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알던 가족의 종말 오늘날 일본가족의 재구조화
아이아 총서 101
야마다 마사히로 지음, 장화경 옮김 | 2010-04-12 | 248쪽 | 17,900원
산업화가 추진되던 와중에는 3세대가 모여 사는 친족 중심의 가족이 소규모 핵가족으로 전환되었고, 최근에는 그 핵가족마저 비혼, 한부모 가정, 조손(祖孫) 가정 등 다양한 형태로 분화되고 있다. 가족은 사회의 유의미한 단면이기에, 가족의 현황을 파악하고 가족에 관한 전망을 제시하는 일은 미래 사회에 대한 전략적 대응이기도 하다. 이 책 『우리가 알던 가족의 종말』은 1970년대부터 진행된 일본의 장기 불황 속에서 가족이 어떻게 구조적으로 변화해 왔는지를 ‘경제사회학적’ 관점에서 분석한 책이다. 고도경제성장기를 지나 저성장기로 경기가 변동되면서 개인의 삶뿐만 아니라 가족의 라이프사이클도 변화한다고 보는 것이다. 이 책은 ‘미혼화 현상’을 ‘전업주부를 포기할 수 없는 여성들의 문제’로, 초고령화 사회의 문제를 ‘돌봄 노동의 성편향에서 비롯된 문제’로 규정하며 독자들에게 가족과 사회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제공한다.
저·역자소개 ▼
도쿄 출생으로 1981년 도쿄대학교 문학부와 동 대학원 사회학 연구과 박사 과정을 마쳤다. 현재는 주오대학 사회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가족사회학, 감정사회학, 젠더론, 결혼관 등을 연구 분야로 삼고 있다. 일본을 대표하는 사회학자 중 한 사람으로 대학 졸업 후에도 부모 집에 동거하면서 독신 생활을 계속하는 이들을 일컫는 ‘패러사이트 싱글’, 중산층이 빠르게 축소되면서 양극화가 진행되는 현상을 포착한 ‘격차 사회’, 결혼도 취업처럼 적극적 활동이 필요함을 환기시킨 ‘곤카쓰’(婚活) 등의 개념을 일본 사회에 널리 확산시키는 데 핵심적 역할을 담당했다.
지은이 장화경
서울에서 태어나 이화여자대학교 사회학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도쿄대학에서 사회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는 성공회대학교 일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함께 지은 책으로는 『사회학으로 풀어본 현대 일본』(일조각, 2005), 『변화하는 사회, 다양한 가족』(양서원, 2005), 『가족의 사회학적 이해』(학지사, 2002), 『일본 지역연구 下』(소화, 2004) 등이 있다.
차례 ▼
옮긴이 서문
제1부 가족의 규제완화
1장 ‘부부관계의 구조조정’이 시작되었다:?민법개정 시안의 의미
2장 연애결혼의 함정:?쓰쿠바 처자식 살해 사건에 나타난 현대부부의 위기
3장 현대부부의 행방
제2부 점차 없어지는 전업주부
1장 저성장이 초래한 미혼화와 결혼난
2장 일반직과 전업주부의 소멸:?취직 빙하기에 투영된 여성의 미래 인생유형
3장 전업주부가 없어지는 날
제3부 저출산과 기생적 싱글
1장 저출산이 정착된 사회
2장 헤이세이 불황과 미혼화ㆍ저출산의 관계:?기생적 싱글로 나타난 현대의 위기
3장 저출산과 기생적 싱글 현상의 대응책
제4부 개호·가사·육아에 지금 필요한 것
1장 남자는 고령자 개호를 할 수 없나?
2장 가사는 부인의 애정 표현인가?
3장 자녀양육이 압력으로 작용하는 시대
제5부 일본가족의 향후 전망
1장 질서를 중시한 일본가족에 외상 청구서
2장 일본가족의 세기말
3장 가족의 구조조정
맺음말|감사의 말|후주|이 책 각 부의 원 출처|찾아보기
편집자 추천글 ▼
장기 불황 시대, 가족을 구조조정하라!
―경제변동의 관점에서 본 결혼과 가족의 사회학
출산율(2009년 1.13명, OECD 국가 평균은 1.65명)은 급격히 떨어지고, 결혼 연령은 늦춰졌으며(남성 31.6세, 여성 28.7세), 구조조정으로 조기퇴직을 앞둔 아버지와 ‘88만원 세대’인 (아마도 취업 준비 중일) 자식들이 우리 시대 가족의 풍경이 되었다. 고도성장에서 장기 불황으로 전환된 경제 구조는 개인의 삶뿐만 아니라 가족의 형태와 내용을 변화시켰다. 그렇다면 새로운 가족의 전망은 어디서 찾아야 할까?
이 책 『우리가 알던 가족의 종말』(원제 : 家族のリストラクチュアリング, 1999)은 1990년대 거품경제 붕괴 이후 진행된 일본가족의 구조 변동을 ‘경제사회학적’ 관점에서 분석한 책이다. 가족을 주제로 하는 보수적 담론들이 가족 구조의 변동 원인을 ‘개인주의의 증가’나 ‘사회적 도덕성의 상실’로 보는 것과 달리, 이 책은 가족의 변화를 경제적 변동과 연계하여 필연적으로, 그리고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으로 설명한다. 고도경제성장기를 지나 저성장기로 경기가 바뀌면서 바람직한 가족의 모델 역시 변화했다고 보는 것이다. 특히 이 책은 한국사회에서도 크게 문제가 되고 있는 미혼화(未婚化)·만혼화(晩婚化) 현상과 저출산의 원인이 젊은이들로 하여금 지금 시대에 걸맞은 가족의 영역을 창출하기보다는, 기성의 가부장적 가족 체제에 기댄 채 ‘기생적 싱글’로 살기를 ‘권하는’ 사회 현실에 있다고 지적하며, 우리 시대의 가족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제공한다.
이 책은 성공회대 동아시아연구소와 그린비의 ‘아이아 총서’가 함께하는 ‘아시아문화연구 시리즈’의 첫 책이다. 성공회대 동아시아연구소는 2003년 개소한 이래 아시아 각국이 식민화, 냉전, 지구화 과정에서 어떠한 변화를 체험했는지를 구체적인 ‘문화’의 장에서 연구하며 각국의 연구자들과 학술 교류를 해왔다. 이 책 『우리가 알던 가족의 종말』은 가족 제도를 구성원의 관계성 및 현실적 구조, 심리적 측면 등으로 나누고 각 측면에 영향을 미치는 관련 요인들을 객관화시켜서 조망하는 시도를 함으로써, 이 시리즈가 지향하는 바를 명확하게 드러내고 있다.
이 책의 저자 야마다 마사히로(山田昌弘)는 ‘기생적 싱글’, ‘신(新)전업주부 지향’, ‘결혼 활동’ 등, 가족을 분석하는 다양한 개념들을 만들어 내며, 가족 분석의 외연을 확대해 온 일본의 사회학자다. 현재 가족사회학 분야에서 폭넓은 활동을 하고 있는 그는 기존 사회학과 페미니즘 가족 분석을 넘어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는 남성 사회학자로서 학계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결혼 기피 현상과 기생적 싱글의 탄생
미혼화와 만혼화 : 결혼과 경기 변동의 관계
2010년 3월 30일 통계청에서 발표한 통계자료에 따르면 남녀 초혼 연령은 또다시 상승했으며, 결혼율도 계속 낮아짐(인구 1000명당 혼인 건수는 6.6건으로 2008년보다 0.4건 줄었음)을 알 수 있다. 결혼율의 하락과 초혼 연령의 상승은 해방 이후부터 지속적으로 진행되어 왔지만, 지금 문제가 되는 이유는 이러한 통계가 IMF 이후의 장기 불황이라는 외부적 요인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미혼화·만혼화 경향은 이미 20년 전 일본이 장기 불황(헤이세이 불황 : 1991~2002)에 진입하며 겪었던 일들이다. 경기가 호조세를 보일 때면 미혼 남녀들은 결혼을 결심한다. 호경기가 지속되는 동안 예비 부부들의 눈앞에는 생활 수준이 높아질 것이라는 미래의 전망이 놓여 있다. 하지만 경제가 어려워지면, 둘이서 저축을 하더라도 앞으로 생활이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은 사라진다. 거기에 아이에 대한 양육 부담까지 더해지면, 결혼은 선택지에서 제외된다.
이 책은 불황 이후의 가족 구조 변화를 살피며, ‘결혼과 경기 변동의 관계’를 명확하게 규명해 낸다. 미혼화와 만혼화 경향은 부동산 거품이 꺼지고, 종신고용?연공서열 시스템(고용 안정화 시스템)이 붕괴되는 불황으로 접어들면서 심화되었다. 이것은 고용 안정화 시스템의 붕괴와 더불어 일본 경제의 중심축이었던 중류층 가정의 구조(아버지?샐러리맨, 어머니?전업주부)도 함께 붕괴되었기 때문이다. 대량 감원 사태를 맞으면서 여성은 결혼 이후의 경제적 안정을 기대할 수 없고, 남성은 가족을 부양하는 가부장의 권위를 세우지 못하게 된다. 한마디로 ‘부모님 시절’만큼 경제적인 여유를 누릴 수 없다면, ‘차라리 혼자 살겠다’는 결혼 포기로 이어지는 것이다. 저자는 개인주의적인 선택에 의한 자발적인 미혼화와 만혼화는 없다고 단언한다. ‘생활수준을 낮추고 싶지 않다’, ‘중류층 생활을 혼자서라도 이어 가겠다’는 경제적 선택과 불황이 맞물려 결혼율의 하락과 미혼화 현상으로 이어진 것이다.
불황이 만들어 낸 신(新) 인류, 기생적 싱글!
고용 불안정의 시대는 개인의 삶을 불안정하게 만들 뿐 아니라, 가족의 삶도 위태롭게 만든다. 부모 세대들은 대학을 졸업하면 으레 기업에 취업하여, 때가 되면 관리직까지 올라갔지만, 자식 세대들은 이태백 시기를 거쳐 간신히 취업하더라도 30대부터 구조조정의 위기에 시달린다. 이 책은 부모에게서 독립하지 않고, 부모의 경제력에 의지하며 살아가는 미혼남녀들을 ‘기생적 싱글’(parasite single)이라고 칭한다. 이 기생적 싱글들은 저성장 국면으로 접어든 경제 상황으로 인해 저임금체계와 불안정한 노동 환경 속에서 살고 있지만, 동시에 중류층의 여유 있는 삶을 누리고 있다. 이들의 부모가 종신고용?연공서열 시스템의 수혜자들이기 때문이다. 경제적 계층과 노동 환경이 일치하지 않는 상황에서 기생적 싱글들은 자신보다 소득이 높은 부모에게 기생하며, 자신의 소득은 모두 용돈으로 소비한다. 이들의 소비적 성향은 저소득층이면서 일본 명품 매장의 최고 고객이기도 하다는 사실에서 입증된다.
이 책의 저자 야마다 마사히로는 기생적 싱글의 증가야말로 긴급한 사회 문제라고 말한다. 기생적 싱글들이 속해 있는 직종은 일반사무직으로서 이미 감원이 진행되고 있다. 한편, 고용 안정화 시스템이 완전히 붕괴되면 이들의 부모도 더 이상 높은 소득을 자식들에게 가져다 줄 수 없다. 부모가 아프더라도 중류층이기 때문에 복지제도에 의탁할 수 없으며, 부모의 간병과 자신의 생활 유지를 위해 계속 돈을 벌어야 한다. 더 나아가, 결혼을 포기하여 자신만의 가족을 만들지 않았던 이들은 부모가 죽고 난 후에는 완전히 혼자 놓이게 된다. 보살필 사람이 전혀 없는 미래의 독거노인으로서, 기생적 싱글은 초고령화 사회로 진입하는 일본사회에 더 큰 부담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샐러리맨·전업주부 시스템의 지각 변동
‘취집’은 없다 : 전업주부, 이제는 불가능한 꿈
많은 페미니스트들은 고도경제성장기가 여성의 사회 진출을 강화했다고 말하지만, 이 책은 오히려 이 시기에 여성의 전업주부 지위가 확고해졌다고 분석한다. 남성 한 사람만의 임금으로도 가정 경제를 지탱할 수 있다는 확신을 경제 체제가 마련해 줬던 것이다. 호경기가 계속되던 시절, 여성은 전업주부로서 남편을 뒷바라지하며 가정을 돌보기만 하면, 더 안락하고 행복한 앞날을 맞이한다는 꿈을 꿀 수 있었다.
하지만 경제 불황기로 접어들면서 전업주부는 가정 경제가 감당하기 어려운 존재가 되어 버렸다. 저성장이 지속되면서 남편들의 실질임금은 삭감되기 시작했다. 아이들의 성장과 임금 삭감이 맞물리면서 가정 경제는 점점 마이너스 국면으로 흘렀다. 이런 상황에서 전업주부들은 기존에 누리던 중류층의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파트타임 취업을 해야 했다. 현실적으로 불황이 지속되면 전업주부는 사라질 수밖에 없다. 결혼이 생활의 보장이 되지 않을뿐더러, 중류층의 생활수준을 유지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돈을 벌어야 하는 상황으로 내몰린다. 이런 맥락에서 열악한 노동 환경을 피해 전업주부가 되고자 하는 미혼 여성들은 결코 결혼할 수 없을 것이다. 나아가 경제와 애정이 분리되고 이혼이 쉬워진 현대 사회에선, 전업주부의 희망 자체가 여성들이 스스로의 삶을 선택할 여지를 좁히는 결과를 낳는다.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는 여성만이, 애정 생활에도 스스로의 의사를 반영할 수 있다.
싫어진 사람과는 함께 살 수 없다 : 이혼의 규제완화
1996년 일본에서는 민법개정안이 제출되었다. 일본가족법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부부동성(夫婦同姓)원칙을 폐지하고 부부별성제(夫婦別姓制)로 변경하는 조항과, 협의이혼제의 원칙을 수정하여 ‘별거 5년이면 이혼을 인정한다’는 조항이 포함된 개정안이었다. 이 책은 이로써 이혼에서 ‘감정 표현의 자유화’가 인정되었으며, ‘이혼의 규제완화 시대’가 도래하였다고 분석한다.
이러한 변화는 가족의 중심이 가부장에서 구성원 각각으로 산종되고 있음을 보여 주는 사례이다. 민법 개정 이전의 복잡한 이혼 과정은 외형적으로만 부부관계를 유지하고 실제로는 침식을 따로 하는 ‘가정 내 이혼’을 낳았다. 불황이 지속되는 동안, 남편은 아내가 싫어도 양육비와 위자료를 지불하는 것이 두려워, 전업주부인 아내는 남편과 헤어지고 난 후 생활수준이 하락하는 것이 두려워, 억지로 참고 사는 현상이 양산된 것이다. 이 책은 강제적으로 유지되어 온 가족 환경이 사회적 문제가 되었다고 보며,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이혼의 규제완화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지적한다.
경제 성장률이 매년 최고치를 경신하던 시절에는 ‘참고 견디면’ 아이들은 부모보다 더 높은 학력을, 부모들은 더 안락한 경제생활을 누릴 수 있을 것이란 희망을 품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전망이 사라져 버린 오늘날, ‘가족 이데올로기’는 무용할뿐더러 유해한 관념이 되었다. 불안정한 고용 환경은 중류층 가족이라는 환상을 더 이상 꿈꾸지 못하게 만들었다. 여성의 (불가피한) 취업은 경제와 애정 생활의 분리를 촉진시켰다. 사람들은 부부도 헤어지고 싶으면 언제든 헤어질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러한 배경 속에 이혼의 규제완화는 필연적인 사회적 요구로서 대두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가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가족도 해체될 수 있다는 생각은 가족 구성원들에게 정서적으로 최선을 다하도록 만들며, 현재의 삶에서 안주하지 않고 더 나은 애정 생활을 위해 노력하도록 만든다.
고령자 돌봄 : 남성도 함께하는 영역으로
이 책에서는 초고령화 사회로 진입하기 전, 개호(介護, care) 서비스에서도 구조조정을 시작해야 한다고 말한다. (개호는 우리말의 ‘돌봄’에 해당하는 말로써, 현재는 ‘고령자를 돌보는 일’을 지칭한다) 일본은 한국보다 먼저 고령화 사회에 진입하면서 고령자 개호 서비스가 발달해 왔다. 하지만 아시아 국가들의 복지 시스템이 그렇듯, 최저생활 보장이 복지시스템의 기준이 되기 때문에, 중류층은 최저생활로 생활수준이 하락하기 전엔 개호 서비스를 받을 수가 없다. 그리하여 개호 서비스는 일본에서 효(孝)의 영역, 가족의 영역으로 간주되어, 국가나 사회보다 개인들이 해결해야 할 문제로 여겨졌다. 그러나 고령화 사회에서 초고령화 사회로 진입하는 현시점에서 고령자 인구 규모는 계속 증가하고, 고령자를 부양해야 할 젊은 층들의 비율이 상대적으로 감소하면서 개호를 받지 못하는 노인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특히 개호 서비스의 인력난은 심각한 사회 문제로 인식되고 있다.
이 책은 개호 서비스의 인력난을 복지 예산의 증가나, 가족 구성원들의 열의 문제에 국한시키는 것을 넘어, 신체 감각에 대한 성차별적 시각을 철폐하자는 주장으로 이어 간다. 저자는 개호의 수요는 급속히 증가하는 상황에서, 개호 서비스를 여성 특히 전업주부의 영역으로 보고, 여성의 돌봄을 모성애로 여기는 사회 분위기가, 인력난을 심화하는 원인이 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남성에게 몸을 씻기기보다는 도리어 서비스 자체를 받지 않겠다는 고령자나 장애인들이 꽤 많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개호 서비스의 인력난을 해결하기 위해 임금 수준을 올려놓았음에도 인력난은 여전히 심각하고, 개호 인력의 성 편향도 해소되지 않았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돌봄을 여성의 일으로 생각하는 사회 분위기가 달라져야 한다. 유럽이나 미국에서는 남성 간호사나 남성 개호사들이 돌봄 노동을 하는 것이 지극히 자연스럽다. ‘모성애’가 아니라 ‘친밀감’으로, 개호 서비스의 신체 감각을 전환한다면 남성이 개호의 영역으로 진입할 수 있고, 그렇게 되면 개호 서비스 내의 성 편향 현상도 해결할 수 있다고 본다.
새로운 가족의 탄생을 위하여
전 세계적인 경제 불황과 더불어 한국 경제에도 저성장기가 도래하였다. 사회적 변화 속에 가족 변동이 가속화되고, 고령화와 저출산 현상의 진행 및 정책적 대응에 관한 논란도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이 책의 분석 대상은 일본가족 구조의 변동이지만, 그 사례들은 국적을 따지기 힘들 정도로 한국사회의 문제들과 닮아 있다. 특히 ‘기생적 싱글’과 미혼화·만혼화 현상의 분석은, 88만원 세대와 부모 세대 사이의 공존을 냉철한 시선으로 바라보게 해주며, 애정 이데올로기로 포장된 우리 사회의 가족 구조의 이면을 독자들에게 드러낸다.
일본에서도 한국에서도, 경제성장기의 가족은 애정에 기반하여 효율적인 노동을 제공하는 집단으로 정착되었다. 경제성장 시스템을 샐러리맨?전업주부라는 가족 시스템으로 뒷받침해 왔던 것이다. 하지만 경기 침체로 경제적 여건이 붕괴되면서 가족 내부에도 균열이 일고, 기존의 가족 규범을 통해 강제되어 온 부부관계, 부모?자식관계는 기형적으로 변하고 있다. 시류에 맞지 않는 경제 시스템을 구조조정하듯, 가족 역시 규제완화와 구조조정을 통해 새 시대에 적합하게 방향 전환을 해야 한다.
이러한 새로운 가족 창출을 위해선 청년층이 적정 연령이 되면 부모로부터 독립하여 새로운 가정을 꾸리도록 하는 사회적 환경을 만들어 내는 것에 있다. 물론 이것은 연공서열의 기득권층인 부모 세대의 양보를 통해, 젊은 세대의 수입을 안정화시키고 장래의 예상수입을 상승시키는 사회보장 조치와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기생적 싱글’인 미혼남녀와 이혼의 규제완화로 다양하게 분화될 부부들에게 새로운 가족을 꾸릴 것을 요구하는 동시에 뒷받침해 주어야 한다. 물론 많은 걸림돌이 있겠지만, 이러한 변화 없이는 가족뿐 아니라 사회 전체의 미래 역시도 암담하다. 새로운 가족의 탄생 없이는, 사회의 경제적 생존도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선진국의 경우 1970년대 저성장기에 접어들면서, 남성의 손실임금을 보전하기 위해 여성들의 사회진출이 강제되었다. 그러한 과정에서 양성 평등적 직장 환경이 진행되었다고 이 책은 분석한다. 이처럼 저성장시기는 가족에게 또 다른 기회로 작용한다. ‘싫은 사람과 헤어지고, 가족의 미래가 아닌 자신의 미래를 위해 능력을 갈고 닦는다’는 가족 구성원들의 변화는 곧 가족 구조의 변화로 진행될 것이다. 이미 한국사회에서 한부모 가족, 조손(祖孫) 가족, 비혼 가족 등 다양한 가족 형태가 만들어지고 있다. 이러한 가족의 분화는 아마 점점 더 다양하고 복잡한 방식으로 전개될 것이다. 이 책은 앞으로 전개될 가족 양상을 폭넓은 시각에서 볼 수 있도록 돕는 좋은 길잡이가 될 것이다.