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이라는 문턱   총력전하 한국-타이완의 문화 구조

아이아 총서 102

한국-타이완 비교문화연구회 지음 | 2010-07-10 | 384쪽 | 21,000원


성공회대학교 동아시아연구소와 타이완 국립 칭화대학 타이완문학연구소의 공동 연구 성과물 <전쟁이라는 문턱>은 양국에 공통된 일제 식민통치의 기억을 복원하려는 시도이다. 특히 중일전쟁(1937)부터 태평양전쟁(1941), 일제 패망(1945)에 이르는, 모든 사회구조가 ‘전쟁’이라는 당면 과제에 맞추어 전면적으로 재편되었던 ‘총력전’ 시기에 당대 지식인들과 대중들의 문화적 감수성을 살핀다. 


저·역자소개 ▼

지은이  한국-타이완 비교문화연구회
성공회대학교 동아시아연구소의 한국문학 연구자들과 타이완 국립 칭화대학 타이완문학연구소의 연구자들이 중심이 되어 구성한 연구회다. 두 연구 단위를 포스트로 하여 다양한 국내외 학자들이 유연하게 결합하여 연구 및 학술기획을 진행하는 개방적인 형태를 취하고 있다. 이 연구회의 2009년 워크숍의 비교 연구 성과물인 『전쟁이라는 문턱』은 타이완 롄징출판사(聯經出版公司)에서 2011년에 출간될 예정이다.


지은이  성공회대학교 동아시아연구소
2003년 개소한 이래 아시아의 ‘문화적 구성’ 과정에 주목하여 다양한 학술 활동 및 연구-교육 프로그램을 기획해 왔다. 문화연구와 지역연구의 생산적인 결합을 추진하면서 아시아 냉전 문화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였으며 현재는 ‘문화로서의 아시아: 사상·제도·일상으로 아시아를 재구성하기’를 아젠다로 인문한국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한편 2010년부터 아시아 문화연구 과정을 개설하여 젊은 아시아 문화 연구자를 육성하고 있다.


지은이  타이완 국립 칭화대학 타이완문학연구소
2002년에 설립된 이래 타이완문학을 본격적으로 연구하고 소개하는 학술 및 교육의 장으로 기능하고 있다. 타이완문학연구소는 타이완의 다양한 문헌들에 대한 심층적인 탐구 및 강좌를 통해 타이완문학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를 도모하고 있다. 이를 위해 타이완 전통 문화-문학으로부터 현대 문화-문학에 이르는 집중적인 코스워크 과정을 개설하고 있다. 

차례 ▼

한국측 서문 _ 차이의 장소와 소통의 가능성을 향하여 5
타이완측 서문 _ 조선과 타이완을 어떻게 만나게 할 것인가? 14

1부 _ 시공간 지형과 의식의 지정학
1장 전쟁, 문화, 그리고 세계사 : 우신룽의 시 「결전에 바친다」를 통해 본 새로운 시간의 공간화 논술의 계보 _ 천웨이즈(陳偉智) 33
2장 전쟁 스펙터클과 전장 실감의 동력학 : 중일전쟁기 제국의 대륙 통치와 생명정치 혹은 조선·조선인의 배치 _ 김예림 63
3장 식민 도시, 문예 창작, 그리고 지방의 반응 : 총력전 이전 타이베이와 하얼빈의 도시적 글쓰기 비교 _ 류수친(柳書琴) 96

2부 _ 타자 경험과 자기 구성의 역학
4장 흔들리는 제국, 탈식민의 문화정치학 : 황민화의 테크놀로지와 그 역설 _ 차승기 143
5장 타이완 지식인의 개인 독서사(1920~1945) : 타이완의 일본어 작가를 중심으로 _ 왕후이전(王惠珍) 174
6장 삶의 위기, 사유의 해방 : 하이데거를 읽는 박종홍 _ 김항 199
7장 동원된 향토예술 : 황더스와 태평양전쟁 시기 부다이시의 개조 _ 스완순(石婉舜) 232

3부 _ 차이와 욕망, 혹은 균열의 정치학
8장 전쟁과 멜로드라마 : 식민지 말기 선전 극영화의 조선 여성들 _ 백문임 261
9장 망각된 ‘항전’ 영화감독 허페이광 : 식민지 시기 어느 타이완 출신자가 상상한 “우리” _ 미사와 마미에(三澤眞美惠) 294
10장 전시체제기의 욕망정치 : 경제불황과 전시호황 ‘사이’, ‘사이보그-되기’의 역설 _ 소영현 319

보론 _ 재고와 전망 353

편집자 추천글 ▼

식민지 지식인들과 대중의 욕망 구조를 읽는다
한국과 타이완 학자들, 식민지의 문화 지층을 공동 탐사하다

한국과 타이완은 일제의 식민 통치를 함께 겪었다. 두 나라는 제국 일본의 북진(北進)과 남진(南進)의 베이스캠프였으며, 유이(有二)하게 총독부가 설치되었던 지역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러한 동시대 유사 경험에 대한 공간적 차이는 지금껏 변변히 연구된 적이 없다. 이러한 현실에서 두 나라의 젊은 학자들이 모여 함께 엮은 이 책 『전쟁이라는 문턱』은 양국 간 비교 연구의 소중한 첫걸음이라 할 만하다.
성공회대학교 동아시아연구소와 타이완 국립 칭화대학 타이완문학연구소는 공동 연구를 통해 두 지역의 식민지 시기를 살아냈던 피식민주체들의 내면을 탐구해 들어갔다. 워크숍에서의 토의와 보완을 통해 더욱 밀도가 높아진 열 편의 글(타이완측 학자 5명과 한국측 학자 5명이 각각 한 편씩 썼다)은 문화·예술·지성계 인사들 ― 예컨대 철학자 박종홍, 문인 박영희와 정비석(이상 한국), 시인 우신룽(吳新榮), 영화감독 허페이광(何非光, 이상 타이완) 등 ― 의 욕망 구조를 추적하는 한편, 그것이 투영된 선전 극영화나 문예지/대중지가 대중의 망딸리떼(Mentalit?, 집단 무의식)와 어떻게 상호작용했는지를 밝힌다.
한편 이 책은 2011년에는 타이완 유수의 출판사인 롄징출판사(聯經出版公司)에서 『??與分界:「?力?」下台?,??的主?重塑與文化政治』라는 제목으로 출간될 예정이며, 이러한 공동 작업은 양국 학술 및 출판 교류의 독특한 사례로 기록될 만하다.


왜 총력전 시기의 문화 구조에 주목하는가

최근 몇 년 사이, 일제강점기를 보는 시각은 많이 다양해졌다. 정치적·경제적 틀 내지는 친일과 항일의 구도로 쉽사리 환원할 수 없는, 당대인들의 ‘삶의 결’들에 주목하게 된 것이다. 주로 문화연구의 영역에서 주도해 온 이러한 흐름은 “제국이 행한 자명해 보이는 부당한 폭력과 억압 속에서, 모호하게 비틀리고 뒤섞인 욕망”(359쪽)들을 발견하고 해명하려는 노력의 일환이었다. 이 책 또한 이러한 ‘빈틈’에 주목함으로써, 그리고 타이완이라는 타자를 우리의 인식 속으로 끌어들임으로써 ‘식민’과 ‘전쟁’이라는 거대한 이름 뒤에 감춰진 ‘공통의 미시적 기억들’을 복원하고자 한다.
기나긴 식민 시기 중에서도 이 책은 특히 1937년의 중일전쟁과 1941년의 태평양전쟁을 거쳐 일제 패망에 이르는, 모든 사회구조가 ‘전쟁’이라는 당면 과제에 맞추어 전면적으로 재편되었던 ‘총력전’ 시기를 논의의 대상으로 한정했다. 이는 이 시기에 “제국의 장악력이 물리적·이념적으로 극대화”되는 동시에 “그 강력해지는 장악력과 연동하여 식민자와 피식민자 사이의 탈구 그리고 피식민자 내부의 균열 역시 극단화”(7쪽)되었기 때문이다. 즉 ‘총력전’이란, 제국의 운영술에 추동된 당시의 사회적 가치들을 피지배자들이 어떻게 이해하고 내면화했는지, 그리고 어떤 방식으로 이에 복무하거나 저항하거나 타협했는지를 가장 역동적으로 드러낼 수 있는 표지였던 것이다.


제국과 만난 지식인들, 그 욕망의 변주곡

제국의 질서를 만드는 데 관여할 수는 없지만 그 변화에 가장 민감한 촉수를 가지고 반응하며 자신의 내면을 조율해야 했던 이들이 바로 당시 문화˙예술계 인물들일 것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다양한 분야의 지식인들이 보여 주는 욕망 구조는 60년이 지난 현대의 학자들에 의해 신랄하게 재조명되었다.
시인의 감수성과 역사인식을 잃지 않은 채 지방 말단 간부가 됨으로써 제국에 복무하게 된 타이완의 시인 우신룽이 일본어로 발표한 시 「결전에 바친다」(1943)에서 드러나는 것은 ‘비국가적 사회’로서 한 번도 세계사 속에서 자신의 자리를 차지할 수 없었던 타이완에 대한 적극적인 위상 부여였다(1장 참조). 박영희나 임학수 등의 한국 문인들 역시 “전쟁 실감 강박”에 휩싸여 끊임없이 전쟁을 감각화하기를 욕망했고, 이러한 감각적 공유가 조선 사회 전체로 분유될 것을 도모했다(2장 참조). 한국 철학계의 거두 박종홍은 “세계와 인간과 자연이 모두 경제·정치·과학·문학의 개념과 용어로 파악되었기에 사상 그 자체는 존재 가치를 상실”(372쪽)했던 이 시기에 하이데거의 ‘세계-내-존재’ 개념을 ‘우리-내-존재’로 변용함으로써 사유와 주체의 해방을 꿈꾸었다(6장 참조).
한편 타이완 출신의 ‘항전’(抗戰) 영화감독 허페이광의 존재는 독특하다. 타이완 태생으로 일본에 유학했고, 작품활동은 중국(충칭)에서 했던, ‘어디에도 소속될 수 없었던’ 그는 자신의 영화들을 통해 전쟁 상대국 국민들과도 “억압된 사람으로서의 과제를 나누어 가질 수 있다면” 연대할 수 있음을 보여 주고자 했다(9장 참조). 타이완의 전통 인형극 부다이시(布袋戱)를 보존하기 위해 일제 당국과 협상하고 일본 전통 인형극과의 융합을 주선했던 황더스(黃得時)의 노력도 눈여겨볼 대목이다(7장 참조).


대중들의 상처, 그리고 황민화에의 꿈

총력전 시기는 ‘보통의 사람들’에게도 거대한 ‘문턱’이었다. 채만식의 단편 『잡어』에 등장하는 카페 여급의 말 “비상시를 빙자로 물가는 다락처럼 뻗어 오르고, 비상시를 핑계로 팁은 줄어만 들고, 비상시를 구실로 노루꼬리만 하던 월급도 깎이고, 그리고 비상시인 까닭에 영업시간은 단축”되었다는 데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무엇보다도 긴축된 경제상황에 대한 공포가 컸음은 물론이거니와, 이처럼 변화된 현실 속에서 ‘개인의 안정과 부의 추구’라는 새로운 처세 원리를 내면화하는 질적 변화를 감수해야 했기 때문이다(10장 참조). 왕스랑(王詩琅), 궈추성(郭秋生) 등 타이베이에서 활동한 작가들이 그려 내고자 한 것도 바로 이러한 도시의 ‘그림자’ 또는 변화에 대한 당대인들의 불안이었다(3장 참조).
한편 「지원병」(1940), 「조선해협」(1943) 등 조선의 선전 극영화에서 드러나는 것은 ‘진정한 황국의 병사’로 거듭나야 하는 남성들을 전장으로 보내야 했던 여성들에 대한 대상화였다. 이데올로기적으로는 선전과 동원의 대상인 동시에 정서적인 공감을 이끌어 내야 하는 대상이었던 조선 여성들은 주도면밀하게 계획된 멜로드라마 구조 속에서 이중 삼중으로 타자화된 것이다(8장 참조). 또한 이러한 ‘황민화’의 비전은 “살게 만들거나 죽게 내버려 두는” 생명-권력과 결합하여 피식민자들에게 빠른 속도로 자발적으로 내면화되었다. 내선일체 이데올로기의 작동 배경에는 바로 이러한 생명-권력의 통치술이 자리 잡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4장 참조).

결국 이 책이 드러내 보여 주는 것은 ‘식민’이라는 거대한 서사 속에 가려져 있던 우리 스스로의 모습들인 동시에, 유사성과 차이를 함께 갖는 타자와의 대면 의지라 할 수 있다. 특히 여전히 반목과 협력의 부침이 계속되고 있는 동아시아라는 공간 속에서, 자신과 타자를 아울러 사유하고 관계를 다각화하는 것은 상호 소통뿐 아니라 잠재태로서의 우리를 재질문하는 데에도 커다란 의미를 가질 것이다. 나아가 아직도 굳건히 유지되고 있는 세계질서의 중심부-주변부 관계나 일상생활 속 권력관계를 고찰하는 데에도 많은 시사점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