나 그 폭발의 예비와 전개 과정을 살피면서, 우리는 민족 간 갈등을 조장하고 그로부터 이권을 탐했던 진정한 배후, 일본 제국주의에 직면하게 된다.
메이지 유신 이래 아시아의 패권국가로 떠오른 일본은 ‘대동아주의’(大東亞主義)의 이름으로 포장한 제국주의·식민주의의 논리를 내세워 피식민 민족들을 이주와 이동, 이산으로 내몰았다. 이 과정은 피식민지인들의 사회관계와 정체성에 파괴하며 그들에게 깊은 역사적 트라우마(trauma)의 경험을 남겼다.
일본의 정책적 유도와 급박한 생계의 필요로 많은 조선인들은 불가피하게 대륙으로의 이주를 선택했다(이 과정에서 제국의 ‘이민기계’migration machines로 활약한 것이 ‘척식회사’들이었다. 「2장」 참조). 그러나 그곳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일본 제국주의의 주구(走狗)’ 취급이었다. 조선인이 들어온 다음에는 반드시 일본 세력이 따라 들어온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일본의 ‘이등신민’(피식민지인이지만 일등신민 일본인에 버금간다는 의미)인 조선인을 보호한다는 명목 하에 일본 영사관이 설치되고 경찰력이 들어오는 등의 일이 일어났고, 이는 고스란히 현지인의 조선인에 대한 반감으로 이어졌다. 게다가 조선인들 중 많은 수가 이 이등신민 규정에 편승해 이익을 취했다는 사실이 갈등을 더욱 심각하게 했다. 이에 조선인들에게 ‘둘째가는 악귀’라는 ‘얼궤이즈’(二鬼子)의 호칭이 붙기까지 했다(「서론」과 「1장」 참조).
반대로 중국에서 조선으로 이동해 온 이주민들이 놓였던 상황은 어땠을까? 일제는 막대한 저임금 노동 수요를 창출하는 동시에 ‘동아’를 관통하는 교통망을 지속적으로 확장해 나감으로써 이주 노동자의 순환을 촉진시켰다. 중국과 일본의 사이에 위치한 식민지 조선으로 중국인 노동자 이민이 급증한 것은 당연했다. 이들의 유입으로 인해 조선 노동시장에는 거대한 산업예비군이 형성되어 저임금 구조를 고착시켰고, 타민족 임금노동자 간의 갈등을 고조시켰다. 급기야는 통치 안정화를 위해 조선총독부가 나서 조선으로의 중국 이민자를 규제하는 데에까지 이르게 된다(「5장」 참조).
학살의 광풍은 이처럼 제국주의·식민주의가 각인된 지정학적 장소 ‘동아’(東亞)에서 민족 간 차별과 위계, 분할에 의해 배양된 적대가 분출한 사건이었다.

식민지/제국 체제의 모호한 경계와 그 불안

‘식민지/제국 체제’는 식민지(조선)와 식민본국(일본)이 각각 분할되어 존재하는 국가 단위가 아닌, 비대칭적 위계관계를 내포한 채로 성립하는 하나의 ‘체제’임을 나타내기 위해 제안된 용어이다(「4장」, 172쪽 이하 참조). 이 체제 아래서 식민지는 모호한 위치에 놓인다. 식민본국(내지)의 통치 시스템에 포섭되어 있긴 하되, 동등한 법 지배를 받는 것이 아니라 조선 총독에 의해 따로 입법 사항이 규정되는 이법(異法) 지역인 외지로서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식민지/제국 체제는 근본적으로 차별을 내포한 체제였고, 민족적 배제와 포섭의 정치를 낳는 체제였다. 이 체제 아래서 피식민 민족들은 제국이 부여한 위계질서에 의해 신분과 정체성을 규정받았는데, 또한 그 위계에 의한 분할선도 제국의 필요에 의해 유동하는 것이었다. 대표적 예시가 ‘내선일체’(內鮮一體)라 할 수 있는데, 중일전쟁 발발을 전후해 전시동원 필요가 긴급해지자 행해진 내지/외지 통합 시도가 그 실체였다.
이처럼 경계는 모호하지만 효과에서는 더없이 강력했던 식민지/제국 체제의 내지/외지 차별 구조는, 제국의 외지를 무대로 했을 때는 앞서 보았듯 민족 간 갈등의 씨앗이 되곤 했다. 그렇다면 외지인의 ‘내지 도항’은 어떤 결과로 이어지고는 했을까? 애초에 피식민지인의 내지 이주 유도의 목적이 늘어가는 저임금 노동력 수요의 충당을 위한 것이었으므로, 그것은 우선 “‘농민’에서 ‘노동자’로의, 특히 ‘룸펜 프롤레타리아’로의 이동”(「3장」, 138쪽)을 뜻했다. 이들은 언제나 지독한 생활불안의 위협에서 벗어날 수 없었고, 그럼에도 식민지 생활의 비참함으로 돌아가게 되는 공포에서 자유로워질 수도 없었다. 때문에 “그들은 제국에 동화될 수 없는 비국민/이등신민으로 배치되며, 문명화될 수 없는 야만성과 후진성을 신체에 각인한 인종”(「머리말」, 9쪽)으로 자타에 규정되면서도, 그곳에서 나름의 ‘정주의식’과 이주민들의 생활권(生活圈)을 형성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생활 조건이란 그야말로 한계적인 것이자 또한 고립된 것이었기에, 내지 도시의 골목 어딘가에 생겨난 ‘구멍’으로 비유되며 ‘내지 속의 외지’로 남을 수밖에 없었다. 나아가 내지 안에는 조선만이 아니라 다른 외지 아시아인들(중국인, 대만인, 오키나와인 등)이 유사한 조건에 놓인 채 혼거하고 있었음에도, 그들은 서로 소통하거나 마주볼 수 없었다. ‘동아’ 트라우마는 일본을 통하지 않고서는 대면할 수 없었던 식민지/제국 체제의 ‘배치’의 산물이기도 했던 것이다(「3장」, 160쪽 이하 참조).
이상에서는 외지에서 외지로, 또 외지에서 내지로 이루어진 초국적 이동이 다루어졌는데, 시점을 바꾸어 내지에서 외지로 이루어진 식민자의 이동에도 관심을 기울여 볼 만하다. 경성의 한문교사였던 아버지를 따라와 청소년 시절을 식민지 조선에서 보냈던 나카지마 아쓰시(中島敦, 1909~1942)는 자신의 소설에서, 이주 식민자들이 식민지에서 정복자로 군림하는 동시에 사적인 관계 또는 친교를 통해 피식민지인들과 함께 얽혀 들어간 복잡하고 독특한 내면의 과정을 형상화한다. “특히 식민지 도시 경성은 피식민지인에게는 끝없이 배회하지 않을 수 없는 공간이지만 식민자에게는 일시적인 방황을 통해 성장하게 하는 공간이라는 점에서, 식민자와 피식민지인은 공존할 수 없는 세계로 분열되어 있”음을 그의 소설은 보여 주는 것이다(「6장」 참조 ).

새로운 ‘아시아’를 상상하기 위하여

20세기 전반기, 아시아의 피식민지인들에게 초국적 이동은 제국 일본에 의해 부과된 생존과 실존의 문제였다. 그리고 이런 강제적 이동을 통해 경험된 ‘아시아’의 일상은 식민주의와 제국주의가 각인된 분할선들을 따르거나 가로지르며 형성된 것이었기에, 그 속에서 이주자들은 자기소외와 타자화의 현실로 내몰릴 수밖에 없었다. 트라우마로 경험된 ‘아시아’라는 정치적 상상의 산물은, 탈식민의 20세기 후반 이후로도 자본·지식·문화의 전 지구화에 대응하는 지역권적 사고를 가로막는 터부로 남았다. 군사·영토 분쟁은 물론이고 경제·문화 영역에서 아시아 민족들 간의 적대가 반복적으로 생산되면서, 대안적 ‘아시아’ 상상을 밀어내고 민족주의와 국가주의를 전면화하는 힘이 강력히 작용하고 있다. 이렇게 “당대에 아시아를 재구성하고자 하는 모든 노력과 시도들을 잡아당기는 퇴행적이고 때로는 파괴적인 힘의 역사가 ‘동아’ 트라우마의 역사”(「머리말」, 10쪽)이다.
이 책 『‘동아’ 트라우마 : 식민지/제국의 경계와 탈경계의 경험들』은 바로 그와 같은 인식을 바탕으로, 식민지/제국 체제에 아시아인들에게 부과되었던 트라우마적 원경험을 재구성하고 대면함으로써 아시아에 대한 정치적 상상의 회로를 복원하고자 하는 시도로 읽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